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8.신덕(身德)과 심덕(心德)
작성일
2022-09-25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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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8. 신덕(身德)과 심덕(心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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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주의를 집중시킬 겸 찻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시면서 대중을 둘러봤다. 모두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말을 이었다.
“공손 선생의 말씀을 듣다가 생각해 보니, 예전에 복건(福建)에서 살았던 황부자라는 사람이 떠오릅니다. 그 사람의 명성이 하도 자자해서 풍수지리(風水地理)를 공부하다가 그의 무덤이 궁금해서 찾아가 봤던 적이 있었습니다.”
“과연 선생의 열정이 남다르십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전에 누린 부귀영화와 사후에 누리는 신후지(身後之地)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 황부자라는 사람은 혹 알려진 사람입니까?”
“복건(福建)사람 황갑순(黃甲淳)입니다. 보통 황 갑부라고도 하는데 복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복주(福州)에서 살아갈 수가 없을 정도라고 했으니까 그의 부는 석숭(石崇)과 겨룰만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생전에 부를 누린 사람인지라 사후에는 어떠한 곳에서 안식(安息)하는지 궁금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라면 과연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황 갑부는 생전에 어떻게 부를 쌓았을까요?”
“듣기로는 주로 고리대금(高利貸金)으로 재물을 쌓았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춘곤기(春困期)에 굶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곡식을 빌려달라고 찾아오면 그들에게 곡물을 대여하고는 수확기에 두 배로 걷어 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돈이 될만한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답니다.”
“방법이 올바르지 못했던가 봅니다.”
“뿐만이 아니라 왜구(倭寇)들이 복건성을 침략해서 마을을 점령하자,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서는 주민을 괴롭히는데도 앞서서 그들의 신망을 얻었다고 합니다. 돈이 된다면 선악을 가리지 않고 부를 쌓았는데 왜구가 진압되자 나라에서 그의 죄를 묻고자 했으나 엄청난 돈으로 흠차대신(欽差大臣)을 매수해서 오히려 공을 쌓은 것으로 만들었으니 그의 외교술(外交術)을 논한다면 가히 천하제일이라고 할 만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큰 재물을 누리는 것도 팔자에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까?”
“팔자는 모르겠으나, 그의 모친께서 불당(佛堂)에 일구월심(日久月深)으로 기원해서 얻은 아들이라고는 합니다. 모친은 장터에서 떡을 팔아서 생계를 이었는데 배고픈 아이들이 지나가면 팔던 떡을 나눠주기도 할 정도로 자비 보살이었다고 합니다.”
지광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공손강이 한마디 했다.
“아, 그러니까 어머니가 닦아놓은 공덕으로 자식이 복을 누렸나 봅니다.”
“아마도 그랬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황갑순의 묘를 찾아갔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가 사망하고 대략 30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그 시간이면 손자(孫子)의 아들 대(代)를 거쳐서 손자의 대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미 묘는 비참할 정도로 황폐했고, 사당은 덤불 속에서 괴기스럽기조차 한 몰골로 허물어져 있었거든요.”
“저런,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생각으로는 묘지기를 둬서 왕릉처럼 관리를 잘하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삼대부자(三代富者)가 없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터는 어떠했습니까?”
“지금 말씀드리는 것만으로도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물질을 탐내어서 일신(一身)의 부귀(富貴)를 누린 자의 종말은 가시덤불 속에서 감옥살이하는 모습이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터는 냉기가 흐르는 곳이었으니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뼛골이 시리다고 했을 것입니다.”
“과연 인과(因果)는 무심하지 않았군요. 놀랍습니다. 직접 확인하고 다니면서 지리학을 공부하신 열정도 존경스럽습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확인되지 않은 이론은 공론(空論)이니까요. 그래서 최대한 확인하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잘 알겠습니다. 신덕(身德)과 쾌락(快樂)의 차이에 대해서 명쾌한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심덕(心德)은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짐작하기로는 남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으로 덕을 쌓는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합니다만, 과연 그런 것인지요?”
“잘 이해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물질로 기쁨을 주는 것은 그 덕이 몸에 머무릅니다. 그러나 정신으로 기쁨을 주게 되면 영혼으로 이어지는 까닭입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영혼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공손 선생은 윤회(輪回)를 믿으시는지요?”
