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제3장 심곡자의 문하/ 3. 수학(數學)의 길

작성일
2017-01-04 15:12
조회
1771

[027] 제3장 심곡자(深谷子)의 문하(門下) 


3. 수학(數學)의 길 


=====================

늦가을의 태산은 벌써 서리가 내리는 정도로 차가웠다. 그리고 인시(寅時)는 더욱 싸늘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선잠을 깬 우창은 얼굴을 씻고서 우선 자휴가 일러준 대로 수학의 과목을 배우는 강당으로 들어가니 대략 20명 정도가 앉아있었다. 우창도 말석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에 방장인 도인이 나타났다. 그는 깐깐하게 생긴 품세였는데, 신참인 우창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일어나도록 하고서 자신의 소개를 하라고 한다. 목소리도 카랑카랑한 것이 여간해서는 만만하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는 우창이라고 부릅니다. 수학 과목에 안목을 넓혀보려고 들어왔습니다. 많은 지도편달을 바랍니다.”

이렇게 소개를 하고서 뻘쭘하게 서 있으니까 방장도사가 앉으라고 해서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환영을 한다는 말도 없고, 잘 해보라는 격려도 없는 것이 좀 싱겁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러한 식으로 꾸밈말을 하기로 든다면 끝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공부를 시작하니 혜암도인께서 어째서 이곳으로 보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온갖 의견을 내어놓고서 궁리를 하는 것은 쉽사리 만날 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강사는 부지런히 숫자를 불러댔다. 그러면 배우는 사람들은 자신의 머릿속으로 그 계산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것이지 우창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수학과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였다.

“372?”

“예, 여지정(旅之鼎)입니다.”

“또, 116은?”

“예, 건지대유(乾之大有)입니다.”

“틀렸네. 다시~!”

“예, 건지쾌(乾之夬)입니다.”

수업은 숨 쉴 틈도 없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우창은 그 이야기의 절반은 못 알아들을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 혜암 사부님을 따라다니면서 배운 것은 대부분 상법(相法)종류였기 때문에 지금 공부하는 것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사부님으로부터 배운 술수(術數)라는 것은 기껏해야 단시를 배운 정도가 생각날 따름이었으니 못 알아듣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냥 말석에 앉아서 진행되어가는 이야기들에 귀만 기울이고 있을 뿐이고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많아지자 재미가 고통으로 변하는 와중이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서 아침밥을 먹을 시간이 되자 새벽 공부를 마무리했다. 이제부터는 각자 공부를 하는 시간이다. 우창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서 아까 들었던 이야기를 곰곰 생각해 봤지만,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이 도장에서는 각기 자신의 선배 격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선생으로 삼고서 어려운 것을 풀어가는 것이 공부 방식이라고 하니 참으로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 길이 막막한 우창이 우선 자신을 지도해 줄 선배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도사들 사이에서 누구를 의지해서 공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는데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우창 선생을 뵈러 왔습니다. 계신지요~!”

“예, 뉘신지요. 제가 우창입니다만....”

“그렇소, 내가 우창 선생의 공부를 도와 드릴 선배로 명이 떨어져서 찾아왔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어서 들어오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누구를 붙잡고서 질문을 드려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호는 어떻게 부르시는지요?”

“제 이름은 송무(宋無)라 하는데 고향이 낙안(樂安)이라서 낙안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불러주시면 되겠습니다.”

“낙안 선생의 도움을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오늘 공부방에서 문답한 내용을 전혀 알 수가 없어서 난감했습니다.”

“저도 수리학(數理學)을 공부한 지는 6개월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식도 미천할 뿐입니다. 다만 약간의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라고 여기겠습니다.”

“그럼 우선 제게 뭘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무엇이라도 배우지 않으면 바로 하산을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조바심이 듭니다.”

“우선 우창 선생의 기본 공부를 알아야 하겠으니 수리(數理)에 대해서 알고 있는 대로 말해 보시오.”

우창은 새벽에 수학당에서 토론을 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나서 낯이 간지러웠지만, 솔직히 이야기해야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아는 대로 이야기를 했다.

“우창이 알고 있는 것은 갑기자오9, 을경축미8...”

“흠... 구궁변수법(九宮變數法)이로군요. 나중에 활용할 적에 필요한 것이니 지금은 가만히 넣어 두셔도 되겠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그냥 외워놓으라고 하기에 외웠습니다. 그럼 이제 뭘 가르쳐 주실지 기대가 큽니다.”

“간지(干支)는 아시는지요?”

“아, 갑자(甲子), 을축(乙丑), 병인(丙寅) 정묘(丁卯)....”

우창은 다행히 육갑(六甲)은 외웠던 것인지라 줄줄 읊었다. 낙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멈췄다.

“잘하셨습니다. 기초가 있으셨네요. 그렇다면 오늘은 기문수(奇門數)를 배우도록 하시오.”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갑(甲)1, 을(乙)2, 병(丙)3, 정(丁)4, 무(戊)5, 기(己)6, 경(庚)7, 신(辛)8, 임(壬)9, 계(癸)10 이오.”

“이게 무슨 뜻인지요? 갑은 갑기자오9로 숫자는 9인 줄로 알았는데 또 다른 방법이 있었나 봅니다.

