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 제35장. 우성암(牛聖庵)/ 12.생남불공(生男佛供)

작성일
2023-02-05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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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 제35장. 우성암(牛聖庵)


12. 생남불공(生男佛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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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러 찾아온 부부와 우성암의 식구들 간에 인사를 나누자 화련 보살이 말했다.

“이 부부는 10년이 되었어도 슬하에 자녀가 없어서 고심하셨더랍니다. 그런데 간밤 꿈에 돌아가신 부친이 나타나셔서 ‘날이 밝는 대로 수우산에 있는 우성암을 찾아가서 불공을 하면 옥동자(玉童子)를 점지받을 것이니 어서 가보라’고 해서 서둘러서 왔답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산신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문득 오늘 공부를 할 내용이 오주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부부의 조짐을 점괘로 풀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를 듣고서 가장 반겼던 사람은 진명이었다. 과연 이들 부부에게 자녀를 얻을 조짐이 꿈속에서 이미 이뤄졌는데 점괘에서도 그러한 것이 나타날 것인지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스승님, 어서 득괘(得卦)를 해보세요.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요. 물론 당연히 아들을 얻게 될 조짐이 나오겠지만 실제로 그러한 것을 볼 수가 있다면 얼마나 신기하겠어요? 호호호~!”

“그렇다면 오늘의 공부는 이 부부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알아보는 것으로 하면 되겠군. 오늘의 점괘에 대한 풀이는 진명에게 맡겨보도록 하지. 어디 살펴볼까?”

이렇게 말한 우창이 점괘를 얻어서 종이에 적었다. 모두의 이목이 종이에 적힌 점괘 위로 쏟아졌다. 그리고는 다시 진명을 향했다. 우창이 진명에게 풀이해 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428 생자점괘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풀어보겠어요. 큰 가르침을 기대하기로 하고 감히 조짐을 열어보겠습니다. 우선 일간(日干)이 임수(壬水)네요. 임(壬)은 아기 밸 임(妊)과 통하잖아요? 어머~! 어떻게 이런 일이 눈앞에서 생길 수가 있죠?”

진명의 말에 우창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그렇게 해석을 할 수도 있단 말인가? 그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걸. 그래서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봐야 하는가 보군. 하하하~!”

다른 대중들도 놀랍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럴 정도이니 정작 불공을 하러 온 부부의 놀라움은 더 말을 할 나위도 없었다. 놀란 표정을 보면서 진명이 다시 말을 이었다.

“연월(年月)의 무술(戊戌)과 미(未)의 정황을 봤을 적에 술미(戌未)의 구조로 봐서는 일간(日干)의 임수(壬水)가 소통할 길이 없어서 완전히 막혀있었다는 말이잖아요? 스승님,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는 건가요?”

“물론~!”

우창이 간단히 그렇다고 인정하자 진명이 또 점괘를 보면서 설명했다.

“무술의 토가 막는 것도 있지만 실로 무술의 자체도 막는 기능이 있어 보여요. 말하자면 술(戌)은 지킬 수(戍)를 닮았으니 그 안에서 같은 뜻이 통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씀을 언젠가 해 주셨으니까요. 그렇다면 무엇인가의 외부적인 영향(影響)에 의해서 임신이 되는 것을 막고 있었다는 의미로 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창은 진명의 말을 들을수록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불과 두어 달의 공부에서 이러한 유추(類推)가 가능하다는 것을 일반적으로는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후생(後生)이 가외(可畏)라더니만 그 말이 진명을 위해서 나온 것이었구나. 과연 놀랍고도 기특하군. 그래서?”

진명은 우창의 칭찬을 듣자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스승님께서 꼼꼼하게 구석구석을 뒤져서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면 어찌 이렇게 생각할 줄이나 알았겠어요? 모두가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이죠. 그리고 염재가 무엇을 물어도 싫다고 하지 않고 가르쳐 준 덕분이기도 하겠네요. 호호호~!”

