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남부선② 도구

작성일
2017-04-15 08:04
조회
1312

동해남부선(東海南部線)② 도구(道具)를 가진 자


 

제목이 왜 뜬금없이 '동해남부선'인가 싶은 벗님도 계실랑가... 싶다. 동해남부선에는 아련~한 향수와 같은 추억이 배어있음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이러한 제목으로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었던 게다. 참고로 동해남부선은 부산에서 포항까지를 의미한다. 새롭게 복선이 되면서 동해선으로 이름을 바꿔가는 모양이지만 낭월의 추억 속에서는 항상 동해남부선이다.

_DSC2021

경부선도 타보고, 장항선도 타 봤다. 그것도 아주 어려서. 나중에 걸망을 짊어지고 전국을 유람하면서도, 중앙선도 타고, 영동선도 탔다. 경전선이든 충북선이든 가릴 것이 없이 기차가 가는 곳이면 더듬고 다녔었다. 바랑에는 「열차시간표」라는 월간 발행 책만 하나 있으면 되었다. 아니, 「열차시각표」였을 수도 있겠다. 지금도 그 책이 나오나 모르겠네.....

열차시각표

맞아, 이런 분위기였는데.....

혹시나.... 하고 네이버 이미지를 뒤져봐도 그 책의 이미지는 없군. 오래 전에 없어진 모양이다. 대신에 중국에서 나오는 책은 있는 모양인데, 책을 만들다가도 사는 사람이 없으면 없어지는 것이 자연의 순환법칙이다. 낭월이 사지 않으니 책도 없어졌나 보다.

길가의 어느 펜션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차를 대고 방을 찾아 들어가니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온다. 동해바다의 장점은 시각적으로 좋다. 그리고 단점은 후각적으로 아쉽다. 보기는 좋은데 바다 냄새는 서해에 비해서 아쉽다는 것이다. 아마도 갯펄에서 느껴지는 그 추억의 향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새벽이 되면 설레는 것은 사진가와 조사(釣士)의 공통점일 게다. 오늘 새벽에는 대물을 하나 건저야 할텐데..... 하는.

4시부터 잠이 깨어서 폰으로 검색을 하고 있다. 바닷가의 구조에서부터 가까이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봐야 하고, 일출시간도 확인해야 한다. 옛날에는 책력(冊曆)을 보고서 대략 짐작해서 일출 시간을 가늠했지만 이제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어플이 있으니깐.

Screenshot_20170415-072710

인접한 위치의 항을 입력하면 된다. 포항이 가까우니 포항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이 화면은 물때와 날씨라는 어플이다. 간조와 만조가 나오고, 일출과 일몰이 나온다. 물론 각 항구별로 나오기 때문에 바다로 놀러갈 적에는 만고 땡이다.

이 정보는 그로부터 3일이 지난 시점(글을 쓰고 있는)에서 캡쳐한 것이니 약간의 변동이 있겠다. 6시에 일출이라는 정보를 보고는 5시에는 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면서 곤하게 자는 사람을 안 깨우고 살며시.....

참, 여기는 어디인고?

20170415_073507

어제 저녁에 대왕암과 감은사지에서 놀다가 감포항 쪽으로 가면 설마 잘 곳이 있겠거니 하고 이동을 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숙소가 나타났던 것이다.

20170415_073350

오션빌펜션이라고....

모텔같은 펜션이고, 펜션같은 모텔이라고나 할까...

20170415_073937

푹 자고 나서 목적지를 정했다. 가곡어촌계. 항이라기에도 너무 작은....

사진꺼리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물론, 사진꺼리라는 것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곳이기도 하다.

어둠을 뚫고 해변을 따라서 걷는 즐거움.... 상쾌함..... 새벽 4시 반.

파도소리와 어우러져서 하루를 열어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_DSC1934

가곡항의 어둠 속에서 등대까지 걸었다. 이미 부지런한 어부들은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겨우 두 사람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한 사람은 캄보디아 인이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그냥 직관점을 쳤다. 그야말로 '아님 말고.' ㅋㅋㅋ

이 시간이 너무 좋다. 그래서 새벽 잠에 취해서 이러한 풍경을 본 적이 없다는 사람을 만나면 조금은 안타까울 때도 있다. 절대로 새벽에는 못 일어난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새벽 잠이 없는 낭월의 몸이 사랑스럽기도 하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몸의 문제이기도 한 까닭이다.

