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박을 볼랑갑다.

작성일
2019-07-01 05:28
조회
717

조롱박을 볼랑갑다.


 

 

bak-20190630-18

호박꽃은 아침에 핀다.
양이다. 대부분의 꽃은 양이다.

bak-20190630-19

꽃이 바라는 것은 벌을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벌이 낮에만 활동하는 것에 맞춘 것일게다.
저녁 때에 만난 호박꽃은 입을 다물었다.

bak-20190630-02

그 옆에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친구....
조롱박을 보겠다고 심은 박의 묘목에서도 꽃대가 올라온다.

bak-20190630-03

이제 시작이다.
박은 꽃이 밤에 핀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곤충, 나방, 박쥐 등이다.
어둠이 내릴 무렵에 밭에 갈 적에는 꼭 챙겨야 할 것이 두 개 있다.
한쪽 주머니엔 모기퇴치제, 카메라에 집중하면 모기들이 난리난다.
다른 주머니엔 소리가 나도록 열어놓은 스마트폰이다.
소리나는 폰은 노루와 돼지가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야개연, 달맞이꽃, 빅토리아연꽃도 밤에 핀다.
하긴, 사람도 낮에 피는 사람, 밤에 피는 사람이 있지.
식물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가 없음을....

bak-20190630-04

비가 개인 저녁무렵,
궁금해서 나가 본 밭에서 개화 직전의 박꽃 봉오리를 만났다.

bak-20190630-05

옛날,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한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 부친이 말씀하셨다.

부친 : 고마하고 지넉하로 가거라~!
모친 : 구름이 껴서 해도 안 보이는데 우째 아노?
부친 : 박꽃을 보마 아는기라~!
모친 : 왜 꽃이 밤에 필까?
부친 : 일하다가 어두우면 길을 찾아가라꼬 안카나.

bak-20190630-06

저녁을 먹고, 판문점 뉴스를 보다가 어실멍어실멍....
다시 밭에 나가보고 만개한 박꽃을 만났다.

bak-20190630-08

불과 1시간 반 남짓에 활짝 피었다.
바쁘긴 바빴던 모양이다.

bak-20190630-09

내일 필 꽃도 마련해 뒀구나.
우선은 수꽃만 보인다.

bak-20190630-10

같은 박과인 호박과 박.
그러나 같은 과라도 성질은 또 다르다는 것을...
노란 호박꽃은 낮에 잘 보이고,
하얀 박꽃은 밤에 잘 보이라고 선택한 색인가 보다.

bak-20190630-14

아하~!
박에도 음양이 있음을 알라는 뜻일까?

bak-20190630-11

그 짧은 시간에도 방문객이 있었구나.

bak-20190630-12

호박은 벌을 기다리고,
박은 이 친구를 기다렸나보다.

bak-20190630-13

자연은 '홀로'가 없다는 것을...
언제나 '함께'란 것을.....

bak-20190630-16

어둠에 잠긴 그곳에서조차도
잔치는 무르익고 있었던가 보다.
조롱박이 조롱조롱 달린 환상을 본다.

bak-20190701-02

이튿날....
어젯밤 꽃의 안부가 궁금해서 다시 방문....

bak-20190701-01

이미, 그 몫을 다 했다는 듯이 조용히 사그라드는 모습....
아니, 왜 암꽃도 없는데 먼저 피었을까..????

아마도......
방문자들에게 홍보를 하기 위해서였나보다...

"여기, 이렇게 맛있는 꽃이 있음을 알아 뒀다가 꼭 오세요~~!! "

시식코너는 백화점 식품매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