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⑤ 새벽 산책길

작성일
2022-03-2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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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⑤ 새벽 산책길


(2022년 3월 17일)

집을 나서면 아무 곳에서나 머리만 닿으면 잠에 빠져드는 복은 제대로 타고 난 모양이다. 아마도 조상이 유목민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그래서 한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숙면은 하루의 여행에 대한 품질을 판가름한다. 잠을 설치면 하루를 망치는데 특히 여행길에서는 그 영향이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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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서 새벽에 잠이 깨면 가장 먼저 일기예보를 살피는 것이 수순이다. 오늘의 하늘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지 설렌다. 언제나처럼 「물때와 날씨」를 켰다. 곤하게 잠들어 있는 연지님 깰까 봐서 머릿등(헤드랜턴)을 켜 놓고서 검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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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는 순간 '오호~!!'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바람이 엄청나구나. 풍속이 초속 12.6m란다. 더 반가운 것은 오른쪽 위에서 [특보발효중]이 예쁘게 깜빡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내일은 배가 오지 못하겠구나. 우짜노~! 내 그럴 줄 알았지. ㅋㅋ 조심스럽게 특보발효중을 눌렀다. 행여 부정이라도 탈까봐서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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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05시 30분발로 강풍주의보가 떨어졌다. 강원도에는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진 상황이구나. 그건 내가 알 바 없는 일이고, 바다의 풍경을 봐하니 한바탕 풍랑이 몰아칠 예정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갑자기 시간 벼락을 선물로 받았구나. 느긋하게 삼각대를 챙겨서 밖으로 나섰다. 모처럼 밝아오는 새벽 풍경을 그냥 보내버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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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박사는 새벽 잠이 없어서 나가자고 하면 따라 나섰을 테지만 바람이 너무 불어서 조용히 나왔다. 날씨도 쌀쌀했다. 그래서 숙소가 내려다 보이는 진입로의 길로 올라가서 섬등반도를 내려다 보면서 자리를 잡았다. 25초로 셔터속도를 맞춰놓고서 바다를 내려다 본다. 타이머는 별도로 챙기지 않았다. 사진놀이도 십 수년을 하다가 보니까 이제는 꾀만 남아서 30분씩 소요되는 장노출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시도하지 않게 된다. 타임랩스도 한동안 즐겁게 놀았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투자대비 즐거움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니까 누가 말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된다. 새벽의 사진놀이라면 30초까지 카메라에 들어있는 성능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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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이라고 한 곳을 향해서도 삼각대를 세웠다. 바람이 어찌나 흔들어 대는지 돌풍이 삼각대를 날려버린다. 그래서 다시 세워 놓고는 손으로 흔들리지 않게 눌러야 했다. 그랬음에도 사진이 흔들린 것이 보이는구나. 그냥 새벽 바람이 이 정도로 강했다는 것으로 기록을 남겨 두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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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으로 보면 더 그럴싸 할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좀 어둡게 찍어봤다. 장노출을 하게 되면 그만큼의 처리 중.... 이라는 문자와 함께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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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의 장노출로 한 장의 사진을 찍으면 다시 30초 동안은 처리 중을 보면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한 장의 사진을 얻는데는 1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밝아오는 여명의 사진 놀이도 어김없이 시간과의 싸움이 된다. 하루의 새벽에 주어진 시간이래야 불과 30분 남짓의 시간 동안에 몇 장의 사진을 얻을 것인지는 바로 이 노출시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1/100초로 한 장의 사진을 얻는 것에 비한다면 배터리 소모와 시간의 흐름은 그 자리에서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벽의 풍경이 오래 머무를 자리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앞쪽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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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빛은 셔터를 누를 때마다 달라진다. 변화가 무쌍한 자연의 모습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오롯이 혼자만의 즐거운 시간이기도 하다. 어디에서 바라봐도 하얀 집이 압도적으로 렌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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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의 언덕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풍경의 변화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니까. 아무렴. 섬누리민박으로 내려가면 항리선착장이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백년등대로 가는 등산로구나. 그 길로 올라가 봐야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등대까지 갈 마음은 없다. 그것은 오픈카로 이동하면 되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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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괜찮다~! 저만치 허물어져 가는 빈집도 제격이다. 영화에 나옴직한 풍경이기도 하네. 그러고 보니까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을 섬등반도에서 찍었다고 하던데 언제 틈 나면 그 영화도 봐야 하겠구나. 넷플릭스에 있으려나......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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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있네! 있어~~!! 잘 되었군.

