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기행④] 도피안사

작성일
2020-01-14 09:36
조회
77

[철원기행④] 도피안사(到彼岸寺)


(여행일: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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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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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잤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아직 세 시가 되기 전이었던 모양이다. 어제의 비가 오늘은 '눈으로 변해라 얍~!!'의 주문을 세 번 외우고 창문을 열었다. 깜깜하다.

"알삼아, 그냥 찍어봐라! 깜깜해도 괜찮다. 네 탓을 하지 않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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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룸아, 감도를 최대한 올려 봐라, 풍경이 망가져도 네 탓을 하지 않으마."

라룸은 어도비의 사진 보정용 프로그램의 이름이 라이트룸이라서 그렇게 부른다. 아래의 바닥이 어떤 색인지만 보면 된다. 만약에 바닥이 하얗다면 짐을 꾸려서 나갈 준비를 할 것이고, 깜깜하다면...... 바닥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주차된 차들은 멀뚱~하게 낭월을 바라다 본다.

"잠이나 더 주무슈~~!"

아직도 비는 멈추지 않았는데, 밤새 내리고 있는 비에 젖은 창의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무리 백설의 필터를 대고 보려고 해도 볼 방법이 없다. 음.... 더 자라는 뜻이구나... 그리고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푹~ 자고 났더니 날도 샜다. 서둘러서 카메라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주변 건물보다 높은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동송읍의 주변 풍경이라도 담아 보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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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바라보니 뒷산(이든 앞산이든 분별이 되진 않지만)의 꼭데기에는 하얀 눈이 쌓였다. 그래서 눈은 본 것으로 퉁쳐야 할 모양이다. 철원에서 눈을 봤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깐. 조용히 속으로 되뇌었다. '눈 봤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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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로 봐서 금학산이 틀림없구나. 금학이면 金鶴山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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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에서도 금학산이구나. 그리고 그 앞은 송내면(松內面)이었으니 지금의 동송읍(東松邑)의 송(松)이 여기에서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겠다. 단학산도 아니고, 두루미산도 아니고 황금학이라니.... 아마도 바위가 학을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미 그 시절에도 두루미가 날아와서 겨울을 났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금학산정상비[인터넷자료]


해발 947m인 것을 보면 꽤 높은 산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겠다. 그래서 정상에만 백설을 뒤집어 쓰고 있으니 오늘만 백두산(白頭山)이라고 하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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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쪽을 내려다 본다. 동송버스터미널이다. 교통으로 말한다면 최고의 요지에 자리잡은 것은 모두가 모텔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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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바깥 풍경을 보러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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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을 편안하게 보낸 탄토모텔도 비에 젖은 모습 그대로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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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토모텔 앞에는 철원의 택시주차장이 있다는 것을 어제 봤다. 그래서 오늘 눈이 수북하게 쌓여도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다. 눈길에 취약한 우리 차는 주차해 두고 택시를 이용해서 두루미랑 놀면 되겠다는 계획을 세워뒀기 때문이다. 아직도 새벽까지 내린 비로 바닥이 번들거리는 것을 보면서 그 계획은 쓸모가 없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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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터미널을 가봐야지. 새벽의 동송터미널은 어떤 풍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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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로 향하는 버스가 늦게 도착한 승객을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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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떠나는 병사들이 활보로 터미널로 향하고 있는 모습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마치 동안거 90일을 마치고 송림을 빠져나가는 선방 납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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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은 여행객에게 항상 설렘을 선물하는 곳이다. 예전에 바랑하나가 전 재산이었던 시절에도 역이나 터미널에 서게 되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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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로 붙여놓은 안내문을 본다. 이렇게 된 터미널도 참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그만큼 철원의 동송터미널의 여정은 변수가 많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기도 하다. 젊은 장병들의 고향집을 향한 그 마음이 읽혀질 것만 같은 새벽의 터미널 풍경이다. 이런 것을 놓치면 사진기행이 아니지.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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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최전방의 작은 읍내 터미널에서 행선지를 보면 다분히 대도시적이다. 그야말로 북방으로 가는 차편이 없을 뿐이지, 동남서방으로는 많은 노선이 마련되어 있음을 본다. 앞으로 언젠가는 북방으로 가는 노선표도 임시로나마 한 장 붙어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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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벗님도 여행을 낭월만큼만 좋아하신다면 이러한 행선지가 쓰인 운행표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으로 믿는다. 생각만으로도 뭉클해지는 것은 또 뭘까? 이 길이 열린다면 최대한 빠른 일정으로 잡고서 출발을 할 것이다. 우물쭈물 하다가 또 닫히면 안 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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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을 나서는 즐거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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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이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뵈러 가는 길이라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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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손에 손에는 선물 보따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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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건너편에는 동송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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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시장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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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제 관찰소에서 받은 상품권도 써먹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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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시장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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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매들 아침 찬꺼리 사러 나오라고 준비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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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국방계획에 점점 시름이 깊어가고 있는 동송읍의 군사마을 상인들의 착찹한 심경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군인들의 주말을 관내에 묶어두지 않고 외부로 나가서 놀다 와도 된다고 하는 것으로 인해서 복작이던 군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고 울상을 짓는다는 뉴스를 본 것도 같다. 살아간다는 것은 저마다 이해타산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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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만 보고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에게는 그것도 청천벽력일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 곳만 바라보고 살면 위험하다는 말을 '계란은 나눠서 담아라'던가? 낭월은 '진시황의 송곳'이 떠오른다. 어차피 치우친 것은 음양의 이치에서도 벗어나 있음을......

