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제35장. 우성암(牛聖庵)/ 13.과객(過客)

작성일
2023-02-10 04:35
조회
807

[429] 제35장. 우성암(牛聖庵) 


13. 과객(過客)


========================

천도재를 지내느라고 마련했던 음식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은 우창은 식곤증(食困症)이 생겨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한숨 잤다. 그러다가 잠결에 어딘가에서 시를 읊는듯한 소리가 바람결에 들리는 것인지 꿈속인지 분별이 되지 않아서 비몽사몽 중에 귀를 기울여 봤다. 아무리 들어봐도 우성암에 있는 식구의 소리는 아닌 것이 확실했다. 걸걸한 음성에는 내공이 실려있는지 묵직하게 가슴을 울렸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일어나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염재도 그 소리에 밖으로 나왔다가 우창을 보고는 합장하면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무슨 소리인지 궁금하다는 의미였다. 우창이 나직이 말했다.

“좀 들어보세.”

“예, 스승님.”

두 사람이 귀를 기울이자 울리는 메아리와 뒤섞였던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청산림(靑山林) 깊은 골에
일간토굴(一間土窟) 지어놓고
송문(松門)을 반개(半開)하고
석경(石徑)에 배회(俳徊)하니
녹양춘삼월하(綠楊春三月下)에
춘풍이 건듯 불어 정전(庭前)에
백종화(百種花)는 처처에 피였는데
풍경(風景)도 좋거니와
물색(物色)이 더욱 좋다. 

이렇게 시인지 노래인지 모를 구절을 낭랑(朗朗)하게 부르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소리가 끊어지자 염재가 다시 우창을 바라봤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뜻임을 간파한 우창이 소리가 나는 위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한 번 가 볼까?”

“예, 염재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늘 산책 삼아 다니던 길이어서 손바닥처럼 훤한 바위의 사이를 지나서 뒤로 올라갔다. 잠시 후에 소리가 났던 곳을 바라보니 한 초로(初老)의 노인이 나무토막을 베고는 누워서 잠이 들었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다가갔더니 그사이에 코를 골며 잠에 빠져있었다. 우창은 조금 떨어진 바위에 걸터앉아서 조금 전에 들었던 소리를 다시 생각해 봤다. 염재는 조용히 옆에서 우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뜨거운 차가 식을 만큼의 시간이 흐르자 노인이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더니 우창과 마주치자 무슨 일이냐는 듯이 바라봤다. 우창이 얼른 일어나서 합장하고는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습니다.”

“뉘시우?”

“진하경입니다.”

“누가 그걸 물었소? 뭐 하는 사람이냔 말이외다.”

“아예, 이 아래 우성암에 머물고 있습니다.”

“길이 막혔구려.”

“예? 무슨......”

노인의 뜬금없는 말에 우창은 의아해서 되물었다. 그러자 그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염재를 바라봤다. ‘그대는 또 왜 여기에 있느냐?’는 뜻이지 싶었다. 그러자 염재도 말했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우성암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자입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고 허리를 굽혀서 합장하고는 노인의 태도를 살폈다. 차림새는 걸인(乞人)도 같고 처사(處士)도 같은데 눈은 반짝여서 위압감이 들었다. 노인이 잠시 염재를 보다가는 탄식했다.

“애고~ 쯧쯧!”

노인의 태도가 이상해서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서 기다렸지만 아무런 말이 없이 멀리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궁금증이 커진 염재가 물었다.

“혹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요?”

“말은 무슨 그냥 답답한 생각이 들었을 뿐이네. 허허허~!”

“가르침을 듣고자 합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염재는 공부의 기회는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었다. 지금 노인의 형색으로 봐서 뭔가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 걸음 다가가면서 물었다.

“혹, 귀한 가르침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귀담아서 듣겠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던 우창도 궁금한 생각이 들기는 매한가지였다. 자신에게는 막혔다고 하고, 염재에게는 한숨을 쉬고 있으니 아무래도 즐거운 이야기는 아닐 것으로 생각이 되었지만 나쁜 일이라고 하더라도 전후의 내용이 궁금했다. 그래서 합장하고 물었다.

