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제35장. 우성암(牛聖庵)/ 11.새벽의 한담(閑談)

작성일
2023-01-30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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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제35장. 우성암(牛聖庵) 


11. 새벽의 한담(閑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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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추색(秋色)이 완연한 수우산의 시간이 물처럼 흘렀다. 수우산에 안거(安居)를 한 지도 어느덧 두어 달이 지났다. 그 사이에 모두 오행의 이치에서 즐거움을 만끽(滿喫)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한편으로는, 지기(地氣)의 수행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생생한 체험을 하면서 심신을 단련시켜 나갔다. 기공의 수련으로 몸이 단련되고 여섯 감각기관은 더욱 밝아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우창도 처음에는 그렇게도 힘들었던 기공 수련의 자세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갈수록 어려운 자세까지도 지광을 따라서 잘 행하게 되자 더욱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서리가 나무에 내려앉는 술월(戌月)이 되었다.

“새벽에는 제법 쌀쌀합니다. 하하~!”

새벽의 행공(行功)을 마치고 석굴에서 나오는 지광에게 우창이 건네는 말이었다. 지광도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우창을 보고는 차실(茶室)을 가리켰다. 차나 마시자는 뜻이란 것을 알고는 얼른 가서 화로(火爐)에 불을 피워서 찻물을 끓였다. 그리고는 화련 보살이 만들어 놓은 길경(桔梗)을 한 웅큼 넣고 다시 끓였다. 쌉싸름한 도라지 향이 풍겨 나오자 현지도 기도하고 나오다가 차실로 들어왔다. 세 사람이 자리를 잡자 우창이 잔에 따랐다. 그것을 보고 있던 지광이 말했다.

“요즘 아우님을 보면 기감(氣感)이 제법 강해진 것을 느끼겠는데 어떤가?”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은 반신반의(半信半疑)한다는 듯이 말했다.

“예? 그럴 리가요? 형님께서 애를 써주시는 것에 비해서 도무지 진전이 없는 것으로 느껴져서 약간은 답답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발전을 할 것인지 가르쳐 주시지요. 하하하~!”

“아닐세, 아마도 인체에서 기가 막히고 뚫린 것을 감지할 정도는 되었을 것이네. 그나저나 오행의 공부가 원래 이렇게나 재미있는 것이었나? 나야말로 자연의 이치를 오행으로 설명하지 못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느라고 오히려 고심하게 되니 말이네.”

“아하~! 그러십니까? 참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그렇게 이해가 빠르신 것은 아무래도 자연과 교감을 함께 하는 까닭일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우창의 공부에 비한다면 열 배는 빠른 속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하하~!”

“그럴지도 모르겠군. 아우님이 풀이하는 사주를 보면서 웬만한 것은 나름대로 풀이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네. 그러니 얼마나 신기하냔 말이지. 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에 법당에서 나온 화련 보살도 차실로 걸음을 옮겼다. 바로 이 시간이야말로 차담(茶談)을 나누기에 참으로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스승님들께서 담소 중이시니 옆에서 차를 따르면서 귀동냥하겠어요. 오늘은 무슨 이야기인지요?”

“화련 보살님 이리 앉으세요. 길경을 좀 끓였습니다. 향이 좋으니 기도하신 목도 보호할 겸으로 한 잔 드시지요.”

우창이 도라지 차를 권하자 보살도 말없이 미소를 짓고는 잔을 앞에 놓고 앉았다. 그러자 지광이 말했다.

“보살님은 오행 공부가 재미있으십니까? 이제 여름도 지나고 가을의 계절을 맞아서 단풍이 드는 것을 보면서 공부에 대한 결실이 생각났습니다만, 보살님의 공부는 또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지광이 이렇게 묻자 보살도 소감을 말했다.

“재미가 있기만 하겠어요? 부처님의 말씀이나 오행의 법문이나 서로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으니 이보다 복이 많은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은 정도랍니다. 산천에 홍엽(紅葉)이 물드는 것을 보면서 금생화(金生火)의 이치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요.”

보살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물었다.

“그건 무슨 이치입니까?”

“가을은 금기(金氣)가 우주에 가득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가을의 기운으로 단풍이 울긋불긋하게 물이 드니 이것이야말로 금생화의 이치로 봐서 안 될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을 오늘 새벽에 했어요. 말이 되나요?”

