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기행③] 철새관찰소

작성일
2020-01-12 16:29
조회
93

[철원기행③] 철새 관찰소


(여행일: 20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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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록 비가 쏟아지고 있지만
내일은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천에서
고고한 학들이 날아다니는 그림을 보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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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토모텔에서 30여분 쉬었다가는 빗속을 뚫고 나섰다. 오늘은 장소를 선보는 느낌으로 가볍게 위치만 확인하자는 생각이었다. 이정표가 자못 전방스럽다. 그래서 낯설다. 다른 나라에 여행을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분명히 대한민국이다.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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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의 구조물을 봐하니 북한에서 탱크라도 내려올 듯한 으스스한 느낌조차 엉켜든다. 날씨와 군사시설이 잘도 어울리면서 국방색의 청록이 그 분위기를 더욱 차갑게 만드는 가운데를 뚫고 계속 움직여야 한다. '설마 오늘은 그 날이 아니겠지...?' 이런 근거없는, 그러나 순간적으로 요즘 열 받은 김정은의 표정이 겹치면서 미묘한 두려움이 심장 주위를 살며시 감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의 휴전선 정황에서 나오는 통계치만을 믿기로 했다. 여긴 철원의 최전방이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은 동송읍을 벗어나면서 이미 물씬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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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이름도, 금강산로에 두루미로다. 정연리로 가면 금강산으로 갈 수가 있다는 이야기로군. 지금은 금강산으로 갈 때가 아니고, 두루미를 보러 가야 하니까 방향은 당연히 두루미로를 택해야 한다. 외길이다. 그런데 이길리로 잡은 네비는 계속 앞으로 가란다. 그래서 직진을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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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보호망을 봐라. 안에는 지뢰가 매설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다. 역삼각형의 표식은 매우 심각한 경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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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시는 이미 익숙하다. 이미 구면이라는 이야기이다. 어디에서 봤는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니까 2018년 가을에 백령도에서 만난 표식이다. 백령도에서는 완전히 빨간 색이었는데 여기는 테두리만 빨갛다. 어떻든지 간에 감히 저 표시를 보고서도 안으로 들어갈 왕배짱은 낭월에게 없어서 사진만 찍고 얼른 뛰어나왔던 기억이 조금 전의 일처럼 생생하다. 그리고 다시 철원에서 지뢰 이야기를 만났다. 느낌이 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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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어? 못가게 하는 모양인데?
낭월 : 그럴리가.... 두루미 보러 간다고 하면 되겠지.
연지 : 어떡해? 그냥 돌려야 하는 거 아녀?
낭월 : 뭔 말여! 들이밀어 봐. 설마 총이야 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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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출입통제」

이딴 문구를 보면 지은 죄가 없어도 괜히 쫄린다. 민간인(民間人)이 무슨 뜻인지는 안다. 군경(軍警)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는 것. 더구나 요즘의 사태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인해서 최전방은 특급 경계령이 내려있는 상황이기도 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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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총을 든 군인들이 길을 막아 선다. 아~~ 불길한 조짐인가? 분명히 '이길리'로 가면 두루미를 볼 수가 있다고 하는 정보를 확실하게, 틀림없이 찾아보고 확인도 해 보고 출발을 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실은 이때까지만 해도 민통선이 여기였다는 것을 몰랐다. 이미 우리는 최전방의 민간인 통제구역에 다달아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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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지도나 카카오맵에서는 이런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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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앱은 그냥 가면 된다. 길이 있으니까 말이다. 464번 지방도 금강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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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지도에서만 이렇게 보여준다. '더 이상 갈 길이 없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저 노란색 길의 마지막 그 지점에 낭월과 연지님이 도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를 돌리거나, 아니면 총을 맞을 각오를 하고 그냥 내달리거나, 둘 중에 하나의 선택이 주어질 따름이다. 문득 오창석이 판문점에서 뛰던 장면이 겹친다. 아녀~~~ 그럴 일은 아니지. 고분고분, 최대한 고분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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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뭔 사진인가 하시겠다. 총을 들고 앞에 가로막고 선 군인을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왜 이모양이냐고? 그걸 몰라서 물으시는 건 아니겠지? 무서워서이다. 카메라를 들이댔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가슴에 대고서 셔터를 눌렀는데 이모양의 사진이 담겼다. 그래도 군인인 것은 알아보지 싶다. '그냥 지울까....' 하다가 이것도 사진이다 싶어서 살려 둔다. 무슨 사진? '심상사진(心象寫眞)'이다. 마음의 모습을 찍은 것이라고 우겨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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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부분을 확대하니 대략 윤곽이 보이기는 한다. 뉘집 귀한 아드님이 최전방에 와서 고생이 많다. 비가 오는데 우산도 없이 귀찮은 낭월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팔자라니.... ㅋㅋ

낭월 : 수고 하십니다. 두루미를 보러 가는 길입니다만...