“귀인을 뵙게 되었으니 수우산의 신령님이 보우(保佑)하심인가 싶습니다. 귀한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합장하고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노인은 비로소 웃는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와서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질문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인 것으로 이해하고 우창은 두 걸음 정도, 염재는 두 걸음 반 정도 떨어져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인은 잠시 두 사람을 보더니 비로소 말을 꺼냈다.

“빈도(貧道)의 정체가 궁금하겠지?”

이렇게 격의 없이 말하자 우창도 편하게 문답했다. 대화는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서 그 수위(水位)가 정해지기 마련이다. 편하게 말을 하겠다면 편하게 받으면 그만인 것이다.

“이를 말씀입니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이미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빈도는 강호(江湖)를 내 집 삼아서 떠도는 게으른 늙은이요.”

“아, 예....”

우창은 이름을 말하려는가 싶었는데 그냥 게으른 늙은이라고 하기에 이름은 밝히고 싶지 않은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노인이 말을 이었다.

“빈도를 혹자는 태옹(怠翁)이라 부른단 말이지.”

“예? 게으른 늙은이라기에 지나가는 말인가 보다 했는데 태옹(怠翁)이라면 그 뜻이었군요. 몰랐습니다. 하하하~!”

“그렇소이다. 허허허~!”

“소생은 우창이라 불러주시고, 말씀은 ‘하게’로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면 귀한 말씀을 듣기에 편안하지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우창? 아까는 진 뭐라고 하지 않았나?”

우창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낮춰서 물었다. 우창도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말하는 노인이 무척 맘에 들었다.

“그렇습니다. 이름은 진하경(陳河鏡)입니다. 편하게 우창(友暢)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하~!”

“이름이 특이하군. 진(陳)이야 조상이 물려준 것이니 그렇거니와 이름이 왜 하경(河鏡)인가?”

우창은 새삼스럽게 이름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신기해서 그 의미를 듣고 싶었다.

“이치는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이 지어주셨으니 ‘그런가 보다’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까? 혹 고견이 있으시면 풀이를 부탁드립니다.”

“진(陳)의 부(阝)는 부(阜)의 언덕을 말하고, 언덕의 동(東)이니 신선(神仙)이 사는 별천지를 말한다네. 다만 그대가 진씨라서 말하는 것은 아니니 행여라도 다른 진씨와 섞어서 혼란을 야기(惹起)하진 말게나. 허허허~!”

“아, 그 말씀은 우창에게만 해당하는 진(陳)의 의미라는 뜻인지요?”

“그나마 말귀는 조금 열려서 다행이군. 맞아. 그대의 거주지는 어딘고?”

“산동(山東)의 곡부(曲阜)입니다.”

“오호~! 산동(山東)은 동쪽이고, 곡부(曲阜)는 구부러진 언덕이니 이것도 참 재미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창이 머물 곳은 이미 태어나면서 곡부로 정해졌다는 뜻입니까?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그런 이치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그걸 알아서 어디에 쓰겠나? 진시황의 송곳일 따름이네. 허허허~!”

“알겠습니다.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뜻이로군요. 그렇다면 하경에는 또 무슨 뜻이 있겠습니까?”

우창의 말에 노인은 말없이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그것을 본 염재가 얼른 말했다.

“이런, 죄송합니다. 어서 암자로 내려가시지요. 드실 것을 마련하겠습니다.”

“오호~! 눈치가 제법이군. 그럼 사양하지 않겠네. 허허허~!”

우창은 뒤서고 염재는 앞서서 태옹과 함께 암자로 돌아와서는 식당으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은 태옹에게 차를 끓여서 따라주고는 낮에 먹고 남았던 음식을 뒤져서 한 상 차렸다. 음식을 본 태옹이 반기면서 말했다.

“아니, 오늘 무슨 행사가 있었던 게로구나. 음식이 휘황찬란한 것을 보니 말이지. 재라도 지냈던가?”

태옹의 말에 염재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손으로는 부지런히 음식을 먹으면서 귀로는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잠시 후, 배를 채웠는지 태옹은 수저를 내려놓고는 차를 마시고서야 트림을 한 번 하고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도 음식을 달게 먹는 것을 보자 마음이 흐뭇해서 지켜보다가 눈길이 마주치자 미소로 화답했다. 식당에서 사람들의 말소리와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진명이 무슨 일인가 싶었던지 급히 나오다가 이 풍경을 보고서 의아해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우창과 염재와 태옹을 번갈아 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가늠하느라고 염두를 굴렸다. 그 모습을 보던 염재가 말했다.