이렇게 말한 보살은 우창에게 확인 삼아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답했다.

“이를 말씀입니까? 멋지게 사유(思惟)하고 계십니다. 금생화의 이치가 그렇게도 아름답기에 사람들의 마음에도 설렘이 일어나서 단풍놀이를 떠나는가 싶기도 합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격려하자 보살도 기분이 좋아져서는 또 물었다.

“그렇다면 스승님께서도 금생화의 이치를 하나만 말씀해 주세요. 언제 들어도 신기하고 오묘하면서 가르침이 가득한 생극법(生剋法)은 삶의 지혜가 가득하니까요.”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제자가 스승에게 질문하는 것도 금생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창은 보살에게 생각해 보라는 의미로 문제를 던지고는 도라지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지광을 바라봤다. 지광도 우창이 던진 질문에 대해서 답을 찾느라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잠시 후에 보살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자가 생각하기에 스승과 마주 앉은 제자는 금(金)이 될 수가 있습니다. 순수함의 그 자체이기 때문이지요. 무엇이든 받아들일 솜과 같은 존재이니까요. 그런데 혼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금은 녹아야 그릇이 되는데 스스로 녹을 수는 없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스승이 뜨거운 불길로 제자를 단련시켜서 용해(溶解)되게 만들어요. 그러면 제자는 스승께서 의도한 대로 도기(道器)로 거듭나게 되지요. 이렇게 되면 비로소 금생화라고 할 수가 있을 테니 제자가 깨달아서 스승이 되는 이치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말이 되나요?”

보살의 사유가 이 정도인 줄은 우창도 몰랐던지라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그 정도로 깨달으셨습니까? 참으로 기도와 수행으로 다져진 정신세계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민첩하게 깨달으시는가 봅니다. 진심으로 놀랍습니다. 다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는 화생금(火生金)의 이치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가요? 그렇다면 화련이 잘못 이해했네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금생화(金生火)로 이와 같은 이치를 설명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해를 위해서 도움을 주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합장하는 보살을 보면서 우창이 다시 말했다.

“그야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제자는 금(金)이 맞으니까, 금이 화(火)를 신나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제자가 어떻게 하면 스승은 신날 수가 있을까요?”

“제자가 스승을 신나게 하면 금생화가 되는군요. 그렇다면 열심히 궁리하다가 기특한 질문을 잘해서 스승님을 기쁘게 할 수가 있겠어요.”

“바로 말씀하셨네요. 공부가 이 정도로 진전이 있었으니 이제 보살님의 사주를 한 번 풀이해보셔도 되겠습니다. 사주(四柱)의 간지가 어떻게 되십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그동안 한 번도 자신의 사주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 않았던 보살이 비로소 자신의 사주를 말했다. 이때 진명도 법당에서 나오다가 차실(茶室)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를 듣고는 걸음을 옮겼다. 스승님들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자 조용히 빈자리에 앉아서 귀를 기울였다. 화련이 말했다.

“화련이 아직 공부는 부족하나 자신의 팔자가 궁금하기는 했어요. 어디 오늘은 스승님의 혜안으로 명쾌하게 풀이를 받아보게 되어서 즐거워요. 팔자는 정축(丁丑), 임자(壬子), 무인(戊寅), 정사(丁巳)로 알고 있어요. 이것은 전에 역학을 공부하셨던 스님이 뽑아주셨으니 아마도 맞지 싶어요. 어떻게 풀이가 되는지 참으로 궁금하네요.”

“아, 그렇다면 이미 설명을 들으셨군요.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주를 남의 사주처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어디 보이시는 대로 풀이를 해보시지요.”

“아직은 자신이 없어요. 다음에 할 테니 이번에는 다른 도반의 풀이를 들어보고 싶어요.”

보살의 말에 우창은 진명을 바라봤다. 진명이 풀어볼 마음이 있다면 해보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진명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했다.

“좀 떨리긴 하지만 생각한 대로 말씀드려 볼 테니까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아 주세요.”

“아무렴, 어디 최선을 다해보시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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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우선 보살이 말한 사주를 적어서 앞에 놓았다. 보살이 사주를 지그시 응시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지광과 현지도 같은 마음으로 사주를 풀이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우창만 한가롭게 차를 마시면서 낙엽이 바람결에 나부끼는 바깥 풍경을 내다보고 있었다.