_DSC1938

다행히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절집 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것인지는 몰라도 크게 어렵지 않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고, 잠에서 깨어난 갈매기들의 움직임도 본다. 이러한 즐거움이 사진의 재미일 게다. 정작 뭔가를 찍는 것은 그야말로 부업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20170412_052700

카메라를 찍을 방법은 폰이 있으니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카메라를 두 대로 사진놀이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내 포기한다. 무게의 압박 때문이다. 대신에 만능 친구, 폰이 있어서 어려움 없이 해결이 된다.

20170412_053110

물론 화질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뭐 어때? 혼자 즐거우면 되는 거다. 그리고 작품전에 낼 것도 아니고 그냥 기념으로 보관하면 되는 것이니까 아쉬울 것이 없다. 그러다가 이렇게 주변의 풍경을 전하고 싶을 적에는 멋진 해설사가 되기도 하는 폰이다.

_DSC1938

여명(黎明)이 좋다.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느껴지는 밝아옴의 분위기인 것이다. 카메라도 민감하게 그 밝음의 푸르스름한 빛에 반응한다. 카메라는 낭월의 두 번째 벗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나 함께 길을 나서는 녀석은 「소니A7RM2」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친구이다. 아마도 금년 중으로 「3」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 친구에게 쪼매~ 미안스럽기도 하다. ㅋㅋㅋ

오래오래 사랑해 주고 싶은데, 조금 더 빨라지고, 조금 더 향상된 기능 앞에서는 낭월의 충성심과 의리심도 와르르~ 무너진다. 그래서 두 번째 친구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를 내칠 마음은 없다. 아마도... 두 대를 가방에서 발견하게 되지 싶은 생각이 든다.

_DSC1941

이런 풍경, 이런 분위기가 좋다. 중간의 방파제를 사이에 두고서 왼쪽은 고요한 바다인 항구는 음이고, 오른쪽은 살아서 퍼덕이는 활동의 바다는 양이다. 이것은 음양이고 그 중간에 내가 서 있음이다.

다시, 왼쪽은 인간의 숨결이 느껴지는 생활의 공간이니 이것은 양이고, 오른쪽은 천고의 자연 풍경 그대로이니 음이다. 음양이 왔다갔다 하면 어쩌느냐고 하는 벗님은.... 아직 초보자이다. 원래 음양은 그런 것이다. 왔다갔다 하지 않으면 그건 살아있는 음양이 아닌고로. ㅋㅋㅋ

_DSC1944

포구가 하도 잔잔해서 장노출로 찍어 봤다. 그래봐야 불과 8초이다. 그런데 사진을 확인해 보니까 배는 이미 실루엣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모습이다. 눈으로 봐서는 가만히 매어져 있는 배로 보였는데, 실제로는 미세한 진동을 계속해서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것이 눈으로 보는 것과 카메라로 보는 것의 차이이다.

_DSC1950

가곡제당이라고 한글로 쓴 편액을 보니, 아마도 이 포구를 지키는 신령님께 제사를 드리는 위패가 봉안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문은 잠겨 있어서 열어보지 못했지만 대략 분위기만 봐도 무슨 소식인지 짐작이 된다.

_DSC1959

두 어부는 아직도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두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 이 새벽을 헌납하고, 낭월은 놀이를 위해서 이 새벽을 즐긴다. 서로의 같은 시간대에 머무는 다른 입장이다. 그리고 나중에 그들은 돈방석에 앉게 될 게고, 낭월은 깡통을 들고 밥을 얻으러 다니겠지. 일한 자와 놀은 자의 결과려니....

멀리 캄보디아에서 이렇게 산 설고 물 설은 가곡항까지 와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의 꿈도 잘 이뤄지기를 기원하면서 항구를 뜬다. 그러다가 옆을 보니 높직한 전망대와 같은 건물이 서 있다. 2층 반 정도의 높이가 되어 보이는 것 같은 횟집의 바깥 손님자리인 모양이다. 아직 문은 닫겨 있으니 장애물도 없어서 그냥 올라갔다. 사진가는 늘 높은 곳을 좋아한다.

