제22장 병화(丙火)의 일주(日柱)

작성일
2007-08-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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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화(丙火)의 기본형은 편관(偏官)이다. 십성(十星)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난폭하며 통제불능(統制不能)의 상태에 처하게 되는 성분이다. 고서(古書)에 병화(丙火)를 태양(太陽)이라고 했는데, 그러한 면에 부합되는 작용으로는 한 여름의 폭염(暴炎)을 예로 들 수가 있다. 더위에 숨이 턱에 닿아서 헐떡이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서 병화(丙火)의 모습이 느껴지고, 길게 늘어진 개의 혀와 못 견디겠다는 듯한 표정에서도 병화가 느껴진다. 이러한 경우에는 병화를 태양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리는 장면이다.

병화(丙火)는 빛이다. 직선적(直線的)인 구조를 하고 있어서 굽어지는 이치를 모른다. 오로지 직선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성분이므로 수용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원하는 대상에서는 고맙게 수용을 하겠지만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견디기 힘들 만큼의 강압적(强壓的)인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느낌은 폭염(暴炎)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가 있으며, 땡볕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삼복더위의 강력한 햇볕과 같은 역할에 해당하는 것이 병화(丙火)이며, 감히 어느 누구도 대들지 못하는 성분으로 인식을 할 수 있다.

병화(丙火)는 두려움을 모른다. 자기 소신대로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만이 존재한다. 추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으면 폭발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근접하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이성적(理性的)인 성분이 거의 없으므로 그야말로 적나라한 감정을 그대로 나타내는 모습이 된다. 강경한 병화가 인정을 베풀게 되면 한없이 자비로워진다. 호랑이가 새끼를 돌보는 모습을 떠올려도 좋다. 그러한 병화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약한 자를 돌보느라 자신의 모습은 생각하지 못하는 장면도 연출된다. 그야말로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다는 것은 병화(丙火)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기도 하다.

병화(丙火)는 극양(極陽)이다. 양이 극에 달한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꺾이게 될 지경에 처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병화(丙火)에게는 자신의 난폭함에 대해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성분이 바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데, 그 성분은 바로 빛을 흡수(吸收)하는 것이다. 흡수당한 빛은 이미 그 존재가 의미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병화는 빛을 흡수하는 존재를 만나지 않고자 희망한다. 어둠이 두렵다. 그래서 더욱 밝음이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것은 극단적(極端的)으로 선택하게 되는 성분이기도 하다. 어쩌면 극한 상황까지 도달한 용(龍)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온갖 몸부림을 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병화(丙火)는 신령(神靈)이다. 영계(靈界)에서 만물을 통제하는 주재자(主宰者)가 되는 것으로 해석을 한다. 노자(老子)가 말하는 ‘천지(天地)는 불인(不仁)이다.’라는 의미도 여기에 연결이 된다. 모두를 목적에 의해서 사용하고 버리는 것을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시행하므로 사정(私情)이 없다. 무심(無心)으로 통제하므로 그 사이에서 죽는 자도 있고 성장하는 자도 있지만 신령(神靈)은 개의치 않는다. 이러한 성분을 닮은 것이 병화이다. 만물을 성장의 극한 지점으로 끌고 올라가는 역할을 한다. 마치 땅에서 수증기나 열기가 난류(暖流)를 타고 상승하여 거의 정상(頂上)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를 말하게 된다. 병화는 뭔가 편안한 모습이 아니라 강경한 이미지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병화(丙火)는 무지하게 빠르다. 물리학자의 말에 의하면 1초에 약 30만km를 달린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급(性急)하기가 십간(十干) 중에 으뜸이 되는 것이다. 갑목(甲木)도 빠르지만 고속(高速)은 아니고 꾸준하게 진행하는 로켓과 같이 한 방향으로 전진하는 형태로 이해를 한다. 그런데 병화는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이것은 목(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이렇게 다각도(多角度)의 방향으로 확산되면서 속도 또한 엄청나게 빠른 성질을 갖고 있다. 사람에게 이러한 현상을 대입했을 적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성급(性急)함으로 이해를 한다. 다만 표현을 할 적에는 성격(性格)이 불같다는 정도의 말로 대신할 뿐이다. 실은 불보다 훨씬 빠른 빛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빛에서 난폭한 이미지를 얻기는 어려워서 일상적으로 쓰는 말로 그렇게 되어 있을 뿐이다. 때로는 이치적으로는 틀렸지만 정서적으로 타당하면 그대로 수용을 해도 무방하다. 의미만 잘 이해를 한다면 아무런 무리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