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순례④ 경복궁 교태전

작성일
2019-04-28 10:22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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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순례④ 경복궁 교태전(交泰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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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를 둘러보고 나서 다시 근정전을 돌아서 사정전(殿)을 거쳐서 교태전으로 향했다.  사정전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 싶어서 통과한다.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생각한다는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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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전을 생각해 보면, 근정전(勤政殿)에서 부지런히 정치를 했건만, 잠을 자러 가는 길에 사정전에서도 또 백성을 잘 다스릴 생각을 하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봤다. 이미 관심은 사정전에서 강령전(康寧殿)으로 다가가 있었기에 사정전 뒤편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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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전으로 통하는 문은 향오문(嚮五門)이다. 향(嚮)은 향할향(向)과 같은 뜻이다. 덧붙인다면, 고향(故鄕)으로 향(向)한다는 정도는 가능하지 싶다. 그러니까 다섯 가지로 향한다는 것은 오(五)는 오복(五福)을 의미하고, 오복은 수()·부()·강녕()·유호덕()·고종명()을 말한다.

모든 인간이 바라는 것으로는 오래 살고, 재물이 부족하지 않고, 병없이 살기를 바라고, 이웃에게 봉사하기를 바라고, 죽을 적에 깨끗하게 죽기를 바라는 것이니 예나 지금이나 바라는 소망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봐도 되지 싶다. 이미 사서삼경의 하나인 『서경(書經』에서 언급된 것이라니까 유사이래로 변함없는 소망사항이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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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전(康寧殿)이다. 왕이 백성을 걱정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으니 쉬는 곳에서나마 편안하게 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붙여진 이름이려니 싶다. 옆에서 보고 있던 금휘가 묻는다.

금휘 : 강령전은 건물이 좀 이상해요.
낭월 : 왜?
금휘 : 지붕이... 뭔가 빠진 것 같애서요.
낭월 : 아, 용마루가 없다는 말이구나.
금휘 : 그게 용마루인가요? 여튼요. 
낭월 : 그야 용이 마루에 있지 않고 침소(寢所)에 계시기 때문이지.
금휘 : 왕이 주무시는 곳이라면서요?
낭월 : 그니깐, 용이 주무시는데 마루에 올라가 있으면 되겠냔 말이지.
금휘 : 예에? 그게.... 말이 되남요...?
낭월 : 난들 아나. 그런 이유로 용마루를 얹지 않았다니깐.
금휘 : 그럼 아빠 생각엔 어떠세요?
낭월 : 건축가의 마음은 짓다가 말은 것처럼 찝찝했을 게다.
금휘 : 왜요?
낭월 : 집을 지었으면 용마루를 올려야는데 그걸 하지 말라잖느냐.
금휘 : 누가 그렇게 딴지를 걸었을까요?
낭월 : 그야 모르지. 청황제가 머무는 자금성에도 이런 지붕은 없지 아마...
금휘 : 그럼 조선의 독특한 건축물이잖아요?
낭월 : 그렇긴 하지. 그리고 허세로 공론(空論)을 취한 것도 같구나.

