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 일할머리 없는 친구가 동(動)자 타령을 하는 바람에..

작성일
2014-12-19 08:37
조회
3948

[658] 어느 일할머리 없는 친구가 동(動)자 타령을 하는 바람에...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계룡산의 기온이 영하 8도입니다. 꽤 쌀랑~하네요. 그래도 얼어죽진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대만에서는 한파로 영상 8~9도에서 26명이 동사했다는 뉴스를 봤거든요. 마침 대북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래미가 걱정되어서 괜찮느냐고 했더니만 "영하20도 까지는 견딜만 해요~!"라잖아요. 역시 추위에 강한 한국인. ㅎㅎㅎㅎ

 

1. 영화 「오일의 마중」이 재미있다고 했더니....


발단은 이렇습니다. 가끔 연락하는 친구에게 공리가 주연한 「오일의 마중(歸來)」이 재미있더라고 했더니만 그것을 보고 나서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 영화에서 동(動)의 의미를 봤다는 거지요. 말인즉....

요즘 한참을 궁성인동을 궁리하면서 動이라는 글자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動이라는 글자속의 重은 무겁다는 뜻이 아니라 겹친다는 뜻으로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力자는 에너지 또는 파장을 의미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음양으로 서로 상대하는 것이 있어(重) 그 사이가 파장(力)으로 연결이 되니 그걸 動이라고 했나?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스승님 따라하기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난생처음 해보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까면 깔수록 묻어나오는 담백함이...

요로코롬, 기특한 생각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제 점점 글자파먹기의 영역까지도 생각이 뻗치는가 싶어서 기특하기도 하고, 좀더 파주면 더 재미있어 하려나 싶은 당근지심에 약간의 글자놀이를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도 글자를 볼 적에 그냥 사전적인 의미만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글자의 조형(造形)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지요.

동자

역시 글자는 큼직하게 놓고 봐야 뭔가 보이지요? 움직일 동입니다. 다 잘 아시는 글자네요. 바로 앞에 올린 글에서 「점기가 동했는가 동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설명의 동(動)도 같은 글자로군요. 하긴.... 그래서 동자를 보고서 놀아 볼 마음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動은 다시 중(重)과 역(力)으로 나눠지는 구조입니다. 즉 두 글자가 모여서 動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움직이는 힘은 이 力자의 의미에 충분히 드러났다고 봐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重자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합니다.

 

2. 무겁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면....


중자

이렇게 생겼습니다. 한자는 그림이기도 하고 글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그림으로 놓고 살펴볼 때도 있고, 또  글자로도 보이기도 합니다. 그림에 가까운 것은 상형문자의 범주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무거울 중은 글자인가요? 아니면 상형문자일까요. 여기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우선 떠오르는 그림이 있어서 붙여 넣습니다.

kompsat-2

이게 뭡니까? 인공위성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하면 대한민국의 기술로 만든 아리랑이랍니다. 완성이 된 것인지 아직 만들고 있는지는 낭월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첨단의 기술로 만들어 내는 그림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낭월의 눈으로 봐서는 이 구조물이 重자를 모델로 삼았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지요. 그렇게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그냥 산골화상의 억지라고 생각이 되시나요. 하하~

모양새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설명하는 사람이 불친절해서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결코 친절한(?) 해설자인 낭월은 즉시로 사과말씀을 드리고 바로 비슷하게 고쳐놓습니다.

옆중사선

자, 이만하면 꽤 친절한 편이지요? 하하~

重을 보면서 인공위성을 떠올린 것은 순전히 그림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완전 닮았지요? 그래서 이렇게 인공위성과 重을 나란히 놓고서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가운데 밭전(田)은 인공위성의 내부기관이 분명합니다. 그 안에는 또한 도(十)가 있겠군요. 그리고보니 重은 오도(五道)인가요? 자세히 들여다 보니까 도가 다섯 개네요. 5를 보는 순간, 또 오행(五行)이 겹칩니다만 여기까지 가면 인내심이 부족하신 벗님들께서 하품을 하실까 염려하여 염로(念路)를 차단합니다. 하하~

그런데 인공위성이 다 저렇게 생긴 것은 아니라고 가르침을 주시는 벗님도 계시겠네요. 모두가 저렇게 重자형으로 생겼으면 참 좋겠는데 가끔은 생뚱맞게 생긴 녀석이 있어서 또 생각하게 만든단 말이지요.