_DSC1962

막상 올라가 보니까 생각보다 신통한 그림이 나오진 않았다. 특히 전선줄은 오나가나 난공불락이다. 사진을 찍을 때 만큼은 전선을 모두 지하로 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뭐 어쩔 방법이 없으니 피해서 가는 수밖에.

남자 : 보소~! 거~ 뭐하능교~~!!!
낭월 : 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남자 : 뭘 한다꼬요?
낭월 : 사진을 찍으려고 올라 와 봤습니다.


몇 집 건너서 편의점을 하는 주인양반으로 뵈는 사람이 낭월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이제 막 해가 떠오를 참인데, 그래서 얼렁 바닷가로 가봐야 하는데 자신과는 아무런상관도 없는 일에 간섭한다. 아마도 을목이거나, 상관견관일 거라는 생각으로 투덜투덜...

남자 : 허락은 받았능교?
낭월 :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허락은 못 받았습니다.
남자 : 아, 사진 찍으시능교?
낭월 : 예 그렇습니다.


남자도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대략 이해는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바닷가로 가 보니 이미 해가 솟아올라서 구름 속으로 마악 숨기 직전이었다. 에고~ 우째 이런 일이~~~!!

_DSC1964

하늘이 온통 구름이라서 해를 볼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는데 어느 사이에 잠시 수면의 틈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던 모양이다. 그래서 구름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얼른 바쁘게 셔터를 눌렀다.

_DSC1974

이내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는 해를 원망하는 것은 지혜로운 철학자가 품을 마음이 아닌 겨~ 그냥 허허롭게 웃으면서 해변을 산책해야 하는 겨.... 라고 하면서 자꾸만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해가 사라진 곳을 응시하면서 걸었다.

_DSC1979

아예 안 보이면 포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일락 말락 하는 것은 구름의 이동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를 할 수도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뭔가 그림이 될 것 같아서 또 찍었다.

구름공장이다. 등대가 순식간에 구름공장으로 변하고, 그 굴뚝에서 꾸역꾸역 만들어진 구름들이 하늘을 다 가려버렸다. 그래서 태양을 가려버리는 악역을 맡게 되었다는, 말도 되지 않는 말로 꿍시렁대면서 애먼 등대만 혼냈다. ㅋㅋㅋ

그리고, 오늘 새벽의 놀이는 이쯤에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뭔가 끝났다는 생각이 든 순간에 이벤트는 벌어지는 법이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모습으로.

_DSC1988

아름답게 오랜지 빛으로 물든 하늘을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그것도 매우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조화가 아니겠나 싶다.

_DSC2045

오렌지 빛으로 물드는 하늘과 거세게 일어나는 파도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는 모습이 그래도 매력적이라서 파도를 찍고 싶었다. 요런 모습은 타이밍이다. 순식간에 정지화면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카메라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옆에 인기척이 있어서 돌아다 봤더니 어느 여인이 나타났다.

_DSC2054

보통은 인물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안 쓰는 편이지만 파도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는 바닷가에서의 인기척이라서 관심이 갔던 모양이다. 근데..... 뭘 하시는 거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미역?

_DSC2060

옆에 놓인 비닐봉지를 본 다음에서야 비로소 물결에 떠내려 온 미역을 줍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여인에게 부지깽이라도 하나 쥐어주고 싶었다.

파도 때문에 깊이 들어가지도 못하고, 복장도 아직은 당연히 차가운 물 속을 맨발로 서성인다는 것이 서투른 사람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여인을 보면서 문득 안면도 시절에 오징어를 줍던 날들이 떠올라서 혼자만 아는 미소를 지었다. 밀과 보리의 잎에 누릇누릇하게 떡잎이 앉을 때쯤이면 장벌로 오징어가 떠밀려 온다. 그런데 경쟁이 치열하다. 간 밤의 밀물에 떠밀려 온 오징어를 남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일직 일어나야 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때부터 새벽잠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군.

