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지도(2022년)
admin
2014-05-20T17:29:00+00:00

[개인지도 용으로 사용하는 교재]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과 인연이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자연의 이치를 바탕으로 삶의 여정을 살피는 학문과 더불어 자유로운 나날이 되는 방법을 찾는다면 오행의 이치와 더불어 궁리하고 사색하시기를 권합니다.
공부의 인연은 1:1로 진행합니다. 저마다의 수준이 다르고 사유하는 방법이 다른 까닭에 함께 공부하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이 될 뿐입니다. 그야말로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서 진행하는 맞춤형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각자의 인연에 따라서 쌓은 선행학습의 유무는 논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판은 새로 짜야 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니까 이 방면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른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냥 빈 잔에 물을 채우는 것이 기존에 뭔가 들어있는 것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것보다 용이하다고 보는 이치입니다.
물론 낭월의 책이나 영상을 보면서 공부하셨다면 유리한 것은 확실합니다. 이미 분위기를 알고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낭월의 생각과 다른 방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신 경우라면 한동안 혼란이 일어나는 것도 피할 수가 없는 인과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자꾸만 버리라고 할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월의 관점으로 오행의 이치를 즐기고자 하신다면 인연이 되셔도 좋을 것입니다.
자평명리학은 오행학(五行學)입니다. 오행에 뿌리를 두고 생극제화(生剋制化)의 이치를 논하는 것이 시작이고 끝입니다. 그 외에 기특한 비법은 없습니다. 모든 이치의 뿌리인 오행으로 돌아갑니다. 오행으로 생각하고, 오행으로 관찰하고 오행으로 풀이합니다. 비오행(非五行)은 논하지 않습니다.
낭월명리학당은 사주심리학(四柱心理學)을 바탕에 놓고 십성(十星)의 이치를 전개하여 방문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활용법을 삼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방면으로 득실에 대해서는 깊이 논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흉운임에도 100억을 벌었는데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마음은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렸을 것으로 판단을 합니다. 삶을 꾸려가는 것은 밖의 재물이 아니라 내면의 주인공임을 믿는 까닭입니다. 대화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욕망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도록 안내할 따름입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가는 길에 쌓아놓은 물질은 의미가 없고 오로지 자신의 행위에서 얻어진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심사(心事)만이 나를 따를 뿐입니다. 그 길에 미련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안내하는 것이 오행학자의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낭월명리학당은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가르쳐드립니다.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라면 자유뿐이기 때문입니다.
자평명리학 외에 비법(秘法)도 가르쳐 주느냐는 문의도 아주 가끔은 있기도 합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비법은 비법(非法)일 따름이니 이미 정도(正道)가 아닌 까닭입니다. 오행의 일상이 비법이라면 비법이겠습니다만, 그것을 비법이라고 한다면 또한 자신의 마법에서 어서 풀려나라고 할 뿐입니다. 오행으로 바탕을 삼고, 용신으로 뼈대를 삼고, 십성으로 장식을 하고, 오주괘로 길을 삼습니다. 그 외에 더 추가해야 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가끔 공부하러 오기가 불편하다고 하는 인연도 있습니다. 그래서 2회의 내용을 묶어서 강의해 주면 안 되느냐는 말도 합니다. 물론 이해를 합니다. 만약에 두 끼의 밥을 한꺼번에 먹고서도 소화가 잘 되어서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수가 있다면 물론 가능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공부하러 올 인연이 아니라고 봐야 하겠지요.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마도 공부를 우습게 생각한 결과려니 싶습니다. 그런 정신으로 접근한다면 반드시 실망밖에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버리고 시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합니다. 공부는 해 치우는 숙제가 아니라 몸에 녹아드는 자양분 같은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찾아온 방문자에게 부자가 되는 법을 말하기 보다는, 탐욕이 빚어놓은 결과물일 따름이라는 것을 알려 줘야 다음에는 다시 그와 같은 고통의 바다에서 숨이 막힐 것같은 순간은 만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안내하는 것이 철학자(哲學者)가 할 일임을 믿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형식으로 자신을 살피고 방문자와 대화를 나누고자 하신다면 공부의 인연이 되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참, 타로공부를 추가해서 한 가지의 과정으로 통일했습니다. 공부의 인연이 되신 선생님들의 대부분이 타로카드의 필요성을 생각하고 함께 배우기를 원하는 것을 접하면서 아예 타로카드만 추가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기타의 보조과정이었던 작명이나 택일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각이 알아서 하시면 되겠습니다.
타로는 또 하나의 언어입니다. 임상을 통해서 오행의 이치와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면서 함께 배운다면 활용의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입니다. 도서(圖書)가 문명이라면 오행(五行)은 서(書)가 되고, 타로는 도(圖)가 되니 이것도 어찌 보면 또한 학문의 음양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방문자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오행만으로 설명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한 장의 그림이 열 마디의 말보다 더 빠른 공감이 되는 것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공부의 기간은 따로 정하지 않습니다. 앞의 공부가 정리된 때가, 다음 공부를 할 시간이라고 보면 됩니다. 보통은 1주일에 한 번 방문하지만, 1개월마다 오기도 하고 6개월이 지난 다음에 오기도 하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마다의 삶이 있고, 주어진 일이 있으므로 바쁘게 살아가는 흐름에서 학문을 향한 열정만 있다면 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공부의 연료는 열정입니다. 열정이 식어지면 모든 것이 귀찮을 따름입니다. 그 정도의 연료가 준비되셨다면 공부에 마음을 일으켜도 좋습니다. 노후를 대비하든, 자연의 이치를 궁구하든, 그것은 저마다 진리로 이끌어들이는 밑밥일 따름입니다. 결국은 오행의 호수에 두둥실 배띄우고 삶의 여유를 즐기는 나날이 되는 것으로 목적을 삼습니다.
공부를 마친 다음이 더 큰 문제라고 걱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공부 후의 문답은 항상 열어두고 있습니다. 전화든 카톡이든 궁금하면 질문하면 됩니다. 공부 중에도 언제나 물을 곳이 있다는 것은 든든할 따름입니다. 공부를 마친 후에도 물을 수가 있다는 것은 보험과 같은 것입니다. 얼마간의 수업료에는 보험료가 포함되었다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미안해서 자꾸 묻지 못하는 선량한 제자에게 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행의 이치와 어우러져서 더욱 자유로운 나날이 되시는 디딤돌로 삼을 마음이 있으시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공부를 권합니다. 자유로움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인 까닭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봐야 아무도 자유를 주지는 않습니다. 모쪼록 더욱 행복하신 나날이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9년 11월 28일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