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남부선③ 내원암

작성일
2017-04-1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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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남부선(東海南部線)③ 내원암(內院庵)의 추억

 

이번 나들이의 첫째 목적지는 대운산의 내원암이다. 보통 울산내원암이라고 불렀는데,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가 싶어서 검색을 해 보니까 울산12경에 포함된 「내원암계곡」이라는 참으로 생소하지만 익숙한 내용이 튀어 나온다. 이런 사소한 것이 여행객의 마음을 살랑 살랑 흔들며 방랑끼를 부른다.

동해남부선의 추억도 내원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한 참 바랑을 지고 천하 유람을 다닐 적에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인연을 맺었던 까닭으로 잠시 머물게 되었던 암자이기도 했다. 그렇게 은사 스님을 시봉(侍奉)한다는 이유로 암자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 대략 19세 쯤..... 그야말로 홍안(紅顔)의 소년이었다고나 할까....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 노사를 모시고 행자 수행을 한 다음에 계를 받을 적에는 경봉 스님과의 인연은 마음의 스승으로 남겨놓고, 오히려 경봉 스님의 제자와 인연을 맺었던 것인데, 이것은 아마도 천성이 번잡한 것을 싫어한 까닭이었을 게다. 사형사제들이 얽혀서 연락을 주고받고 하는 것도 귀찮았던 까닭이다. 물론 결론으로 보면 모두가 인연법의 소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생을 더듬어서 큐슈에도 다녀 왔는데, 아리송송한 전생은 관두고 금생의 한 시절을 보냈던 곳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동해남부선을 떠올리고, 내원암을 떠올리면서 봄바람을 타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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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역(南倉驛)이다.

항상 내원암을 출입할 적에 이용하던 역사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꿋꿋하게 살아 있었다. 내원암의 추억은 남창역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울산직행터미널에서 버스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추억의 뿌리는 철길에 있음을....

동해남부선이 통과하는 지점이다. 아직은 복선까지는 되지 않았단다. 바로 인접 지역인 일광역까지만 복선이 되었고, 앞으로 계속 단계적으로 시공을 한다니까 언젠가는 하겠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그냥 남창 역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 중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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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기념을 할 만한 역사가 있었나보다. 이런 것도 준비한 것을 보면 말이지. 사실 얼마 전에 인간극장에서 「떡방앗간집3대」가 나왔는데, 그 배경이 남창이었다. 그래서 추억의 통로를 건드렸다고 해야 하겠다. 맞아, 한 번 가보고 싶군.... 이렇게 한 마음을 일으킨 것이 나비효과가 되어서 여기까지 몸을 끌고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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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번에 본 남창은 옛날의 남창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져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40여 년의 세월을 기억 속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과, 쉼없이 내달리는 발전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괴리감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라고 해야 할 상황이었다.

오호~! 대운산철쭉이 나오는 구나. 내원암에서 신발 끈을 아무지게 동여매고 올라가면 볼 수가 있는 철쭉도 어느 사이에 울산의 명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세월이 흐르니 무심한 자연도 등급이 향상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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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을 중심으로 보면 남쪽에 있다. 그래서 남쪽의 창고라고 해서 남창일까? 울산의 서쪽으로는 서창도 있지 아마... 여하튼, 지명으로 창고가 많은 것을 보면 세금 받아서 쌓아놓을 자리는 항상 필요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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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동해고속도로가 울산에서 부산까지 뚫렸나 보다. 그래서 온양IC에서 나간다면 훨씬 가깝게 접근을 할 수도 있었으련만 뭐 하도 오랜 만이라서 그런 도로가 생겼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남창에서는, 우선 점심을 해결해야 여행이든 뭐든 하게 생겼다. 오늘 점심에는 시원한 냉면을 먹고 싶단다. 면이라면 모두 오케이다. 한 바퀴 돌아보다가 반가운 간판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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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초루란다. 이름도 좀 독특하긴 하다. 아무렇거나 함흥냉면을 한다고 써 붙인 글귀만 커다랗게 시야를 가득 채운다. 더 망설일 이유도 없고 굶은 밥통은 어서 들어가자고 재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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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 아닌가 싶었다. 서빙하는 여인의 인상이 참으로 선해 보여서 다음에 남창을 지날 일이 있다면 또 찾아가서 한 그릇 먹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큰한 비냉에 사리도 하나 얹었다. 연지님은 비냉을 좋아하고 낭월은 물냉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같이 비냉을 먹기로 했다. 가끔은 그렇게 해도 괜찮다. 면이면 다 좋은 까닭에. ㅋㅋㅋ

든든하게 점심을 먹은 다음에서야 내원암으로 향했다. 사실, 추억을 더듬는다면 여기서부터 걸어야 한다. 당시에는 마을버스도 없었다. 그래서 형편이 좋으면 택시를 타고, 그렇지 않으면 타박타박 걸어야 한다. 대략 10리 길이었다.

