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제1장 화산의 노도인/ 9. 자초지종(自初至終)

작성일
2017-01-0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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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제1장 화산(華山)의 노도인(老道人) 


9. 자초지종(自初至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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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각을 정리하듯이 석벽의 천장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여쭙겠습니다. 우선 어째서 스승님께서 이러한 처방을 내리셨는지 아직도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혹 천기누설을 하면 안 되는 일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속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증세가 사라져서 그 기쁨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기묘한 방법으로 나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기 때문입니다.”

“딴은... 그렇기도 했겠군. 허허~ 그러면 잘 들어보시게.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이고, 눈만 밝으면 얼마든지 읽을 수가 있는 것이라네. 그 자오검법은 예전에 문헌에서 내가 발견했던 적이 있었네. 그리고 음양오행(陰陽五行)에 관심이 많던 나는 무당파의 태극검(太極劍)과 함께 자오검도 흥미의 대상이었네. 물론 내가 무림인은 아닌지라 검술을 연마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원리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네.”

“아, 원래 태극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셨습니까? 제자가 강호를 유람하던 시절에 다른 고수들은 쉽사리 이겼습니다만 무당(武當)의 태극검을 만나서는 무척이나 고전했었습니다. 소림의 18나한진도 어렵지 않게 물리쳤던 것을 생각하면 괴이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뿐이었을까? 또 대적하기 어려웠던 무당파의 비술이 있었을 텐데? 물론 태극검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말이지.”

진상도가 이렇게 말을 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는 오혜량.

“맞습니다. 정말 스승님의 혜안(慧眼)은 감당키가 불가능합니다. 사실 태극검을 만나기 전에 무당의 팔괘장(八卦掌)과 일합을 겨루게 되었었는데 예전의 고수들을 상대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었습니다. 어쩌면 태극검에게 고전했던 것도 팔괘장에 대한 영향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무당파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이 달랐겠군?”

“맞습니다. 그것은 무슨 이치가 그 속에 있어서입니까?”

“그래서 좀 더 관심 갖고 살피던 중에 돌연 자오검법이 세상에 출현했다는 것을 듣게 되었지. 사실 자오검법은 이미 강호에서 사라진 전설이었으니까 놀랐던 것도 무리가 아니지.”

“그렇게 많고 많은 검법을 다 제쳐두고 유독 자오검법에 관심을 갖게 되셨던 것은 왜입니까?”

“그것은 검법의 이름에 있었지. 도학(道學)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이름의 검법이 나온다는 것은 세상이 뒤집힌다는 것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것이었으니깐. 마치 여름과 겨울이 같이 나타났다는 것과 비슷한 말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아...... 그러셨군요. 제자는 그런 것은 전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동정호에서 그 해답의 열쇠를 아우에게서 발견할 수가 있었네. 그 자오검의 진인은 아마도 틀림없이 자네와 같은 증세로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네.”

“그렇다면......”

“그렇다네, 자오검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연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네. 즉 자오(子午)라는 것은 물과 불이 정면으로 충돌을 하고 있는 형상이네. 이것은 무당파의 태극검과는 완전히 다르다네. 태극(太極)은 비록 이질적(異質的)인 기운이기는 하지만 서로 어우러지면서 음양의 조화를 이뤄내기 때문에 연마하면 할수록 더욱더 자신의 몸은 상하지 않으면서 깊은 상승내공의 경지로 빠져들게 되어있다네.”

“음......”

“그러니까 태극검법으로 살상을 하는 것으로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네. 자네는 혹 무림을 쟁패할 당시에 태극검과 겨뤄봤을 적에 뭔가 생각나는 게 있는가?”

“예, 당시에 맹주를 뽑는 자리에서 제자는 무당의 14대 장문인 태을장로와 대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태극검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다른 검법과는 달리 온유하고도 강강한 것이 저의 자오검과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생각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렇지. 태극검은 바로 그 음양(陰陽)의 이기(二氣)를 가지고서 만들어진 검이네. 말하자면 모든 검의 원조라고도 할 만하지. 이에 비해서 자오검은 수화의 이기로 만들어진 검법이네. 언뜻 생각하면 비슷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많이 다르다네.”

