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따라하기

작성일
2000-07-05 00:00
조회
5239
60. 따라하기(또는흉내내기)

 


제60화-따라하기"



 

1.
옛 이야기 한 토막


 


 

예전에
아는 것이라고는 논어와 맹자뿐이고 손에 익은 것이라고는 붓자루와 책장 넘기기가 전부인
그야말로 샌님 선비가 한 사람 있었더란다. 보통 그를 박선비라고 불렀는데,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니 낭월로써는 알 바가 없고 그냥 글이나 읽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만 짐작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열심히 글만 읽었지만, 현실은 냉정해서 벼슬을 할 기회는
도무지 주어지지 않았고, 가난한 선비를 뒷바라지하는 아내를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염치가 없어서 나중에는 그만 글공부를 집어치우고 농사일이라도 해서 처자식을 멕여
살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을 했던 모양이니 그래도 염치는 있었던가 보다.


 

하기사
글을 읽던 사람이 할 수가 있는 것이 벼슬 말고는 농사일이 전부일 것이다. 허기사 허생이라는
사람은 글을 읽었지만 타고난 상관과 겁재와 편재의 능력을 발휘했음인지 매점매석과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서 장사로 성공을 했다지만 그것도 상관이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이지 이 박선비는 그대로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골샌님이니 무슨 수단이
있어서 그렇게 장사를 한단 말이며, 또한 선비의 체면에 농사를 하는 것은 천하의 근본이라고
하여 그런 대로 체면의 유지라도 되었지만 장사를 하는 것은 상것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하는 묘한 선민의식이 있어서 때려 죽여도 장사를 할 마음은 들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그는
그렇게 남부여대(南負女戴)로 이고 지고 어느 이름도 모를 시골 촌구석으로 도망을 치듯이
이사를 했다. 그리고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다 할 요량으로 부지런히 노력을 해서
농사일을 배워나갔다. 그런데 그 일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어서 남의
땅을 빌어서 농사를 해보지만 늘 소작료를 내기도 바빠서 언제 안정되게 가정을 꾸미고
다시 글을 읽을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자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뭔가 신통방통한
방법이 없겠느냐는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으니 결국은 글을 읽은 값이 나오는
모양이더라.


 


 

2.
흉내내는 박 선비


 


 

이제
아무도 그를 박 선비라도 하는 사람이 없었고 자신도 스스로를 선비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박서방으로 불러주기를 원했고, 자신도 그것이 편했으며 동네 사람들도 그의 참
이름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고 실은 아무도 그러한 것에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더 옳을 것이다.


 


선비는 우선 동네에서 가장 농사를 잘 하는 사람을 곰곰 생각 해봤다. 가을도 깊어 가는
느즈막에 추수한 곡식은 모두 소작인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다시 겨울이나 겨우 날 정도의
수확을 쳐다보면서 밝은 달만 애처롭게 응시하려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 내렸다. 에고......
먹고 사는게 뭔지.... 참 서글픈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달리 신통한 수가 없었으니 과연
누가 농사를 잘 하는지를 생각해서 내년부터는 그의 행동을 따라서 해볼 작정을 세웠던
것이다. 물론 글줄이나 읽은 선비의 체면이야 이미 구겨진지 오래이다보니 창피할 것도
없는 셈이고, 그래서 이왕 버린 몸이니 빨리 돈이나 벌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곰곰 밤을
새워서 고민을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그 동네에서는 초시어른 댁이 가장 농사를 잘
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고, 같은 땅에서 농사를 지어도 그 댁의 수확은 가장 알차고
결실이 잘 되었던 것을 떠올렸다. 이것도 농사꾼 3년만에 깨달은 소식인 셈이다.


 

처음에는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했고, 그깟 농사꾼이 하는 일이 별 것이 있겠느냐고
생각을 하고 우습게 여겼는데, 이게 한해 두해 흘러가면서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고 실은
시계보다도 더 정밀한 뭔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정신이 바짝 들어서
지금 곰곰 그 동안의 경과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무아지경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궁리를 한 끝에 결국 초시에 급제한 영감이 있는데 그 댁의 농사가 가장 좋은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내년에는 그 댁에서 하는 대로 따라서 그대로 해보려고 작정을 하고서
잠자리에 들었다.


 


 

3.
이윽고 봄은 돌아 오고....


 


 


서방은 초시 댁의 머슴이 논을 갈면 자신도 논을 갈았다. 초시 댁 머슴이 거름을 내면
자신도 거름을 뿌리고, 머슴이 논두렁을 지으면 자신도 따라서 그대로 했으며 심지어는
초시 댁에서 새참을 먹으면 자신도 비로소 새참을 먹을 정도로 철저하게 따라서 하는
농사가 된 것이다. 그렇게 하자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이 무심코 넘기다가는 나중에는
그렇게 따라서 하는 것을 보고서는 비웃기도 하고 그냥 재미로 지켜보기도 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이미 작정을 한 이 박선비는 오로지 초시댁의 움직임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일년을 보낸 것이다.


