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제10장 간지의 세계/ 12. 근심하지 않는 토(土)

작성일
2017-02-1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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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제10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12. 근심하지 않는 토(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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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고월이 되물었다.

“원래 명학은 오행의 생극으로 풀이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네만, 잠시 눈을 크게 뜨고 우주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발상(發想)을 하신 거지.”

이번에는 우창이 답했다.

“그렇게 되면 명학(命學)이 자연철학(自然哲學)으로 상승(上昇)하는 효과가 있겠습니다.”

“맞아, 그래서 난해(難解)하다고 하는 적천수가 그 속에 거대(巨大)한 뜻을 포함하고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지.”

“그런데도 탁월한 관점의 적천수가 왜 일반화(一般化)가 되지 못했을까요?”

“이렇게 어려우니 특별히 밝은 스승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해석이 어려웠겠지.”

고월이 경순의 말에 동조(同調)하면서 의견을 말했다.

“맞습니다. 반드시 설명을 들어야만 엉뚱한 길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겠습니다. 다행히 형님을 만나서 그 맛을 알게 되니 복도 이러한 복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경도 스승님이 서승 선생에게 한 방 먹이는 이유라네.”

“예? 한 방을 먹이다니요?”

“아, 생각을 해 보시게, 토(土)가 오행의 하나인 정도로만 설명하였던 자평 선생에게 토는 다른 오행과는 확실히 다른 특수함을 한 수 가르쳐 드린 것이잖은가? 하하~!”

“과연~! 놀랍습니다. 오행전도론을 알고서 다시 생각해 보니 확실히 경도 스승님의 수준이 서승 선생을 앞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어쩌면 당돌함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하~!”

“왜 웃으십니까? 형님.”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도 모르나?”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무슨 뜻이지요?”

“뒤에 태어난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두렵다는 뜻이라네. 하하~!”

“그런 말도 있었나요?”

“생각해 봐. 지금 그대들이 나보다 더 늦게 태어났으나 오늘 이렇게 같은 수준으로 쫓아오고 있지 않은가? 하하~!”

“그런 뜻이었습니까? 참으로 고인의 말씀은 틀린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서 열심히 분발(奮發)하시게나. 하하~!”

우창이 화제(話題)를 돌려서 다시 적천수를 이야기했다.

“그럼 계속해서 적천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세.”

“이제 ‘불수목성’은 ‘쇠약(衰弱)한 토가 목을 만나면 허물어져서 구덩이가 된다.’는 것을 반박(反駁)하기 위한 글이라는 의미를 알겠습니다.”

“적천수를 공부하는 맛이 어떤가?”

“당연히 한 맛이 더해집니다. 오묘한 가르침이시네요.”

“거대한 대지(大地)인 땅에 나무가 3천 년을 살면서 뿌리를 박는다고 한 들 땅에게는 가렵지도 않은 것에 불과하단 이야기거든. 하하~!”

“과연 경도 스승님의 포부(抱負)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이 벼슬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네 그러한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지.”

“과연 학문만을 사랑한 진정(眞正)한 학자라고 하겠습니다.

“이 경순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하하~!”

“불수목성 다음에는 ‘불외수광(不畏水狂)’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수다토류(水多土流)’에 대한 반론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아무리 토가 허약(虛弱)하더라도 명색이 땅인데 좁은 의미로만 생각하고 사주에 나와 있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기면서 거대한 자연을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토로만 간주하여, 자연을 보려고 하지 말라는 경계(警戒)의 말로 이해하면 될 것이네.”

“그러니까 경도 스승님의 뜻을 본다면, 수(水)가 많다고 해서 토(土)가 떠내려간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렇겠지요?”

“맞아. 부분적으로는 떠내려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만 보고서 ‘수다토류’만 생각하게 되면 단견(短見)에 갇혀서는, 흘러가봐야 결국은 땅 위라는 것을 간과(看過)하는 것이지.”

우창이 적천수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다음 구절을 보면, ‘화소화회(火少火晦)’입니다.”

“그렇군. 그건 어떻게 해석하려나?”

“이것은 기(己)가 습토이기 때문에 화력을 많이 흡수한다는 것으로 이해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평 선생의 논리 중에서, 화생토(火生土)나 화다화회(土多火晦)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는 뜻으로 보면 되겠지요?”

