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의 전설

작성일
2017-02-09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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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浮石寺)의 전설


 

그로부터 다시 1년이 흘렀다.

작년 정월에 단양 구인사를 들렸다가 부석사까지 참배하고 오겠다는 일정을 말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그러려고했는데 하늘이 돕지 않아서 눈발이 날리는 바람에 내년으로 미뤘던 것이 다시 한 해가 지나가게 된 것이다.

언제라도 마음이 내키면 갈 수도 있으련만, 가는 길에 들리는 재미도 있는지라 정월이 되기를 기다렸다고 해도 되지 싶다. 이름은 '방생법회' 이다. 그러나 물고기는 없다. 환경보호와 여러 이유로 불가에서는 전통이 되다시피 한 물고기를 놔주는 절차는 생략되었다.

이번에는 그래서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영주 부석사로 결정이 난 것이다. 그냥 부석사라고 하면 되지 꼭 영주 부석사라고 해야 하느냐는 생각을 할 벗님도 계실 수 있지 싶다. 그러나 한국에는 동명과 동일전설을 가진 부석사가 두 곳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

그 하나는 서산의 부석사이다. 요즘 일본으로 갔던 불상이 돌아와서 소송이 벌어진 바로 그 부석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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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불상이다. 대전지방법원에서 설왕설래하는 것은 법이 우선인지 역사가 우선인지에 대한 판정이 명료하지 않아서인가 싶기도 하다. 일본에서야 돌려달라고 난리라지만 여하튼 안 돌려 줄 방법이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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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연을 담은 서산의 부석사이다. 절의 규모에 대해서는 논하기 어렵다. 옛날도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서산 부석사의 산 이름이 특이하군. 도비산(島飛山)이란다. 섬이 날아가는 것 같은 산? 이걸 어떻게 풀어야 잘 풀었다고 소문이 날까?

사실 도(島)는 조(鳥)의 오자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새가 날아오르는 형상의 산이라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적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조와 도의 닮은 꼴에 대한 글자의 의혹이다.

도비산

자료에는 분명히 조비산(島飛山)이다. 그렇지만 이 지도를 그린 사람이 새조를 쓴다고 한 것이 섬도가 되어버렸는데 고치기도 힘들어서 그냥 넘어간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또 일설에는..... 근데 지금 이게 중요한 건 아니잖여? 그렇군.... 그냥 부석사라는 절 이름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만 주목하면 될 일을 괜히 부산을 피울 일은 아닌 것 같군. 여하튼 불상은 제 자리에 잘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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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에서 떡과 밥을 싣고 출발하기 직전이다. 예전에는 밥도 절에서 했는데, 이제 세월이 좋아져서 방앗간에서 한다. 그러니까 만고 편하다. 절밥이 맛있는데 그럼 되느냐는 배신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럴리가 없다고 우기면 된다.

배가 고프면 모든 것이 다 맛있게 느끼는 미각을 위해서 괜히 절밥이니, 방앗간밥이니 하고 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 같은 밥일 뿐이다. 모든 것이 마음 장난이고 밥통과 식욕의 관계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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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 행사는 용왕기도이다. 용왕님께 가족들의 무탈을 기원하는 기도인 셈이다. 그래서 얼음이 가득한 남한강의 단영역 앞에서 전을 펴고 기도법회를 잘 했다. 인증샷을 남기려고 화인에게 서라고 했더니 무심코 나온 자세이다.

음..... 새해에는 비상하는 행운의 조짐이 되겠군. 저도 모르게 이러한 자세가 나오는 것은 조짐이라고 봐도 되겠다는 촉이 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슨 점이냐고? 동작점(動作占)이다. 어디에 나오느냐고? 낭월점사전에 나온다. 그 책은 어디에서 사느냐고? 불가능하다. 그런 책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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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도 했으니 점심을 먹어야지. 점심은 엇저녁에 준비한 도시락에 밥과 국만 얹으면 되도록 특별히 준비했다. 작년에는 하지 않았던 방법을 사용했으니 말하자면, '감로2017버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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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이 도시락 그릇에 반찬을 담는 일을 저녁에 해 뒀다. 뭔가 좀 더 위생적인 방법이 있을까를 궁리하다가 올해는 또 이런 방법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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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아랫집 식구들 총출동이다. 도시락이래야 뭐 50~60개만 준비하면 된다. 기껏 해봐야 버스 한 대이니깐. 그래서 실습시간의 느낌으로 준비를 해 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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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은 도시락 장사를 해도 되겠단다. 여하튼 아이디어는 번쩍인다. 물론 말로만 하고 말아서이긴 하지만 그러다 보면 뭔가 하나 잡을 수도 있지 싶기는 하다. ㅎㅎㅎ