“이것은 기문둔갑(奇門遁甲)을 운용할 적에 사용하는 공식이오. 같은 간지라도 용법에 따라서 천변만화(千變萬化)를 하는 것이 수리학(數理學)의 세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선은 무조건 외워두시오.”

“예? 기문둔갑이라면 이름은 들어봤습니다만,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말로만 듣던 기문둔갑을 배우다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이것은 기문둔갑을 배우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이러한 것이 쌓이면 나중에는 변화도 간단하게 얻게 됩니다.”

“참으로 궁금하군요. 어떻게 그러한 것이 학문으로써 가능한 것인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묻겠습니다. 학술(學術)이란 무슨 뜻이겠습니까?”

“음.... 학(學)은 배울학, 술(術)은 재주술이니까.... 원리를 배우는 것을 학이라고 하고, 그것을 응용하여 적용하는 것을 술이라고 하면 될까요?”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십니다. 기본은 학(學)에서 나오고 활용은 술(術)에서 전개가 됩니다. 그러니까 모든 결과는 학술(學術)에서 나온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론적인 것을 터득하는 것이 수리(數理)이고, 활용하는 것을 술수(術數)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친절하고도 자상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우창은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만 가르쳐 준다면 얼마든지 공부를 해서 해답에 도달할 수가 있겠다는 자신감이 순식간에 생겼기 때문이다.

“급하게 서두르지만 않으면 모두가 가능합니다.”

“그럼 갑은 1이라는 숫자와도 서로 통한다는 의미로군요.”

“그렇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고 난 다음에는 또 지지(地支)에서 사용하는 기본수(基本數)를 외워야 합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읽어내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의 변화라면...?”

“가령 비가 올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9와 10의 동태에 대해서 주시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글자들은 비의 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올 것인가, 적게 올 것인가를 알아내는데 매우 요긴하게 쓰입니다.”

“오호~! 그런 신기한 방법이 있었군요. 놀랍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 것인지를 보려면 숫자 1의 동태를 봅니다. 1이 강력하면 태풍이 되는 것이고, 연약하면 미풍이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천기(天氣)를 살필 수가 있어야 전쟁터에서 병사를 운용할 적에도 실패를 줄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날씨가 더울 것인지를 보려면 3과 4를 관찰하는 것이겠군요. 그로부터 물이 필요할지 부채가 필요할지를 판단할 수도 있겠습니다.”

“참 영민하시군요. 하나를 알려드리면 둘을 통하시니 하하~”

낙안은 유쾌하게 웃었다. 가르치는 자의 흐뭇함이 그 안에 배어 있었기에 우창도 웬만하면 즐거운 마음이 되도록 배려를 해서 답변을 하는 것에서도 신경을 썼다.

우창은 참으로 신기했다. 이렇게 간단한 글자로써 그렇게 대단한 것을 알아낼 수가 있는 것을 왜 진작 알지 못했던가 싶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공부하려고 귀를 곤두세우고 땅에 대한 숫자를 알려주는 것에 대해서도 열심히 익혔다.

“이미 응용이 되시니까 지지에 대해서도 기본수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다. 땅에서는 자(子)1, 축(丑)2, 인(寅)3, 묘(卯)4, 진(辰)5, 사(巳)6, 오(午)7, 미(未)8, 신(申)9, 유(酉)10, 술(戌)11, 해(亥)12입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러한 숫자를 통해서 땅에 대한 변화를 알게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땅에서는 흐르는 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알아내는 방법을 예로 들 수가 있겠습니다. 가령 하늘에서의 1은 바람이 되지만 땅에서의 1이라는 숫자는 물이 됩니다. 전쟁하게 되더라도 물이 없으면 한나절을 견딜 수가 없으니 이러한 것을 미리 살피고 난 다음에 비로소 전쟁을 시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낙안 선생께서는 병사를 조련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시군요. 비유를 드는 것을 봤을 적에 그런 느낌이 듭니다만....”

“맞습니다. 싸움을 피할 수가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 귀중한 생명의 희생을 줄이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방법을 공부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 참으로 큰 뜻을 품으셨군요. 반드시 그 희망이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낙안은 우창의 덕담에 시원스레 미소를 머금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9라고 하는 숫자는 바위 아래를 흐르고 있는 물을 의미하고, 5는 땅속으로 흐르는 물이라는 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땅 위와 땅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방법입니다. 물론 이러한 것을 기초로 해서 수없이 많은 변화를 알게 됩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은 한 예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것이 기문둔갑이라고 하는 학문입니다.”

“참으로 대단하군요. 수학이라는 것이 이렇게 심오하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많은 지도를 바랍니다.”

“우선 이것을 잘 외우도록 하시고, 또 다음에 뵙시다. 그럼 이만 갑니다.”

“고마웠습니다. 낙안 선생.”

우창은 그렇게 선배에 대한 예를 차리고서 공수를 했다. 낙안은 답례하고서 자신의 공부를 하러 갔다. 그렇게 매일 강의가 끝난 다음에 찾아와서 조금씩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인품이나 관상을 생각해 보니까 역시 만만치 않은 대인의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