부지런히 걸으면 30분, 천천히 걸으면 1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가게 되면 비로소 상대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산길이다. 혹시 도로를 닦아 놨는가 싶어서 그대로 진행했지만 중간에 떡하니 가로봉으로 막아놓고 절에 사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통로로 삼고 있었다. 워낙 길도 험해서 사고가 나는 바람에 그렇게 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옛날에는 산판길이었기 때문에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도로폭은 되었는데, 딱 그만큼의 바닥에 아스콘으로 포장을 했으니 교행하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도로폭이기도 했다. 더구나 마당바위를 지나면 천길의 낭떠러지임을 고려한다면 위험하다는 말에 완전공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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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도 산천은 의구하다더니 과연 마당바위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마당바위는 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다가 땀을 들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절에서 산책을 나오면 마지막 지점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마당바위는 속세와 절간의 경계지점이라고 해도 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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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에 다시 그 자리에 와서 앉았다. 바위 끝에는 딱 한 사람 앉아있기 좋을 만큼의 오목한 바위형태가 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아서 속세를 굽어보면서 마음을 달래고는 다시 되돌아 가던 곳이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당시로서는 어디론가 날아다니고 싶은 야생마와 같은 시절이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멍~하게 유람하는 자신의 욕망을 마당바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다스리고는 발길을 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느 스승님이나 다 그렇겠지만, 결코 자상하지 않은 스승님이셨다. 선객(禪客)으로 선방에만 돌아 다니다가 둥지를 틀고 앉으셨으니 어디로 나다닐 마음도 없으신 터였다. 그래서 오로지 바깥 일은 낭월이 봐야 했고, 그나마 외부의 풍경을 접할 기회가 되었던 것은 자그마한 위안이 되었다고 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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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여기 와서 앉아 볼래? 내가 옛날에 이렇게 앉아 있었거든.
연지 : 에구~ 무셔~!
낭월 : 그래도 앉아 보면 편안하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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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그래도 안 편한데. 
낭월 : 그럼 일어나.

그렇게 마당바위에서의 추억을 소환해서 만나본 다음에는 내원암으로 오르는 오솔길을 걸었다. 새록새록..... 변하는 것은 몸이고, 불변하는 것은 맘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면서 걷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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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면서 발길에 걸리는 자갈들을 치워야 했던 그 길이다. 완만한 산책길은 무엇보다도 행복한 길이었고 명상의 길이었다. 나무를 하러 가지 않을 때에는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면서 오가는 산책길에서 온갖 생각들을 다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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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길가에 함초롬히 피어있는 철쭉.

진달래가 피는 계절에 서둘러서 피었군. 마치 낭월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딱 한 그루의 연분홍 철쭉이 나그네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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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 : 우와~! 동자스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낭월 : 여기에서 널 만날 줄은 몰랐네. 반가워~!

철쭉 : 세월이 흘러도 만날 인연은 만나는 법이잖아요.

낭월 : 도인은 네가 도인이다.

철쭉 : 그냥 이렇게 오래 한 자리에 있다 보니까 자연히 알게 되네요.

낭월 : 내 마음 속에는 항상 네가 자리하고 있지.

철쭉 : 그러셨구나. 산책 길에 늘 바라봐 주셨잖아요.

낭월 : ......

이렇게 철쭉의 수다도 들으면서 옛날의 풍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느 해의 겨울에는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신도댁의 아들과 그 친구들이 3명이서 시험공부를 한다고 머물기도 했다. 그런 때는 심심하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열심히 영어 단어를 외우고 나는 법화경을 쓰고 있었던 시절이다. 나름 큰 맘을 먹고 법화경을 싸들고 들어갔었기 때문에 읽고 쓰기를 반복하였던 것이다.

가만있자..... 그 책을 버리지 않았다면 어딘가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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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 있었군. 40년의 세월이 흐른 흔적이 역력하게 배여있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다. 이 경에 포함되어 있는 「관세음보살부문품」에 반해서 아예 법화경을 한 질 서사(書寫)하면서 공부하기로 작정을 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기특하기도 하다.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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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스승이신 석굴암 석가모니불의 사진과, 마음의 어머니인 관세음보살의 그림을 붙여놓았었구나.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법화경을 공부하는 것을 본 울산의 학생들이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자맹의 시절을 보내면서 듣게 된 찬사일 수도 있겠다.

책이 너덜너덜하군.

책이 낡은 것을 자랑질 하는 것은, 기도하면서 태운 향의 재를 짊어지고 다니면서 남들에게 자랑하는 꼴과 별만 다르지 않겠지만, 지금은 자랑이 아니라 추억의 소환일 뿐이라고 애둘러 변명을 한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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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 놈의 한자는 그리도 많은지.... 여기에서 법화경 보면서 사용한 사전도 같은 꼴로 너덜너덜한데, 언젠가 사전이야기를 하면서 써먹었던 사진이 어디 있나.... (클릭클릭~)