“귀한 손님께서 방문해 주셨습니다. 우선 간단하게나마 요기를 시켜드렸습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서야 진명도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고서 합장하고 인사했다.

“잘 오셨어요.”

태옹은 미소로 답을 하고는 우창과 진명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우창도 나름 세상의 경험이 쌓였으니 그 표정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이 누추한 곳까지 친히 왕림해 주셨으니 모든 가르침을 아끼지 마시고 펼쳐 주시기 바랍니다. 기대하겠습니다.”

“가르침은 뭘, 늙은이가 아는 게 뭐 있다고. 허허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오후의 수련 시간이 다가왔다. 저마다 쉬고 있던 대중들이 모두 수련의 준비를 하고 마당으로 나오다가 식당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뭔가하고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염재가 자리를 옮겨서 말씀을 듣자고 하여 마당의 평상으로 안내하고 모두 그 둘레에 모여서 염재의 말을 기다렸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였다. 대중을 둘러본 염재가 말했다.

“이 어른은 태옹(怠翁)이라고 하는 분이십니다. 우연히 우리 암자를 찾아 주셨기에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마침 귀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려던 참이었습니다. 수련할 시간이 되었는데 수련하고 말씀을 청하는 것이 좋을지 여쭙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염재가 지광을 바라봤다. 기공을 수련하는 것은 지광의 가르침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지광이 태옹을 바라보다가 눈을 깜빡이더니 잠시 후에 깜짝 놀라면서 태옹에게 삼배(三拜)를 올렸다. 다들 그 모습을 보면서 ‘서로 아는 사이였나 보다’싶은 마음으로 조용히 기다렸다. 제자의 예를 마친 지광이 말했다.

“선사(禪師)께서 어쩐 일로 이렇게 수우산을 찾아주셨습니까? 필시 예사로운 일은 아닐 것으로 여겨집니다. 벌써 20여 년 전에 보타산(寶陀山)에서 뵙고는 이제 다시 뵈옵지만 법체는 여전하십니다.”

“그대는 지광이 아닌가? 강호를 떠도는 줄로 알았는데 수우산에서 뭘 하고 있는가?”

“그야 스승님의 자취를 찾아서 왔지요. 공부할 곳은 수우산만 한 것이 또 있겠습니까. 그때 말씀해 주신대로 수우산에서 큰 수확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끔 인연이 되면 찾아들곤 합니다. 하하~!”

“그렇긴 하지. 그대가 지리(地理)를 알고 싶다고 하던 세월도 꽤 흘렀으니 이제 웬만큼은 이루지 않았나? 아직도 공부하고 있는가?”

두 사람의 대화가 무르익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우창이 말했다.

“아니, 형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신 분이셨습니까?”

“그렇다네. 내게 삼생(三生)의 인연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스승님이시네. 바람처럼 구름처럼 걸림 없이 떠도시니 언제 뵐지 알 수가 없는지라 이렇게 또 문득 어딘가에서 뵙곤 한다네. 아마도 뭔가 큰 가르침을 주시려고 나타나신 것이 틀림없을 것이네.”

이렇게 말을 마친 지광이 태옹을 바라봤다. 다른 대중도 일제히 지광을 따라서 눈을 모았다. 그러자 태옹이 대중을 한 바퀴 둘러보고서 말했다.

“왜 수우산이 떠올랐나 싶어서 와 봤더니 그대들이 나를 불렀군. 지광은 어쩌다가 이렇게 답답한 서생(書生)을 만나서 고생하고 있는고? 허허허~!”

태옹은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가리켰다. 그러자 지광이 웃으며 말했다.

“그야, 선사님의 관점이지요. 함께 머물러보니 참으로 총명한 학자입니다. 선사께서 백회를 한 번 짚어주신다면 10년의 장벽이 순식간에 무너질 것입니다. 지금 그러려고 오신 것이지 않습니까?”

“오호~! 지광도 이제 제법 농담도 할 줄 아는구나. 허허허~!”

“농담일 리가 있습니까? 수우산에서 수련한 기간도 이제 백일이 다가옵니다. 이렇게 열심히 수행했으니 수우산 신령께서 선사님을 청하신 것인 줄을 알겠습니다. 자리를 법당으로 옮기겠습니다.”