초병 : 가실 수 없습니다.
낭월 : 이길로 가면 두루미가 있는 곳을 만난다고 하던데....?
초병 : 철원 주민이십니까?
낭월 : 아닙니다. 여행객입니다.
초병 : 그러시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낭월 : 그러면 부근에 두루미를 볼 수 있는 곳은 아십니까?
초병 : 두루미 말입니까?
낭월 : 예, 두루미 보는 것이 이길리에 있다고 해서....
초병 : 아, 그것은 (오른쪽 뒤를 가리키며)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낭월 : 고맙습니다. 차를 돌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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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총을 든 자세까지 완전히 담았어야 하는데... 방법은 있다. 블랙박스의 영상에서 추출하면 된다. 그래서 귀가한 다음에 블랙박스의 사진을 찾았다. 그랬더니 하루 것만 저장이 되었다. 나머지는 모두 지워지고 없으니 행여나 싶었던 기대감도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에 혹시라도 블랙박스의 사진이라도 쓰려면 당일로 바로 영상을 꺼내놔야 한다는 것을 하나 배우긴 했다. 그래도 기대를 했었는데 아쉽게 되었군....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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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알삼(R3)이야~!!'

사진을 잘라내도 잘도 보여주니 말이지. 이렇게 해서 민통선 제1초소까지 왔었다는 흔적을 남기고서 차는 다시 방향을 바꿨다. 도로 가로막대를 들어주면서 어서 지나가란다. 가고 말고 낭월도 여기에서 단 1초도 허비할 시간이 없단 말이다. 시간이 이미 3시가 넘었는데... 하늘을 봐하니 오늘은 더 빨리 어둠이 찾아 올 모양이다. 그래서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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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차를 되돌려서 1km도 가지 않아서 바로 두루미를 볼 수가 있는 곳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여기를 목표로 삼고 출발을 했던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민통선 검문소까지 갔었던 셈이다. 물론 그것은 잘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명색이 철원까지 와서 민통선의 검문소는 밟아봐야지. 이런 것이 여행인 거지 안 그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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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철새도래지 관찰소」

초병이 알려 준 그 곳으로 가는 초입이다. '천연기념물 제245호'란다. 천연기념물은 동식물만 말하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지역에도 천연기념물이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까 '태안의 신두리 해안사구'는 천연기념물 제431호였구나. 신두리는 지형의 특수한 것으로 인해서 천연기념물이라고 할만 하지만, 두루미가 날아온다는 이유로 천연기념물이라는 것이 조금은 생소했다. 그러니까 두루미가 오지 않는 여름철에는 천연기념물이 아니겠네? 이렇게 상황에 따른 천연기념물이 있다는 것도 하나 배웠다. 여하튼 어여 들어가 보자. 얼마나 벼르고 별러서 왔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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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건.....? 엉덩이만 보이는 것은 분명히 본 적은 없지만 눈에 익숙한 자태이다. 한자로는 학(鶴)이고, 우리말로는 두루미임이 틀림없다. 이런 행운이~~!! 설렘설렘~~~

"연지야 차 세워~!!"