우도에 갔을 적에 《화엄경》을 촬영한 곳이라고 하는 바람에 영화도 봤는데 막상 영화를 보면 잠시 나오고 말아서 본전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말이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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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하얀 파도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 새벽에는 벌써 바다가 달라져 가고 있구나. 사람들이 폭풍전야(暴風前夜)는 알아도 풍랑전일(風浪前日)에 대해서는 바닷가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어제 호수바다를 보면서 오늘의 이러한 장면을 생각했던 것은 완전히 어려서 안면도에서 살았던 동물적 감각이 그대로 몸에 배어있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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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담아보려고 아무리 무거워도 꼭 챙기는 백사지엠(100-400GM)을 꺼내서 삼각대에 올렸다.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열심히 챙긴다. 독도에 갔을 적에 이것을 울릉도에 두고 가는 바람에 땅을 쳤다. 그 후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챙긴다. 피사체에게 다가갈 수가 없으면 그것을 당기는 수밖에 없고, 당기는데는 400mm렌즈가 효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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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이군. 좋다. 0.5초의 셔속으로 파도의 움직임을 담아봤다. 이런 경우에 파도를 얼어붙게 하려면 1/1000초 정도로 하거나 1/500초 정도면 움직이는 파도를 정지시켜서 보여주는데 지금은 정지보다는 움직임을 담고 싶어서 속도를 느슨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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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는 사방천지가 낭떠러지로 되어 있다. 겨우 가거도항이 있는 대리만 평지일 뿐이다. 다희네도 저렇게 언덕 위에 독수리 집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니 겨울에는 손님을 받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매서운 북서풍이 얼마나 몰아쳤겠느냔 말이지. 상상만으로 대략 짐작이 된다.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노애란씨가 말했다.

"올해 들어서 첫 손님들이세요."

겨울엔 추워서 손님을 안 받았는데 이제 봄이 되면서 우리가 연락을 했고, 그래서 새해의 첫 손님이 된 것이다. 그것도 의미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개시(開始)는 중요하기도 한 까닭이다. 상인들은 '마수걸이'라고 하던가? 여하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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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등반도 위에는 전망대도 보였다. 상황을 봐 가면서 돌아봐야지. 8시에 아침을 먹기로 했으니까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았구나. 그래서 더 위쪽으로 올라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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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초를 놓았더니 앞에 있던 조릿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보인다. 지난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이러한 풍경을 보면서 대략 짐작을 할 수가 있겠다. 여름이라면 바위 위쪽은 초록초록했겠지만 오히려 이렇게 삭막한 분위기가 더 좋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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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윗쪽으로 가 봤지만 빈집들이 음산하게 있어서 별로 재미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밥을 먹을 시간도 다가오기도 해서 슬금슬금 내려왔다. 낯이나 빨고 밥을 얻어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었고, 그만하면 새벽의 산책은 충분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은 대리에 집이 있어서 그곳에서도  선원들을 챙겨줘야 한단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아침밥을 해 주려고 부지런히 험한 고갯길을 넘어온 것이 고맙기도 했다. 인연이란 이렇게 쌓이는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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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란 : 아마도 내일 배가 손님들 데리러 못 오지 싶구만이라~!
낭월 : 풍랑주의보가 떨어졌습니까?
애란 : 그런가 봐요. 어쩐다요~
낭월 : 그것 참 큰일이네요.
화인 : 큰일은 무슨 큰일이에요? 싸부님은 다 예상하신 거잖아요?
낭월 : 내가 뭘 예상혀.
화인 : 오늘 비가 온다고 그렇게 말씀드려도 그냥 가보자고 하셨잖아요.
낭월 : 그야 계획을 세웠으니까 그렇지 뭘. (우물쭈물)
화인 : 누가 모를 줄 알고요. 풍랑주의보가 내릴 것을 미리 아셨으면서. 호호~!
낭월 : 아녀~~! 내가 하늘의 사정을 어떻게 안다고.

화인의 느낌이 그대로 적중했다는 듯이 웃으며 말해서 같이 웃는 수밖에 없었다. 국을 보고 애란씨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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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오늘 국이 특이하네요. 톳도 아니고....
애란 : 가사리국이에요. 
낭월 : 가사리면 우뭇가사리랑은 다른가요?
애란 : 예, 쫌 달라요. 
낭월 : 과음한 아침에 속풀이 국으로 딱입니다. 시원하네요.
애란 : 뭐든 맛있다고 하고 잘 드셔주니 참 좋아요. 호호~!
호연 : 아닙니다. 정말로 맛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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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생선을 구워서 내놨는데 그것을 보고서 또 감탄을 하는 호연이다. 오늘 아침은 이렇게 해서 또 한나절 동안 소비할 에너지를 충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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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을 들고 고기점을 발라주기만을 기다리는 화인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구나. 생선살 발라주는 언니가 제일 예쁘다나 뭐라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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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한 바퀴를 돌고 나서인지 헐출하던 차에 든든하게 먹었다. 집에서는 오전불식(午前不食)이지만 집을 벗어나면 삼시 세끼를 잘 먹어야 한다. 그래야만 일행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여행을 잘 마무리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뭘 먹었는지 몰라서 호연에게 물어 봤더니 농어와 볼락이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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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 아침을 먹골랑은 독실산이나 슬슬 올라가 보실라요?
호연 : 차로 갈 수가 있습니까?
선장 : 정상까지는 못 가고 그 언저리까지는 갈 수가 있지라.
호연 : 알겠습니다. 그럼 산에만 다녀 오는 것입니까?
선장 : 나선 김에 등대까지 둘러보고 올랍니까?
낭월 : 그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오전일과는 충분하겠습니다.
선장 : 그럼 9시에 출발하게 준비하시지요.

하늘은 흐려있어도 비는 내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배터리가 걱정되어서 집에만 들어오면 바로 충전을 시켰는데 하루의 나들이가 아니고 한나절의 외출이어서 다행이었다. 아직은 외장용 배터리를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무게가 꽤 나가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으면 구태여 챙길 필요는 없으니깐.

 

 

〈여행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