“그렇군. 열정(熱情)이 아니라면 그렇게 많은 성과를 거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니 그것도 또한 진명의 노력이랄 밖에. 하하하~!”

“과분한 칭찬에 기분이 좋아요. 더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진명이 다시 점괘를 보면서 잠시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자손의 씨앗은 연지(年支)의 미중을목(未中乙木)으로 잘 들어있었어요. 다만 그 씨앗이 발아(發芽)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왜 무술이 자손의 탄생을 막았을까요? 스승님께서 열심히 가르쳐 주셨는데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치는 모르겠어요. 말씀해 주세요.”

“그야 내가 가르쳐 준 적이 없으니 당연하지. 하하하~!”

“어쩐지~! 어서 말씀해 주세요. 왜 가로막고 있었을까요?”

“무술이 임수에게는 편관(偏官)이로군. 그렇다면 편관의 영역(領域)에 속하는 상징성(象徵性)은 무엇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

우창이 다시 문제를 던져주자 진명은 곰곰 생각해 보고서 말했다.

“우선 생각하기에는 편관이라면 고통(苦痛), 위험(危險), 공포(恐怖)와 같은 의미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요?”

“악귀(惡鬼)도 편관의 영역에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던가?”

“아, 말씀하셨어요. 이제야 생각이 나네요. 그렇다면 이 가정에 자녀가 태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악귀가 있었다는 말씀인가요?”

“어떻게 단정(斷定)이야 하겠는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해야 맞겠지?”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젊은 부부를 바라봤다. 혹 여기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말을 해 봐도 좋겠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남자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도사님, 참으로 용하십니다. 생각도 하지 못했던 과거사를 이렇게 명료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조부께서 과거에 현감(縣監)을 하시면서 원성(怨聲)을 많이 쌓았다는 이야기를 부친으로부터 한 번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말씀을 들어보니 그 당시에 원한을 품고 돌아가셨던 원혼이 있다면 당연히 자식이 태어나는 것을 막아서 복수하려고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가 있지 싶습니다. 대를 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죄악이 될 테니까 말이지요. 혹 이러한 것도 참고가 될지요?”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우창이 말했다.

“당연합니다. 그리고 선생이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이미 윗대에서 벌어진 일이니까요. 다만 그러한 일로 가문의 대가 끊길 수도 있었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는 남자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는지 마음이 놓인다는 표정으로 우창에게 합장했다. 그러자 진명이 다시 물었다.

“스승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진명에게 이러한 것이 보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네요. 참으로 제 공부가 깊어진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영향이 있는 것일까요?”

“그야 열심히 공부한 노력의 결실이 당연하지. 그리고 약간의 작용을 한다면 영감(靈感)이 발동하는 것으로 보이네. 그것은 이미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것이잖은가? 진명이 과거에 그러한 문제로 고통을 겪었는데 이제 오행의 이치를 공부하니까 처음에는 장애가 되었던 영혼의 고통이 이제는 영감으로 진화(進化)하는 모양이니 그것은 축하할 따름이로군. 하하하~!”

우창에게서 영감이라는 말을 듣자 비로소 진명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하~! 이제 알겠어요. 그러니까 오주괘는 하나지만 저마다의 공부에 따라서 달리 해석이 되고, 특히 과거의 인연으로 인한 영향도 무시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지요?”

“당연하지, 나는 아무리 궁리해도 그러한 것까지 살피는 능력은 없으니까 말이네. 한편 부럽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깊은 곳까지는 보이지 않으니까 오히려 그런 것이 보이는 사람은 피곤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스스로 위로가 되는군. 하하하~!”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여태까지 저를 힘들게만 한다는 생각으로 영기(靈氣)에 대해서 증오(憎惡)하다시피 했는데 오늘부터는 그것조차도 사랑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이든 쓸 나름이라는 가르침이 생각났으니까요. 호호호~!”

“맞아~! 그것조차도 수행이라고 해야지. 축하하네.”