오혜량은 이렇게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는 진상도가 새삼 다시 보였다. 무림에 대해서는 칼을 잡아보지도 않은 서생(書生)이 이토록 깊은 경지의 검법을 논한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오혜량은 계속 침을 삼키면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동굴 속의 울림과 함께 귀를 기울였다.

“자네의 자오검은 이미 뭔가 빠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네. 실로 음양이라는 것에는 태음(太陰), 태양(太陽), 소음(少陰), 소양(少陽)이 두루 포함되어 있는 것이네. 만약에 이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이미 음양이 아닐세. 그런데 자네의 자오검은 태양과 태음만이 존재하네. 이미 소음과 소양은 없고 그야말로 충기(沖氣)만 담긴 채로 살기(殺氣)가 가득한 검법으로 태어난 것이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서 만들어진 검법을 연마하는 사람은 결국 불구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치라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음양오행의 이치가 신비롭게 전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오혜량은 문득 그 대추나무 장원의 병든 아들이 생각났다. 문득 자신의 고통을 떠올리자 연상 작용으로 생각이 난 것이다. 그리고 그날 진상도가 그 댁의 큰아들이 병이 나았느냐고 그 머슴에게 물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물었다.

“참, 그 대추나무의 장원에서 그 댁의 큰아들이 병이 들었다는 것을 안 것은 무슨 비술인지 아직도 궁금합니다.”

“그런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는구만. 구태여 물으면 말이야 하겠지만 자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이야기라네.”

“그래도 좋습니다. 그냥 궁금한 것은 못 견디는 천성인지 자꾸만 그러한 대목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해줌세. 그 나무는 대단히 높은 나무였네. 그 나무는 주역(周易)의 팔괘(八卦)로 풀이해 보면 중뢰진(重雷震)으로 장남(長男)에 해당한다는 해석이 되네. 그래서 그 집의 장남과 반응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네. 이제 시원한가?”

“아니, 도대체 그 주역이라는 것이 뭐기에 그러한 것을 알 수가 있단 말입니까? 참으로 신기하군요.”

“그런가? 이 정도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일세. 주역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을 정도라네 그리고 이 방면으로 탁월한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지. 물론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만나게 될 걸세. 하하.”

“아니, 스승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또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그런 분은 과연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는지 참으로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천중천(天中天)이라지 않은가. 허허허~”

오혜량은 또 한 번 학문의 세계와 역학의 영역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궁금한 마음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그런데 그날 동정호에서 자네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그 이유를 잘 몰랐을 것이네. 그날 자네를 보면서 그 자오검의 치명적인 독소를 이해하게 되었는데, 한 가지가 해소되면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네.”

“그게 무엇이었는지요?”

“그것은 바로 그 무술을 연마할 적에는 어째서 그러한 독소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인가 하는 것이네. 이러한 의문을 정리해 보느라고 한참 생각을 했던 것이네. 그날 내가 자네를 응시하고 있을 적에 나는 그러한 생각에 잠겨있었지.”

“그때 스승님께서는 어디에서 연마했느냐고 물으셨지요.”

“그런데 자네에게 어디서 무술을 연마했는가를 듣고서는 그 의문이 해소되었네. 장백산에서 연마했다고 했지?”

“예, 맞습니다. 아주 숲이 우거진 깊은 산속이었습니다.”

“나는 자네가 장백산에서 무술을 연마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이유를 알고서는 자네의 병을 고칠 방도를 생각하게 된 것이라네. 그런데 그 병을 고치는 데에는 오래 묵고 단단한 나무가 필요했었네. 그 나무가 있어야 자네의 몸을 감싸고 있는 수화(水火)의 맹독(猛毒)을 중화시킬 수가 있었기 때문이지.”

“그게 바로 그 대추나무였군요.”

“그 나무를 예전에 우연히 발견했었는데, 자네를 본 순간 자네는 하늘이 살리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그래서 자신 있게 그 나무를 구할 수가 있었다네. 후로는 자네가 알다시피 이렇게 된 것이고. 하하.”

“그래도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요.”

