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 제35장. 우성암(牛聖庵)/ 10.계곡의 불빛

작성일
2023-01-2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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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제35장. 우성암(牛聖庵) 


10. 계곡의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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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돌아가는 길은 내리막이었지만 오히려 걸음을 옮기기에는 더 조심스러워서 시간이 점점 지연되었다. 특히 진명과 현지를 배려하느라고 시간이 걸렸지만 모두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산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해가 넘어가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지자 지광이 모두 앉게 하고서 잠시 쉬도록 했다.

“정작 어두운 것은 한밤이 아니라 땅거미가 드리울 시간이 가장 어둡다네. 어제가 보름이었으니 잠시 기다리면 밝은 달이 떠오르면 훨씬 밝아질 테니 여기 앉아서 그대로 이야기나 나누면서 기다리면 되겠네.”

지광의 말에 우창도 편안하게 앉아서 저 멀리 동평호가 어둠에 잠기는 것을 보면서 수우산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데 지광이 조용히 속삭였다.

“저쪽을 보겠나? 호랑이가 배회하는구나.”

지광의 말이 나직했으나 모두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그러자 현지와 진명이 소스라쳐 놀라면서 지광을 바라봤다. 진명이 말했다.

“예? 호랑이가 배회하는 것이 보였나요? 무슨 말씀이세요?”

진명의 물음에 지광은 대답하는 대신에 산기슭의 아래쪽을 가리켰다. 저만치에서 찻잔의 크기로 보이는 노르스름한 불빛이 숲속의 나무들 사이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주의해서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는데 막상 지광이 가리키는 것을 보고서야 여느 불빛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우창도 나직이 말했다.

“말만 들었는데 과연 호랑이는 밤이 되면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것이 맞네요. 형님께서는 이러한 것도 다 알고 계셨습니까?”

“산에 살다가 보면 흔한 일이라네. 노산(嶗山)에서도 볼 수가 있었을 텐데 몰라서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지. 하하하~!”

“그랬을 수도 있겠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큰 소리로 웃으셔도 됩니까? 호랑이가 그 소리에 올라오면 어떻게 합니까?”

“아, 걱정하지 말게. 호랑이는 함부로 공격하지 않으니까 말이네. 그보다도 산에 사는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의미가 더 크다네. 놀라운 일이라고 해야 하겠지. 산중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연 실화(實話)인지 믿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 말이네.”

“예전에 듣기로 호랑이가 눈에 불을 켠다는 말은 있었습니다만, 오늘 실제로 그러한 장면을 접하고 보니 오금이 저립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은 다시 그 불빛을 자세히 살펴봤다. 이리저리 배회하는 듯한 불이 정면으로 우창을 바라보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불빛이 두 개가 아니고 하나가 보였다.”

“형님, 호랑이도 눈은 두 개일 텐데 불이 왜 둘이 아닙니까?”

“그야 눈 하나는 상했나 보군. 야생에서는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나니까 말이지. 하하하~!”

“하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불을 들고 산을 누빌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보게. 오늘은 이렇게 호랑이의 안광(眼光)을 공부하는 기회가 왔으니 말이네.”

지광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자세히 바라봤다. 처음에는 노란색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까 파르스름한 청기(靑氣)가 띤 빛으로 보였다. 흔히 보는 등불이라고 한다면 일정한 모양일 텐데 익숙하게 보던 것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이 있었다. 호랑이의 눈이 정면을 응시한다고 생각했을 적에 그 빛에서 마치 불의 덩어리가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것은 상상할 수가 없던 장면이었다. 역시 직접 대면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형님, 저 뚝뚝 떨어지는 듯한 불의 방울은 무엇입니까? 형님의 말씀이 아니었더라면 도깨비의 불로 생각했겠습니다.”

“아, 도깨비의 불도 빛이긴 한데 저렇게 걸어가듯이 움직이지 않고 푸르스름한 빛이 마치 껑충거리고 뛰듯이 보인다네.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불빛이지.”

호랑이 불빛을 처음 대하게 된 일행들이 손에 땀을 쥐고서 지광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더구나 직접 호랑이의 불빛을 보면서 듣는 이야기는 심장이 쫄깃할 정도로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달이 떠오르고 호랑이 불빛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지광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자, 이제 좀 쉬었고 달도 떠올랐으니 다시 내려가 볼까?”

지광의 말에 따라서 조심스럽게 길을 걸었다. 어둠을 익혀서인지 길이 제법 밝게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반 시진이 지났을 때쯤에 우성암의 마당에 도착했다. 암자에서는 보살이 장명등(長命燈)을 밝혀놔서 무척이나 밝았다. 일행이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서 밖으로 나와서 맞아 주었다.