그러자 염재가 손을 들고 물었다.

“스승님, 그렇다면 신체적으로 타고난 저마다의 체질(體質)이 영혼(靈魂)과 잘 감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도 그냥 하나의 특징일 따름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정신세계가 낮은 사람은 고통스러워하고, 높은 사람은 오히려 그것을 도구로 삼아서 더욱 멋진 자신을 만드는 것에 사용할 수가 있다는 것인지요?”

“그렇다네. 옥새(玉璽)를 아이가 쥐면 호두를 깨어 먹는 것에 사용하고 왕의 손에 들어가면 생살권(生殺權)을 갖게 되는 도구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지. 그리고 자연의 이치를 궁구하는 철학자에게는 또한 그 모든 경험과 단점들을 수습(收拾)해서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도구로 삼게 되는 것이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나 타고난 것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쓸 방법을 알고 있느냐는 것일 따름이라네. 그래서 다 같은 십간과 십이지지만 어떤 사람은 나이를 따지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통해서 그 사람의 조상에 대한 기밀(機密)까지도 들여다볼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나? 하하~!”

그러자 진명이 다시 말했다.

“맞아요~! 스승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제자는 이러한 이치를 알게 된다는 것을 꿈엔들 생각했겠어요. 이제야 무엇을 잘할 수가 있을 것인지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오늘 불공하러 오신 두 부부께도 감사드려요. 부디 원하시는 가정에 귀중한 자녀가 태어나시길 기원합니다.”

진명이 이렇게 말하면서 손님 내외에게 합장하자, 우창이 말했다.

“아니, 점괘를 보다가 말고 무슨 덕담(德談)을 하는가? 하하~!”

“아 참, 내 정신 좀 봐, 맞아요. 점괘를 봐야죠. 그러니까 연월(年月)의 신미(辛未)와 무술(戊戌)을 보면서 너무나 감탄해서 점괘를 보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어요. 호호호~!”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지 잠시 심호흡을 한 진명이 말을 이었다.

“오늘 수우산에 오신 것은 일지(日支)의 신금(申金)의 공덕이었나 봐요. 그간의 맺힌 무술(戊戌)의 원한을 모두 떠안고 해원(解寃)하려는 노력을 깨닫고 조상님의 꿈으로 현몽(現夢)하신 것으로 봐야 하겠네요. 더구나 수우산의 암봉(岩峰)에서 풍겨 나오는 금기(金氣)는 무술의 원한을 해소하는데도 힘을 발휘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으로 보이니까요. 참, 정 사부께 여쭤봐야 하겠어요. 바위로 가득한 산에서는 금기가 가득히 서려 있는 것이 맞겠지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광이 진명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흠칫하고는 말했다.

“참으로 진명의 사유(思惟)는 어디로 뛸지 가늠을 할 수가 없다니까, 갑자기 내게 질문이 쏟아질 줄이야. 하하하~!”

“그야 산천의 기운(氣運)에 대해서는 정 사부님께서 말씀해 주셔야 믿음이 가니까요. 호호호~!”

이렇게 말하는 진명에게 미소를 지은 지광이 설명했다.

“당연하지, 수목(水木)이 우거진 산에서는 목기(木氣)가 발동(發動)하고, 호수(湖水)에서는 수기(水氣)가 발동하는 것이라네. 어서 풀이를 계속하게. 나는 지금 그게 더 급하니까 말이지. 하하하~!”

지광의 동의를 얻고서 만족한 진명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과거세(過去世)의 조부(祖父)가 쌓은 원한으로 인해서 가운의 흐름을 막았던 무술(戊戌)을 일지(日支)의 신금(申金)이 토생금(土生金)으로 풀어헤쳐서 다시 일간(日干)에게 쏟아부으니 장애물로 작용하던 토기(土氣)는 오히려 금을 생조하는 원류(原流)로 작용하게 되었어요. 이것은 원한을 품은 고혼(孤魂)들에게 귀인이 되도록 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어요. 그래서 일지(日支)의 신금(申金)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인데 이렇게 기운을 받은 임수(壬水)는 갑목(甲木)을 출산하게 되고 이어서 묘목(卯木)까지도 얻게 되는 겹경사가 발생하네요. 그렇다면 아들과 딸을 연이어서 얻게 될 조짐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다시 스승님께 확인해야 하겠어요.”

