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비
작성일
2020-09-08 07:31
조회
641
바람과 비
9호 태풍, 10호 태풍...
바람에 흔들리는 초목을 보면
김영갑 선생이 떠오른다.
바람과 싸우다가
바람을 받아들인 모습이....
지나가는 것이 바람이다.
그래서 흔적을 남긴다.
바다를 지나는 배가
흔적을 남기듯이....
손은 지문을 남기고
바람은 풍문을 남긴다.
사진가는 바람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바람이랑 한바탕 춤을 춘다.
함께 놀면 흥겹다.
가냘픈 설악초 줄기가 흔들린다.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꺾이진 말라고
연지님이 지주를 세워준다.
지주는 지맥봉이다.
현공풍수를 공부하면서 만들었던 것이
오늘은 설악초의 기둥이 되었다.
지주도 흔들린다.
다만 나를 의지하는 것을 위해서 덜 흔들릴 뿐.
세상이 흔들리는데,
흔들리지 않을 지주인들 있으랴...
이내 지나가리라....
바람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기에.
가만히 있으면 바람이 아니기에 계속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니 비가 내린다.
하염없이 긴긴 장마를 이어서 내리고
다시 태풍이 데려온 비도 내린다.
바람도 비도 사진가는 좋아한다.
바람은 움직임을 넣어주고
비는 촉촉한 수분을 공급한다.
바람이 불어도 카메라를 든 손은 흔들리면 안 된다.
태풍이 몰아쳐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처럼.
비가 와도 카메라는 놀면 안 된다.
누가 카메라는 빛을 담는 것이랬던가.
카메라는 빛도 담고 비도 담고 바람도 담는다.
그래서 플레시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미 그곳에는 빛이 무르녹아 있기 때문이다.
비를 견디면 선물을 남긴다.
알알이 맺히는 수정구슬이다.
바람이 오기 전에 봐줘야 한다.
바람 불면 뭐하고 노느냐고 묻는다.
바람이랑 논다고 답한다.
비가 오면 사진도 못찍고 우짜냐고 한다.
원, 천만에 그럴리가~!
비를 담는 것도 재미있는 놀이다.
비는 셔터속도와 놀이에 빠진다.
조이면 방울이 맺히고, 풀면 국수가 된다.
그 중간 어디쯤인가에 비의 도가 있음이다.
빛은 알갱이라고?
아니, 파동이라고?
다 맞다. 비를 보면 안다.
비와 빛은 사촌지간인 까닭이다.
가을을 기다리는 녀석들...
벌써 빠꼼히 얼굴을 내밀어 보는 녀석도 있다.
산골의 여름이 이렇게 서성인다.
이제 또 가을과 놀아볼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