“그렇습니다. 저승의 문턱에 다녀온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서 다음 생으로 이어진다는 사후세계(死後世界)는 반드시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 생전에 남의 몸을 위해서 공덕을 쌓았던 사람에게는 사후에 명당의 길지가 주어진다면 남의 마음을 위해서 공덕을 쌓은 사람은 어떤 보상이 주어질까요?”
이번에는 지광이 사공강에게 물었다. 그러자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짧은 견해로는 사후에 좋은 운명을 타고나지 않을까요? 윤회한다는 것은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인데 마음은 육신을 떠나서 다른 몸을 만나게 될 것이니까요.”
“맞는 말씀입니다. 인과법이 있다면 그래야 하겠습니다. 물론 그것을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다만 이치가 그렇다면 실제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인 논리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심도(心道)를 닦는 방법을 알려주시겠습니까?”
“그런 말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도는 도(道)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도를 닦는다는 것은 가깝게는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고, 멀리는 공덕을 쌓아서 다음 생에도 지혜로운 삶으로 태어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아, 수도(修道)가 심덕(心德)을 쌓는 것이었군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쉬운 말이 있었던 것을 말이지요. 하하하~!”
“그것을 쉽게 실행하는 것은 지혜를 가르치면 됩니다. 배를 채우느냐 마음을 채우느냐에 따라서 신덕과 심덕으로 구분하면 됩니다.”
“아하~! 마음을 채우는 것이었군요. 마음을 채우는 것은 교육(敎育)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지식(知識)을 가르치고 지혜를 열어준다면 그보다 더 큰 공덕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오늘 만난 인연들은 모두가 심덕을 쌓으시는 선생들이셨군요. 영광입니다. 새삼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공손강이 진심에서 우러나서 합장하고 허리를 굽혔다. 우창의 일행도 말없이 마주 보고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말했다.
“소생이 약간의 학문은 닦았으나 남에게 가르칠 정도는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 학당(學堂)을 지으면 됩니다. 그리고 지식은 많으나 재물이 없는 가난한 학자를 초빙(招聘)하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그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네요. 그건 가능하겠습니다.”
“만약에 동평(東平)의 저잣거리에 나가서 누구라도 재물에 구애받지 않고서 열심히 공부할 사람을 모은다고 써 붙여 놓으면 얼마든지 찾아올 것입니다.”
“과연 그런 방법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호수 주변에 땅이 있는데 그곳에 학교를 지으면 되겠습니다.”
“오호~! 더욱 좋지요. 그리고 교사(敎師)를 초빙한다고 하면 뜻이 있는 학자도 찾아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넉넉하게 접대하고 삼학(三學)을 가르친다면 어찌 그 공덕이 작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유학(儒學)이나 도학(道學)은 들어봤습니다만, 삼학은 처음 들어 봅니다. 무엇을 가르치는 것입니까?”
“삼학은 천학(天學), 지학(地學), 그리고 인학(人學)을 말합니다. 자연의 이치는 천학이고, 환경과 같은 땅에 해당하는 것은 지학입니다. 농사법이나 건축법도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학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이치라고 한다며 유학(儒學)이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가르칠 수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가르치면 됩니다. 그리고 공손 선생은 부족하지 않도록 금전적인 면에서 공급하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천하의 학인들이 부러워할 태학(太學)이 하나 생긴다고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일이 되겠는지는 상상해 보셔도 되겠습니다.”
“역시~! 스스로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면 현인(賢人)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아침나절에 생각했던 삶이 저녁나절에 바뀔 수도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무엇이든 한순간입니다. 멋진 생각에 대해서 천지신명을 대신해서 축하합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바로 결정하겠습니다. 그런데 학당(學堂)의 이름은 뭐라고 하면 좋을지 지어 주시면 그것도 영광이겠습니다. 이름부터 지어놓고 시작해야 할 테니까 말입니다. 어떤 이름이 좋겠습니까?”
“이름이라면 나보다도 우창 선생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지광이 우창에게 말했다.
“아우의 넓은 식견으로 학당의 이름을 하나 지어 주는 공덕을 쌓으시게. 어떤 이름이 좋겠나?”