아, '진시황의 송곳'이란 말을 못들어 본 벗님도 계시지 싶군. 만리장성을 쌓는데 큰 돌을 실어나르려니까 수레도 특별히 크게 만들었더란다. 돌을 싣고 내리다 보니 자연 수레도 쉽게 망가졌겠지. 그래서 수레를 수리 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송곳은 쓸 수가 없는지라 특별히 큰 송곳을 만들었더란다. 그리고..... 장성을 다 쌓고 나니까 수레도 쓸모가 없어졌고, 자연히 그 수레를 위한 송곳도 쓸모가 없더라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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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군장, 저기도 군장... 군인들만이 고객일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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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이 최전방 마을의 풍경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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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동송읍의 특별한 풍경들을 둘러 보고서야 아침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새벽 구경을 잘 했으니 또 뭔가를 먹고 다음 일정으로 진행해야지. 연지님이 어제 저녁에 컵라면 두 개를 마트에서 사는 것으로 봐서 오늘 아침을 그걸로 해결할 요량이라는 생각은 했을테지만 기왕 나왔으니 그것 말고 먹을만 한 것이 있나 싶어서 두리번 두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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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본 광고판이다. 요즘도 이러한 광고판이 있었구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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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에서 하얀 김을 뿜뿜하고 있는 만두 가게를 만났다. 옳지 오늘 아침은 이댁과 인연을 지어야 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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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두 개와 어묵을 주문했다. 아지매가 기다리는 동안 입맛 다시라고 꽈배기 한조각을 접시에 담아다 준다. 인정이다. 우물거리고 있는 사이에 준비가 완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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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너무 많이 산 모양이다. 배가 고팠던가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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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절을 바삐 돌아다니려면 든든히 먹어야 한다. 그래서 국물 한 번 마시고, 만두 하나 먹으면서 아침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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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님이 보란다. 젓가락 주머니에 써놓은 문구들.... 옛날 창기국민학교 시절에 선생님이 삐라를 주우면 학교로 가져오라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주워다 주고는 연필을 보상받았던 기억도 있다. 안면도는 항상 그런 곳이었지.... 추억과 함께 만두를 먹었다. 그리고는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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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오늘은 어디로 가? 어제 갔던 곳?
낭월 : 아니, 눈이 왔으면 갈텐데 눈이 없으니 절부터 가보자.
연지 : 방향이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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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군사시설을 지나치고.... 그렇게 잠시 간다. 어디로 움직이든 만나게 된다. 도처에 설치가 되어있다는 뜻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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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우회전~!
연지 : 도피안사?
낭월 : 그래.
연지 : 절 이름이 특이하네?
낭월 : 그렇지? 네 글자로 된 이름도 흔치 않으니깐.
연지 : 도피한다는 건가?
낭월 : 엉? 도피? 도피하면 편안한 곳?
연지 : 그니깐 절 이름이 이상하다잖어~!
낭월 : 정말 그러네. 이상한 절 이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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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산 도피안사(花開山到彼岸寺)」