20120517-5

그러니까요..... 이렇게 생긴 녀석은 또 왜 이모양이래요.... 참 내....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그렇게 생긴 것에는 그만한 이치가 있을테이니 그대로 수용하는 수밖에요. 그래서 위성기술자를 갈구지 말고 글자를 찾아보는 것이 속편하리라고 생각이 되어서 다시 글자를 뒤져봅니다. 그런데 새로운 글자를 뒤질 것도 없지요뭐. 한쪽 날개만 잘라내면 되니까요. 자, 그렇게 해서 찾은 글자입니다. 짜잔~~~!

리자회전

어쩌겠어요. 이렇게 생긴 글자가 있으니 말이지요. 이것만으로는  거리리(里)가 됩니다만 상당한 거리에서 돌고 있는 위성이므로 뭐 전혀 쌩뚱맞은 것만도 아니겠습니다. 하하~

위성을 찾다가 보니까 또 다른 형상으로 된 것도 있네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Cubesat

이것이야말로 생긴 모양새가 里와 흡사하네요. 큐브위성이랍니다. 큐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가 싶기도 하네요. 리(里)가 전(田)과 토(土)로 된 글자인데, 박스로 생긴 것은 田이고 네 발은 土이니까 말이지요. 또 딴지 나오시지요? 네 발이 왜 토냐고요. 예, 이해합니다. 그래야 발전하시지요. 매우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리자변형

土는 사방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토는 토양이고, 토양은 땅이고 땅은 네모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네모를 이루는 뼈대가 토와 닮았다고 해서 너무 생떼라고는 하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후다닥~~~!

 

3. "重은 서있는 위성에 불과하잖여?"


그렇습니다. 위성이 가만히 있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땅위에 있을 적에 모습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이 우주를 떠돌 적에는 어떻게 되나요? 여기에 속도가 붙는 것이겠지요. 속도는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힘이고, 실상 重의 위아래에붙어있는 것은 에너지를 확보하려는 집광판인 것으로 보이니까 그렇게 이해를 합니다. 그로 인해서 얻어진 것으로 움직이니 비로소 동(動)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흐~

지나는 길에, 위성은 얼마나 빠른 속도의 힘으로 움직일까요? 찾아보니까 인공위성의 속도는 1초에 7.9km로 움직인다는군요. 그보다 늦게 움직이면 지상으로 추락하게 되고 더 빨리 움직이면 우주로 튕겨 나간답니다. 그러니까 우주선은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내달려야 지구의 궤도를 벗어날 수가 있겠네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초속 11.2km가 되면 우주여행이 된답니다. 네이버는 참 똑똑합니다. 하하~

가만히 있으면 重이고 움직이면 動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창고에 들어있는 위성은 의미가 없는 것이고 허공을 돌면서 뭔가를 할 적에 비로소 위성의 역할이 살아나는 것이므로 動의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이지요.

아울러서 동하느냐 동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포수가 꿩을 잡으려면 개를 풀지요. 왜 그런가요? 개가 뛰어다니면 놀란 꿩이 동하기 때문입니다. 동하지 않으면 꿩을 잡을 수가 없거든요. 이렇게 동(動)과 부동(不動)은 생사를 가름하는 만큼의 큰 차이가 있는 법입니다. 인공위성만이 아니라 지구의 모습에서도 重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럴싸 한 그림을 찾아 봤습니다.

대기층

겹겹으로 이뤄져있는 대기층을 보면서 천연의 重을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렇게 감싸고 있는 힘을 우리는 중력(重力)이라고 부르니 중력이란 결국 동(動)이라는 의미와 서로 같음을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또 재미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네요.

태양계

이렇게 겹겹으로 되어있는 행성들이 태양[田]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먼 행성[千]과 가까운 행성[土]이 모두 중심을 향하고 있다는 의미로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논리적으로는 다소 미흡하더라도 재미로는 충분히 즐겨 볼 수 있는 모양이기도 하니까요. 하하~

 

4. 마음도 그렇게 생겼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마음은요? 마음도 자주 동하면 원숭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지므로 부동심(不動心)을 갖고 살라고 하시잖아요.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누구도 나를 해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특히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자는 그 마음이 경거망동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므로 動의 한 글자가 갖는 의미는 상당히 다양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 점괘조차도 동하면 해답을 볼 수가 있지만 동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알아낼 수가 없으므로, 열자(列子)가 제자의 호들갑으로 기가 막힌 점쟁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데려오라고 해서 처음에는 동심(動心)을 보여주니 그 점쟁이가 말하기를 "너희 사부는 곧 돌아가실테니 장사지낼 준비를 하라"고 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다음 날에 다시 데려오라고 하고는 부동심을 보여주니까, 그 점쟁이는 얼굴이 하애졌다지요. 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아, 출처는 장자입니다.