좀 얄궂은 느낌은 있지만 여하튼 건축물의 완전성보다는 왕의 권위를 용과 같이 올려놓고서 실현시킨 것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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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녕전의 마당에는 용상이 차려져 있다. 용상을 전시하는 중이거나 아니면 무슨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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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의 이 자리는 앨범에서 찾은 사진과 달랐구나. 경회루의 오른쪽이면 바로 이 자리인데.... 경천사지10층석탑이 당당하게 있었지만 그곳이 제 자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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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태전 강령전의 위치에는 석탑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 사진의 장면이다. 그렇다면 그날의 나들이 이후로 복원이 되었던 것인가 싶어서 자료를 찾아보니까 세종 22(1440)년에 지었다가 임진왜란에 불타고, 고종의 경복궁 복원사업에서 다시 재건되었는데 1917년에 다시 불타고 말았는데 1994년에 복원한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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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조카들이 올라가서 놀았던 석탑은 새로 지은 고궁박물관으로 옮겼단다. 경천사지10층석탑은 용산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서 제대로 국보의 대접을 받고 있다니까 35년 전의추억을 찾아서 용산도 한 번 찾아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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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이 벌써 이만큼의 세월이 흘렀구나. 그때 소박했던 시골 소녀는 여전히 소박한 시골 아낙으로 옆에서 조석을 챙겨주고 있으니 그 선택은 낭월의 일생에서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것으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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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자리가 해바라기를 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면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뚜리벙 뚜리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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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세종대왕의 아들이 태어나서 그 태를 모시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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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여기에 추가해야 할 여섯 번째의 복을 타고난 낭월임이 분명하다. 그 복은 사진복이다. 마침 벼르고 별러서 찾아 온 경복궁에서 이런 행사를 하고 있다니 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싶다. 바로 오늘 오후 2시부터 진행할 예정이라니 지금은 일단 스케치를 해 놓고  점심먹고 다시 와야 할 목표가 순간적으로 만들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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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 갑자기 이게 뭐냐고? 중국의 자금성(紫禁城) 전경이다. 그냥 궁금해서 찾아봤을 뿐이다. 경복궁의 배치가 자금성과 어떻게든 연관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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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전혀 닮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는 구조라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궁의 이름에서도 닮은 것이 있어서 일종의 착시현상까지도 생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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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전경을 다시 놓고 비교해 보면 유사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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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과 광화문, 태화문과 홍례문, 태화전과 근정전, 보화전과 사정전, 건청궁과 강령전, 교태전은 같은 이름의 교태전, 마지막으로 북문에 해당하는 신무문도 같은 이름으로 현존하는 것으로 보면 닮아도 너무 닮았다고 할 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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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과는 또 다른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강령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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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로 문을 열어놓으면 바람이 마주 통해서 여름에도 시원했겠다. 조선의 왕들은 피서를 가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북경은 여름에 너무 더워서 승덕(承德)에 있는 피서산장으로 먼 길을 떠났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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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전의 편액도 참 편안하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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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전의 왼쪽에는 경성전(慶成殿)이 자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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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전의 오른쪽에는 연생전(延生殿)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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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생전 앞에는 일월오봉산의 병풍이 둘러져있고, 가운데 붉은 단은 태실의 행사와 연관이 있는 것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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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녕전의 뒤로 돌아가면 바로 이어진 건물이 교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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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태전의 교(交)는 음양상교(陰陽相交)를 의미할테니 왕과 비가 사랑을 나눈다는 의미가 될 것이고, 태(泰)는 그렇게 해서 지천태(地天泰)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하기를 바란다는 염원이 담긴 이름이지 싶다. 왕의 침실 사정이 편안해서 왕의 하루 일정이 웃음으로 이어지기를 바랬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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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왕의 부부생활이 잘 되어야 신하도 편안하다[왕교신태(王交臣泰)]의 의미가 그 안에 살짝 깃들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이치가 안방에서부터 시작되는 까닭이다. 물론 음양의 이치가 여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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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여성이 바라보는 교태전은 또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지만 물어 볼 주변이 되지 못하는 고로 그냥 궁금증만 날려보낸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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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고 잘라낸 태를 여기에 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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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가 두개인 것을 보면 겹으로 담을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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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상황을 기록할 승지의 자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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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도구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이따가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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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둘러 볼 수 있는 것은 다 둘러봐야 한다. 왕비가 단장하는 안방도 궁금해서 기웃기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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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화장대가 조촐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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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기준으로는 좋은 침소였겠지만, 지금의 눈으로 보면 많이 불편했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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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상이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가 침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한 바퀴 둘러보고는 이따가 행사가 진행되면 다시 찾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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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순간적으로 재미있는 그림이 나타난다. 엄마와 아들의 탯줄~! 적재적소이다. 딱 그러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교태전에서 엄마와 아기가 하나로 연결이 된 채로 지나가는 장면을 목격하다니 이것도 카메라신의 계시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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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나대고 싶은 아이는 묶인 손이 불편한 모양인데 엄마가 무서운지 벗어날 행동은 취하지 않고 그냥 엄마를 따른다. 이런 것은 줍는 사진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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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까치가 등장하는 것은 시간이 흘러갔음을 의미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까 점심을 먹고 서둘러서 다시 교태전을 찾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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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1시 58분, 늦지 않게 도착했다. 헥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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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을 아버지로 둔 죄로 자식들이 고생하는 군. 동생녀석 하나 태어날 때마다 이 행사에 불려나왔을테니 나중에 형제간에 혈투를 벌인 것의 시발점이 여기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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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18명 딸이 4명, 합이 22명이었으니 그만하면 다복하다고 하겠는데 불행히도 자식농사에 열중하여 수명농사를 망쳤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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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중국어, 영어, 일어에 능통해서인지 관중들이 모두 잘 알아듣도록 설명을 해 줬다. 이런거 잘 하는 사람보면 무조건 멋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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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世宗大王)의 수명은 53세. 왕위는 32년, 부인은 여섯....