행여 날아가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조바심에 조용히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창문을 내리고 안으로 흩뿌리는 빗줄기를 감수하고 미리 준비한 망원렌즈를 창밖으로 조금만 내밀고는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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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비를 맞고 있는 두루미는 이런 모습이구나. 이것이 자연이고 현실이다. 이제 이 순간부터 낭월의 사진자료에도 두루미가 추가되었다. 경험치도 한 단계 상승한다. 마치 두루미를 렌즈로 사냥이라도 한 것인냥 처음 보는 실제의 풍경 앞에서 마음은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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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공부를 한 것을 응용해서 살펴봐야지. 맨 위의 두루미는 틀림없는 단정학(丹頂鶴)이다. 그 다음에 황갈색의 머리를 한 녀석은 필시 지난 봄에 서시베리아 벌판에서 엄마의 품에서 부화된 녀석일게다. 어린 두루미는 머리와 목의 부위에 아직 검은 색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만 나온 녀석은 뭐지? 아무래도 이집 가족이 아닌 것으로 봐야 할 모양이다. 흑두루미인가? 머리가 하얀 녀석이라니.... 그래서 확인을 위해 흑두루미의 모습을 지식백과에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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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려, 맞네. 머리가 하얀 녀석은 흑두루미였어. 그러니까 두루미와 흑두루미가 같이 먹이를 찾고 있었더라는 이야기다. 대뜸 초입에서 진기한 모습을 보여주니 '감사감사우감사'이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관찰소로 가봐야지.

"가자~!"

넓직하게 만들어진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계단을 올라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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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두 사람 입니다.
직원 : 3만원이네요.
낭월 : 그래요... (지갑을 꺼낸다...)
직원 : 두 분 모두 사진을 찍으실 건가요?
낭월 : 엉? 무슨 말씀이신지....?
직원 : 사진을 찍으실 분만 입장료를 받아요.
낭월 : 아, 그래요? 그럼 저만 찍을 겁니다.
직원 : 한 사람만 입장료를 내시면 돼요.
낭월 : 여기 (돈을 꺼냈다.)..
직원 : 카드만 받아요. 카드로 계산해 주세요.
낭월 : 아, 그래요? 그럼 여기~
직원 : 저쪽 맨 안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시면 되겠어요.
낭월 : 예, 알겠습니다.
직원 : 여기요~!
낭월 : 뭔가요? 영수증?
직원 : 1만원은 상품권으로 되돌려 드려요.
낭월 : 아, 그렇군요.
직원 :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두루미도 많이 오네요.
낭월 : 그래요? 다행입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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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는 무료해서인지 자꾸만 설명을 해 주려고 하지만 낭월은 설명이 필요치 않았던 까닭에 서둘러서 가방을 짊어지고 가르쳐 준 대로 맨 안쪽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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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여니 세 분의 진사들이 돌아다 보고 눈인사를 한다. 낭월도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는 비어있는 (말하자면 가장 넓은) 공간에 자리를 잡고 삼각대를 펼쳤다. 옆에는 백발의 영감님이, 그 다음에는 중년의 젊은 남성이, 그리고 저쪽 끝에는.... 잘 모르겠다. 그것을 살필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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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님도 놀지 않았다는 증명이다. 이제 연지님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다. 탐조실의 내부 풍경을 찍는다. 오른쪽의 카메라는 어느 백발진사의 카메라다. 렌즈의 길이가 꽤 길군..... 잠시 커피를 타러 자리를 비킨 틈에 풍경을 잘 담았다.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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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밖의 풍경에 집중한다. 무념무상..... 한탄강의 지금 현재, 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노닐고 있는, 실은 열심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겨울 철새들의 모습을 살피느라고 여념이 없다.