진명이 우창을 보면서 말하자 우창도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했다. 그것을 본 진명이 다시 자신감에 차서 말을 했다.

“스승님께서 그렇게 동의해 주셔서 그런지 또 다른 것도 보여요.”

“뭐가?”

“진토(辰土)의 유상(類象)에서는 자궁(子宮)도 포함된다고 하셨잖아요? 수고(水庫)라고 했고, 수정(水精)은 자중계수(子中癸水)가 될 것이니까요. 그것을 잊고 있었는데 지금 막 떠올랐어요. 그리고 자녀의 시간(時干)에 있는 갑목(甲木)은 진토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갑(甲)은 아들이고 묘(卯)는 딸이 되는 것으로 봤는데 이렇게 해석해도 될까요?”

“왜? 걱정스러운 것이라도 있나?”

“예, 여기에 대해서는 좀 풀어내기가 어려워요. 그건, 임(壬)이 어머니이기 때문에 갑(甲)은 양대양(陽對陽)으로 음양(陰陽)이 같으니까 딸이 되고, 묘(卯)는 양대음(陽對陰)으로 음양이 달라서 아들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에 궁금했어요.”

“아, 난 또 뭐라고. 그야 생각할 나름이니 보이는 그대로 말하면 된다네. 때론 갑이 식신(食神)으로 보여서 딸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양목(陽木)으로 보여서 아들이 되기도 하니 말이네. 반드시 고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유연(柔軟)하게 적용하면 되니까 둘 다 맞는다고 알고 있으면 되지.”

“아하~! 그렇군요. 반드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되는 것으로 알았어요. 그렇다면 점괘를 볼 당시에 어떻게 보이느냐는 것이 중요하단 말씀이시지요?”

“당연하지, 특히 진명에게는 더욱 그렇다고 봐야지. 왜냐면 기본적인 이치의 바탕 위에다가 진명의 타고 난 영감이 발동할 테니까 말이네. 하하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새삼스럽게 다시 영감의 인연을 감사하게 느끼네요. 그렇다면 이번 점괘에서는 십성(十星)으로 보지 않고 천간(天干)으로만 봐서 아들을 먼저 얻고 그다음에 딸을 얻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어요.”

그 말에 가장 반가워하는 사람은 부부 중에서도 특히 남자였다. 자손이 귀한 집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먼저 아들을 얻는 것이 바라는 바였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그 표정을 보면서 진명이 다시 말했다.

“제자가 볼 수가 있는 것은 여기까지가 전부예요. 질문이 자녀를 얻겠느냐는 것이었는데 마침 절묘하게도 그러한 조짐을 읽을 수 있어서 천만다행(千萬多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스승님께서 마무리해 주세요. 호호호~!”

진명이 자신의 풀이에 스스로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합장했다. 그러자 부인이 합장하고는 말했다.

“젊은 선생님의 가르침에 우리 부부는 감동했어요. 무엇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우성암에 찾아와서 정성으로 기도한 다음에 이러한 덕담을 듣게 되어서 더욱 기쁘네요. 그 원혼들을 위해서 뭔가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것은 보살님께 여쭤봐야 하나요?”

이렇게 말하면서 화련 보살을 쳐다봤다. 그러자 보살이 말했다.

“천도재(遷度齋)를 지내는 것은 참 좋아요. 다만 우성암에는 독경해 드릴 스님이 안 계셔서 어려우니까 이웃에 있는 다른 곳을 알려 드릴 테니 그곳에 가서 의논하시면 잘 안내해 주실 거에요.”