일부러 오지 않고는 만나기 어려운 절이다. 지나다가 들어가보기는 더더욱 어려운 곳에 있는 절이다. 그나마도 군인들이 관리하다가 겨우 조계종에 되돌려 줬던 절이기도 하기에 특이한 환경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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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송에서는 금방이다. 10분도 걸리지 않았지 싶다. 그러니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잖은가 말이다. 여기에는 볼만한 문화재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단 사찰에 가면 제일 먼저 그 절의 이력서를 살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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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안사 안내도부터 살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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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절이군. 좌청룡이 휘감은 폼이 자못 당당하다. 뭔가 터를 볼 줄 아는 사람이 잡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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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 말사로구나. 하긴 행정구역이 강원도이니 그럴만도 하겠군. 신라 때에 도선국사가 터를 잡았다고? 어쩐지~~ 좌청롱에서 그런 티가 난다 했다. 그래도 얼치기로나마 현공풍수를 공부한 낭월이 아니던가 말이지. 흠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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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어스는 이런 때에 활용해 보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입구를 단단히 여미고 있는 터가 드러난다. 그러니까 이곳은 수행처라는 이야기로군. 영주 부석사와 같이 입이 벌어진 터와는 다르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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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특이한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전쟁과 연관된 역사의 한 조각을 차지하고 있었구나... 치열했던 당시의 풍경을 잠시 그려본다. 아무리 상상을 한다고 해도 실제상황과는 거리가 많아도 너무 많을 것이다. 어찌 그 절박하고 처절했던 상황을 떠올릴 수가 있으랴~ 겪어 보지 않은 것은 아무리 치밀하게 상상을 한다고 해도 실제가 될 수가 없음을.... 그래서 작가의 펜에서 글이 나오는 것도 자신이 겪어 봤는지, 들어 봤는지, 상상만 해 봤는지에 따라서 그 힘의 경중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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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천왕문(天王門)인가? 현판이 안 붙어 있네....? 많이 바빴던가 보다. 웬만하면 현판 하나 붙여놓을 일이지.... 낭월의 수고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쓱쓱싹싹~~ 얼렁뚱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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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냥 아쉬운대로 (손바닥을 툭툭~!)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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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님 수고 많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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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은 사대천왕이다. 그리고 사방천왕이기도 하다. 동남서북을 지키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혹시 한 발 더 들어가보고 싶은 벗님을 위해서 간단히 이름이라도 알려드린다.

동방 : 이름은 지국천왕(持國天王), 장검을 들었다.
서방 : 이름은 광목천왕(廣目天王), 당과 탑을 들었다.
남방 : 이름은 증장천왕(增長天王), 용과 여의주를 들었다.
북방 : 이름은 다문천왕(多聞天王), 비파를 들었다.


행여 벗님이 가족들과 사찰에 놀러 갈 일이라도 있을 때라면 이렇게 기억해 뒀다가 약간은 아는 체를 해도 크게 망신을 당하지 않을 만큼의 정보는 되지 싶다. 더 자세한 것은 지식백과가 다 알려 줄 것이니 생략하는 것으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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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앞에 또 하나의 문이 있네? 천왕문 다음에 있는 문이라면 불이문(不二門)일 텐데... 역시 편액이 없다. 내용물도 없다. 불이문이 맞기는 한 모양인데.... 왼쪽의 연못도 겨울을 나느라고 조용하다. 여름에 예쁜 연꽃들로 장식했을 풍경은 저절로 떠오른다. 연꽃을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척 보면 온갖 연꽃들의 풍경이 마구마구 되살아 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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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붙인) 불이문을 통과하니 계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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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대웅전, 그런데 대웅전은 직행이 아니고 우회전이구나. 그 앞은 수각이 가로막고 있다. 봐하니 이것도 풍수의 비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하필이면 그 앞에 물을 뒀다는 것은 이 터에는 물이 필요했다는 것인가? 그래서 없는 것을 갖추느라고 앞에 물을 뒀던 모양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배치했을 이유가 딱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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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그냥 생각없이 이렇게 했다면 그것도 우연풍수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맑은 물이 철철 넘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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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마당에는 빈약해 보이는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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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 보물이라고?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뜻인가 싶다.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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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이라고 하니까 '그런가보다...'할 따름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보물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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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뭐고?
연지 : 부처님 전에 불을 켜고 싶어서 하나 샀어.
낭월 : 얼마고?
연지 : 만원.
낭월 : 그래 잘 했다. 1주일은 밝혀 주겠구나.