여하튼 이렇게 준비를 한 도시락을 단양 역의 광장에서 전을 펴고 나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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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조용하고 깨끗하고 좋은지 춥지 않은 정월의 기온까지도 고마울 따름이다. 각각의 몫으로 하나씩 나눠드리니 싫다는 분이 하나도 안 계시니 일단 성공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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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생겼다. 국 한그릇 받아서 각자 앉아 먹으니 편안하게 드시고 말끔하게 정리하고는 다시 차에 올라서야 부석사로 향할 수가 있었다. 물론, '영주 부석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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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부석사로 향하는 길이 점점 다가왔음을 느끼게 하는 이정표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영주 부석사도 부석면이고, 서산 부석사도 부석면이다. 여하튼 두 부석사가 참 오래 된 것은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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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차를 대고, 길을 오르니 이내 일주문이 나타난다. 태백산(太白山) 부석사(浮石寺)이다. 태백산...? 태백산이었나...? 소백산이 아니었나....? 순간, 어리둥....절.... 어리 둥 절이 어디 있느냐고? 개그다. ㅋㅋㅋ

네이버 지도를 불러달라고 검색했다. 짜잔~!

태백산과소백산

태백산과 소백산의 중간이라고 우길 만은 하겠다. 기왕 중간이면 어느 산의 이름을 붙이든 그것은 주지 마음이라고 우길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네. 그런데 정작 부석사 뒤의 산은 봉황산이라고 떡~! 하니 있는데 구태여, 태백산이라...... 지리적으로는 좀 어색한 명칭이란 생각이 들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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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의 기둥에 금강역사를 그려놓은 것은 또 첨 본다. 보통은 그냥 적색의 기둥인데 여기에서는 금강을 그려놨군. 옛날에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딸을 데리고 엄마가 찾아간 곳은 절이었더란다. 절의 입구에 금강역사를 보고는 놀라서 아이가 떨어지기를 바랬다나 뭐라나. 엄마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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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에 그려놨으니 두 금강은 도리 없이 기둥에 붙어 계셔야 하겠군. 그것도 각자의 복이라고 해야 하겠다. 누구는 돌에다가 정성스럽게 새겨서 대접을 받고, 또 누군가는 실내에서 비바람은 피하게 해 주건만 휑~한 기둥에 붙여놔서 오가는 바람을 다 맞아야 한다는 슬픈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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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이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금강은 석굴암 금강이다. 실내에서 대접받으면서 편안하게 부처를 수호하고 있으니 상급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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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금강은 마곡사에서 집 안에 서서 소임을 다 하는 금강이다. 또한 비바람을 피할 수가 있는 것으로 본다면 부석사 금강이 단연 초라하고 불쌍하다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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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의 위엄이 금강과는 차원이 다르게 다가온다. 까불다가는 한 방에 황천행을 해야 할 듯한 당당하고도 엄숙한 자태의 천왕이다. 죄 지은 것이 많은 사람은 오줌을 저릴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선가? 어떤 사람은 정문으로 직진하지 않고 옆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간혹 있는 것을 보면 그 속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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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이 참 높기도 하다. 70노인, 80노인들은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게 생겼다. 이렇게 지덕이 사나운 곳에 절을 짓느라고.... 하긴 원래가 산적들의 소굴이었다니까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상대사가 여기에 화엄도량을 건설하겠다고 찾아 왔을 적에 이미 선점자들이 있었다잖은가. 그들은 풍기와 영주 일대를 누비면서 못된 짓을 도맡아 하는 산적떼였는데 그들이 사는 곳이니 어찌 산채의 모양이 편안한 공간이었겠느냐는 것은 미뤄서 짐작을 할만 하겠다.