정부의 일이나 청와대의 일이나, 혹은 땅콩항공의 일들로 인해서 늘 마음이 움직이곤 하지요? 그렇지만 마음만 움직여서 화기(火氣)가 가슴 속에 가득하게 되면 건강상 매우 나쁜 작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일에 대해서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자고 낭월도 스스로 다스리고 있습니다. 지켜보셔서 알겠지만 결국은 칼자루를 잡은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괜히 뇌화부동해서 마음만 시끄러워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다시 장자(莊子)의 생각이 시공을 넘어서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네요. 권력자...... 그냥 웃습니다. 여하튼 지혜롭게 사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동심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부동심

마음은 움직이지 말고 몸만 많이 움직여야 하겠네요. 허접한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추가] 제2신 - 다시 날아온 일할머리없는 친구의 動 이야기를 읽고....


앞의 1신을 읽고서는 그냥 그렇게도 생각해 보겠거니...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다시 날아온 소식에는 상당히 색다른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네요. 이건 일할머리 없는 친구의 생각이 아니라 동철학자(動哲學者)의 관찰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보내온 내용을 그대로 추가합니다.

 

動이란 놈이 저한테 덤벼들기에 좀 더 살펴보았습니다. 움직임을 파고 들어가는 건지 글자를 파고 들어가는 건지 모르지만...^^. 

겹치는 것(重)이 힘(力)을 만났을때 움직인다고 했는데 디스커버리 채널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한번쯤은 보셨을 법한 타코마협곡 다리붕괴장면이 떠올라서요. 여기서 원인은 공기의 파장증폭에 의한 것으로 처음에는 알았지만 나중에 결론내린 것은 공기탄성적 펄럭임(aeroelastic flutter)라고 합니다. 무슨 태풍이 분 것도 아니거든요... 쉽게 얘기하면 바람 혼자서 다리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고 바람의 진동수와 다리자체의 진동수가 일치하면서 상승작용이 일어나서 다리가 붕괴된 것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주의해서 봐야할 것은 가만히 있어 보이는 다리가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진동수가 있다는 것이고 이걸 좀 더 이해하려면 양자역학까지 나가야하니... 그건 제 영역이 아니라 여기까지.^^.

아무튼 그 사고 이후부터는 바람이 만들수 있는 진동수와 다리의 진동수가 일치하는 일이 없도록 설정해서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동영상을 보시면 바람이 다리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다리가 바람과 격하게 호응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서양과학도 이제 그걸 알았다는 것이고 단지 사람눈에 보이지 않을뿐이지 세상에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된다면 풍수에서 이야기하는 동기감응, 사주에서의 궁성인동, 오주괘해석에 자주 등장하는 복음을 조금 달리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은 것이 겹치면 자석의 N극과 N극이 만나서 밀치는 정도가 아니라 인동하여 움직이는 정도가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거지요. 물론 필요조건입니다. 반드시 커진다는 충분조건이 아니라... 암튼 저 타코마 다리처럼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앞으로 쉽게 납득이 될 것 같습니다. 

움직임을 이해하려고 궁리하다보니 비지니스에서 활용할 뭔가 맥을 잡은 것도 같습니다. 움직임을 위해서 기업들이 엄청 돈을 쓰고 있거든요. 광고같은 것도 움직임을 위해서니까요.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시장을 움직이고 등등... 그런데 움직임을 위해서 필요한 두가지 조건이 動이라는 글자속에 있었다니... 그것참 아이러니입니다.

Tacoma_Bridge_Puget

이렇게 멋진 다리였다는데....

Image-Tacoma_Narrows_Bridge1

바람도 없는 날에 마구마구 흔들렸다는 이야깁니다.

bridge_l

급기야 그 다리는 무너져 내렸답니다. 마침 다리의 전문 교수가 자료를 위해서 찍는 카메라에 고스란디 담겨서 그 장면을 생생하게 볼 수가 있었군요.