①소헌왕후()-8자2녀(문종,수양:세조,안평,임영,광평,금성,평원,영응, 정소공주,정의공주)
②영빈강씨(令嬪姜氏-) 1자(화의)
③신빈김씨(愼嬪金氏) 6자(계양,의창,밀성,익현,영해,담양)
④혜빈양씨() 3남(한남,수춘,영풍)
⑤숙원이씨(淑媛李氏) 1녀(장안옹주)
⑥상침송씨(尙寢宋氏) 1녀 (정현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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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여섯이면 처복이 많은 건가...?
그런 거지...? 과연...? 그야 본인만 알겠지....
자식이 22명이면 자식복이 많은 건가? 또한 본인만 알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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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는 저리도 큰 카메라를 들고 다녀야 한다. 성능이 높아질수록 어깨는 빠져나간다. 다행히 지위가 높으면 보조가 있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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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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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는 왜 자식을 많이 두셔가지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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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끝나려면 멀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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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왕의 수업이니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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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항아리에 잘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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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왕의 앞으로 가야 한다. 말하자면 강령전으로 간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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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자리가 마련되었고, 여기서의 왕은 세종대왕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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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마마 납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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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엄... 근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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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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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주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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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행사이므로 광화문 광장까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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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 앞뜰을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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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에 서비스도 날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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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체험하는 여성에겐 좋은 경험이 되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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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근정문을 빠져나가는 것까지만 지켜 봤다. 후에 듣기는 광화문에 잠시 교통체증이 있었다고 한다.




 

[세종대왕자의 태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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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주군 담당자들이 촬영을 하고, 성주군수가 축사를 하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까 세종대왕의 자식들 태실이 경북 성주에 있었더란 이야기를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조금 찾아봤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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탯줄과 태반을 모두 포함한 모양이다. 태를 명당길지에 묻는 이유가 뭘까? 이건 풍수사상일게다. 죽어서 영향이 있다면 살아서도 영향이 있을 것이 아니냐는 논리이다. 풍수를 믿지 않는 어느 왕이 풍수로 유명한 사람을 불러다가 물었더란다.

대왕 : 그대의 말에 의하면 부모의 유골을 좋은 곳에 묻으면 자손이 발복하는가?
풍수 : 그렇사옵니다. 대왕이시여.
대왕 : 죽은 유골이 자손에게 덕을 준다면 살아있는 유골은 더욱 공이 크겠느냐?
풍수 : 그러하옵니다 대왕이시여.
대왕 : 가서 며칠 쉬거라.
풍수 : ??????

며칠 후... 다시 왕에게 불려 나온 풍수...

대왕 : 그래 며칠 잘 쉬었느냐?
풍수 : 그러하옵니다. 대왕의 은덕이옵니다.
대왕 : 온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끊어지는 고통은 못 느꼈느냐?
풍수 : 아니옵니다. 매우 쾌적하게 잘 지냈사옵니다.
대왕 : 여봐라~! 이리로 대려 오느라~!
풍수 : ??? 앗! 아버님~~!!
대왕 : 풍수는 헛된 것이니라. 혹세무민하는 자식을 둔 죄였느니라.

물론 왕도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봤다고 하겠지만, 실험하고자 한 결과는 너무나 빤하다. 죽은 유골이 자손을 편안하게 하고 벼슬까지 하게 한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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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세종대왕은 풍수를 믿었다는 이야기이다. 하긴, 할아버지 이성계도 풍수를 믿었을테니까 그건 유전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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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경기도 일원에도 좋은 터가 많았을텐데 그 머나먼 상주까지 갖다가 묻다니... 성군도 때론 헛된 일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는 증거를 하나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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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헛된 일이나면, 이미 그 후의 자손들이 복된 나날을 보냈다고 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피비린내 나는 혈투로 생사의 존망을 누비고 살았으니 태실이 있으면 뭘 하느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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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단종.... 기타 여러 자식들.... 안평대군의 태석은 세조가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해서 빼다가 버렸다던가....? 여기 태실에 대한 영상이 있어서 캡쳐했는데 원본의 영상을 참고하면 재미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