문득, 위를 바라다 보니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도둑놈들이 살던 곳이니 평탄하기만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상은 그것과는 무관하다. 도둑들의 집이 아니라도 옹색한 도량은 부지기수인 까닭이다. 그냥 그렇게 억지로 꿰어 맞춰놓아보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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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고찰의 향기가 물씬 배어나는 석축이다. 이러한 위엄은 역시 세월의 때를 가득 머금고 자리하고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석축에서 느껴지는 세월감으로 이미 압도되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모서리를 맞춰가면서 쌓아놓은 것을 오행으로는 뭐라고 하느냐고? 그야, 금생금(金生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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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전각이다. 이미 현판도 붙어있지 않으니 그 용도조차 알 길이 없다. 다만 구조로 봐서는 사천왕을 모실 수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사천왕은 아래에 자리를 잡고 계시므로 이것을 통도사 식으로 생각한다면 불이문(不二門) 정도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사실 통도사에서도 왜 불이문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는 요령부득이다.

다만, 정확히 문틀 사이로 바라다 보이는 누각이 멋스럽게 다가온다. 아마도 의도적으로 지었다는 생각도 든다. 극락세계는 원래가 9품(品)이다. 부석사는 아미타불을 모셨으니 이 곳은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는 뜻이다.

극락구품

이렇게 생긴 것이 극락세계란다. 아래부터 하품의 상중하, 중품의 상중하, 상품의 상중하로 되어 있어서 각각 공덕에 따라서 태어나는 곳이 정해진다는 인과설이다. 여하튼, 부석사도 그러한 형식으로 배치가 되어 있는지 참고삼아 이미지를 찾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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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모르게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겹친다. 위로 주욱 올라가면서 하품, 중품, 상품으로 구분이 되는 것 같은 가람배치로 인해서이다. 아마도 그것을 의도하고 건물을 배치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계단이나 석축을 봐서는 경계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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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전각을 기준으로 아래는 하품이고, 위는 중품인 것이다. 저 앞의 누각은 중품과 상품을 가르는 경계라고 해도 되지 싶다. 벗님도 수행을 잘 하시고 공덕을 쌓아서 상품상생에 태어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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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 갈듯한 추녀의 곡선이 참으로 아름답다. 열두 폭의 치마를 맵시 있게 차려 입고 뽑내는 처녀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중품에서 상품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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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 편액에 뭐라고.....

엇, 봉황산 부석사?

아니,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라메...... 이렇게 눈가리고 아웅놀이를 하면 우짜노. 일주문의 태백산을 고치던가, 아니면 이 봉황산을 고치던가 해야지. 물론 일주분은 고색창연한 이 편액에 미칠 바가 못 되니 당연히 일주문을 고쳐야지. 이왕 해 놓은 것이니 그냥 냅두자고...? 주지화상의 욕심이 보이잖은가..... 허세 같은 것 말이지.... 물론 현 주지와는 무관하다. 설마 현 주지 스님이 해 놓은 것은 아니겠거니.... 하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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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그럴싸~ 하군. 태백산은 태백산으로 두고 봉황산으로 하면 될 것을 뭐할라고, 태백산에 집착을 해서는 소백산도 아닌 태백산으로 일주문을 혼란스럽게 해서 될 일이냔 말이지. 여하튼 팔도 간섭을 다 하면서 돌아다니느라고 낭월도 참 피곤하게 산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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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상품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이렇게 출입처를 좁게 한 것에는 한국 불교의 애환이 있다는 설도 있었더라. 못난 유교의 선비들이 말을 타고 법당을 오르거나, 심지어 가마를 타고 부처님을 참배가 아닌, 구경을 하러 오는 꼴이 보기 싫어서.... 그랬다는 설이 있는데 아련한 마음의 상처를 보는 듯한 느낌과 함께 공감이 되기로. 고개를 끄덕여 본다.