“늦으셨네요. 별일 없으셨지요?”

보살의 말에 진명이 큰 소리로 말했다.

“보살님 별일이 있었어요. 호랑이 불을 봤거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무서워서 오줌을 지릴 뻔했지 뭐예요.!”

“아, 그랬구나. 산신령께서 옹호해 주시느라고 영검을 보이셨나 보네. 신기한 구경을 하셨으니 우선 저녁을 먹게 식당으로 가야지.”

보살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일행이 식당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려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저녁상을 차렸다. 모두 시장하던 차에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비록 기름진 고기는 없어도 연근이며, 우엉은 물론이고 간단하게 소금물에 절인 배추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렇게 먹고 나자 염재가 보살에게 물었다.

“보살님, 염재도 실은 호랑이 불은 처음 접했습니다. 과연 호랑이가 수우산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까?”

염재는 아직도 지광의 말이 사실인지 궁금했는데 밥을 먹고 나자 그것부터 확인해 보고 싶었던지 보살에게 물었다. 그러자 미소를 짓고는 답했다.

“맞아, 외눈의 대호(大虎)가 우성암을 지켜주고 있지.”

“아니, 외눈이라니요? 보살님께서는 보셨습니까?”

“그야 보기만 했겠어? 외출에서 돌아오다가 밤이 되면 앞에서 길을 밝혀 주기도 하는걸.”

보살의 말에 기겁한 진명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해코지하거나 잡아먹지 않고요?”

진명의 말에 보살은 무심코 답했다.

“가끔은 잡아먹혔다는 말도 듣기는 했으나 호랑이는 영물(靈物)이라서 산에 사는 사람은 해코지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정말요? 어떻게 짐승이 그런 것을 알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영물이라고 하잖아. 그냥 짐승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되기도 하지.”

보살의 말에 진명이 다시 흥미를 보이면서 물었다.

“보살님 호랑이의 이야기를 좀 해 주세요. 듣고 싶어요. 호호호~!”

“응, 눈이 내린 날 아침에 밖으로 나가보면 호랑이가 순행(巡行)한 흔적도 심심찮게 보여. 겨울에 살아보면 알 텐데.”

“우와~! 그런 것을 알면 저는 문밖에도 나가지 못할 거에요. 정말로 전설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놀라워요.”

“작년 가을에 있었던 일인데, 올라오다가 보면 왼쪽으로 굿당이 하나 보였지? 그곳에서 살던 박수무당이 있었어. 치성(致誠)을 드리러 온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바위 위에서 호랑이의 포효(咆哮)가 들렸다네. 그래서 위를 쳐다보니까 집채만 한 호랑이가 웅크리고 내려다보는 것을 목격하고는 치성을 드리던 손님이 기절했을밖에. 박수무당이 그것을 보고는 빌었다잖아.”

“아니, 호랑이에게 뭘 어떻게 빌어요?”

진명이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뭘 어떻게 빌겠어. 그냥 사람을 대하듯이 말하는 거야. ‘혹 인간이 허물이 있더라도 널리 헤아려 주소서~! 어리석어서 알고도 범하고 모르고도 범하나이다.’라고 비는 거지 별다른 것은 없어.”

“어떻게 짐승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죠? 그런다고 알아들을까요?”

“아, 바깥사람들이 보기에는 한 마리의 짐승이겠지만 우리처럼 산중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위험한 것으로부터 지켜주는 수호신(守護神)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로는 짐승이니 호랑이니 하지만 내심으로는 산신령(山神靈)의 사자(使者)로 생각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혼절한 사람을 주물러서 깨우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봤더니 그제야 말을 하더라네. 실은 정성을 들이러 오려고 했는데 전날 집에서 기르던 개가 이웃집 개와 싸우다가 죽어서 그것을 끓여 먹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부정(不淨)한 몸으로 정성을 들이러 왔으니 그 난리가 난 거였지.”

“그러니까 개고기를 먹고 산에 정성을 들이러 온 것에 대해서 호랑이가 거부한 것이란 말인가요? 고기는 이미 소화가 되었을 텐데 그것을 어떻게 알죠? 그야말로 괜히 스스로 죄책감이 아닐까요?”

보살은 진명의 논리적인 말에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 일은 흔치 않아서 나도 자세히 알아봤지. 그 박수무당이 놀랐다고 하면서 암자로 올라와서 말해줘서 알게 되었지만 말이야.”