동생과 둘이서 어둠이 물러날 즈음이면 발딱 일어났다. 어머니께서도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이셨을 게다. 특별히 갯것을 해 오는 능력이 없으셨던 어머니는 새벽에 주워오는 오징어를 볶아 먹는 재미가 쏠쏠하셨을 것이고,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그 모습이 좋아서 자꾸만 새벽에 곤하게 잠들어 있는 동생을 흔들어 깨웠다.

어떤 오징어는 싱싱해서 아직도 살아있었지만, 또 어떤 오징어는 이미 죽은 지가 좀 되었던지 골은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 모조리 주워 담았다. 그렇게 한 바구니 들고 가면 어머니께서는 먹을 것과 못 먹을 것을 가려내시고 못 먹을 것은 거름한다고 퇴비가리에 붓곤 했다.

새벽오징어 줍기에서는 확실이 우세했다. 왜냐하면 가장 바닷가 가까운 곳에 우리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한 참을 걸어와야 하지만 우리는 불과 100m만 나가면 바로 바닷가와 만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지만 바다와 연관된 일이라면 단연 최고였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행동 반경이 점점 넓어졌다. 처음에는 집앞의 바닷가만 둘러보고는 들어왔는데, 나중에는 멀리 떨어진 절골 앞바다 까지 가기도 했던 것이다. 절골은 낭월한담의 「713화」'깍따구와 배암거이의 전설'에서 언급되기도 했지만 급기야 마음이 상한 절골의 아저씨가 너무 열심히 한다고 궁시렁거리는 소릴 듣고서는 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배도 없는 아이들이 그나마 먹겠다고 새벽 잠과 바꾼 노동에 대해서 너무 각박하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다. 자기가 주워갈 것이 없어서 였겠지만 더 부지런하게 나오면 될 일을 괜히 남 탓하는 그 아저씨의 삶은 분명히 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우리끼리 소심한 복수를 했다. ㅎㅎㅎ

말하자면 그 시절의 낭월도 농어부였던 셈이다. 어부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농부라고 할 수도 없는 모습이 이 여인과 겹치면서 추억의 여행을 순식간에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꾸밈새도 흡사했다. 단지 바구니만 하나 들었을 뿐인 안면도의 섬꼬마들과 이 여인의 어설퍼 보임이란......

_DSC2062

어?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미 저쪽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긴 막대까지 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오늘 새벽에는 이것을 선물하셨구나~!'

문득, 작년에 베트남 여행 갔을 적에 다낭의 해변에 새벽나들이를 했다가 그물 걷는 장면을 목격했던 것이 또 떠올랐다. 여하튼 새벽에 나가보면 뭔가 하나는 볼 꺼리를 만나게 된다는 기대감도 이렇게 해서 은연 중에 자리를 잡아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_DSC2068

도구(道具).....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구에 도(道)가 있음을 오늘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냥 도구는 그릇이겠거니.... 했는데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道이다. 이건 또 무슨 소식이람? 그러니까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만들어진 그릇이 도구란 말인가? 놀랍고도 신기한 일은 도처에서 순간순간을 채워준다.

어? 구(具)는 갖출 구네? 그렇다면 '도를 갖추는 것'이 도구(道具)? 이야~~!!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만큼이나 신기하군. 도구가 없는 사람은 도를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잖아? 여하튼 말이든 글이든 자꾸 뜯어먹다가 보면 배가 채워진다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목수의 도구는 대패.
낚시꾼의 도구는 낚싯대.
농부의 도구는 호미.
나뭇꾼의 도구는 도끼.

스님의 도구는 목탁.
목사님의 도구는 십자가.
선생님의 도구는 분필.
판사의 도구는 나무망치.
명리가의 도구는 만세력.
사진가의 도구는 카메라.


그러고 보니 도구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군. 하다 못해 밥을 먹을 사람은 수저라도 들어야 하니까 말이다. 문득, 저만치 사라져 가고 있는 무도구(無道具)의 여인과 오버랩이 된다. 그녀는 도가 없어서 수확도 빈약했구나.... 쯧쯧~~!!

_DSC2078

파도가 밀려 올 때마다 일은 시작이 된다. 그러니까 밀려오는 파도에는 미역을 건지고, 말려가는 파도에는 휴식을 취한다. 여기에서도 분명히 음양은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과연 낭월은 음양학자임을 스스로 우쭐우쭐~~!!