안양문(安養門)이다. 이게 무슨 문이야? 누각의 구멍이구먼. ㅋㅋㅋ

왜 안양문이라고 했느냐에 대해서는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극락세계를 번역하면서 안양국이라고도 했더란 설이 있다는 생각이 나서이다. 그래서 극락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이라는 의미에서 안양문이라고 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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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본당인 무량수전에 도착을 했다. 언제 봐도 위풍당당한, 그러나 소박해 보이는 법당이다. 책을 조금 읽어 본 사람은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이라는 말이 떠오를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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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술용어사전에서]


이렇게 기둥의 중간을 약간 부풀게 깎은 것을 말하는 모양이다. 배흘림은 선박의 배를 말하는 것인지, 인간의 배를 말하는 것인지도 궁금하군. 사람의 배는 일관성이 없지만, 바다의 배는 가운데가 볼록해야 하니까 그 배를 말하는 것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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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마당의난간에서 조망도 해 보고, 과연 천년 고찰의 위풍이 느껴진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뭔가 아는 채를 하면 쪼매~ 더 있어 보일랑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한 바퀴 비잉 둘러 본 다음에는 본전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는 것이 순서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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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무량수전(無量壽殿)이란다. 직역하면, '수명이 한량없는 전각'이고, 의역하면, '한량없는 세월을 중생구제로 전심전력 하는 아미타불이 계시는 곳'이라는 의미가 되겠다. 무협영화를 보면 소림사 화상들은 '오이미투어뿌어~!라고 한다. 아미타불이다. 또 신라때에는 아미타불을 무량수불이라고도 많이 했더란다. 같은 존재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까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신라때의 흔적이라는 것도 미뤄서 짐작을 할 수가 있겠다. 무량수나 아미타나 같은 부처를 말하는데, 왜 서로 다르냐? 원래는 아미타이고, 이것을 한자로 의역하면 무량수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도식과 중국식이라고 할 수가 있겠군. 어느 것을 택하든 자유인 것은 당연하고, 다만 둘이 다 같은 존재를 표시한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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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배를 올리고 관리자께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얼른 찍으세요.' 한다. 이런 때는 머리 깎은 값을 제대로 챙겨 먹는 것 같다. ㅎㅎㅎㅎ

아마도 일반인이었으면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기도의 대상에 대고서 셔터를 퍽퍽 눌러대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된다는 이유도 있고, 괜한 권의의식이 내재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하지말라고 하면 참 거시기 하거든.... ㅋㅋㅋ

나무아미타불~~~!!! 일배,

나무아미타불~~~!!! 이배,

나무아미타불~~~!!! 삼배.

그리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는 건물이 예뻐서 다시 렌즈를 들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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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단아한 모습이 어디에도 '나 좀 잘 봐줘' 하는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고졸한 옛 정취가 우아하게 풍겨나는 모습이니 과연 국보라고 할만 하겠지 싶다. 그렇게 둘러보니 극락세계에 내가 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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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측면을 보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이쪽 면에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그것도 참 특이하다. 보통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대웅전의 구조인데 무랑수전은 오히려 자리가 바뀌어 있는 것이 특이한 풍경이다.

왜 부처님이 옆을 바라보고 앉아 계실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낭월이 보기에는 동향을 택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부처가 동향을 바라보고 있어야 기도하는 중생은 서향이 되고, 서향이 되어야 비로소 서방(西方)의 극라세계에 계시는 부처를 본다는 느낌이 나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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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의 왼쪽으로 돌아가니 부석이 자리하고 있다. '뜬돌'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절 이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돌이다. 사실 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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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를 가늠하기 위해서 사기를 쳤다.

일행들에게 와서 바위를 떠받치고 있는 포즈를 하라고.... 그랬더니 시키는 대로 잘도 한다. 이렇게 놓고 보니까 부석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가 있겠다. 낭월의 속내도 모르고 즐겁게 동참해 주신 분들께 무한감사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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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써 놨다. 이 돌이 '부석(浮石)입니다.'라고.

엇~! 그러니까 부석이 있어서 부석사가 되었단 말이로군, 그렇다면 다시 오버랩 되는 서산 부석사에는 부석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네이버 자료를 검색해 보니까 부석이 있기는 있었더란다. 미쳐 가보지 못한 곳이에서 어느 블로그에서 사진을 빌려와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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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http://blog.daum.net/dokgo67/104]


사진으로 봐서 정확한 설명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은 설명이 아닌가 싶은 것이 서산의 부석인 검은여이다. 다음에 지나는 길에 들려서 구경이라도 해야 하겠지만 뭔가 결과에 맞춘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렇게 많은 돌들이 공중에서 떠돌았다는 것이 뭔가 억지스럽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무래도 서산 부석사가 의문의 1패를 한 것이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러한 자료를 모아 봤을 적에 영주에서는 산적들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돌이 떴고, 서산에서는 반발하는 백제의 백성들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돌이 떴다고 하는 이야기는 유사품처럼 닮았는데, 뜬돌이라는 의미에서는 다소 어색해 보인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짝퉁이 더 진짜같은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서산 부석사와 영주 부석사의 진실게임은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해 두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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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로 나들이 한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가 마중을 나와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기도 했다. 한결 같은 마음이 선묘낭자랑 겹친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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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묘(善妙)? 선묘가 누구냐?