“정말 신기하고도 무서워요. 그러니까 닭고기나 소고기는 괜찮은데 개고기만 그렇다는 말인가요? 왜, 산에 기도하러 다니는 사람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이러한 이야기까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예전에 어느 화상이 말해준 것이 있었는데, 개고기를 먹으면 몸에서 개의 냄새가 난다네. 그러면 호랑이 눈에 사람으로 보이더라도 냄새로 인해서 개로 보인다는 거야. 그래서 공격하는데 개는 호랑이가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적대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해.”

“우와~! 보살님 말씀을 듣는데 소름이 돋았어요~! 그런데 호랑이가 개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야 모르지만 아마도 사냥할 적에 방해되는 것이 사람과 개가 아니겠나 싶네. 그러니까 개는 싫지 않을까? 더구나 용맹스러운 개는 호랑이를 보고서도 달려드니까 말이야.”

“그건 일리가 있는 말씀인데요. 그렇지만 호랑이를 목격하게 되면 몸은 얼어붙어서 움직이지도 못할 거예요. 호호~!”

“그래? 그런 것에도 익숙해야 산 사람이지.”

“정말 놀라워요. 그리고 재미도 있어요. 그런데 눈이 내린 다음에 호랑이 발자국을 어떻게 알아요? 산에는 온갖 짐승이 돌아다닐 것이잖아요? 특별히 알아볼 만한 특징이 있는 건가요?”

“확연히 다르지. 가장 쉽게 알아보는 것은 흡사 손바닥 크기의 발자국이 일자(一字)로 가지런하게 찍혀있으면 틀림없이 호랑이 발자국이야. 그러한 발자국을 남길 동물은 호랑이 말고는 없으니까.”

보살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밤이 깊어져도 끊이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 우창도 궁금한 것이 생겨서 물었다.

“보살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호랑이와 산신령의 관계가 있는지요? 혹자는 호랑이를 일컬어서 산신령이라고 하는 것도 들었는데 그것은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맞아요. 그런 말도 하지요. 다만 경외심(敬畏心)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겨도 될 거예요. 혹 호랑이를 산신령의 사자(使者)라고 하는 의미는 생각해 볼 점이 많아요. 산신님께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특별히 보호받는 것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그래서 산에 사는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산신(山神)께 정성스러운 마음을 품게 된답니다.”

“아, 그렇게 된 것이었네요. 이제 이해가 됩니다. 예전에 어느 노인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라서 여쭤본 것이었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그 이야기가 궁금해진 염재가 물었다.

“스승님께서 들었다는 이야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 노인이 젊어서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징집(徵集)당해서 군대로 가서는 천신만고(千辛萬苦)를 겪으면서 싸웠는데 어려운 곳과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것을 겪으면서도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아서 복무(服務)를 마치고는 전쟁이 끝나고서야 수년이 흐른 다음에 귀가하는 길이었다더군. 집으로 가는 길에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큰 고개가 있는데 고개를 오르는 중에 이상하게도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얼굴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지. 그래서 여태 이러한 일은 없었는데 무슨 일인가 하다가 문득 고갯마루를 바라보고는 소스라쳐 놀랐다더군.”

“아니, 호랑이라도 만났습니까?”

“맞아, 황소같이 큰 호랑이가 언덕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간이 콩알만 해졌다더군. 그 순간에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것인지를 생각했지만 지금 뒤를 돌아서 뛰어서 달아난다고 해도 몇 걸음을 가지 못하고 이내 잡혀서 먹힐 것이 빤하다고 판단하고는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개를 올랐다네. 여태 전쟁터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이제는 고향의 산에서 호랑이 밥이 되는구나 싶었다더군.”

“그래도 살아남았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맞아, 그렇게 걸어서 호랑이 있었던 자리까지 갔는데도 아무런 기척이 없자 고개를 들어서 호랑이가 있던 자리를 봤더라네. 그랬더니 호랑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더군. 그래서 무사히 집에 가서 오랜만에 만난 어머님께 그 정황을 말했더니 어머니는 놀라지도 않으셨다더군.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이놈아 네가 집을 떠난 날부터 이날까지 산신님께 부디 목숨만 살아서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산신님께서 널 해칠 까닭이 있겠느냐’고 하면서 뒷마당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는 어머니가 매일 물을 떠 놓고 기도하던 장독대가 있었더라네.”

“정말 지성이면 하늘이 감동하는 것인가 봅니다.”

“그 노인의 말도 그랬어. 자신이 운이 좋아서 동료들이 죽어도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집에 가서 보니 어머니의 정성으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더라는 거야. 그래서 그날의 호랑이는 어머니의 정성으로 환영해 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하더군. 하하하~!”