화련 보살의 사주를 열심히 궁리하던 진명이 비로소 풀이를 시작했다.

“진명이 해석하기로는 무토(戊土)가 자월(子月)에 태어나서 인성(印星)이 필요할 것으로 봐야 하지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시주(時柱)의 정사(丁巳)를 얻은 것은 천금(千金)의 보배라고 해야 하겠어요.”

이렇게 말을 하고는 우창을 바라봤다. 풀이를 맞게 했는지를 묻는 뜻이었다. 우창이 고개를 끄덕여서 인정해줬다. 그러자 다시 이어서 말했다.

“일주가 무인(戊寅)이니 산은 무토(戊土)이고, 숲속은 인목(寅木)이라 깊은 산에서 살아갈 운명이라고 보겠어요. 우왕~! 이렇게 해석하고 보니 뭔가 제대로 풀리는 느낌이네요. 호호호~!”

그러자 우창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그렇게 풀이하다가 임자(壬子)는 어떻게 해석하려고?”

“그야 저 멀리 동평호가 있으니까 그걸로 보면 되죠.”

“잘 나가다가 왜 엉뚱한 길로 가느라고. 하하하~!”

“아, 그런가요? 그렇지만 양쪽의 정화(丁火)는 촛불 한 쌍으로 보여요. 이렇게 풀이하니까 말이 되는데요? 임자(壬子)는 동평호가 아니라 정성으로 떠 놓고 기도를 드리는 정화수(井華水)였네요. 이렇게 해석하면 어떤가요?”

진명은 스스로 생각해봐도 동평호가 억지스럽다고 생각되었는지 정화수라고 수정했다. 이것은 그런대로 들어줄 만해서 우창도 웃으며 말했다.

“그건 동평호보다 훨씬 좋군. 하하하~!”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호호호~!”

“그렇게 생각의 흐름대로 풀이를 하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되는 거니까 마음대로 말해보면 되는 거라네.”

“정말이죠? 그런데 무토(戊土)입장에서는 앉은 자리에 편관(偏官)이 있어요. 비록 우성암에서 편안하게 지내시기는 하지만 마음은 항상 조심스럽고 힘드시네요. 부처님 전에서 생활하시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은 몰랐어요.”

진명이 보살을 보면서 말하자 보살도 미소를 짓고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다시 말을 이었다.

“남편궁(男便宮)인 일지에 갑목(甲木)의 편관이 있으니 배우자의 인연도 힘이 든다고 해석해야 하겠는데 홀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라고 해도 되겠어요. 물론 고독한 암시는 있겠으나 고독한 것이 남편으로 인해서 고통스러운 것보다는 나을 테니 말이에요.”

그러자 우창이 물었다.

“오호, 그렇다면 인중병화(寅中丙火)는?”

“그건 이미 임자(壬子)로 인해서 꺼졌잖아요? 그래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으로 봐야 하겠어요.”

“오호~! 그런가?”

우창은 진명이 너무도 자신만만하게 말을 하자 웃으며 이렇게 받았다. 그러자 진명은 느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진명이 풀이를 잘못했으면 말씀해 주셔야죠. 지금 말씀드린 것은 틀렸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라네. 틀리고 말고가 어디 있겠느냔 말이기도 하다네. 하하하~!”

“스승님께서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풀이인지 말씀해 주세요.”

“원래 『적천수(滴天髓)』에서는 무인(戊寅)을 일러서 살인상생(殺印相生)이 제대로라고 했는데 내가 혹은 그 책의 구절에 빠져서 고정관념에 갇히는 바람에 혹시라도 다른 관점을 잃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지.”

우창의 말에 진명이 잠시 생각하다가 또 물었다.

“스승님, 살인상생이란 무슨 의미인지요?”

“그것은 편관(偏官)인 인중갑목(寅中甲木)이 편인(偏印)인 인중병화(寅中丙火)를 생하여 그 불기운이 위로 치솟아서는 무토(戊土)를 생조(生助)하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데, 비록 좌우에 해자수(亥子水)가 있다고 하더라도 갑목의 갑옷을 뚫고 스며들어서 병화를 꺼트릴 방법이 없기에 안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네.”

우창의 말에 대해서 진명이 곰곰 생각하다가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과연 그게 옳겠어요. 인중병화를 꺼트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하겠네요. 그렇다면 숨어있는 귀인으로 봐야 하는 것이잖아요?”