화련 보살의 말에 여인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보살님의 말씀은 잘 알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공부의 깊이가 놀라운 선생님들께서 원혼들을 위해서 천도재를 지내주시면 더 좋지 싶은데 형식적인 의식(儀式)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죄송하지만 그냥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 여기 마련해 온 비용이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천으로 고이고이 싼 것을 꺼내놓았다. 그 안에는 은자 열 개가 들어있었다. 얼마나 염원이 간절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는 화련 보살이 우창을 바라봤다. 혹 그렇게 해도 되겠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그렇게 해 주자는 뜻이기도 했다. 그 의미를 짐작한 우창이 말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한마음에 있다고 했으니 우리가 천도재를 지내 드린다고 해도 안 될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지광을 바라봤다. 그러자 지광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넙죽 절을 하고는 말했다.

“참으로 바라던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 가서 누가 지내주는 것보다도 도사님들의 법력으로 지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화련 보살도 은자를 거두면서 말했다.

“이것은 우리가 수행하는데 소중한 양식이니 고맙게 거두겠어요. 그리고 영혼들을 위로하는데 제물(祭物)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니까 마을로 가서 눈에 띄는 대로 준비해 올 테니까 쉬고 계세요.”

이렇게 말을 한 화련이 혼자서 바삐 마을로 내려간 지 한 시진이 지났을 무렵에 젊은 청년에게 천도재에 쓰일 것을 지게에 얹어서 올라왔다. 이번에는 모두 나서서 잿밥을 짓고 나물과 과일을 손질해서는 법당에 올리고서 모두 둘러앉아서 저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이 부부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빌었다. 다만 화련 보살은 경문을 외웠다. 그 낭랑한 음성이 동굴법당을 울려서 모두의 마음에 여운을 남겼다.

그렇게 한 시진(時辰)이 흘렀다. 참으로 세상에서 보기 드문 형태의 천도재가 지내졌다. 모두 정성스럽게 기도하고서 얼굴이 상기된 채로 밖으로 나왔다. 그동안 기공을 연마해서 얻은 힘까지 모두 쏟아부었다.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던 부부가 땀에 젖은 채로 밖에 나와서는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는 하산했다. 다들 말없이 평상에 앉아서 나름대로 뭔가 보람이 있는 일에 동참을 한 듯한 기분이 들어서 내심 흡족했다. 잠시 후에 화련이 대중을 향해서 말했다.

“스승님들과 도반들의 염력으로 원한은 모두 해소되고 가정에 옥동자가 태어날 것이니 가정에서는 꽃이 필 것이고, 이렇게 일심으로 아름다운 공덕을 쌓으셨으니 애도 쓰셨지만 축하드리고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우창이 말했다.

“아닙니다. 참으로 의미가 있는 경험을 쌓게 되었습니다. 천도재는 법력이 높은 화상(和尙)이 하는 것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오늘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정성이라는 것을 말로는 했었지만 이렇게 일을 당하여 합심으로 불공을 드리고 나니 과연 무슨 의미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경험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이때 옆으로 다가온 지광이 우창에게 말했다.

“영계(靈界)에 계시는 신령(神靈)이나 유명(幽冥)을 떠도는 혼령(魂靈)들은 육근(六根)이 없으니 법복(法服)을 입었거나 아무것도 입지 않았거나 전혀 개의치 않는다네. 다만 정신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만을 느낄 따름이지. 그렇기에 이렇게 지극한 정성으로 불공을 올린 우리의 노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

이렇게 말하고는 화련을 바라봤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의미였다. 그것을 알고 화련이 응답했다.

“맞아요. 과연 자연의 이치를 공부하게 되면 영적(靈的)인 공부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그 이치는 하나임을 알게 된다는 것을 스승님께서 또 가르쳐 주시네요. 그래서 만법귀일(萬法歸一)인가 봐요.”

화련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던 우창이 물었다.