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할 수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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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샷도 하나 남겨야지. '이 날 이 시간에 내가 이 자리에 있었노라....' 이런 사진을 보고 있으면 문득 김영갑 선생의 책 이름이 떠오른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라는 처절한 고독과 슬픔과 존재의 무상함이 아름다운 제주도의 오름과 함께 섞여서 묘한 변주곡을 들려주는 책이었는데 말이다. 자신이 머지 않아서 떠날 것임을 알고 쓴 책 이름이려니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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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100-400렌즈의 후드가 렌즈에 비가 뿌리는 것을 막아주니 다행이다. 연지님은 비가 맞는다고 걱정이지만 지금 그것을 걱정할 때는 아니다. 고장이 나면 서비스를 받으면 되는데 문제는 철원을 떠날 때까지는 고장이 나면 안 된다. 그래서 비가 많이 쏟아질 때는 잠시 안으로 당겨놓고 찍다가 또 비가 뜸해지면 다시 밖으로 내밀어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찍으려는 마음을 드러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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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찾아야 할 것은 두말을 할 것도 없이 두루미이다. 다섯 마리가 물가에서 먹이를 찾느라고 분주하다. 그 주변에서는 청둥오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또 한 옆에는 고니들이 열심히 배를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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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는 물에서 놀고 두루미는 물가에서 논다. 저마다 노는 곳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관찰을 하다가 보니까 그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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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들도 땅 위로 올라와서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고니도 '천연기념물 제201-1호'다. 그만큼 보호되어야 할 조류임에 틀림이 없고, 이 녀석들도 알고 보면 툰드라와 북부 아시아에서 살다가 겨울을 나러 한반도로 날아온 진객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주남지에서 많이 놀았기 때문에 덜 반가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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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본 김에 제사 지내고, 고니 본 김에 찍어 둔다.'고 했던가? 그래서 고니와도 같이 놀아준다. 강변에서는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서 두루미 대신 고니들을 보고 있는데 동방(同房)의 진사들께서 대화를 조곤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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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1 : 그 사이에 두루미들의 살이 통통하게 올랐네요.
진사2 : 처음에는 저렇지 않았습니까?
진사1 : 날아온 처음에는 바짝 말라서 수척했었지요.
진사2 : 그러니까 4800km를 논스톱으로 여행한다는 거지요?
진사1 : 맞습니다. 
진사3 : 듣자니까, 북한에서 잠시 쉬었다 온다는 말도 있더군요.
진사1 : 그런 말도 있긴 합니다.
진사2 : 북한에서는 잡아먹히지 않습니까?
진사3 : 탈북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방송을 봤습니다.
진사2 : 잡아 먹기도 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
진사3 : 예, 보이기만 하면 잡아 먹는답니다.
진사2 : 개체수가 줄어드는 데는 북한도 한몫 한 셈이네요?
진사3 : 배가 고픈데 장사 없잖아요.
진사1 : 그래서 논스톱으로 여기까지 날아오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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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아니, 근데 처음에는 말랐던 두루미가 살이 오를 때까지 지켜 보셨습니까?
진사 :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허허~!
낭월 : 그러니까 겨우 내내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신 거구먼요?
진사 : 뭐 할 일도 없고, 이렇게 놀기에는 그저 그만이거든요.
낭월 : 참 대단하십니다.
진사 : 오늘 비가 내일은 눈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낭월 : 제 마음입니다. 그러면 참 고맙지요.