엇~!!

이건 전혀 다른 이야기잖여.... 싶었습니다. 타코마다리에 대한 이야기는 네이버에 검색을 해도 나오니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이 글을 읽자마자 약간 남아있던 잠쪼가리들이 휘리릭~ 날아가버렸습니다. 말똥말똥.... 상념에 빠져들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지난 글에서 또 이어집니다.

5. 그렇다면 중(重)을 다시 봐야 하겠는데....


힌트는 항상 깨달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인가 싶습니다. 이중으로 움직인다는 의미가 원래 重에 들어있거든요. 겹친다고 설명은 되어 있습니다만 그것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같은 말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중

접두사로 쓰일 경우에 무엇이 겹쳤거나 둘이 합쳤음의 뜻이라고 된 것이 갑자기 크게 다가옵니다. 예를 들면 중복(重複)과 같이 사용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친구는 그 겹친 것에 대한 의미를 물고 늘어져서 타코마 다리까지 갔던가 싶네요. 다만 낭월은 여전히 重에 머물러서 다시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그러자 글자가 서서히 요동을 치면서 변하는 것이 보입니다.

움직이는동세로

외부에서 진동이 들어오는 것은 위의 빨강색으로 나타냈습니다. 원래 바깥의 환경의 변화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되면 내부에서 변화가 생깁니다. 즉 그 외부의 진동에 공명(共鳴)하는 내면의 어떤 파장이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내면에서 그에 공명하여 반응하는 것을 파랑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중간을 이어주는 통로는 물론 노랑색이지요. 색의 선택에도 나름 의미를 부여해 봅니다. 눈치빠른 벗님은 감을 잡으셨으리라고 짐작하면서... 흐~

안팎에서 일어난 진동의 변화는 내부의 센터[田]에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들어온 곳으로 되돌아 가는 것은 모든 것은 출발점을 돌아가는 속성으로 인해서라고 보면 되지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처도 생기고 깨달음도 생기고 또 진화를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중중

살아가노라면 수없이 많은 진동과 파장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때마다 희노애락을 동반시킬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만들어 본 그림입니다. '뭣도 하면 는다'고 하더니만 글자놀이도 자꾸 하니까 꾀가 솔솔 생기기도 하네요. 이해에 도움만 된다면 이 정도의 노력이야 충분히 그만한 댓가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여인에게 어느 멋진 남자가 눈짓을 보내면 그 파동이 가슴에서 소용돌이를 일으켜서 사랑을 키울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하겠고, 윗층에서 일어나는 소음으로 인해서 아랫층 아지매가 큰 파장을 받아서 쫓아올라갔다가 세상을 하직할 수가 있는 것도 또한 마주치게 되는 손뼉과 마찬가지로 모두 중(重)의 이치 안에서 벌어지는 파장놀음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이것은 깨달음의 진동이 될 수도 있고, 분노의 파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면에서 분노의 파장에 반응하는 인자(因子)가 없다면 아예 내면에서 분노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뉴스에서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분노의 파장이 내면에서 여운을 남기는 것을 느끼면서 생각합니다.

'아직도 무념무상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구나....'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렇게 들어온 파장과 내면의 파장이 서로 반응하는 결과물을 유추할 수가 있다면 더욱 재미있겠네요. 낭월은 그것을 점기(占機)라고 이해를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점기란 결국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기 전에 미리 그 전조현상을 읽는 것일게고 빨간 파장과 파란 파장이 얼마만큼의 힘[力]으로 마주치느냐에 따라서 결과치도 예상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해석하는 연장으로 오주괘를 활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어가 봅니다. 생각에는 정애물이 없으니까요. 하하~

문득, 떠오르는 한 생각....

부처에게 자신의 제자를 빼돌렸다면서 분노한 스승이 찾아와서 악담을 퍼부었을 적에 부처는 전혀 분노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부처에게는 분노에 반응하는 인자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인가요?

오늘은 멀리서 동상(動想)에 잠긴 친구로 인해서 중(重)을 다시 바라보게 된 수확이  새벽부터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뭔가 정리를 한 번 더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전해드리려고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벗님의 연구에 미동(微動)의 인자가 되었으면 고맙겠습니다.

 

2014년 12월 19(+20)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