“그러던가~!”

태옹이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자 지광은 대중을 모두 동굴로 안내했고, 자리를 잡자 태옹에게 알렸다. 그러자 태옹이 동굴로 들어가서 불전에 삼배하고는 조용히 정좌(靜坐)했다. 다른 대중도 따라서 정좌했다. 이제 모두 익숙해져서 입정(入定)의 시간이 순식간에 이뤄져서 삼매(三昧)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반 시진이 흘렀다. 조용하던 법당에 태옹이 일어나서는 지광의 뒤에서 두 손을 백회혈에 대고 잠시 머물렀다. 그러자 지광은 조용히 합장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창의 뒤로 가서는 또 그대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순간 우창은 머리에 태산같이 무거운 기운이 내리누르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좀 전에 지광이 한 말이 떠올라서였다.

‘선사님께서 백회를 한 번 짚어주신다면 10년의 장벽이 순식간에 무너질 것입니다.’

좌선(坐禪)의 자세로 늘 앉아서 수련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여느 때와는 사뭇 달랐다. 무겁게 내리누르던 기운이 발끝까지 한 바퀴 도는 듯한 흐름이 느껴졌다. 대주천(大周天)이었다. 그리고 대주천이 확장되어서 전신(全身)까지도 기운이 흐르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것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무겁게 느껴졌던 기운이 점점 빠르게 몸을 휘감고 돌아가는 것이 느껴지면서 눈을 감고 있는데도 앞이 대낮처럼 밝아지는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문득 눈을 뜨고 싶었지만 이러한 현상이 사라지면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다가 그대로 앉아서 기운의 흐름을 따라서 몸을 맡겼다.

잠시 후, 다시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는데 몸이 무척 가벼워진 것같은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러한 기분을 흐트러지게 하고 싶지 않았던 우창은 그대로 앉아서 몸을 거침없이 휘감고 흐르는 바람과 같은 기운을 조용히 느끼고 있었다. 태옹의 발길이 진명에게로 향하는가 싶었는데 순간에 진명이 비명을 질렀다.

“윽~!”

그러자 이내 태옹의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괜찮다. 가만있거라.”

“아니..... 이게 뭐예요?”

“숙명통(宿命通)이니라. 허허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죠?”

“네 심성이 참으로 곱구나. 천지자연의 선물이니라. 허허허~!”

“타고 난 팔자도 기구한데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깟 팔자가 뭐라고, 그것은 그림자일 뿐이니라. 가만히 있거라.”

두 사람의 대화가 멈춰지자 다시 동굴은 고요해졌다. 태옹은 이렇게 돌아가면서 백회를 통해서 자신이 줄 수가 있는 신력(神力)을 발휘해서 모든 사람이 예전보다 몇 단계의 밝은 경지를 맛볼 수가 있도록 했다. 그렇게 한 시진이 지났다. 비로소 지광이 말했다.

“출정(出定)~!”

지광의 말에 다들 서서히 몸을 풀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태옹을 향해서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그사이에 태옹은 사라지고 없었다. 우창도 어딘가에 앉아있으려니 하다가 보이지 않자 꿈을 꾼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지광에게 물었다.

“형님, 태옹 선사는 어디 가셨습니까?”

“그야 난들 알겠나? 하하~!”

“그냥 떠나신 것은 아니겠지요?”

“왜? 바람처럼 사는 인생이 걸림이 있던가?”

“그래도 여쭐 것이 많은데 그냥 가시면 안 되는데....”

우창이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말하자 지광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술시(戌時)에 보자고 하셨으니 어디 갔다 올 곳이 있으셨던가 보네. 안 오셔도 그만이지만 오신다면 그때 궁금한 것을 물어보도록 하세. 하하~!”

지광의 말을 듣고서야 안심을 한 우창이 밖으로 나와서 다시 평상에 둘러앉았다. 화련이 낮에 불전에 올렸던 과일을 내오자 현지가 깎았다. 그러자 진명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지광에게 물었다.

“정 사부님 숙명통이 뭐에요? 아까는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세상에서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했거든요.”

“그렇지 싶었네. 숙명통은 아라한(阿羅漢)이 되면 얻을 수가 있는 경지(境地)라고 해야 하겠군.”