“그래, 처음에 자오검을 수련할 당시에는 삼림이 빽빽한 숲속이었을 것이네. 그 장백산의 소나무 숲은 천지에서 흘러나오는 감로정(甘露精)의 기운을 머금고 자란 나무이기 때문에 그 기운이 특별하지. 또한 그 지역의 사람들은 그 나무를 춘양목(春陽木)이라고도 부른다네. 그야말로 봄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나무라는 뜻이지. 다른 산의 나무와는 그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는 말일세.”

“그런 것도 알고 계십니까? 놀랍습니다.”

“그 나무들이 뿜어내는 기운을 흡수하면서 자오검을 연마하는 동안에는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중요한 것이 있는데, 장백산은 하늘을 향해서 우뚝 솟은 형상이 바로 목(木)의 산이라네. 그러니까 산의 기운도 목산(木山)인데 또 그 산에서 나오는 정기를 흡수하면서 자란 나무가 뿜어내는 목의 기운이라. 이렇게 생각하면 역시 장백산의 나무는 대단한 목 기운이 서려 있었던 것이네.”

“왜 그렇지요?”

“그 이유는 간단하네. 원래가 천지(天地)의 자연(自然)에는 다섯 가지의 기운이 떠돌고 있다네. 이것이 기운의 상태가 되면 오기(五氣)라고 하고, 물질로 화하면 나무, 불, 흙, 암석, 물이라고 하는 것이지. 그런데 자오검은 수화(水火)의 대립에서 원리를 얻은 검법이었네. 그렇다면 수화의 대립을 해소하게 해주는 조건으로는 목(木)의 성분이 필요하게 되네. 그 이치는 오행의 상생법(相生法)에서 나오는 것이라네.”

“그 이치가 심히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 간단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어렵지 않네. 물은 나무를 기르고 나무는 불을 살리는데, 중간에 나무가 빠지면 물이 불을 만나서 공격하게 되고, 불도 자신이 살려고 반항하게 되어서 영원한 투쟁으로 이어지는 것이니까.”

“아, 매우 간단하군요. 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네의 사부는 아마도 그 이치를 죽기 직전에야 깨달았던 것 같네.”

“제자는 직접 전수를 해 준 사부(師父)를 만난 적이 없는데요?”

“자네는 장백산의 그 석실의 벽에서 검결(劍訣)을 얻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예, 그렇습니다. 그때 석벽에서 검결을 얻었지요.”

“바로 그 검결을 남긴 사람이 자네의 사부라네. 그 사람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아서야 비로소 자오검의 비밀을 알고서 자신의 고통을 고치려고 장백산을 찾은 것이었을 테지만 이미 수화의 독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든 후가 되어서 어려웠을 것이네.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 아마도 자네의 스승은 몸이 반쪽은 검고 반쪽은 붉은 병으로 임종을 맞이했을 것일세.”

“옛?”

오혜량은 소스라쳐 놀랐다. 옛날 그 석벽에서 마지막으로 있던 한 구절의 도저히 해석할 수가 없었던 글이 있어서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것이었기 때문인데, 지금 진상도가 그 뜻을 해석해 주었기 때문이다.

009-1

천지수유수화기(天地須有水火氣)
일검포함천하유(一劍包含天下遊)
강호무림일장중(江湖武林一掌中)
반흑반적통중말(半黑半赤痛中末)



그 글은 ‘반흑반적통중말(半黑半赤痛中末)’ 이라는 글귀였다. 그리고 그 뜻은 앞의 구절과 아무리 연결을 시켜 봐도 요령부득이어서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진상도가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넣어서 풀이해 보면 ‘온몸이 반은 검고 반은 붉은 상태로 고통을 받다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보면 해석이 가능하다.

“이제 뭔가 마음에 짚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최후의 임종에서는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이미 수화의 독소가 몸에 만연했다는 결과이네. 수(水)는 그 빛이 검고, 화(火)는 그 빛이 붉네. 그런데 그러한 무공으로 연마되어 있는 몸은 서로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를 못하고서 두 쪽으로 분리가 된 채로 그 독이 발작해서 죽는 것이라네.”

“오행의 생극법칙(生剋法則)이라...”

오혜량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