“이제 서로의 연관성에 대해서 이해되시는가? 하하~!”

“과연 두 이론이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다.”

“여하튼 살아있는 자연의 이치는 어딘가에서 소통이 된다는 것은 항상 느끼게 되는군.”

그 말에 고월도 공감하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더욱 학문의 연구가 즐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고월의 말이 끝나자 우창은 계속 적천수를 읽었다.

“다음은 ‘금다금광(金多金光)’입니다. 기(己)는 금이 많아도 금을 빛나게 한다는 것은 경도 스승님의 견해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서승 선생은 ‘금다토허(金多土虛)’라고 했으니까 ‘금다금광’의 의미와는 서로 대치(對峙)되는 장면이란 말이지?

“맞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두 주장에 대해서 정리가 되지 않으면 혼란스러움을 면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서로 다른 이치는 간단하네. 경도 스승님은 거대한 지구(地球)의 땅덩어리로 토(土)를 본 것이고, 서승 선생은 오행의 하나인 토(土)의 관점으로 설명을 한 것일 뿐이고 어느 것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

“그렇다면 자연을 관하는 방법으로는 경도 스승님의 방법이 옳고, 사주풀이를 하는 기술로는 서승 선생의 설이 타당하다고 보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정리하면 틀림이 없겠네.”

“그러니까 사주를 놓고 풀이할 적에는 서승 선생의 전도론이 더 효과적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네.”

“이렇게 놓고 보니까 그 의미가 명료(明瞭)해집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구절은 뭔지 살펴볼까?”

“예, ‘약요물왕(若要物旺)이면 의조의방(宜助宜幫)하라’라는 구절은 붙여서 풀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이해를 하면 될까?”

“우창이 풀이하기에는 ‘만약에 만물(萬物)을 왕성(旺盛)하게 하고자 한다면 돕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봅니다.”

“그렇게 보면 되겠군.”

이 대목에서는 우창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질문을 던졌다.

“형님, 이 부분은 좀 명료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물을 왕성하게 하려면’이라는 앞 구절은 이해가 됩니다. 기(己)는 만물을 포용하고 무(戊)의 뜻에 따라서 보필(輔弼)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뒤에 나오는 구절이 좀 애매한 감이 있습니다.”

“협조(協助)하고, 곁들어야 한다는 말이 이상한가?”

“아무래도 이것을 기(己)에게 부탁하는 것인지, 다른 사행(四行)에게 부탁하는 것인지가 좀 명확(明確)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고월이 말했다.

“오, 우창이 오늘 제대로 느낌을 잡았구나. 나도 그 부분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거든.”

이렇게 말을 하고는 경순을 보면서 말했다.

“형님의 풀이를 기대합니다.”

“이 구절은 아무리 봐도 다른 사행에게 도와주라는 말은 어색하군. 그렇다면 기(己)에게 부탁하는 경도 스승님의 말로 봐야 하겠지.”

“그럼 해석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석을 할 수가 있을까?”

“기(己)가 만물을 왕성하게 하기 위해서 항상 돕고 협조하는 노력을 한다는 것으로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오호~! 그것이 훨씬 낫군. 잘 생각했네. 나도 그게 나을 것 같군.”

“그런데 글자가 한두 자가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 죽간(竹簡)이 빠져 달아난 것을 나중에 알고 앞뒤를 맞춰서 끼워 넣었을 수도 있으니까. 하하~!”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어느 글자를 바꿔서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만들어 보고 싶은지 이야기해 보게나.”

“약요물왕(若要物旺)은 ‘항원물왕(恒願物旺)’으로 바꾸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항상 만물이 왕성하기를 원하는 기토(己土)’가 되겠군. 그것 참 맛깔스러운 변화인걸.”

“뭔가 어색한 것은 이렇게 글자를 바꿔가면서 궁리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형님께서 동의해 주신다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진행하겠습니다.”

“당연하지. 훨씬 와 닿는 기토의 느낌이 있네. 그럼 마지막 구절은?”

“마지막은 ‘의조의방(宜助宜幫)’인데, 이 구절은 그대로 둬도 해석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己)의 능력과 목적이라는 것만 밝혀놓으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약요(若要)’만 살짝 바꿔서 이해하고 넘어가도 되겠지?”

“당연합니다. 동의합니다.”

고월도 동의했다.