진사 : 내일 눈이 오면 출근을 포기합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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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면 출근을 포기하고 두루미 사진을 찍겠다는 사람의 패기가 대단하다. 낭월도 그럴 수 있는데 그러지 않을 따름이다. 그렇게까지 빠져들진 못하겠는 것을 보면 아직 두루미에게는 덜 미친 것으로 봐도 되지 싶다. 적어도 철새 관찰소에는 이러한 매니아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찾아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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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계일학(群鷄一鶴), 아니지... 군압일학(群鴨一鶴)이군. 오리떼 속의 학 한마리이니까 말이지. 그런데 갸웃갸웃.... 군계일학이 맞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학이 닭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무슨 상황인겨? 닭은 가축이고, 학은 야생인데 어떻게 닭의 무리 속에 학이 함께 있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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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건 말 된다. 『미운 오리새끼』에 등장하는 백조니깐. 자신이 못생겨서 미움을 받고 있는 것을 슬퍼했지만 결국 자신은 백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더라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오리와 백조가 같이 있으니 '군압일백조(群鴨一白鳥)'로군. 그러니까 '군계일학'은 선비들의 상상으로 지어낸 사자성어라고 봐야 할 모양이다. 앞으로는 국어사전에 군계일학 대신에 '군압일학'으로 바꾸라고 해야겠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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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두루미들의 행동을 주시한다. 그런데.... 새끼가 안 보인다. 모두가 어른두루미들 뿐이지 않은가....? 문득 며칠 전에 영상에서 본 '두루미새끼 답살풍경'이 떠오른다. 지난 여름에 이 녀석들은 새끼의 부화를 실패했던 모양이다. 당연히 함께 있어야 할 새끼가 보이지 않으니 문득 처량해 보이기조차 한다. 그래서 '아는게 병'이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것을 몰랐다면 그냥 우아한 두루미로 보였을텐데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자식 농사를 실패한 쓸쓸한 두루미 부부의 모습으로 보이니 말이다.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게 궁금해진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물어 볼 수도 없고, 그냥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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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인간도 나이가 50을 넘기게 되면 자녀를 생산할 수가 없는 시기로 접어들지 않느냔 말이지. 그러니까 이 친구들도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숙제를 다 마치고 이제는 한가롭게 자신들의 삶을 즐기면 되는 시절일 가능성이 더 많겠다. 그러니까 마을회관에서 노인들끼리 수다를 떨고 운동도 하면서 놀듯이 그런 자유의 시간을 누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오히려 말년의 행복한 두루미로 보인다. 여하튼 생각할 나름이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봐도 두루미는 언제까지 새끼를 키우는지에 대한 자료는 안 보인다. 아직 거기까지는 연구가 없는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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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부부가 뒤뚱거리면서 얼어있는 빙판위를 조심스럽게 걸아가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이렇게 한탄강의 풍경은 볼 꺼리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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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는 모습이 재미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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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오리들 사이로 하얀 오리가 한 마리 섞여있는 것이 보인다. 다른 진사분께서는 '비오리'라고 하셨지 싶은데, 막상 비오리를 검색해 보니까 좀 달라 보인다. 아마도 비오리의 한 종류겠거니..... 다시 더 찾아보니 비오리에도 흰비오리가 있었더란다. 이 아이는 흰비오리였다. 완전히 일치하는 모습에서 그렇게 정리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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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1분 이상을 잠수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녀석이라는 설명도 덧붙여 주신다. 그런데 무리가 없이 한 마리만 있는 건 좀 특이하단다. 원래는 떼로 다니는데 어쩌다가 혼자 무리에서 떨어진 모양이란다. 참 아는 것도 많으신 분이네. 안다는 건 참 좋은 것인데, 낭월은 이 분야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으니 할 말도 없을 밖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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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저마다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이에 주변은 점점 어두워진다. 카메라를 잡은 손은 수시로 바빠진다. 앉아서 노는 새들을 찍을 적에는 셔터를 늦추고 감도를 낮춰서 최대한 밝은 화질의 사진을 얻을 수가 있다. 셔터속도를 100분의1초로 낮추고 이소를 1000까지 해서 찍을 수가 있는데, 날이 맑은 낮이라면 이소는 100을 넘지 않는 것이 최선인 줄이야 왜 모르랴만...... 