“보살님, 만법귀일이라면 모든 진리는 하나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세상에는 온갖 진리가 있지만 결국은 모두 하나의 이치로 연결이 된다는 뜻인지요?”

“미련한 제자가 알기에는 그렇습니다. 그렇게 배웠는데 오늘 스승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으니 부처님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오행의 이치도 또한 그 뿌리는 하나라는 것을 확인했지 싶어서 마음이 더욱 즐거워지네요.”

이렇게 대화를 나누자 염재가 어느 사이에 다가와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합장하고 지광에게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이미 영감(靈感)이 탁월하신데도 영혼(靈魂)의 왕래(往來)에 대해서도 명료하게 느끼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사실이 그러한지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염재의 말에 지광이 답했다.

“그런가? 기감(氣感)과 영감(靈感)이 비슷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대체로 이러한 세계를 이론적(理論的)으로 접근한 사람이라면 당연하지.”

“그렇다면 실은 다르다는 의미입니까?”

“당연하지, 하하하~!”

“그 차이가 궁금합니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어리석은 제자가 생각하기에는 서로 매우 근접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설명으로 가능하다면 듣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염재가 기감(氣感)을 잘 몰랐기 때문에 설명해 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네. 그런데 이제 우성암에서의 수련을 통해서 기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뿐더러 느끼지도 않았나?”

“그렇습니다.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것까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영혼을 느끼는 것과의 차이가 이 언저리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설명을 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는데 마침 화련 보살님의 말씀을 듣고서 여쭙습니다.”

“아, 그럴 것이네. 그렇다면 생각을 해보게. 훈풍(薰風)과 한풍(寒風)의 차이를 알겠나?”

“그 정도는 이해합니다. 봄바람과 가을바람의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맞아, 이미 염재는 그 정도의 차이를 이해할 정도는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지. 물론 비유는 바람으로 들었으나 그것이 바람이 아니라 기운이라고 바꿔놓고 생각하면 조금도 다르지 않다네.”

“언뜻 들어서는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만, 역시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기감과 영감은 같은 것이려니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스승님께서 이 둘을 구분해서 훈풍과 한풍으로 설명하시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영혼에서 느끼는 것은 한풍이고 사람에게서 느끼는 것은 훈풍이라고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까?”

“물론이지. 맥(脈)을 잘 짚었군. 언제나 중요한 것이 맥이거든. 맥은 여행자의 첫걸음과 같아서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서 이해하는 정도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되니까 말이네. 대체로 봐서는 영감(靈感)과 기감(氣感)이 별반 다르지 않다네. 그런데 이것을 다시 뜯어놓고 생각하게 된다면 전혀 다른 것이라는 알게 된다네. 물론 그만큼 이해의 정도(程度)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말하나 마나 알겠군. 어떤가?”

지광이 이렇게 묻자 염재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비슷해 보였던 것이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거산이 지기(地氣)를 느낄 적에 화맥(火脈)과 수맥(水脈)의 차이와 같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데 마침 거산도 이야기를 듣고서 다가와서 옆에 앉았다. 그러다가 염재가 거산의 느낌을 말하자 거산이 이에 대해서 말했다.

“맞습니다. 딱히 콕 집어서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미세하게나마 화맥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에는 온기(溫氣)가 느껴지고 수맥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에는 한기(寒氣)가 느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느낌으로만 그랬는데 이렇게 구분해서 물어주시니까 바로 이해가 됩니다.”

거산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해가 된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야 명쾌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영감과 기감의 차이가 있었네요. 이렇게 가르침을 받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만 염재는 아직도 어떤 기운이 온기와 냉기인지에 대해서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답답할 따름입니다. 하하~!”

이야기가 길어지자 음식을 만들어 놓고 밖으로 나온 현지가 말했다.

“자, 열띤 토론도 식후경이라잖아요. 공양하고 나서 또 대화하셔야 현지도 한 수 배울 것이니 어서 들어오세요. 음식이 식네요. 호호호~!”

현지의 말에 모두 일어나서 손을 씻고는 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