그런데 도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쓰임법은 다 같다고 할 수가 없겠다. 수저는 기본적으로 단순한 도구이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카메라를 생각해 보면 그 사용법을 별도로 배워야 하고, 그것도 제대로 배워야만 원하는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그래서 도구에 道가 들어있는 것일까? 이것은 그냥 단순히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을 넘어서 제대로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기에, 석수(石手)는 정과 망치로 불상을 만들어 내지만, 그것을 낭월의 손에 쥔다면 손가락을 찧거나 멋진 석재(石材)를 다 부숴뜨리고 말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과연 도구를 제대로 쓴다는 것은 도사(道士)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떠올리면서 벗님의 도구 사용법은 어떠하신가를 묻는다.

컴퓨터는 누구나 사용하지만, 어떤 사람은 멋진 그림을 그려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하게 만들거나, 멋진 글을 써서 감동을 주지만 낭월은 겨우 이렇게 허접한 글놀이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또한 도구를 도구로 도구답게 사용한다는 것은 과연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는 군.

_DSC2080

다시 앞을 본다. 미역을 건지더라도 자기의 앞만 관리해야 한다. 남의 앞을 넘보면 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쟁이고 좁은 의미의 국토였다. 절대로 남의 앞으로 밀려오는 미역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것은 엄연히 옆의 사람 것임을.....

거센 파도일수록 더 반가운 법이다. 뭔가 더 큰 것을 가져다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농어부는 미역을 낚고 사진가는 사진을 낚는다. 뒷모습이지만 이미 충분한 것을 말하고 있다. 다만 부연설명을 한다면 노인네들이라는 것 정도이다.

젊은 사람들은 배를 몰고 깊은 바다로 나가고 노인들만 남아서 새벽잠이 없는 틈에 담배값이라도 벌려고 나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일용할 양식을 벌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야말로 자연산 동해의 미역이다. 간밤에 파도가 심하게 쳤다는 것을 알고는 새벽의 만선을 꿈꿨을 것이다.

_DSC2085

앗싸~!! 또 하나 건졌다. 이번엔 대물이다. 월척이다. 걷어 올리는 막대기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옆의 노인은 시무룩하다. 겁재(劫財)이다. 네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저것은 내가 건질 수가 있었고, 내 밥이 될 것인데 네가 있어서 그냥 바라다 보고만 있으려니 마음이 아프다... 고 느꼈을까?

_DSC2096

엉거주춤한 뒷모습은 영판 할머니이다. 그래도 오랫동안 해 온 일인지라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으면서 갈퀴질을 한다. 흡사 오징어 낚시의 확대판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갈고리로 잘도 낚아 댄다.

_DSC2105

왜 이러한 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을까? 그러게 말이다. 비록 이른 새벽의 어쩌면 흔한 풍경일테지만 철학자의 눈에 비친 이러한 장면에서 자연과, 생존과, 사회와, 가족과, 바다의 복합적인 모습이 한 덩어리로 엉켜드는 까닭이다.

그렇게 밝아오는 이른 새벽의 삼중주, 사중주를 보면서 음률이 느껴졌다. 서로 다른, 또 서로 같은 몸 동작.... 그리고 점점 쌓여가는 수확물들은 새벽의 고단함에 대한 보상이 되겠다. 특히 '도구 없음'과 '도구 있음'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보니까 역시 도는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떠올려 보기도 한다.

아울러서 이렇게 생명력이 넘치는 바닷가의 한 순간들도 당연히 道와 함께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 자리에서 헤어지는 인연을 또 맛 본다.

_DSC2159

이렇게 오늘 새벽은 미역을 건지는 농어부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이란 이런 것일 게다. 특별할 것은 없어도 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으므로 다시 또 어디론가 길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겠거니.....

이름모를.... 아니, 이름은 가곡이랬다. 그리고 작은 해변에서의 이벤트는 이내 사라졌지만 이렇게 사진기행에 살아남아서 오래도록 방문자들에게 수다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겠지. 해가 있어도 즐겁고, 해가 없어도 즐거운 것이 사진놀이이고, 여행이다. 이제 어디론가 아침을 먹을 곳으로 향해서 움직여야 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