아하, 낭월한담 345화에 있었군. 「사전(辭典) 이야기」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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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법화경과 함께 동고동락을 했던 한한대자전이다. 어쩌면 책이나 사전이나 나이를 먹은 모양새가 영판 닮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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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사전의 도움이 있었기에 법화경을 읽어 낼 수가 있었으니 참으로 신세를 많이 졌다고 해도 되지 싶다. 겸해서, 낭월의 공부가 그냥 하루 아침에 날로 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려도 되지 싶다. 여기 그 증거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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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을 읽다가 이상한 곳을 발견하면 또 끙끙댄다. '어일세체간(於一世切間)'이 뭐지? '저 한 세상의 끊긴 사이?' 이거 뭔가 이상하잖아..... 이렇게 해서 또 고민하다가 글자가 바뀌었다는 것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러니까, '어일세체간'은 '어일체세간'이라고 해야 맞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 일체의 모든 세상에서'가 된다. 이래야 매끈하지. 문득 새록새록 떠오르는 생각의 조각들...... 지나고 보면 그런 시절도 한낱 치기 어린 마음이었단 것도 생각하게 된다. 당시에는 나름 비장했었지만 또 지나고 보면 그것도 그냥 담담한 하나의 여정이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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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한자의 세계는 광대무변하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는 구절도 나타난다. 면(麪)자를 찾아내고 보니 밀가루였다. 이런 글자를 그 후로는 다시 만날 일이 없었지 싶다. 보통은 소맥분(小麥紛)이라고 하는데, 옛날의 경전에서는 이렇게 밀가루를 표시혔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왜 거지개(丐)가 옆에 붙어있지? 이런 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요령부득이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 가는 것이 상책인 경우도 허다한 것이 한문 공부이기도 하다.

스승님은 이 대목을 보시다가 이 글자를 짚으시고는 무슨 글자인지 아느냐고 해서 찾아봐야 하겠다고 했더니 '국수면'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또 찾았다. 국수를 이 글자로 쓰는 것인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해서였다. 학문에 관한 한은 누구의 말도 믿으면 안 된다. ㅋㅋㅋ

그렇게 찾았더니 국수면(麵)은 분명히 따로 준비된 글자가 있었다. 그러니까 스승님도 모처럼 어린 제자에게 아는 채를 하셨던 모양이라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뭐, 밀가루나 국수나 별반 다를 것도 없지만, 그것을 기억하고 읽어내는 능력은 인정을 해 드려도 되지 싶었고, 그것을 따질 만큼 배짱도 없었던 낭월이었던지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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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법화경을 다 외우겠다고 대들었다가 포기했다. 그것은 주제파악을 못했다는 처절한 깨달음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윽고.....

내원암의 경내가 보이자, 옛날의 그 팽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그네의 기억을 소환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 내고 있었다.

뜰에는 도화가 만발이고 벗꽃도 지천이다. 나무하러 오르락거렸던 뒷산도 연둣빛 푸르름으로 생기가 넘쳐나는 풍경이다. 그 자리에 망연히 서서 몸은 2017년에 있지만, 마음은 1976년으로 되돌아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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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한 그루 잡으면 보름은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물론 그것도 옛날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이야 누가 나무를 하려고 톱날을 갈고, 도끼날을 세우겠는가 싶기도 하고, 환경보호니 뭐니 해서 그것도 하지 말라고 엄금할 터이기 때문이다.

나물을 뜯던 풍경이며....
야생난초를 뒤지던 모습이며....
스승님은 난초를 발견하시면
자꾸만 낙엽으로 덮으시던 장면이며...
쌓인 낙엽에 골짜기에 박아놓은 호스가 막히면
밤중이라도 플레시를 들고 가야만 했던 기억들....

이제, 그 스승님도 세상을 떠나시고,
함께 했던 사람들도 모두 흩어지고,
같은 공간의 다른 시간에 머물러서,
그 시절을 회상하는 나그네.....
이러한 것이 여행의 묘미이기도 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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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하니 일주문이 생겼구나. 참으로 많이 발전했다. 격세지감이라더니만.... 내원암이 이렇게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을 줄이야 예전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냥 인법당(人法堂)에 조그만 관음상 모셔놓고 같이 생활하던 공간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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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초파일이 다가오는 향이 물씬물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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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엄을 보니 주지화상은 열심히도 수행하는 사람이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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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안에는 삼존불이 장엄하게 모셔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법화경을 쓴 다음에 하산을 한 이후로는 처음 나들이를 한 셈인가 싶기도 하다. 참으로 오랜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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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봄직한, 별다른 특징이 없는 대웅전의 전각이다. 다만 그 자리에서 옛날에는 어린 사미승이 경을 읽고 있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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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돌담의 흔적에서 옛 정취를 읽을 수가 있었다.

맞아, 저 돌담은 옛날 그대로네...

그래가면서 추억을 더듬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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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한 동자 녀석이 자빠져서 폼을 잡고 있는 것이 귀엽다. 마치 어린 시절의 자화상을 보는 듯도 하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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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추억의 여정에서 잠시 들려 본 내원암의 풍경을 보고 나니까 그 동안 스스로 잘 살아 왔는지도 생각해 보고, 지금의 이 모습이 아무런 아쉬움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법화경의 공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리를 하고는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