우창은 갑자기 지광의 말에 얼떨떨했지만 이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역시 문자(文字)라면 적성에 잘 어울렸던가 싶기도 했다.
“큰마음을 내셨으니 당연히 「공손강학당(公孫康學堂)」이 좋을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당대로 마무리가 될 조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유지하여 대대손손으로 그 이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오래도록 남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우창이 말끝을 흐리면서 공손강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자 그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편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름으로라도 앞에 나서면 그것도 감복(減福)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추천해 드리는 이름은 「동평학사(東平學舍)」입니다. 동평현(東平縣)을 대표하는 학당이 되라는 의미도 되고, 어디에서 들어도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가늠할 수가 있는 이름인데다가 뜻도 참으로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지광이 우창에게 물었다.
“동평학사라.....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잘 알겠는데, 뜻도 좋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설명을 듣고 싶네.”
글자를 풀이하는 것이야 우창의 전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지광이나 염재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풀이가 궁금했다. 우창이 동평(東平)의 두 글자를 풀어서 다섯 글자로 써놓고 설명했다.
“동(東)은 목(木)과 전(田)으로 된 글자로 풀이가 됩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아무리 봐도 뜻을 모르겠는걸. 목(木)과 일(日)을 의미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네.”
우창이 써놓은 것을 들여다보면서 궁리하던 지광이 아무리 봐도 뜻을 모르겠다는 듯이 우창에게 묻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서 답했다.
“목(木)은 오행에서 처음과 시작과 어린아이를 나타냅니다. 정신이 젊은 것도 포함하지요. 그러니까 배움의 열정이 있는 사람을 목에 비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나무는 밭에 심어야 무럭무럭 자라게 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동(東)을 파자하면 목전(木田)이 되는 것이지요.”
“오호~! 그렇게나 심오한 뜻이 있단 말인가?”
지광이 놀랍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이 다시 설명했다.
“원래는 나무 사이[木]로 태양이 떠오르는 것[日]을 본떠서 만든 동쪽의 글자입니다. 그러나 문자는 얼마든지 의미를 부여할 수가 있으니 이것을 문자유희(文字遊戱)라고도 합니다. 하하하~!”
우창이 유쾌하게 웃자. 모두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연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자 지광이 다시 뒤의 일팔십(一八十)에 대해서 물었다.
“듣고 보니 과연 재미있네. 그런데 일팔십은 또 무슨 말인가? 평(平)을 일(一), 팔(八), 십(十)으로 풀이한 것은 알겠는데 이렇게 쓴 것에는 또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걸.”
“그것도 듣고 보면 어렵지 않으실 것입니다. 일(一)은 중심입니다. 세상만물은 무(無)에서 하나가 생김으로 해서 천지의 운행이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하나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없던 물결이 일어나면서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퍼져나가지요. 이 동평학사는 앞으로 그와 같이 활발하게 펼쳐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다음의 팔(八)은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번져가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의 내면에는 항상 도(十)가 함께 한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크게 전개되더라도 그 내면에 온전(溫全)한 도가 없다면 또한 쓸데없는 번뇌의 무리일 따름이니까요. 하하~!”
“아, 그러고 보니까 과연 뜻이 좋다는 말이 이해되는걸.”
“맞습니다. 그러니까 앞의 동전(東田)은 체(體)가 되어서 바탕으로 삼고, 뒤의 일팔십(一八十)은 용(用)이 되어서 천하에 큰 울림을 준다는 의미지요.”
“참으로 들을수록 묘미가 넘친단 말이네. 하하하~!”
“그렇습니까? 형님께서 재미있으시다니 우제도 즐겁습니다. 하하하~!”
이렇게 설명하는 우창의 풀이에 다들 감탄했다. 특히 공손강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과연 대학자의 관점은 범인과는 확연히 다른 깊이가 있습니다. 동평에 살면서 거의 매일 동평호를 보고 다녔습니다만,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은 금시초문(今始初聞)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관점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진심으로 놀랍습니다. 학당의 이름으로 너무나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동평학사의 위엄이 천하의 학인이 유희하는 요람(搖籃)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공손강의 말에 우창이 다시 거들었다.
