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제15장 운명의 그릇/ 6. 제왕(帝王)의 관점(觀點)

작성일
2017-04-11 07:06
조회
2048
[171] 제15장 운명(運命)의 그릇


6. 제왕(帝王)의 관점(觀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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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월이 우창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물론 그릇의 개념이 나온 곳을 유추(類推)해 보면 아마도 왕가(王家)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왕가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생각을 해 봐. 그릇은 누구의 관점인가?”

“그야 그 그릇을 쓰는 사람의 관점이겠지.”

“생각을 해 보면, 그릇이 자신이 그릇인 줄을 알까?”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릇의 주인만이 그릇을 알겠지?”

“당연하지. 간장을 담는 그릇인지, 밥을 담는 그릇인지는 주방에서 일을 하는 사람의 몫일 테니까.”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그릇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자신일까? 아니면 그릇을 쓰고 싶은 사람일까?”

그러자 자원이 답을 하면서 나섰다.

“아하~! 참으로 재미있는 말씀이세요.”

“재미있다니? 뭐가 말인가?”

“당연하잖아요. 왕은 사람을 써야만 하니까 그 사람이 어떤 그릇인지를 정말로 알고 싶어 할 것이잖아요.”

“오호~! 우창보다 자원이 훨씬 빠른 것도 있군. 하하하~!”

“그야 진싸부는 천천히 깊게 파고 들어가고, 저는 얕고 가볍게 팔랑이니까요. 호호호~!”

자원의 유쾌한 말에 우창도 웃으면서 화답했다.

“지나친 겸손일세. 하하~!”

“명학(命學)은 그 뿌리가 왕가에 닿아있단 말씀에 느낌이 팍 왔어요.”

“아마도 과거의 모든 예지학(豫知學)은 왕의 통제를 받았을 것으로 보네.”

“정말 뿌리를 찾아가면 그곳에서도 왕을 만나게 되네요.”

“제왕은 백성이 미래를 아는 것에 대해서 허용하고 싶지 않았겠지.”

“정말 재미있어요. 뭔가 생각이 떠오르는걸요.”

“어디, 자원의 깨달음을 들어보도록 하지.”

“그럼 저의 천박(淺薄)한 생각을 말씀드려 볼게요.”

“학문을 연구하는데 심천(深淺)을 따로 논하지 않는다네. 어서 말해보게나.”

“왕은 항상 불안하잖아요. 누가 자신의 자리를 훔치려고 할까 봐 전전긍긍(戰戰兢兢)이겠죠.”

“당연하겠지.”

“그런데 그 자리를 빼앗을 가능성이 많은 사람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더욱 많겠지요.”

“맞아, 그래서 적(敵)은 늘 가까이에 있다고 하지.”

“그렇다면 겉으로는 목숨을 걸고 충성을 하지만 그 사람이 언제 본색을 드러내서 자신에게 칼을 겨누게 될지 할 수가 없단 말이죠.”

“옳지.”

“그러니까 이것을 알아볼 수가 있는 방법을 강구(講究)했을 거예요.”

“오호~! 그러다가 타고난 사주팔자에 생각이 미쳤겠군?”

“맞아요. 명학에 조예가 밝은 학자를 왕사(王師)라는 이름으로 곁에 두고는 후한 대우를 했죠.”

“틀림없는 이야기로군.”

“일단 자신의 가족부터 일일이 그릇을 살펴서 왕이 될 수가 있는지 자기 목에 칼을 겨눌 오역(五逆)의 자식(子息)은 없는지를 살피고자 했겠죠.”

“과연 자원이 핵심을 짚었군.”

“사실 왕은 좋은 자리에 도읍(都邑)을 건설하고 왕가를 수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생명도 보존해야만 그러한 것도 의미가 있단 말이죠.”

“맞아. 당연한 이야기로군.”

“그러니까 대신(大臣)을 중용(重用)하더라도 가장 먼저 그 사람의 사주를 살펴서 목숨을 바쳐서 충성(忠誠)할 그릇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좇아서 배반(背叛)할 그릇인지를 파악했어야만 했죠. 이보다 급한 일은 없으니까요.”

“옳지~!”

“그러다 보니까 그릇에 대한 의미가 클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그래서 옛날의 명학은 그릇을 살펴보는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해도 되겠어요.”

“멋진 판단이로군. 왕의 마음을 잘도 헤아렸단 말이네.”

“임싸부의 말속에 이미 그러한 의미가 포함되어 넘쳐나는 걸요 뭐. 호호~!”

“그런가? 연해자평이나, 「난강망(欄江網)」에서 그렇게도 그릇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모두 해결되었군. 그래서 격국(格局)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기록되었던가 보군.”

“난강망은 또 뭐예요?”

“그것도 그릇을 판단하는 목적으로 쓰인 책이라고 볼 수가 있지.”