“내 말이 이해된다면 그렇게 봐도 되겠군.”

“아하~! 그렇다면 이렇게 풀이하겠어요. 숲속의 암자에 계신 부처님을 모시고 수행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세상의 근심이 없어요. 이것은 보살님이 모시고 수행하는 부처님이지요. 그리고 시주(時柱)의 정사(丁巳)는 외부에서 스승이 찾아오시네요. 찾아갈 수도 있지만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은 정(丁)과 사(巳)의 두 스승님이라고 해야 하겠어요. 그러니까 정(丁)은 정 사부이시고, 사(巳)는 진 사부가 되겠어요.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어떨까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과 보살을 번갈아 봤다. 그러자 보살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진명이 말하는 풀이가 너무 재미있구나. 과연 그대로 적용을 시켜도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니 말이야. 참 신기하네.”

“정말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호호호~!”

“정말이잖고. 묘한 대입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으니 말이네. 내가 풀이해도 그렇게는 풀지 못할 것이니 말이야.”

보살이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다시 신이 나서 말했다.

“그런데 연월의 정축(丁丑)과 임자(壬子)의 관계는 매우 불편해 보여요. 우성암에 오시기 전까지의 나날들은 무척 힘들어서 고통이 극심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면 겨울에 태어난 무토(戊土)인데 자축(子丑)의 냉기(冷氣)로 인해서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어서 말이니까요.”

“과연~! 멋진 풀이네.”

보살이 다시 감탄하면서 말하자 진명이 더욱 신이 나서 설명을 이었다.

“특히 낭자의 시절에는 무슨 일로 그렇게나 힘이 들었을까요? 혹 금전적인 문제였을까요? 재성(財星)이 이렇게도 위협을 하고 있었으니 금전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으로 이것을 풀이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기에 대해서 보살님께서 한마디만 해 주세요.”

“정확히 맞아, 어려서는 약간의 물려받은 재물이 있었는데 부친이 사기꾼에 속아서 완전히 알거지가 된 것으로도 부족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그 바람에 정처도 없이 떠돌다가 탁발승(托鉢僧)을 만나서 우성암으로 오게 되었으니 아마도 전생부터 불연(佛緣)이 깊었던가 싶기도 하네. 그때가 대략 30세 무렵이었던가 보네.”

진명이 풀이해 놓고서도 놀라는 표정으로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보살님의 말씀으로 봐서는 ‘팔자의 도둑질은 못 한다’는 말이 맞잖아요? 아무리 그렇기로 서니 이렇게 솜씨 좋은 목수가 나무를 깎아서 짜 맞춘 듯이 아귀가 들어맞을까요? 신기해도 이렇게 신기할 수가 있나 싶어요.”

“그래서 명학(命學)이라고 하지 않는가? 때로는 맞기도 하고 또 때로는 틀리기도 한다면 명학이라고 할 것도 없지 않겠느냔 말이네. 하하하~!”

“그런데, 또 하나를 발견했어요. 보살님께서 과묵하고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네요. 호호호~!”

“그건 왜인가?”

우창이 묻자 진명이 또 신이 나서 말했다.

“식신(食神)은 시지(時支)의 사중경금(巳中庚金)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상관(傷官)은 연지(年支)의 축중신금(丑中辛金)으로 잠을 자고 있으니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잘하지 못하시지만 실은 표현할 마음도 없으신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잘 웃지도 않는 이유도 이와 유관(有關)할 것으로 보여요.”

진명의 말을 듣고서 보살이 공감한다는 듯이 말했다.

“아하~! 그런 것이었어? 내가 말을 잘하지 않는 것이야 괜히 말을 했다가 실수하게 될까 봐서 이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는 히득거리며 의미도 없는 말로 떠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도 한몫할 거야. 그렇게 일구월심(日久月深)으로 부처님의 명호(名號)나 부르면서 염불하는 것이 항상 편안했는데 진명과 같이 발랄한 낭자가 옆에 있어서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고 있다네.”

보살이 이렇게 생각한 것을 조심스럽게 말하자 진명이 다시 말했다.

“맞아요. 일지(日支)의 편관(偏官)은 항상 자기를 검열(檢閱)하는 성분으로 작용하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암자를 지키면서도 근검절약(勤儉節約)으로 살림살이를 꾸려갈 수가 있는 것으로 보여요. 사치(奢侈)와는 거리가 머니까요.”