“저도 우창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렇게만 되어도 전혀 혼란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만히 있기가 멋쩍었던 조은령도 한마디 했다.

“저도요~! 호호호~!”

모두 수긍을 하자 경순의 의견이 첨부되었다.

“무(戊)의 능력은 천상(天上)에서의 행사(行事)라고 한다면, 기(己)의 능력은 지상(地上)에서의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고월이 경순의 말을 받아서 답했다.

“형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까 양토(陽土)와 음토(陰土)의 역할이 뚜렷하게 구분이 되네요. 결국 기(己)는 무(戊)의 명(命)을 받아서 수동적(受動的)으로 실행한다는 것이 분명해 졌습니다.”

“잘 정리하셨네.”

“그리고 사주를 풀이하는 관점에서 본 것이 아니라 우주적인 관점이거나 자연의 질서에 의한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정리를 해도 되지 싶습니다.”

“타당한 해석에 전적(全的)으로 동의하네.”

“기(己)의 역할을 보면, 목수화금에 대해서 논하고 있습니다. 기(己)가 목을 만나면 아무리 목이 왕성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왕성한 수를 만나도 또한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고, 또 금이 아무리 많아도 금의 기운을 왕성하게 해 준다는 뜻입니다.”

“맞아.”

“다만 유독 화(火)에 대해서는 기(己)가 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은 화생토(火生土)의 이치로 봐서 부합됩니다. 다만 화가 적으면 어두워진다는 것은 병정화(丙丁火)를 함께 말하는 것입니까?”

“하늘에서 병(丙)이 부족하면 겨울이 될 것이니 기(己)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고, 정(丁)이 부족하면 땅이 차갑게 식어질 것이니 또한 만물이 뿌리를 내리고 살 수가 없다고 봐서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보네.”

고월이 다시 말했다.

“그렇겠습니다. 비로소 경도 스승님의 탁월(卓越)한 견해(見解)가 무엇인지를 다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삼 고인의 노력과 통찰력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더불어서 경순형님의 연결 다리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미 앞에서 통신송(通神頌)을 쓴 것만 봐도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가 있지 않겠나?”

“맞습니다. 과연 뛰어난 관점으로 명학(命學)의 이치를 새롭게 통찰했다는 것에 대해서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이 책을 제게 주신 운산 스승님의 의도가 새삼 고맙게 생각되네요.”

“운산 선생이야 이미 각 방면의 학문에 대해서 두루 섭렵(涉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고수(高手) 중의 한 분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바인 걸.”

“과연 학문의 고수나 무예의 고수가 서로 통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무기를 갖고서도 실력을 발휘할 수가 있듯이 어떤 학문적인 이론으로도 자연이 이치를 살펴서 판단할 수가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사실 형님도 이미 역술계(易術界)에서는 절정고수(絶頂高手)이시지 않습니까?”

“무슨 말을 그리하는가. 그럴 리가 없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하하~!”

“천문(天文)이나 수리학(數理學) 분야에서 타의 추종(追從)을 불허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대가 크기도 합니다.”

“물론 미천한 공부이지만 그대들이 관심 갖고 이렇게 공부하고자 물어주니 나야 고맙고도 즐겁지. 하하~!”

“이제 조금의 공부가 진행되었음에도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배웠는데, 이후로 나올 이야기들은 또 어떤 보물을 얻게 될 것인지 벌써 설렙니다.”

고월의 말을 듣고 우창은 생각했다. 경순도 한 분야에서 독보적(獨步的)인 존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고월의 말에서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토(土)의 난해한 해석을 도움 받을 수가 있었던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더구나 동서(東西)의 고금(古今)에 두루 통달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박문(博聞)의 능력이야말로 언제라도 활용이 될 수가 있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틈틈이 찾아와서 귀한 가르침을 들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렇게 어리석은 우창도 형님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많이 배우고자 합니다. 아낌없는 편달(鞭撻)을 기대합니다.”

그러자 조은령도 작별하는 분위기라는 것을 눈치 채고서 인사를 했다.

“경순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오늘도 닫힌 눈을 여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고 귀한 가르침을 청할게요. 건강하세요. 호호~!”

“고맙네, 조 낭자도 열심히 공부해 보시게. 반드시 재미있는 풍경을 만나게 될 것이니. 하하~!

세 사람은 그렇게 작별을 하고는 하산 길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