기도를 해 보면 대체로 일주일 정도 타는 양초이다. 그래서 7일 기도를 하면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하는 불이기도 하다. 문득 촛불을 켜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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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앞에 소원초를 켤 수가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 꽂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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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원을 적었나... 했더니 가족건강이란다. 그래 잘 했다. 부자를 바라지 않고 가족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기만을 바라는 소박한 마음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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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을 껴.... 산이든 물이든 가리지 않고 길동무가 되어주는 그야말로 '도반(道伴)'이다. 법당에 들어가서 기도하라고 하고는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마침 법당에서는 스님이 기도를 하고 있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왔기 때문에 조용히 기도하는데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서 부산을 피우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끝나면 들어가서 참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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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지붕의 귀퉁이가 깨졌구나. 문득 낙산사 석탑이 떠오른다. 전쟁을 겪느라고 불탑도 온전하지를 못하다. 상처투성이인 채로 그 자리에 서서 묵묵히 지난했던 세월을 보여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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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안사 대웅전은 대적광전(大寂光殿)이다. 대적광전인 것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셨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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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기다려도 스님의 축원은 끝날 줄을 모른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일정에 떠밀려서 슬며시 법당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크게 방해를 하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가 있는 장면이다. 3배를 올리고는 미리 세팅한 카메라를 들고 촬영했다. 미리 세팅한 것이란, 촬영을 할 적에 셔터소리나 초점을 잡는 소리를 무음으로 조정했다는 이야기이다. 실로 알삼에게 고마운 점의 하나이기도 하다. 조용해야 할 곳에서도 남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사진을 담아주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마음이 너무나 편한 기능이다. 그래서 칭찬을 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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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샷은 반듯하게 찍는 것이 좋다. 엄숙하고 조심스러운 곳일수록 잠시 집중해서 셔터를 누르는 것이 좋다. 특히 법당 내부는 어둡다. 그래서 노출을 최저로 하기 위해서 불상만 잘 나오면 되므로 조리개를 4.5까지 열었다. 그리고서 이소를 3200으로 조정한다. 조리개를 생각없이 조여진 채로 찍었다면 감도를 훨씬 높여야 한다는 것은  나중에 후회를 남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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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미소가 아름답다. 도피안사의 용신(用神)이기도 한 철조비로자나불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자료를 보충해서 도피안사의 이야기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을 대충 넘어갔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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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비로자나좌불상


높이 91㎝,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좌불상은 장흥 보림사 철불(국보 제117호)과 함께 9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철불이다. 다만 보림사 철불보다 몸집이 빈약하고 얼굴의 세부 윤곽이 섬약하다. 육계의 표현이 분명하지 않은 점, 계란형의 단정한 얼굴에 퍼진 은은한 미소는 생동감 대신 수도하는 스님을 대하는 듯 친근감이 있다. 가슴·손·다리의 표현에 양감이 부족하고, 양쪽 어깨를 감싼 통견의 법의는 얇게 빚은 듯한 평행의 옷주름이 넓게 파인 가슴으로 흘러내렸는데, 이러한 옷주름은 9세기 후반 불상에 나타나는 특징적 형식이다. 양손은 지권인()을 해 비로자나불상임을 나타내고 있다.



철조비로자나좌불상

철조비로자나좌불상통일신라 말 철원지방 호족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은 불상이다. 불상 뒷면에는 이 지역 향도 1,500여 명이 참여해 제작하였다는 명문이 있어 신라 하대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당시 유행하던 철로 조성했으며, 섬약하고 평판적인 양식은 9세기 후반 무렵 불상의 한 형식을 정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보림사 철불처럼 조성기()도 있다. 철불 뒷면에 “1,500명의 향도()가 결연()하여 조성했다”는 기록과 함께 새겨진 100여 자의 명문 가운데 ‘’(함통 6년 기유 정월)이라는 문구가 있어 865년(경문왕 5)에 이 불상이 탄생했음을 알게 한다. 858년에 조성된 보림사 철불과 함께 신라 하대의 새로운 양식을 대표하는 불상이 된 것이다.