“제목의 느낌으로는 적천수와 비슷한걸요?”

“오호~! 그건 멋진 생각인걸.”

“강의 난간(欄干)에서 그물을 드리우고 있는 의미잖아요?”

“일리가 있군.”

“강의 난간에서 그물을 드리운다는 것은 당연히 고기를 잡겠다는 생각이겠죠?”

“그 외에 생각할 수가 없겠군. 고기를 잡을 사람은 강태공(姜太公)처럼 큰 고기가 물리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하겠지.”

“그러니까요. 적천수는 하늘에서 타고난 진수(眞髓)를 설명한 것이라고 한다면 난강망은 큰 고기를 잡을 사람에게 필요한 고기 잡는 방법이로군요.”

“음. 오늘 자원의 통찰력(統察力)은 다른 날과 다른 걸.”

“그런 날도 하루쯤은 있어야죠. 호호호~!”

고월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자원이 우쭐해서 깔깔대며 웃었다.

“난강망의 글을 읽다가 보면, ‘이 사주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쓸모가 없다.’는 말이 자주 등장하지.”

“쓸모가 없다고요? 그게 사람에게 할 말이에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왕에게는 반드시 중요한 말이기도 하지.”

“당연히 왕의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책이라고 봐야 하겠군요.”

“적천수에는 전혀 그런 말이 없지.”

“당연히 그래야죠.”

“원래의 명학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는 말도 가능하겠네.”

“이해가 되었어요. 왕은 당연히 그릇을 알아야 하고, 왕사가 쓸모없는 그릇이라고 하면 바로 폐기(廢棄)하고, 충성과 의리를 중시하는 인물이라고 하면 비로소 중용(重用)했겠어요.”

“그렇다면 오로지 정관(正官)을 찾아서 온갖 방법을 강구(講究)했던 것도 이해가 되었겠네?”

“맞아요. 정관이 중요했죠? 정관은 충성하고 복종하는 성분이잖아요? 그것도 당연히 왕에게 말이죠.”

“그로 인해서 기이(奇異)한 격국(格局)이 백출(百出)하게 되었으니 결국은 명학의 가치만 하락했다고 봐야 하겠네요.”

“무슨 말이지?”

“당연하잖아요? 그렇게 억지로 꿰어 맞춘 논리가 사람에게 제대로 적용이 되었겠느냔 말이죠.”

“그렇다면 왕사의 운명도 풍전등화(風前燈火)였겠군.”

“맞아요. 학문에 목숨을 걸어야 했겠죠.”

“자신이 충신이라고 천거(薦擧)한 사람이 역적(逆賊)이 되거나, 유능(有能)한 사람이라고 채용을 했는데 무능하고 탐관(貪官)하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마음도 괴로웠겠지.”

“이제 격국론(格局論)은 제왕적(帝王的)인 학문(學問)이라는 것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겠어요.”

“어찌 명학뿐이겠는가. 모든 학문은 제왕이 독차지하고서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고 다른 나라를 침탈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하려고만 했겠지.”

“또 다른 학문도 그런 것이 있었나요?”

“두말하면 잔소리지.”

“어떤 것이 있었죠?”

“기문둔갑(奇門遁甲)도 아마 이러한 의도로 진화된 학문이었을 것으로 보는 학자는 대부분이라네.”

“이름은 들어 봤는데 왜 그것도 왕가의 비기(秘技)였나요?”

“기문은 운산 스승님으로부터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이것은 왕의 행차에 대한 비술(祕術)이라고 봐야지.”

“에고~! 머리 아픈 것은 다음에 배울게요~!”

“잘 생각했네. 하하~!”

“그렇다면 적천수를 배워서는 왕가에서 출세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그건 또 왜?”

“경도 스승님이 왕가의 뜻을 생각하면서 이것을 썼겠어요?”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절대로 아닐 것으로 봐요.”

“그렇게 단정을 하는 이유는?”

“영향요계에 대해서 이렇게 혹평(酷評)을 한 선생이 왕가에서 벼슬을 할 마음을 품었겠어요?”

“오호~! 역시 총명한 자원이로군.”

“아마도, 경도 스승님은 벼슬살이에 뜻을 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벗이 되고자 했을 것으로 봐요.”

“그럴까?”

“당연하죠. 개개인의 삶에 대해서 행복을 추구할 길을 찾아주고자 했을 것으로 봐야 하겠어요.”

“아마도, 토정 선생과 같은 마음이셨나 보네.”

“아, 월영도를 쓰셨다는 분 말이죠? 그것은 내용도 참 재미있잖아요. 소박하고요. 호호~!”

“벼슬에는 관심이 없고, 애환을 겪는 사람들과 함께 고락(苦樂)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도인이 아닌가 싶다네. 물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단 말이기도 하지. 하하~!”