선묘는 의상대사를 도운 호법신장이다. 이제부터가 부석사의 전설이다.

선묘는 중국 동해의 어느 가정의 딸이다. 부모의 불심을 이어 받아서 인지 당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돌아가려던 의상이 병이 나게 되자, 치료를 위해서 머물게 된 의상을 흠모해서 곁에서 모시기를 희망했단다. 그런데 그 낌새를 알고는 도주를 했다고도 하고,

또일설에는 과거에 신세를 진 것에 대해서 인사라도 하고 귀국하려고 집을 찾았으나 마침 외출하고 없어서 배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서 배를 탔는데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선묘가 물에 뛰어들었다고 하니까 이야기는 갈리지만 결론은 같다. 선묘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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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뛰어들어서 육신을 버리고 영혼은 의상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일의 진실은 알 도리가 없다. 믿으면 믿는 것이고, 안 믿으면 못 믿는 것인 까닭이다. 여하튼 여인 하나가 의상을 사모했다가 쫓아가려고 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은 공통점인 것으로 봐서 사실적인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요즘 하는 말로 팩트인 것이다.

죽어서 용이 되었다는 것은, 선묘에 대한 위로버젼인지, 진실버전인지는 알 방법이 없으니 각자 마음이 내키는 대로 생각할 나름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선묘가 호법신이 되었다고 해야 부석에 대한 이야기가 아귀를 맞추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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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공로를 인정받아서 이렇게 선묘각이라는 전각에서 향촉의 공양을 받고 있지만, 당시의 상황은 상당히 절박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 본다. 의상대사가 절을 지으려고 하는데 서산에서는 주민들이 반대하고, 영주에서는 산적들이 본거지로 삼고 었었으니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선묘가 나서서 거대한 바위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위협을 했다는 것은 완전히 요즘 말로 하면, '무력진압'이라고 할 수가 있지 싶다. 즉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강압적으로 해결했다는 것은 좋게 생각하면 신통력의 위력을 보여서 굴복시킨 것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남의 땅을 죽은 선묘의 영혼의 힘을 빌어서 내 쫓았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람의 생각에는 기적이라고 하겠고, 밖으로 굽는 사람의 생각에는 절대로 자비행이 아니라고 하지 싶다. 낭월의 생각에는..... 에고~ 모리겠따~!

그런데, 바위 만한 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선 이것부터가 궁금한 낭월이다. 물리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신앙적으로는 물론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실제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냥 전설로만 받아 들이자. 그렇게 되어야 불교의 자비종교와, 의상의 수행자에 대한 면모에 손상이 없지 싶다.

아마도......

동네 사람들의 의상의 모습을 보고 마음에서 수용하게 되었을 것이고, 산적떼거리도 역시 의상의 외모에 마음이 동해서 칼 대신 괭이를 잡고 터전을 일궜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둔 걸까? 이것은 의상이 마음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 만들어 낸 면죄부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의상의 일평생을 그녀의 환영이 따라다녔을지도 모른다. 자기 때문에 처자 한 사람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것은 아무리 감안을 한다고 하더라도 엄청 큰 죄를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간접살인을 한 셈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데려가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못 했다고? 그게 말이 돼?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일반 사람이라면 물론 수용이 가능한 이야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상대는 화엄경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한 고승이다. 그 정도의 수행으로 봤을 적에 버림받은 선묘는 목숨을 던져서라도 동행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정도는 파악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데리고 갈 자신이 없거든 정을 주지 말던가, 왜 정은 줘놓고 사람을 버리느냔 말이지. 물론 '주긴 누가 줘?'라고 할 수도 있을 게다. 고마워서 짓는 미소가 사랑의 고백이라고 착각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이유야 어떻든 간에 결국 그 결과에 대한 짐은 평생을 따라다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낙산사 의상대에서 기도를 하다가 뛰어내릴 생각을 했을 적에도 아마 죽어버리면 선묘랑 만나서 못다한 사랑 이야기를 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문득 해 본다. 보통은 끝장을 보려고 하지 죽어버리려고 하지는 않는데 선묘가 바다에 뛰어내린 것을 생각할 적마다 자신도 그렇게 해야만 빚을 갚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생각도 해 본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인지는 모른다. 아마도 의상이 입적하고 나서 선묘랑 만나서 결혼하고 오순도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담은 '선묘 그후'에 대한 2부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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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의 세수 77세가 되었을 적에 수없이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생에서의 마지막 설법을 마쳤다. 구름처럼 모여 든 제자들의 '나무아미타불' 독경 속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은 의상은 불교의 의식 절차에 따라서 다비식(茶毘式)이 봉행되고, 수습한 사리는 각 사찰에 봉안되었다.