신라 말기의 철불 조성은 수도 경주를 벗어나 전남지방을 비롯한 변방으로 확산돼나갔다. 도피안사 철불도 북으로 치닫는 강원도 철원지방에서 조성되어 주목을 끈다. 더구나 향도 1,500명은 멱거사()를 비롯한 호족과 일반 농민들까지 포함되는 수였을 것이므로 새롭게 변한 신앙형태를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9세기에 대두한 지방호족과 그들을 깊이 이해하고 상호 존재를 인정하던 선종사상의 유연함은 당시 사회제도를 뒤엎는 파격이 전제돼 있었다. 그리하여 선사상은 호족들의 감정과 염원을 충족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문화의 흐름은 그렇게 중앙귀족에서 지방호족으로 전이되었다. 이때 그들의 손으로 조성된 철불은 곧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새로운 변혁의 의지를 키우던 호족들의 이상형이면서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시대에 따라, 만든 이의 심성에 따라 불상의 이미지가 다르게 표현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도피안사 철불은 권위도 위엄도 없이 섬약하고 평이하지만 친근한 민간인의 인상을 풍기면서 당당하고 씩씩하며 약간은 도전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불상의 광배는 당초부터 없었는지 알 수 없으나, 대좌는 수미단에 감춰져 거의 보이지 않는다. 활짝 핀 대좌의 연꽃 끝부분만 수미단 위로 간신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매우 공력을 들여 조성한 대좌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따름이다. 일부러 수미단을 뚫어 대좌를 내려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상중하대로 이뤄진 8각 연화대좌는 철불과 함께 신라 하대의 대표적 대좌로 손꼽히고 있으나 불상과 대좌가 조화를 이룬 완결체를 볼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게다가 철불에 금분을 입혀 본래의 맛이 가신 것도 아쉬운 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피안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9 - 경기북부와 북한강, 초판 1997., 13쇄 2012., 한국문화유산답사회, 김효형, 김희균, 김성철, 유홍준, 문현숙, 정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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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자료를 첨부해 놓으면 되지 싶다. 가슴부위를 가로지르는 선은 거푸집을 만들면서 생긴 틈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 흔적을 지울 사이도 없이 모셨을 만큼 당시의 상황이 바빴거나 수정을 할 수가 없는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해 본다.

그런데 설명에는 금분을 입혔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답사단이 방문했을 적에는 그랬던 모양이다. 현재의 불상은 금분이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다. 그러면 자료를 찾아봐야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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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 모습을 말하는 모양이구나. 과연 광채가 나는 것이 개금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의 불상은 다시 복원을 했다는 말인 모양이다. 아무래도 오랜 세월을 견딘 철조불상이라서 부식도 염려가 되는 상황이라서 어떻게든 보존을 위한 노력은 필요한데 금을 사용한 것이 오히려 격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위의 저 글을 쓴 분들의 주장에 의해서 현재의 불상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도피안사[인터넷자료]


 설명에서 좌대가 나와서 다시 자료를 찾아서 확인해 본다. 이렇게 되어있는 것을 탁자로 가려놨다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아마도 금분을 발랐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연화대까지 노출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은 식별이 가장 쉬운 불상이기도 하다. 손의 모양이 특이한 까닭이다. 불교에는 부처가 세 분이 있다. 대체로 셋으로 이뤄진 것이 많기는 하다 불교의 세 보물은 삼보(三寶)라고 해서 부처와 경과 스님들이라고 하듯이, 불상도 셋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지식백과의 설명을 의지하는 것이 낭월의 어줍잖은 기억력에 의지하는 것보다 정확하지 싶어서 다시 신세를 진다. 검색하기도 귀찮아 하는 게으른 벗님을 위해서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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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모든 부처님의 진신(: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인 법신불().



내용


이 부처님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이다. 범어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음역하여 비로자나라고 한다.


