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선생의 일간

작성일
2007-09-0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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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學生)의 입장에서 선생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교육자(敎育者)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겠는데, 특히 학생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대로 주어지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므로 사실은 미리 선생의 일간을 안다고 해도 속수무책(束手無策)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갈등이 생긴다고 한다면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방법에서 전혀 무의미하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가끔은 선생과 학생의 갈등이 심각하여 학교를 다니다가 그만 두는 현상까지도 생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경이 된다면 아마도 사주를 살펴서 일간의 배합을 관찰하여 해결책을 찾아볼 수도 있다.

가령 학생이 戊土의 일간인데 선생은 甲木이라고 한다면 학생은 선생을 무척이나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한다면 선생을 바꿀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것이며, 이렇게 노력을 하는 것이 학교를 그만두게 되어 가정의 모든 가족이 고통스러워하는 것보다는 현명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선생이 壬水가 된다면 이번에는 학생에게 접근을 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생긴다면 또한 학생의 입장에서는 원인도 모르고 선생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과 학생의 궁합(宮合)을 본다면 이러한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사전에 의논이라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선생을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십간(十干)의 배합(配合)에 대한 논리를 이해하게 되면 별 어려움이 없이 대입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학교의 교육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상에는 좀 더 복잡한 사제(師弟)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혹 대학원(大學院)에서 논문을 작성하는 경우라고 가정(假定)을 한다면 이러한 대입은 더욱 뚜렷하게 작용이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지도교수(指導敎授)의 일간이 학생 일간의 정인이라고 한다면 최대한의 노력으로 올바른 결과가 나오도록 배려를 해 주게 될 것이지만, 편관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구 화를 내거나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결과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또 학생 일간의 재성에 해당한다면 선생이 부담스러워서 자주 만나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능력을 키워주고자 할 마음이 없다고 할 수도 있으니 이러한 경우에는 담당 교수를 바꿔서라도 목적을 달성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도 모두 궁합의 영역에서 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