 

그래서
이윽고 결실의 시간이 되었다. 당연하겠지만 초시 어른이 추수를 하는 날에 박서방도
질세라 추수를 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박서방이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작년의 수확에
비해서 거의 세배에 가까운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농사를 해야 할지에 대해서 비로소 감을 잡은
듯 싶었다. 그 감이란 두 번 물어 볼 것도 없이 초시 댁의 일을 따라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흐뭇한 마음을 다음해를 기다리게 되었고, 그 다음해에도 다시 농사는 성공을
했고, 다시 그 이듬해에도 여전히 수확이 늘어나자 이제 약간의 여유가 생겨서 이제 앞으로
일 년만 더 농사를 하면 어느 정도 자신이 글을 읽어도 될 것 같은 계획이 생기게 되었으며
그래서 더욱 4년째의 봄이 기다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실로 글을 읽지 않고 살려니까
머리가 녹이 팍팍 슬어 버리는 것처럼 생각이 되고 그래서 반드시 글을 봐서 과거에 급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온 몸이 지쳐서 쓰러지고 녹초가 될 지경이 되면서도 그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일년만 더 해서 처자식을 먹고살게 해 놓고서는 공부하러 가야 하겠다는
암암리의 계획을 세우고는 흐뭇하게 겨울을 보냈던 것이다.


 


 

4.
괴이한 일.....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초시댁의
머슴이 도무지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못자리도 만들지 않고, 예년의 경험
같았으면 이미 논도 두벌은 갈았어야 할 모양인데, 아직도 지난가을의 풍경 그대로였으니
박선비의 마음에는 온통 의문 덩어리로 싸여가면서 조바심이 일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고민고민 하다가 지나가는 초시댁 머슴에게 슬며시 물었다.


 

"이보게
개똥이~!"


 

"왜
그러슈~?"


 

"이제
못 자리 해야지...?"


 

"아니?
박서방은 아직도 못자리를 않으셨단 말이우? 도대체 농사를 할 마음이 있는 거유? 지금
때가 어느땐디 말이우? 내참..."


 

"아니....난
초시 어른 댁에서 못자리하면 나도 하려고 눈치만 보고 있다가 이렇게 된 것이라네. 언제나
하려는가?"


 

"일
없지유..."


 

"무슨
말이랴...?"


 

"아
일이 없다고 하지 않소!"


 

"글세,
왜 일이 없냔 말이여...?"


 

"우리
주인 마님이 일 하지 말고 올해는 놀으라고 하셨네요."


 

"그게
무슨 말이여? 그럼 농사를 하지 않는단 말이여?"


 

"그렇다네요.
하하하~! 그 바람에 신나게 생겼지요. 하하하!"


 

이런
말을 들은 박선비는 그만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도무지 안개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를 지경이 되어버려서 하룻밤을 곰곰 생각 해봐도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렇게
긴 밤을 하얗게 세우고 난 박선비는 술을 한 항아리 들고 초시 어른을 만나러 갔던 것이다.


 


 

5.
기가 막힌 사연


 


 

"초시
어른 계십니까요~!"


 

"뉘신가....?"


 

"아랫
마을의 박서방입니다요."


 

"아,
그래 들어오시게나."


 

"편안
하셨지요...?"


 

"그래
어인 일이신가?"


 

"저.....
여쭤볼 말씀이 있어서요..."


 

"뭘
말인가...?"


 

"올해
농사를 하지 않으신다면서요?"


 

"아,
그일 말인가? 그럴 셈이네."


 

"왜
그러십니까요?"


 

"그냥
나도 가끔은 쉬고 싶은 남자라네 헐헐헐~!"


 

"그럼
저 많은 농사채는 어떻게 하시고요?"


 

"논도
한 해쯤은 놀아야 하지 않겠는감...?"


 

더욱
애가 탄 박선비는 바짝 달아서 무릎 걸음으로 다가앉아서 더욱 다급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더라.


 

"설명을
좀 해주시지요. 무슨 연유인지라도 알아야지요."


 

"왜
그러나 못자리를 하지 않고서?"


 

"아,
저야 초시 어른 댁에서 못자리를 해야 따라서 하지요."


 

"나야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러니
큰일 아닙니까?"


 

"자네도
놀면 될 일이네 뭘... 허허허~!"


 

"제가
놀면 어린 자식은 어쩝니까요?"


 

"그럼
농사를 하던지....."


 

"필히
무슨 곡절이 있을 겁니다요...."


 

"곡절은
무신...... 그냥 가보시게나... 허허허~!"


 

"부디
살려주십시오. 그냥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초시어른이 그
연유를 말씀해 주지 않으시면 여기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요. 불쌍한
인간 살려주시는 셈치고 그 연유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애원합니다요."


 

하도
애원을 하니 초시 어른도 마음이 동했던지 바짝 다가 앉으라고 하더니만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말을 하지 않기로 하고서도 다시 세 번이냐 약속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


 

".....그게
말이네......"


 

"예!
말씀해 주시지요."


 

"올
처서(處暑)날 밤에 서리가 올 거네...."


 

"옛~!?"


 

"어허...
조용히 조용히....."


 

"서리가
내리면 농사는 어떻게 됩니까요?"


 

"다
죽는 거지 뭐겠나...."


