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 이전(移轉)현상과 유전(遺傳)현상

작성일
2007-12-22 16:17
조회
7357

제377화 이전(移轉)과 유전(遺傳)


 


 


선거는 다 하셨겠지요? 대통령이 바뀌게 되니까 역사에 대해서도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네요. 그리고 그 중에는 이전(移轉)이 되는 것과 유전(遺傳)이 되는 것이 있을 것으로 보면 되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우선 용어의 뜻에 대해서 정리를 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전(移轉)이라는 것은 이쪽에 있던 것이 저쪽으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고 이해하면 되겠고, 유전(遺傳)은 이쪽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을 저쪽에도 하나 만든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해 놓으면 혼란이 없지 싶습니다.


명리학(命理學)의 관점에서 생각을 해 봅니다. 이전이 있고, 유전이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것은 진리(眞理)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이해를 하면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무엇보다도 학문(學問)은 모두 유전(遺傳)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뭔가를 얻어서 발전이 된 상태를 그대로 다시 계속해서 이어가면서 발전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이 그대로 축적되어서 다음의 세대 혹은 제자(弟子)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전달되기 이전의 상태는 그대로 있으면서 같은 모양의 형태를 또 하나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는 과정도 같은 것으로 봐서 무리가 없겠습니다. 많은 영역에서는 이와 같은 형태의 유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면 타당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전의 형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물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 이전의 의미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령 부동산의 경우에도 주인이 바뀌는 것이라고 하겠고, 자동차의 경우에도 사용을 하다가 팔게 되면 다시 사는 사람은 이전을 하게 되니 이러한 것이 모두 이전에 해당하는 것이며 유전과 같은 형태는 아니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무형의 지식(知識)은 유전(遺傳)이 되고, 유형의 물질(物質)은 이전(移轉)이 되는 것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무형의 경우에도 유전이 되지 않고 이전만 되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러다가 영혼의 문제를 생각해 봤습니다.


즉 신(神)은 사람에게 빙의가 되었다가 그 사람이 죽으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이전이 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서 달라이라마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봤습니다. 한 평생을 살다가 육신의 수명이 다하게 되면 영혼은 다시 다른 육친을 찾아서 옮겨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전이의 형태라고 이해를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면 영혼도 하나의 물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는 행동을 봐서는 물질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학문이나 지식은 유전이 되지만 영혼은 이전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한 것은 같은 성질의 그 무엇이 형체를 바꾸거나 주인을 바꾸면서 흘러다닌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나그네라고 하는 말도 떠올려 보면 흘러 다니는 형태의 이전하는 것으로 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느냐면, 사실은 재미있는 사실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할머니가 신체의 특별한 부위를 수술해서 사람의 질환을 고치는 능력을 갖고서 수 십 년을 실력을 발휘하여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젊은 여성에게 그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나서는 자신은 그 후로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유전의 형태가 아니고 이전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과연 그럴 수가 있는 것일까요? 그래서 곰곰 생각을 해 봤던 것입니다.


혹시, 그 할머니의 능력이 자신이 연마해서 얻은 지식의 영역에 있는 기술(技術)이 아니고, 어느 영혼이 자신의 몸을 통해서 발휘하던 능력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기술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서 다시 새로운 몸을 얻어서 기술을 발휘 할 수가 있을 것이고, 그 동안 빌려서 사용하던 할머니는 헌 자동차를 팔아버리고 새 차를 사는 것과 같은 형태의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현상은 신점(神占)을 하는 경우에도 나타 날 수가 있다고 합니다. 즉 자신이 신을 부려서 유명해졌는데, 어느 순간에 딸(혹은 아들)이 신을 받으면서 자신은 일도 없고 손님도 없고, 그래서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자신에게 의지해서 일을 하던 신이 딸에게로 옮겨가면서 자신과의 교감은 끊어져 버린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하면서 느끼는 것은 과연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는 논리’가 진리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즉 스스로 노력을 통해서 자연을 이해하고 스스로 습득한 과정에서의 얻은 지식(知識)은 자신의 소유가 되면서 남에게 전달을 해 줄 수도 있습니다만 그냥 오다가다 얻은 기술(技術)은 자신도 그 원리를 모른 채로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그 기술을 잃고 말게 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생각을 해 본다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접하게 된다면 그 원리와 응용을 철저하게 해부하고 곱씹어서 내용의 핵심을 파악하지 않으면 확실하게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또한 생각을 해 볼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아마도 ‘오리지널’과 ‘라이센스’로 구분을 할 수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남의 기술을 빌려다가 사용하는 것은 원리는 알 수가 없고 결과물만 찍어내는 것이니 이것을 라이센스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물론 기술 사용료는 별도로 지불을 해야지요.


그렇다면 학문의 세계에서는 원리에 대한 이치를 잘 설명해 줘야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결과만 알려주는 것은 영원히 그 사람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공부를 할 적에도 이러한 점을 살펴서 내가 공부하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을 해 봅니다.


낭월의 공부가 늘 원리를 추구하는 방법을 취하다가 보니까 때로는 무척이나 남들보다 뒤쳐지고, 그래서 늘 허더대는 것도 같습니다만 그래도 이러한 생각들을 해 보면서 스스로 공부하고 자연을 이해하는 과정은 헛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벗님의 공부는 어떠실까를 또 생각해 봅니다. 오리지날의 원리를 얻어서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고, 혹 힘이 부족해서 뛰어난 기술을 라이센스 받을 적에는 확실하게 그 원천기술도 함께 전해 달라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아마도 공업화로 나가는 중국에서도 이러한 점에 대해서 무척 예민하게 작용을 할 것으로 봅니다. 다만 학문의 과정에서도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은 동짓날이네요. 이제 심리적으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후 3시 8분이라고 하니까 이제 4시가 된 것이니 분명히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을 이렇게 자연을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잠시 여유를 즐겼습니다. 또 밀린 일들이 파도처럼 달려드네요. 그 동안 나름대로 쉰다고 쉬었습니다만 아직도 개운치는 않은 것이 날씨 탓도 있는가 싶습니다. 2~3이 지나고 나면 다 좋아지려니 하고 흐릿한 겨울 하늘과 함께 산보를 나가볼까 싶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007년 12월 22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