법신은 빛깔이나 형상이 없는 우주의 본체인 진여실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부처를 신()이라고 하였을망정 평범한 색신()이나 생신()이 아니며, 갖가지 몸이 이것을 근거로 나오게 되는 원천적인 몸을 뜻한다.


이 부처님을 형상화시킬 때는 천엽연화()의 단상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가볍게 들고 있다. 불상의 화대() 주위에 피어 있는 1,000개의 꽃잎 하나하나가 100억의 국토를 표현한 것으로, 이 부처님이 있는 세계의 공덕무량함과 광대장엄함은 헤아릴 길이 없음을 조형화한다.


또, 큰 연화로 이루어져 있는 이 세계 가운데에는 우주의 만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하여 흔히 연화장세계()라고 한다.


이 연화장세계의 교주는 곧 삼천대천세계의 교주이며, 우주 전체를 총괄하는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는 비로자나불이 허공과 같이 끝없이 크고 넓어 어느 곳에서나 두루 가득 차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경전상으로 볼 때 비로자나불은 ≪화엄경 ≫의 교주이다. 석가모니불을 응신(:세상에 나타나는 모습)으로 삼고 있는 비로자나불은 때와 장소 및 사람 등에 따라 가변적으로 그 모습을 나타낸다.


미혹에 결박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심으로 생각하고 맑은 믿음으로 의심하지 않으면 어디에서든지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즉, 중생이 진심으로 기도하고 간절히 희구하는 바에 따라 그들의 생각이나 행위 경계에 따라 때를 놓치지 않고 때를 기다리지 않고, 어느 곳, 어느 때나 알맞게 행동하고 설법하며, 여러 가지 상이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로자나불은 항상 여러 가지 몸, 여러 가지 명호, 여러 가지 삶의 방편을 나타내어 잠시도 쉬지 않고 진리를 설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엄경≫ 안에서의 비로자나불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석가모니불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자마자 비로자나불과 일체를 이루게 되며, 그 깨달음의 세계를, 보현보살()을 비롯한 수많은 보살들에게 비로자나불의 무량한 광명에 의지하여 설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비로자나불에 의해서 정화되고 장엄되어 있는 세계는 특별한 부처님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를 의미한다는 큰 특징을 갖는다.


이 세계 속에 있는 우리가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에게 예배하고 귀의 순종함으로써, 부처님의 지혜 속에서 현실계의 상황을 스스로의 눈에도 비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로자나불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보살행()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이는 형체가 없는 비로자나불이 보살들의 사회적 실천에 의해서 형체 있는 것으로 화현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며, 최고의 깨달음으로 향하는 보살행이, 깨달음 그 자체인 비로자나불에게로 돌아가는 길인 것이다.


우리 나라 사원에서 이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을 대적광전(殿) 또는 대광명전(殿)이라고 한다. 이러한 전각의 명칭이 붙여질 경우에도 보통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게 된다.


또 비로전(殿) 또는 화엄전(殿)이라고 할 때에는 보통 비로자나불만을 봉안하는 것을 상례로 삼고 있다. 법당 안의 비로자나불상은 보통 지권인()을 하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그러나 고려 말기부터는 이 지권인이 변형되어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 모습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이 비로자나불상 뒤에는 비로자나 후불탱화가 봉안되는데, 이곳에는 보통 화엄경의 설법 장면이 많이 묘사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로자나불 [毘盧遮那佛]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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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특이한 이름인 도피안사의 도피안에 대해서도 약간의 언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벗님을 위해서.....

도피안(到彼岸)