“당연히 그렇게 되실 거예요. 또 그렇게 되시기를 바라겠어요.”

“고맙군. 학자의 길은 자중(自重)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제왕에게 천거(薦擧)가 되어서 꼼짝달싹 못하고 끌려다니게 될 수도 있거든.”

“맞아요. 그래서 운산 선생님께서 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신 것은 참으로 잘 하셨다고 봐요. 그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물론이라네. 그래서 남들과 어울려서 번듯하게 살지 못하시고 이렇게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노산에 와서 은거하고 계시지 않은가. 하하~!”

“그렇게 살아가야 하면서도 그것을 선택하신 것은 참으로 현명하셨다고 해야 하겠어요.”

“암, 그렇고말고. 학자가 왕의 그늘에서 눈치를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못할 짓이라고 봐. 하하~!”

“동감이에요. 호호~!”

그러자, 우창이 자신의 생각을 피력(披瀝)했다.

“격국(格局)이라는 것에 그렇게 은밀한 내막이 있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네. 과연 그러한 학문의 형태가 나오는 이유는 또 그러한 시대적인 배경(背景)도 단단히 한몫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공감이 되네.”

“맞아. 권력(權力)을 얻거나 지키고 싶은 사람의 욕망을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얼마나 많은 명안종사(明眼宗師)께서 정권의 희생이 되셨는지를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라네.”

“그런데 말이네.”

“무슨 말인가?”

“제왕의 치업(治業)에 종사하여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익(一翼)을 담당하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떤가?”

“물론 좋은 생각이지. 아마도 처음에는 그러한 마음으로 왕의 부름에 기꺼이 나아갔을 것이네.”

“왕도 저마다 자신의 성품이 있으니까 제대로만 만난다면 또한 의미 있는 일을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도 없다고는 못할 것이네.”

“그런데, 고월은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

“운산 스승님으로부터 그 권력의 속성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는데 그에 대해서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라네.”

“어떤 이야기를 해 주셨기에 그런지 나도 좀 듣고 싶네.”

“만약에 왕의 눈에 벗어나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우창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그야 조용히 은거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만 되면 참으로 행복이라고 하겠지.”

“아니, 그렇다면 그렇게 할 수가 없단 말인가?”

“생각을 해 봐. 왕이 자신이 중용할 정도로 능력이 있는 사람을 내쳤을 적에 그 사람이 적에게 간다면 이번에는 강력한 공격자로 변하지 않을까?”

“아차, 그 생각까지도 해야 하는 것이었구나.”

“「한비자(韓非子)」라는 책에 나오는 ‘여도지죄(餘桃之罪)라는 이야기를 들어 봤나?”

“금시초문인걸,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보세.”

“옛날, 위(衛)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이 있었다네. 왕이 총애하여 늘 옆에 두고 있었다더군.”

“그야 왕의 마음일 테니 그럴 수도 있겠네.”

“하루는 도원(桃園)을 거닐다가 잘 익은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먹었더니 어찌나 맛이 있었던지 자신이 먹었다는 것도 잊고 왕에게 드셔 보라고 드렸다는군.”

“워낙 가까우면 그럴 수도 있겠지.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감히 왕에게 먹던 것을 올릴 수가 있나.”

“그러자 왕은 대신들에게 그것을 본받으라고 했다지 뭔가. 짐을 얼마나 혈족처럼 가까이 여기면 이렇게 먹던 복숭아를 짐에게 주는 것을 보라는 이야기였지.”

“감동했던가 보군.”

“그런데 나중에 미자하가 나이가 들면서 싫증이 난 왕이 죄목을 씌워서 묶어놓고 치죄(治罪)했다는 거야.”

“무슨 큰 허물을 범했나 보지?”

“예전에 천한 미자하가 자신의 신분도 잊은 채로, 더러운 입으로 먹던 복숭아를 감히 왕에게 올려서 능멸(凌蔑)했다는 이유였다네. 그게 ‘여도지죄라는 것이지.”

“정말 왕의 마음 하나에 생사가 오락가락하는군.”

“이러한 것을 보면서 어찌 왕의 곁에서 마음 편히 뜻을 펼치겠는가?”

“과연 공감이 되는군.”

“뭔가 잘하면, 자신의 자리를 넘볼까 봐서 두려워하고, 또 잘못하면, 무능하다고 내쳐버릴 테니 학자의 공들인 보람은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오~! 과연 운산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편치 못했던 것인지를 바로 느낄 수가 있겠네. 행여 나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도록 하겠네.”

“맞아~! 그래서 누군가에게 나의 생명을 의존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도 있다는 것을 알고 시작해야 한단 말이지.”

이렇게 권력과 학문의 사이에서 어떻게 삶의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긴긴 하루의 해도 서산으로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