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滴天髓徵義 저자 任鐵樵 선생님에 대해서

작성일
2007-09-1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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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사전에는 등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알 수가 없다. 언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바가 없고, 오로지 적천수에 대해서 주석을 달았다는 것만으로 명리가에게만 전해지는 인물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겠다. 그러니까 생몰연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다만 적천수징의에 선생의 명조를 밝혀 놓으셨으므로 사주를 감상하도록 하자. 하기는 명리가는 그 사람의 사주만 있으면 어느 정도 상당한 부분에서 느낌이 전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時 日 月 年

壬 丙 戊 癸

辰 午 午 巳

庚 辛 壬 癸 甲 乙 丙 丁

戌 亥 子 丑 寅 卯 辰 巳




이 사주를 보면 철초님의 성품이 어떠했을는지 느낌이 온다. 물론 내용 곳곳에서도 그러한 느낌이 들지만... 일단 丙午일주의 강력한 화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번 분개하면 상당히 달아오르는 성품의 소유자였을 것으로 생각해도 크게 무리가 아니라고 보인다. 또한 午月의 丙午일주라면 더욱 대단한 성품이다. 굽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것으로 봐야 하겠다. 아울러서 月干의 식신이 있는 것으로 봐서 상당히 깊이 연구 할 수 있는 성분으로 봐야 하겠다. 비록 달아있기는 하지만 時干의 壬水가 적셔주는 것을 받으면서 열심히 파고들었을 것이며 궁리에 몰두하다 보면 밥 때가 되는지 잠을 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잊어버리고 몰두했을 것으로 보인다.

丙午日柱가 웬만하면 스스로 포기를 할만도 한데, 너무 강해서 끝장을 보려고 했을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본인의 사주에 대한 풀이를 참고해 보도록 하겠다. 적천수천미에 나온 해석이 더욱 상세하므로 그쪽을 인용한다.




“징그럽게 더운 한여름에 태어났다. 巳火는 남방의 불이니 癸水는 이미 절지에 임한 꼴이어서 무력하기 짝이 없다. 한잔의 물로써 가득 실린 짚의 수레에 붙은 불을 어찌 끈단 말인가, 더구나 癸水가 戊土와 합을 해서 化火가 되어버리는 꼴이니 그렇지 않아도 더운 사주에 더욱 불길을 보태고 있다. 時干에 있는 壬水를 도와줘야 할 癸水가 도와주기는커녕 도리어 불길을 보탬으로써 偏官을 힘들게 하는구나. 더구나 양인이 미쳐 발광을 하니 巳中의 庚金인들 어찌 水를 생조하겠는가.

壬水가 비록 辰土에 통근을 했다고는 하지만 한마디로 金의 도움도 없는 상황에서 운까지 40여 년을 木火運으로 달리고 있는 꼴이라 劫刃만 날뛰고 있으니 위로 부친의 뜻을 받들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상당하셨건만 자식이 변변치 못하였으니 어찌하랴, 그리고 그렇게 수고로이 모아놓았던 논밭과 하던 업을 전혀 지키지 못했고, 골육과 육친들이 모두 그림의 떡이더라.

반평생동안 뭔가 일을 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卯運이 되면서 壬水가 절지에 해당하니까 겁재들이 오히려 더욱 날뛰게 되어 골육에게 큰 변고가 있었고, 그 이후로 가세가 급속도로 기울어져서 재산을 탕진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명리학을 배우지 않았을 때라서 팔자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운명을 부탁하였던 바 ‘이 사주는 합관유살격(合官留殺格)이라 아주 좋은 사주를 타고나서 부귀공명이 내 맘대로 이루게 되고 출세를 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서 좋아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털끝만큼도 맞은 것이 없었다. 그러니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또 자신의 성격이 치우치고 옹졸해서 성실한 것은 좋아하고 허망한 것이라든지 아첨을 하는 것은 싫어했는데, 거기다가 오만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좋아해서 항상 어려운 지경에 처하기는 잘해도 뜻대로 되는 것은 없더라. 그래도 꿋꿋하게 살았던 것은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님의 지극하신 가르침에 의해서였다. 감히 그들의 가르침을 실추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어버리자 그때서야 비로소 命理學에 마음을 모아서 연구를 하게 되었고, 그래서 호구지책을 삼았던 것이다. 六尺(약 180cm)의 사나이 대장부로 태어나서 어찌 멀리 훗날을 도모하는 생각이 없었겠는가만, 결국은 이렇게 웃음거리가 되어버리고 말은 셈이다. 스스로 命運을 생각해 볼 적에, 운이 맞아주지 않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본다. 무슨 일을 하던지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직접 살아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더라.

결국 수레바퀴의 패인 자욱 속에 들어앉은 고기가 한 모금의 물을 그리워하듯이 그렇게 마르는 땅을 한탄하고, 시간이 촉박함을 곤궁하게 여겼지만 어쩌겠는가. 이 사주에 도움이 되지 않는 운을 타고났으니 말이다. 그냥 천명에 따르는 수밖에....”




어떨까? 벗님은 이러한 철초님의 자기 사주에 대한 해석의 기분이 느껴지시는지? 낭월이가 약간 각색을 했다. 어차피 각색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관살편에서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원문도 올릴 것이므로 그때 다시 살펴보면 느끼시겠지만, 낭월이가 결코 호들갑스럽게 부풀린 것이라고 만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주를 해석하는 것에서 알 수가 있듯이 자신으로서는 내어놓을 만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사전에 등장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원래가 그렇듯이 사전은 뭔가 일을 해야 기록 해주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까 어느 시대에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확실한 것은 유백온님 보다는 늦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적천수징의에 등장하는 500여 개의 사주를 보면 대충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청나라 중기쯤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특히 건륭황제의 사주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 후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겠다. 건륭황제는 1711년에서부터 1799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기록이 되어있다. 그렇다면 이 황제가 살았을 당시에는 감히 사주를 언급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그 후가 되겠는데, 1800년대가 될 가능성이 많겠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대략 200여년 무렵에 살았던 것으로 보면 크게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종의명(鍾義明) 선생이 조사한 바로는 1848년경이라고 하니까 낭월이의 생각이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따진다면 조선 중기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좀더 구체적으로 따져볼 힌트도 없는 것은 아니다.

건융황제가 辛卯생이다. 그리고 철초님은 癸巳생이다. 나이로 봐서는 2살 차이가 된다. 그렇다면 당시대의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건융황제가 88년을 살았다고 한다면 그렇게 늙은 나이에 이 책을 썼다는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다음 대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편안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62년 후가 되는 셈이다. 그러면 1773년경이 된다. 아마도 이 무렵에 출생을 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겠다. 그렇게 되면 지금부터 약 230년 전이 되는 셈이다. 이것은 유백온 님으로부터 따지게 되면 약 460여 년이 지난 다음이다.

이렇게 자세하게 생각을 해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으나 낭월이의 생각에는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도 이렇게 글이 나오는 것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이다. 그러니까 비록 낭월이는 잘 모르지만 혹 후학 중에서 이러한 상황을 살펴서 힌트를 얻을 것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서 언급 드려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