글자의 뜻은 '저쪽 언덕에 도달하다'라는 뜻이다. 저쪽이 있으면 이쪽이 있기 마련이다. 저쪽이 피안(彼岸)이면, 이쪽은 차안(此岸)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언덕이 나온다. 언덕은 흐르는 물을 벗어나는 곳을 말한다고 보면 되겠군. 저쪽 언덕의 뜻은 고해(苦海)의 바다를 건너서 저쪽 언덕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도피안사가 휴전선의 남쪽에 있다는 것도 참 묘하다면 묘한 일이다. 왜냐하면 북쪽에서 바라보면 그야말로 남한의 도피안사야 말로 휴전선의 바다를 건너서 자유의 대한민국으로 와야 한다는 의미도 되지 않겠느냔 말이지. 그건, 남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저 언덕인 북한으로 자유롭게 넘나들 수가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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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의 왼쪽에는 또 하나의 전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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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이 화장을 하지 않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극락보전(極樂寶殿)」이다. 극락보전은 극락세계를 다스리는 아미타불을 모신 곳이다. 참배도 할 겸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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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도 철불을 모신 것은 비로자나불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이렇게 조성한 것으로 봐도 되지 싶다. 여기에 대해서도 늘어벌이자면 아미타경을 한 권 풀어놔도 되겠지만 그것까지는 참을 요량이니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으신 벗님은 찾아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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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뒤에는 옥불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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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세계의 1천 부처님인가 보다. 각자 부처님을 모실 수가 있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지정해서 자기의 부처로 인연을 맺을 수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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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과 대적광전이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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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뒤에는 삼성각으로 가는 길이 있다. 들어가 봐야지. 아직도 스님의 염불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유가 만만이었던 시간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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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모습으로 뒤쪽에 한가롭게 자리한 삼성각이다. 삼성각은 성인 세 분을 모신 전각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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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는 치성광여래불이 북두칠성의 칠원성군을 거느리고 자리잡은 모습이다. 그야말로 고대의 천신들인 셈이다. 부처가 그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이 땅의 천신들은 중심자리를 양보한 셈인가? 이 땅의 삶을 다 하고 나면 가야 할 곳이 칠성궁인데 그 자리에 부처가 차지하고 있으니 결론은 부처만 잘 믿으면 칠성궁에도 태어날 수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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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의 오른쪽에는 지신(地神)이 자리하고 있다. 절에서는 산신(山神)이라고 부른다. 칠성과 산신은 우리 조상님들이 받들어 모시던 신앙이고 우주였다. 하늘과 땅의 사상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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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른쪽에는 뛰어난 인간을 대표해서 나반존자가 자리하고 있다. 흔히 독성(獨聖)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삼성각(三聖閣)은 천지인을 각각 대표하는 세 분의 성인을 모셔놓은 곳이라고 해도 되겠다.

天 : 북두칠성 이십팔수를 대표하여 칠성님
地 : 땅을 대표하여 산을 지키는 산신님
人 : 이 땅에서 수행하는 사람을 대표하여 나반존자님

이렇게 정리를 하면 되지 싶다. 도피안사의 기본적인 구조도 여느 사찰과 다름없이 공식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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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대웅전 벽화로 그려놓은 곽암화상의 십우도, 혹은 심우도(尋牛圖)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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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우(尋牛) :소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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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견적(見跡) :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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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견우(見牛) : 소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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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득우(得牛) : 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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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목우(牧牛) : 소가 자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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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우귀가(騎牛歸家) : 소를 타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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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망우재인(忘牛在人) : 소를 잊고 사람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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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인우구망(人牛俱忘) : 사람도 소도 모두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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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반본환원(返本還源) : 근원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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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입전수수(入廛垂手) : (교화하러) 시장으로 들어간다.

마음을 일으켜서 도를 깨닫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서 길잡이를 한다는 이야기를 열 가지의 게송으로 노래한 곽암화상의 시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냥 절에 친구들과 갔을 적에 이 정도만 알아둬도 면무식은 될 것으로 봐서 언급해 봤거니와 더 재미있는 맛을 찾으실 벗님은 제목을 검색해 보면 또 푸짐한 선물보따리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여운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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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한 장은 한 가족의 타임캡슐이다. 나중에 전각을 지을 적에 이 기와는 그대로 지붕으로 올라갈 것이고, 그 공덕으로 가족이 모두 화목할 것이니 또한 작은 인연이라고 보면 되지 싶다.

오늘의 도피안사는 이렇게 둘러보고 다음 목적지로 서둘러서 떠날 요량이다. 기도하는 화상이 하도 착실해서 어찌나 꼼꼼하게 가족들을 읽어 주시던지.... 그 진심으로 기도에 동참하신 가족들이 모두 행복한 나날을 누리지 싶은 신뢰감이 생겨서 대웅전 밖에서 조용히 합장했다.

염불은 떠날 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