“아라한이라면 오백나한(五百羅漢)과 같은 성자(聖者)들이잖아요? 어떻게 그들이 얻는 경지를 진명이 얻을 수가 있어요? 믿을 수가 없어요.”

“그야 진명의 힘으로는 어렵지. 다만 아라한이 마음을 먹으면 또한 가능해지는 것이기도 하지.”

“그렇다면 태옹 선사는 아라한의 경지란 말씀이세요?”

“아마도 그 언저리겠지. 원래 아래의 수준에서 높은 경지를 헤아릴 수가 없지 않겠나? 그냥 짐작만 할 따름이라네.”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염재가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한 법력(法力)을 통해서 숙명통을 깨치게 해 줄 수가 있는 것일까요?”

“난들 알겠나? 그들의 경지에는 그것도 가능한가 보군. 다만 재미있는 것은 진명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생겼으나 내게는 또 그러한 능력을 주지 않는 것을 보면 저마다의 인연이 있을 것으로 짐작만 해 본다네. 하하~!”

“정말 신기하네요. 이렇게 값진 선물을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진명이 감격해서 말하자 우창도 기뻐서 말했다.

“아니, 숙명통을 했다면 능히 삼세(三世)를 관통(貫通)할 것이 아닌가? 지금 그것을 살펴보면 될 일이겠군. 어디 무엇이 보이는지 이야기를 들려줘 봐. 무엇이 보일지 나도 무척이나 궁금하군.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궁금해서 묻자 진명이 비로소 그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참, 그렇군요. 그렇다면 숙명통을 어떻게 운용하는지를 배워야 하는데 선사께서 안 계시니 방법을 모르겠어요. 어쩌죠?”

“방법이 어디 있겠어? 집중하고 궁금한 것을 생각하면 될 일이지. 숙명통은 얻지 못했어도 방법은 알겠는데 뭘. 어디 진명과 숙명통은 무슨 인연으로 맺어진 것인지 관찰(觀察)해봐. 궁금하네.”

우창이 생각나는 대로 방법을 알려주자 진명은 좌선(坐禪)하고 입정에 들어서 자신의 인연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마치 장막이 걷어지는 듯이 눈앞이 캄캄하다가는 점차로 밝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진명이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그러자 현실은 여전히 함께 둘러앉아서 자신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자 안심하고는 다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진명의 눈에는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장면이 펼쳐졌다.

진명에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어느 마을이었고 그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것은 거대한 나무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이 그 나무였다. 그 자리에서 1천 년을 서 있는 팽나무로 살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소원을 빌고 있는 장면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신목(神木)으로 살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들의 소원을 하나하나 들으면서 이뤄지지 못할 것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늘에 빌어주고, 이뤄질 소원은 산신과 토지신에게 부탁해서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애쓰면서 보낸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의 마음과 공감하자 안타까움이 저절로 밀려서 올라왔다.

“휴~!”

잠시 앉아있던 진명이 깊은 한숨을 쉬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지광이 물었다.

“어떤가? 무슨 장면이 보이던가?”

“아니, 윤회(輪回)한다고는 들었지만, 나무도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한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진명이 뭔가를 잘못 본 것이겠죠?”

진명은 자신이 본 것이 설마 전생의 한 풍경일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지광에게 물었다. 그러자 지광이 미소를 짓고서 말했다.

“그것은 나도 생각지 못했는걸. 도대체 무엇을 봤기에 그러지? 어디 본 것에 대해서 소상하게 말을 해 줘봐. 그래야 우리가 궁금하지 않지. 하하하~!”

진명이 문득 주변을 살펴보니까 우성암의 식구들이 자기만 바라보면서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니까 자기도 이러한 상황이라면 궁금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왜들 그렇게 진명만 보고 계세요. 쑥스럽잖아요. 호호호~!”

그러자 현지가 당황스러워하는 진명에게 말했다.

“지금 진명의 경험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거잖아. 이보다 더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 어디 또 있겠어? 그러니까 어서 본 것에 대해서 하나도 빼지 말고 소상하게 말해 줘봐.”

평소에 말이 적은 현지까지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말하자 진명도 본대로 설명하고 또 그 연유에 대해서는 지광과 우창에게 들어볼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