“과연, 그랬을 만도 합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살님의 말씀까지도 연결해서 생각해 보니 서로 통하는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앞으로 호랑이는 일반적인 동물로 볼 것이 아니라 특별한 동물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산에서는 항상 호랑이가 지켜본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는 지광이 우창에게 말했다.

“참, 문득 생각이 났네. 사람의 팔자에 호식팔자(虎食八字)도 있다던데 그것은 사실인가?”

지광의 말에 우창이 웃으면서 답했다.

“그런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하~!”

“아니, 내가 분명히 들었어. 산중에 사는 사람은 호식살(虎食殺)이 있어야 한다던데? 그래야 호랑이가 자기의 밥으로 여겨서 보호해준다는 말까지 들었었는데 그게 아니란 말인가?”

지광의 말에 보살도 궁금한 것이었는지 말했다.

“맞아요. 그건 화련도 들어봤어요. 호식살인지는 몰라도 팔자에 백호살(白虎殺)이 있으면 호랑이에게 잡아 먹힌다는 말을 들었어요. 오늘 말이 나온 김에 그것은 무슨 뜻인지 궁금하네요.”

지광과 보살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정색하고 말했다.

“물론 말이 될 턱이 없지요. 호랑이가 없어지면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도 말고 남에게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하~!”

그러자 현지도 말했다.

“그것은 스승님께서 잘 모르실 수도 있잖아요? 호랑이가 잡아먹지 않으면 하다못해 마차에 깔리거나 개에게라도 물려서 죽는다는 말을 현지도 들었어요. 과연 의미가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에요. 조금 더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현지는 진심으로 그것이 궁금했다. 그것을 알고는 우창이 현지를 위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혹은 맞기도 하고, 또 혹은 안 맞기도 하므로 반반(半半)이라고 하겠으니 반반은 의미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즉 그러한 현상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호식살(虎食殺)과는 무관하다는 의미입니다. 미리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행여라도 선입견으로 인해서 허황한 판단을 하는 것에 대한 예방이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염재가 다시 물었다.

“잘 알겠습니다. 실제로 작용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신기루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마침 호랑이 이야기가 나온 김이니 정리 삼아서 기억해 둔다면 그것도 언젠가 궁금한 생각이 날 경우를 대비해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되니 전혀 무익하다고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자상한 가르침을 청합니다.”

“그러지. 하하하~!”

이렇게 말한 우창이 종이에 간지를 몇 개 적었다.

426 백호살

이렇게 적자 염재가 읽었다.

“갑진(甲辰), 을미(乙未), 병술(丙戌), 정축(丁丑), 무진(戊辰), 임술(壬戌), 계축(癸丑)이네요. 이러한 일곱 개의 간지는 호식살에 해당한다는 것입니까? 구조를 보면 천간(天干)에서는 기(己)·경(庚)·신(辛)을 제외하고는 하나씩 해당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무슨 연유가 있는 것입니까?”

“나도 처음엔 그 출처를 몰라서 나름대로 자료를 찾아다녔었지. 그리고 마침내 그 연원(淵源)을 알게 되었다네. 그것은 놀랍게도 육갑(六甲)과 구궁(九宮)의 결합(結合)에서 탄생한 사생아(私生兒)였다고나 할까? 하하하~!”

우창의 말을 듣던 진명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사생아라니까 더 궁금해요. 구성은 무엇인지 설명해 주세요. 그리고 어떻게 육갑과 만나게 되는지도요.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나요?”

“그래서 사생아라고 하지 않느냔 말이네. 하하하~!”

이렇게 말하면서 구궁도(九宮圖)를 그렸다.

426 구성표

“이것이 구궁도라네. 진명은 처음 접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숫자를 따라서 이동한다는 것이 구궁도의 흐름이라네. 그러니까 일(一)에 갑자(甲子)를 부여하고 순서대로 육십갑자를 넣게 되면 한 바퀴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네.”

우창의 말을 듣고 이번에는 염재가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구궁도에 대해서는 예전에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일백(一白), 이흑(二黑), 삼벽(三碧), 사록(四綠), 오황(五黃), 육백(六白), 칠적(七赤), 팔백(八白), 구자(九紫)의 순서로 흘러가는 것이고, 중궁(中宮)의 오황(五黃)은 특별히 오황살(五黃殺)이라고 해서 그 자리에 해당하는 사람의 운명이 흉하다고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맞는지요?”

“염재가 정확히 알고 있구나. 매년 신수(身數)를 보러 가면 구궁도를 운용하는 술사(術士)는 중궁(中宮)에 해당하는 사람의 운은 최흉(最凶)이라고 해서 죽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나쁘게 판단한다더군.”