 

".........
아! 그래서..... 그렇게 된 것이로군요."


 

"자네도
머리는 참 총명하이, 농사하기는 아까워.... 허허허~"


 

"그
일을 어찌 합니까요?"


 

"자네도
그만두고 과거 준비나 하지 그러시나... 헐헐헐~!"


 

"그
재난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요?"


 

"방법이
없지뭘....."


 

"제발
일러주시지요. 이렇게 빕니다요~~!!"


 

"어~허~!
그 사람 참 어지간 하이...."


 

"꼭
그 방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요..... 제발 부탁드립니다요."


 

"그럼
말이네...... 이렇게 하시게나...."


 

"속닥속닥
궁시렁궁시렁 두런두런.... 알겠지?"


 

"예예.
그렇게 하고 말구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6.
입추가 지나면서......


 


 

그렇게
해서 못자리를 하고 부랴부랴 농사를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신명이 났다. 초시
어른 댁의 농사를 무료로 일년간 빌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부자가 될 꿈으로
열심히 농사를 지었고 그해에 따라 더욱 작황이 좋아서 나날이 신명이 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망종이 지났고, 소서와 대서를 넘겼다. 대서를 넘기고 나면서 동네에서는 뉴스꺼리가
발생했다. 그 뉴스는 바로 박선비와 연관된 것이었다. 실로 망종이 지나면서 박선비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논두렁 쌓기를 시작했는데, 두 자를 높이고서도 계속 단단하게 쌓아갔던
것이다. 그러니 날도 더운데 모두 미친놈이 아니냐고 할뿐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박선비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오로지
둑만 쌓았다.


 

그렇게
해서 둑이 튼튼하게 쌓아지고 나자 이번에는 물을 담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동네 사람들은
더욱 신명이 나서 앉기만 하면 박선비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논두렁을 쌓아 올리다가는
급기야 물을 담고 있으니 사람이 미쳐도 완전히 못쓰게 마쳤다고 수군거렸다 그렇게 벼가
완전히 잠길 때까지 물을 담았다. 바로 처서가 되는 날 저녁까지 그 일을 마치고서야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처서가 되는 날까지 열심히 둑만 쌓았던 것이다. 그것은 논두렁이
아니었고 엄청난 둑이었던 것이다. 초시 어른의 땅을 거저 빌려준다고 다들 신바람이
났지만 박선비는 자신이 하던 농사 외에는 더 하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둑을 쌓을 생각을
하면 있는 농지도 부담이었는데 감히 다른 것을 추가로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처서가 지난 다음날 온 동네는 난리가 났던 것이다. 밤사이에 이상 한파가 발생하면서
된서리가 내려서는 온 벌판의 벼가 모두 삶아 놓은 배추 꼴이 된 채로 늘어져 죽어버렸다.
오로지 박선비의 논에 있는 벼만 물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있을 뿐이었다. 그 꼴을
본 동네 사람들이 모두 박선비 집으로 달려와서는 아우성을 쳤다.


 

"이
놈아 너 혼자 살려고 그랬느냐~!"


 

"그런
일이 있을 줄을 미리 알았다면 알려줬어야 하지 않느냐~!"


 

이런
식의 말들이 난무를 했지만 박선비는 담담했다.


 


 

"하하하~!
소생이 말씀을 드렸다면 누가 믿어 주셨겠습니까..."


 


 


표정을 멀리서 초시 어른이 빙그레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었더란다.


 

물론
그 해의 쌀값이 몇 배로 튀었고, 그래서 수입은 평소의 몇배가 되었으니 비로소 처자식을
살게 하고서 자신은 공부를 하러 길을 떠났더란다. 물론 길을 떠나기 전에 초시 어른을
찾아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르신
어쩌면 그렇게 하늘의 일을 미리 알 수가 있습니까요?"


 

"뭐....
별 것도 아니네 세상을 사노라면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곤 하지... 허허허~ 그나저나
자네도 참 대단허이~ 허허허~"


 


 

7.
비록 시대는 달라 졌지만....


 


 

바로
오늘 말이다. 중부의 어느 지방에서는 갑자기 우박이 내려서 모든 농작물은 수확을 포기해야
한다고 저녁 뉴스를 장식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이 나서 적어 봤다. 옥수수며 담배며 수박이며..... 참으로 처참한 장면에서 문득
박선비의 땀과 논둑이 떠오르는 것은 왠 일일까......


 

그리고
그 사이로 의약분업을 흉내낸다고 어설프게 시늉을 내다가 망신만 당하고 민심을 뒤숭숭하게
만들어 놓은 정부가 겹쳐지는 것은 또 무슨 일일까........


 

독일의
의약분업은 이미 600년이 되었다고 하던데......


 

그러한
준비도 없이.....


 

논둑을
쌓을 생각도 없이......


 

그냥
일만 벌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여러
가지로 참 답답~~ 하기만 하다.......


 


 

미리
알지는 못할망정 노력이라도 해야 할 것을......


 


 

"어디
초시어른 같은 사람 없쑤? 한번 만나 보게 말이우...."


 


 

      2000년
7월 5일 밤중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