이렇게 풀이하면서 진명도 놀랐다. 그동안 보살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사주에서도 이렇게 풀이가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렇게 두어 달의 공부를 통해서 이러한 것을 풀이할 수가 있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고, 그래서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것이기도 했다.

“이제 진명도 공부를 다 했군. 그만하면 어디를 가서도 사주를 팔아서 밥을 만들 수가 있겠으니 말이네. 하하하~!”

“어? 그런데 호랑이를 타고 계시는걸요? 산신령께서 보살펴 주시는 것으로 봐야 하겠잖아요?”

화련의 사주를 보던 진명이 불쑥 말하자 우창이 무슨 뜻인가 하고 진명을 바라봤다. 그러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앉은 자리에 호랑이를 깔고 있으니 호랑이를 탄 보살님이시잖아요. 호랑이가 지켜준다는 말씀과 왠지 연관이 있어 보여서 문득 생각이 났어요. 이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그제야 우창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는 답했다.

“오행의 이치에는 없더라도 풀이의 재미를 위해서 만들지도 못하겠나? 그렇게 만들어도 안 될 이유가 없지. 호랑이를 깔고 있어서 산에 살아도 보호받는다고 해석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느냔 말이지. 이러한 것을 임기응변이라고 한다네. 하하하~!”

진명은 우창의 설명을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배울 것이 있다는 듯이 감동하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정말 놀랐어요. 스승님의 가르침이 이렇게 알찬 것인 줄은 생각지 못했어요. 항상 오행의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웠는데 사주가 보이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요? 이렇게 까불어도 되는 것일까요?”

“원래 공부는 놀이처럼 하는 것이라네. 열심히 즐겼으니 이제는 남들을 위해서 즐겁게 베풀어 줄 수가 있지 않겠나? 이제 조짐을 풀이하는 방법만 터득하면 음양을 다 갖춘 것이라고 해도 되겠군. 이쯤에서 점괘를 써먹을 만큼의 내공이 증진되었으니 오주괘를 가르쳐도 되겠네.”

“벌써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요?”

진명은 자신의 공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할 것도 하나 없다네. 사주가 오주이니 말이지. 모두 간지의 오행으로 풀면 저절로 풀릴 텐데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하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가르쳐 주세요. 말씀은 드리지 못했으나 정말로 궁금하기는 했어요. 호호호~!”

가만히 듣고 있던 보살이 말했다.

“그래, 공부야 당연히 해야 하지만 우선 아침은 먹어야 하지 않겠어? 그만하고 조반(朝飯)을 짓도록 하잔 말이네.”

“아 참, 맞아요. 이야기에 취해서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어버렸네요. 어서 아침을 지어 먹고 오늘부터는 점괘에 대해 가르쳐 주세요. 호호~!”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밥을 짓는 동안에 지광과 우창은 밖으로 나가자, 염재와 거산은 마당에 뒹구는 낙엽을 쓸고 있었다. 저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스스로 행하니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을 보고 염재가 인사를 했다.

“스승님, 기침하셨습니까~!”

“그래 염재도 좋아 보이는구나.”

우창이 이렇게 말하고는 축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남녀 한 쌍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불공이라도 드리러 오는 것이겠거니 싶어서 염재에게 내려가 보라고 했다.

“손님이 오시는 모양인데 가서 무거운 것이나 좀 받아오려나?”

“예, 알겠습니다.”

염재와 거산이 같이 내려가서는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받아서 올라왔다. 그들은 불공을 드리러 아침 일찍 나서서 오는 길이었다. 거산이 공양물을 받아서 평상에 내려놓자 염재와 거산에게 고맙다고 하고는 법당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보살에게 말하자 보살이 내다보고는 그들을 안내하는 것을 보고 모두 아침을 먹었다.

아침 먹은 것을 치우고 오전의 공부를 준비하고 있는데 기도하러 온 두 남녀는 보살과 같이 내려와서는 우창과 지광에게 인사를 시켰다.

“우성암에서 수행 중이신 분들이시니 인사드리시지요. 오늘 어쩌면 귀한 가르침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보살이 조용히 말하지 두 사람은 간절한 표정으로 합장했다. 언뜻 봐도 부부인 것으로 보였다. 모두 두 사람에게 합장으로 인사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