오늘은 날씨와 시간이 협조를 하지 않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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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단 날아가는 녀석이 생기면 갑자기 셔터를 올리고 감도를 덩달아서 올려야만 그림이 되는데 이때의 화질 손실에 대해서는 감수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날아오를지 알  수가 없으니 그것을 발견하고 찍어봐야...... 자꾸 날아다니는 오리들이 보여서 셔터를 1600분의1초까지 올리고 깜깜해진 화면을 밝게 하기 위해서 감도인 이소를 2만까지 올렸으니 화질은 영 형편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아무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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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그나마 이러한 그림을 얻을 수가 있었다. 만약에 눈이 쌓여있었다면 그만큼 밝아질 테니까 화질도 좋은 사진을 얻을 수가 있을테니 비가 내리는 한탄강의 해질녘은 사진가에게 자꾸만 짐을 싸라고 채근하는 것으로만 보일 따름이다. 이미 시간은 4시가 되었다. 그래도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서 이 순간을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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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는 그림은 이것이 아니다. 바람에 깃털을 흩날리면서 처량하게 밥을 찾고 있는 '삶에 찌든 두루미'가 아니라 평생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도도한 자태의 모습으로 학춤을 추고 있는 두 마리의 두루미 부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그런 장면을 쉽사리 만날 수가 있는 것인가. 백발노인께서 연지님에게 사진을 보여준다. 학춤의 사진을 얻었다고 자랑하시는 거다. 그러니깐 말이다. 그런 장면은 오늘 같은 날에 얻을 수가 있는 사진이 아닌게야. 벌써 시간도 네 시 반이네.... 연지님을 바라보니 나가잔다. 아까 입구에서 본 녀석들을 찍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는 말에 묵묵히 삼각대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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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조금 더 있으려고 해도 매표소 아지매가 난로의 불을 끈다. 그러니까 돈을 낸 값으로 따뜻하게 난로를 켜줬던 모양이다. 그것도 몰랐다. 하긴, 한겨울에 난로는 보물이라고 해도 되겠군. 퇴근하면서 불을 단속하느라고 가스를 잠근다고 통보하는 것을 모두 말없이 수긍하는 것으로 봐서 관찰소의 법칙인 모양이다. 그래서 더 어두워지기 전에 많이 찍으시라는 가벼운 인사를 남기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얼마지 않아서 바로 재두루미 가족을 만났다. 그러니깐 진즉에 나오는 거였는데 말이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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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두루미인가 했는데 목에 검은 줄이 있는 것으로 봐서 재두루미다. 부부가 다 자란 아기를 데리고 볍씨를 찾고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지켜보는 낭월이 신경쓰였는지 계속 꼼짝도 않고 서있다. 그래서 또 미안하구먼시나 어쩔 수가 없다. 모델이 움직여 주지 않으니 낭월이 움직일 밖에. 또 한쪽으로 방향을 돌리니 다른 풍경도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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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여기는 재두루미와 두루미가 같이 있잖아~! 전체의 장면을 담은 다음에는 줌으로 당겨야 한다. 그래야 자세히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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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 재두루미 부부랑 두루미네 네 가족이었구나. 이 부부는 지난 여름에 새끼를 두 마리 키우느라고 많이 바빴겠다. 그리고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고 이렇게 먼 길을 날아와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네. 이야기가 보이니 사진을 찍는 재미가 두배로 증가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깐. 이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철원까지 나들이를 한 보람은 충분히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학을 보다니....' 뭔가 그러한 느낌이 가슴 속에서 진동을 일으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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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재두루미는 먼저 날개를 펼친다. 아차~ 연사(連寫)모드를 켜지 않았구나. 에구 이미 늦었다. '차르르르~'소리가 났어야 하는데 말이다. 셔터도 앉아있는 모습을 담느라고 1/250초로 낮춰놨으니... 에구~ 쯧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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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촬영을 얼마든지 하려고 메모리카드도 넉넉하게 챙겨 왔는데 순간적인 실수로 그만 멋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아예 연속모드를 켜고 촬영을 하면 좋기는 한데 한 장에 40mb나 되는 사진의 용량을 무한대로 저장 할 수도 없는 일인지라 상황에 따라서 설정한다는 것이 이렇게 갑자기 변수가 생기면 당황스러울 밖에. 그래서 '운에 맡긴다'는 편리한 뒷문을 만들어 두는 것이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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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점점 주변이 어두워진다. 