한편,

의상이 육신이 허물을 벗어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꿈에도 잊지 못했던 선묘가 방글방글 웃으면서 옆에 다가선다. 그렇게도 그리웠던 선묘낭자를 육신이 다 한 다음의 저승에서야 비로소 만날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감격의 해후요, 눈물의 재회였다.

두 연인은 말없이 그렇게 부둥켜 안고는 7박7일을 보냈다. 그 사이에 의상이 마음에 졌던 무겁디 무거운 짐이 녹아내리고, 홀로 의상을 지키면서 뛰어다녔던 선묘의 수고로움도 또한 함께 녹아 내렸다.

그렇게 7일이 지나자 의상은 생전의 제자들이 마련해 준 49재의 정성을 받으면서 선묘와 함께 흠향하며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연을 정리하고서는 오색의 서기구름이 두 사람을 감싸는가 싶더니 홀연히 허공중으로 사라졌다. 의상이 보낸 7일은 인간세의 49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두 영혼은 생전의 인연을 아쉬워하면서 보냈던 시간의 수만 배나 되는 영원의 시간 속을 함게 항유하면서 못다 이룬 사랑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이승에서의 모든 것을 벗어버린 자유로운 두 영혼은 아무런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태어나서 더 없이 행복한 삶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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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이야기 정도는 붙여줘야 되는 거 아녀? 그렇게 슬픈 사랑의 이야기는 너무 맘이 아프단 말이지...... 그것은 어느 일없는 작가의 손길을 기다리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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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전설과 현실을 오가는 즐거움이야말로 고찰을 순례하는 기쁨 중에 하나일 게다. 그러한 낭월의 속내를 알 길이 없는 일행들은 서둘러서 절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희희낙락이다. 문득 선묘각의 옆에 우뚝 서 있는 탑에서 의상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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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에도 허물이 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불도량, 화엄경의 낭랑한 독경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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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합장 하고는 귀가 길.

의상의 고뇌와, 수행과, 깨달음과, 원효의 웃음소리가 고요한 산사에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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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을 벗어나자, 눈길을 끄는 호랑이 한 마리. 옹기나라란다. 한 번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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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전시관'이 아닌, '참 좋은 인연입니다'의 문구에서 소박한 주인장의 마음이 보이는 듯 하다. 그렇게 발길이 이끄는 대로 들어가니 그야말로 소박한 토기를 닮은 주인 부부가 길손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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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그러고 보니까......

의상대사가 후세에 도자기를 빚는 도공으로 태어났다더니 자신이 생전에 제자들을 가르치던 부석사 아래에서 그릇을 통해서 말없는 설법을 하고 있었던 거 아녀?

옛날에는 학생처럼 보이더니, 세월 많이 흐른 다음에 다시 보니 고승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주인장의 소탈한 모습에서 의상과 선묘의 모습이 겹치는 것은 결코 얻어 마신 매화차의 향기에 취해서 만은 아닐 것 같다.

잠깐의 담소에서 오랜 시간을 뛰어 넘어서 어느 폐교에서 만난 인연이 이렇게 번듯한 공방에서 재회하니 인연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세월도 흘렀지만 그 시간을 알차게 열심히 살아온 공덕이려니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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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과 여연의 즐거운 담소와 선물 나눔의 행복한 모습도 아름답다. 또 언젠가 다시 만나려니 하면서 짧은 만남을 멀리 하고 귀갓길에 올랐다. 부석사는 원래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의 세상 이치를 보여주는 설법장이려니 싶은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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