우창의 말을 듣고서 잠시 생각에 잠기던 염재가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아하~! 앞에서 말씀하셨던 일곱 간지(干支)가 모두 중궁(中宮)에 해당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갑자(甲子)부터 따져서 일갑자(一甲子), 이을축(二乙丑), 삼병인(三丙寅), 사정묘(四丁卯), 오무진(五戊辰)이 되는데 무진(戊辰)이 백호살에 딱 들어맞는 것을 보니까 나머지도 이렇게 되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그렇다네. 육갑이 왜 구궁도에 들어가는 것인지부터도 의심스러운데 그 자리에 들어간 간지의 육갑은 대흉하다고 하니 참으로 웃지 않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네. 물론 그렇더라도 실제로 백호살에 해당하는 사람이 호랑이에게 물려서 죽든 개에게 물어뜯긴다면 달리 할 말이 없긴 하겠지만 말이지.”

“그러니까 백호살에 해당하는 사람은 호랑이의 밥이 된다는 것입니까?

“항간에서는 백호살(白虎殺)의 작용이 그렇다고 한다네. 그리고 의미하는 바는 견혈광재앙사(見血光災殃死)라고도 하지 그래서 누구라도 이러한 말을 들으면 모골이 송연해질 따름이라네. 하하하~!”

“아니, 그렇다면 ‘피를 뿌리고 재앙을 당하여 죽는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두렵지 않을 사람이 없겠습니다. 과연 호랑이에게 물러서 호랑이 밥이 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것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는데 그건 스승님께서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네요. 이러한 것을 배워서 적용한다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두려움에 떨겠습니다.”

“특히 일주(日柱)가 이와 같이 백호살의 구조로 되어 있다면 더욱 무섭다고 하니까 적어도 60분의 7에 해당하는 사람은 피를 뿌리고 죽는 고통을 당한다는 말이 된다네.”

 

“그렇다면 스승님께서 이것에 대해서 버리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이 궁금합니다.”

“모든 이치는 오행(五行)에서 답을 구하는 것이었다네. 오행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간지의 이치는 없다고 하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어떤 논리라도 그것이 오행의 이치 안에 있으면 수용(受容)하고 그것을 벗어나 있으면 미신(迷信)으로 생각하니 간단하게 해결이 되었지.”

“아하~! 과연 그렇게 해결을 보셨군요.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갑진(甲辰)은 초원을 누비는 사자나 사슴과 같이 풀과 물을 얻어서 행복한 모습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피를 뿌리고 죽는다는 것은 사슴에게는 혹 모르겠지만 사자에게는 해당하지 않으니 논리적으로 근거를 삼기는 어렵겠습니다.”

“참으로 백호살을 오행으로 찾는다면, 병자(丙子), 을유(乙酉), 기묘(己卯)와 같은 간지여야 하지 않을까?”

“과연 그렇겠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은 명쾌(明快)하여 재론(再論)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백호살이라거나 호식살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가령 팔자에 백호살이 없는 사람이 굶은 호랑이 우리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 것이며, 백호살이 있는 사람이라도 위험한 곳에 가지 않는다면 또한 무슨 문제가 있겠느냔 말이지. 이로 미뤄서 신살(神殺)에 대해서는 다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으니 앞으로도 이러한 문제로 고민이 된다면 그것이 오행의 이치에서 어떤 답을 구할 수가 있는지만 찾으면 된다고 하는 기준을 잊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겠느냔 말이네. 하하하~!”

이렇게 말하자 현지도 의문이 풀렸다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이 이치로 봐도 틀림없겠어요. 괜한 고민을 안고 살아갈 뻔했네요. 앞으로는 절대로 오행의 생극에서 답을 찾도록 하겠어요. 오늘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받았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현지의 말에 진명도 합장하고 말했다.

“스승님의 가르침만 생각한다면 세상에 풀지 못할 문제가 없겠어요. 원진살(怨嗔殺)이든 도화살(桃花殺)이든 모두가 오행의 이치 안에서만 생각하면 된다는 말씀을 해결책으로 삼으면 된다는 말씀에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참으로 깊은 이치이고, 또 깊은 이치는 의외로 단순한 곳에 있다는 것까지도 깨달았어요. 호호호~!”

그러자 우창이 말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공부하고 그만 쉬도록 할까?”

그러자 염재도 인사를 하면서 일어났다.

“예, 편히 쉬십시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모두 고단하고 놀라웠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산중생활의 하루는 참으로 많은 일도 겪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창도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