이제 사진놀이를 거둬야 할 시간임을 그러면서도 자꾸만 눈길은 앞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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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한국에 와서 월동한다는 두루미의 종류를  두세 가지 만났으니 일진은 매우 좋은 것으로 봐도 되지 싶다.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확실한데, 흑두루미는 정확하지 않아서 안 본 것으로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는 한다. 낭월이 보기에는 이런 것도 사진이다. 작품은 아니지만 그냥 뭘 하는 것인지만 전하는 용도로만 사용하면 이미 충분한 몫을 한 셈으로 치는 까닭이다. 물론 낭월은 사진놀이를 하면서도 작품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사진이면 족하다. 제 수준에 맞춰서 노는 것이 가장 행복한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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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가 다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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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초로도 이 정도의 사진이 되어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냥 눌러본 사진이다.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라는 가벼운 생각이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재두루미 세마리잖여?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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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연지님이 옆을 가리킨다. 뭔가 있어서 눌렀는데 이모양이다. 이걸 왜 보여주느냐면 이것이 사진놀이이기 때문이다.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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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노루였구나. 반가워~! 다른 사진가들의 사진에도 두루미와 노루가 같이 찍힌 사진이 있었는데 이렇게 어울리다가 보니 그런 그림이 나오게 된 것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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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도 이내 사라지고, 하늘에는 갑자기 굉음이 들려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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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늘을 보니 먹이활동을 마치고 토쿄저수지로 잠을 자러 오는 청둥오리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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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다음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토쿄저수지 제방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는
지름길로 빠져 나간다고 간 것이
비에 잔뜩 불어버린 진흙구덩이였고,
그래도 앞으로 가면 길이 나오겠거니 했는데
그나마도 길은 막다른 곳이고 ,
차의 바퀴가 진흙에 힘을 받지 못하고 헛돌고...
그것을 밀어 볼 것이라고 힘을 써봐야 헛일...
농로길이라도 포장이 되었으려니 한 것은 남쪽 사정.
여기는 최전방의 비무장지대라는 것을....
아무래도 보험사에 전화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주변은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데
차는 움직일 줄을 모르니 앞으로 뛰고 뒤로 뛰면서
핸들 좌로, 우로, 뒤로~~~~~ 헥헥~~~!!
그렇게 우찌우찌 해서 차를 빼냈지만....
신발은 진창과 하나가 되고...
차는 온통 진흙으로 범벅이 되었더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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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님의 운전실력으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봐야 할 모양이다. 렉카도 들어오기 어려운 곳이었다는 것만 말해 둔다. 이렇게나마 멍청한 짓을 한 이야기도 써놓는 것은 행여 '낭월2'가 나올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궁금해도, 길이 아닌 곳으로는 부디 가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이기도 하다. 큰일 날뻔 했다. 자칫했으면 차와 함께 논구덩이로 쑤셔박힐 뻔 했다는 이야기로 그 상황을 대신하기에는 너무도 필력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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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를 달래기에는 얼큰한 아귀찜이고, 냉기를 몰아내기에는 불든 물이 최고이다. 불에는 물을 담을 수가 없지만,  물에는 불을 담을 수가 있으니 그래서 수화기제()이다. 수화기제는 물 속에 불이 든 것이고, 화수미제(火水未濟)는 물에서 불이 빠져나와서 머리를 때리는 소식이다. 그러니까 불이 빠져나와서 가슴까지 올라올 만큼만 마시면 좋은 것이고, 이것이 지나쳐서 머리까지 올라가면 독이 된다는 이야기를 해맑은 미소로 들어주는 연지님이다.

낭월 : 뭔 말인지 알겠나?
연지 : 몰라~!
낭월 : 근데 뭘 알아 들은 척 하노?
연지 : 남편 대접하는 거 잖여.
낭월 : 긍가...?
연지 : 그럼~!
낭월 : 고생했다. 많이 먹어.
연지 : 고생하셨쓔 한 잔 더 드셔요.
낭월 : 그만, 딱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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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찜도 먹을만 했다. 배도 고팠을 것이긴 하지만, 탄토모텔의 길 건너에 있어서 멀리 갈 것도 없이, 식당으로 들어가서 푸짐하게 해 주는 아지매의 인심 만큼이나 든든하게 저녁을 마무리 했다. 그러면서도 즐거웠던 것은 차가 논에 뒤집어져서 바퀴만 뱅뱅 돌아가는 것을 면한 것이 아니라, 이 비가 내일 새벽에 문을 열면 하얀 눈으로 변해 있을 것이라는 상상으로 인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