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징성(象徵性)

작성일
2007-09-1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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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벗님이 초보자의 입장이라고 하신다면 아마도 염소가 생각난다고 하실 것 같다. 바로 미년에 태어나게 되면 염소 띠라고 하고 또 다른 말로는 양띠라고도 한다. 물론 양띠가 올바르겠지만 민가에서는 대개 염소 띠라고 하기도 하므로 서로는 같은 종류라고 생각을 하면 될 것이다.

우선 양을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생각은 창자가 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모양도 어지간히 꼬불꼬불 복잡하게 되어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소견이 좁고 괴팍한 사람에게 빗대어서 말을 할 적에는 ‘양 창자 같은 사람’ 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창자가 길다는 것은 양의 소화계통은 초식성(草食性)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창자의 구조가 길게 되어있을수록 초식성이고, 짧을수록 육식성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울러서 한국인들도 창자의 길이를 볼 적에 육식보다는 채식에 더 어울리는 길이를 가지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렇다면 서양인들은 육류를 주로 먹고살거나 말거나, 한국인은 채식을 위주로 해서 살아야 신체적 구조에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양의 창자가 얼마나 긴지는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꼬여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창자가 길고 또 꼬여있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얼핏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데, ‘창자가 길면 풀들이 뱃속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게 된다는 점’이다. 과연 그렇게 긴 창자를 통과하는 동안에 풀들은 뱃속에서 이끌려 다녀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현실이겠다. 여기에서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다. 즉 풀이 뱃속에 오래 들어있다는 것을 다른 관점으로 보면 풀 창고라는 말을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물론 어거지로 꿰어 맞춘 것이다. 언제나 자유로운 발상으로 걸림 없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 참으로 별별 연구를 다 하는 낭월이다. 그러다가는 어느 날 문득 전광석화(電光石火)와도 같이 떠오르는 그 무엇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녀석을 잡고 따라가다 보면 놀라운(혼자 생각이기는 하지만) 어떤 원리에 대해서 감지를 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러다 보니까 우선 당장은 엉뚱하다고 생각이 되어도 전혀 구애를 받지 않고서 자유로운 발상을 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혼자서나 연구를 할 일이지 이렇게 돈주고 사보는 강의 책에 그러한 내용까지 끼여들어서는 책의 두께를 더해서야 되겠느냐고 궁시렁 거리실 벗님도 당연히 계실 것이지만, 이러한 것이 낭월이의 공부 방법인 셈이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이 책을 의지해서 공부하시는 벗님이라면 당연히(?) 낭월이가 사부인 셈이다. 그렇다면 때로는 그냥 귀를 막고서 듣고 있는 도리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법도 하다. 벗님께서도 핵심만 적어놓은 많은 책들을 접하면서 뭔가 아쉬운 감이 들어본 적이 있다면 이러한 잡소리도 아마 정겨울는지도 모르겠다는 속 편한 생각도 해본다. 그렇지만 양의 창자가 길다는 것을 빌미 삼아서 未土를 나무의 창고라고 하는 것과 연관시켜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억지인 것 같기는 하다.




그러면 다시 양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未土가 갖고 있는 의미는 역시 온토라고 하는 특성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미토를 丑土와 비교해 본다면 바탕은 같은데, 조건의 차이로 인해서 전혀 다른 형태의 작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기토의 양면성에 대해서 어떤 힌트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즉 열기를 머금은 상태가 미토이고, 습기를 머금은 상태가 축토라고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양면성의 사고방식인 셈이다. 결국 상징성을 생각해 볼 적에 미토에서는 염소의 역할은 열기를 많이 품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가 싶다. 그 열기로 인해서 보양제라는 미명아래에 염소 탕으로 인해서 많이도 죽어 가지만, 역시 사람에게 사육되어진 업연이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냥 산천에서 야생으로 자라난 동물들도 사람에게 쓰러져 가는데, 하물며 사육된 상태에서 죽어 가는 것이야 지극히 당연한 상태라고 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