“맘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이렇게 되면 곡부(曲阜)에서 싹을 틔운 공학(孔學)이 추성(楸城)의 맹학(孟學)으로 성장하여 동평(東平)의 동학(東學)으로 마무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보람이 있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우창의 말에 더욱 감동한 공손강이 말했다.
“보람이다 뿐이겠습니까? 왜 진즉에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만시지탄(晩時之歎)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귀인들을 만나서 방향을 깨닫게 되었으니 오늘은 제 생일과 다름이 없는 날입니다. 돼지를 잡아서 온 동네에 잔치를 열어야 하겠습니다.”
“아, 마음으로 잔칫상을 받겠습니다. 그로 인해서 돼지의 비명이 사무치는 것은 원하지 않는 바입니다. 그냥 있는 재료로 두어 가지 요리만 해 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크게 만족할 것입니다. 하하하~!”
잠시 나갔다 들어온 공손강이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동평학사는 앞으로 무궁한 발전을 통해서 많은 사람의 마음에 지혜의 씨앗을 심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오늘의 가르침은 종신토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무슨 공덕이 있어서 이러한 만남이 이뤄졌는지 모를 일입니다.”
공손강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답했다.
“부친의 산소로 인연해서 비롯된 일이고 보면 부친의 공덕임이 분명하겠습니다. 아마도 열정적으로 잘 가꾸어 가실 것으로 믿어도 좋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공손강이 다시 부탁했다.
“이제 교육사업을 하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학사가 완성되어서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도록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공손강의 부탁은 진지했다. 감독이 되어서 학당이 잘 운영되도록 관리자가 되어달라는 뜻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들이 그러한 것에 매일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거절해야만 하는 부담감을 지광이 떠안았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미 원을 크게 세웠기 때문에 건물부터 지으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소문이 날 것이고 그렇게 해서 배울 자와 가르칠 자가 구름처럼 모여들 것이니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우리는 천성이 한 곳에 안주(安住)하는 것이 맞지 않아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것을 즐기는 떠돌이들인지라 한 곳에서 이틀 밤을 머물기가 힘듭니다. 이러한 점을 헤아려 주시고 더 이상 만류하지 않으시기만 부탁드립니다. 하하~!”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공손강도 지광의 뜻이 완고한 것을 알고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저녁이 준비되었다는 전갈을 받고서 모두 식당 채로 가자 그곳에는 이미 진수성찬이 마련되어 있었다. 모두 즐거운 담소와 함께 고량진미(膏粱珍味)로 배를 채우고 미주(美酒)도 마시면서 즐거운 만찬을 즐겼다.
“그럼 모두 고단하실 테니 편히 쉬시고 내일 또 귀한 가르침을 듣겠습니다.”
이렇게 침소를 마련해 준 공손강이 돌아가자 비로소 우창의 일행이 오붓하게 모여서 저마다 편안한 자세로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먼저 현지가 말했다.
“오늘은 참으로 의미있는 날이네요. 이렇게 스승님들의 가르침도 받으면서 또 덕분에 무전취식(無錢取食)을 하고 보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어요. 호호호~!”
그러자 진명도 한마디 했다.
“왜 아니겠어요. 주옥같은 가르침을 챙기느라고 어찌나 바빴던지 언니와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었어요. 앞으로 부족한 것이 많더라도 넓은 아량으로 많이 아껴주고 좋은 말씀을 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어요. 호호~!”
진명의 말에 미소로 답한 현지가 우창에게 물었다.
“그런데 진 사부님,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인데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요? 뭔가 목적지는 있는 것도 같은데 어디로 가는지는 가늠할 수가 없네요.”
현지의 말에 우창이 웃으며 답했다.
“나도 모르지 그냥 건방(乾方)을 목적지로 삼고서 이렇게 가고 있을 따름이라네. 그곳이 어디일지는 나도 모르네. 어쩌면 우리의 마차를 끌고 있는 말들은 목적지를 알고 있으려나 모르겠군. 하하하~!”
“아, 정말 재미있네요. 어딘지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는 마차와 그 일행들이라니요. 호호호~!”
현지가 재미있어하자 염재도 한마디 했다.
“현지 누님께서 혜암도인과 함께 다니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그것이 궁금합니다.”
염재의 말에 현지도 미소를 짓고는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면서 다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누렸다. 이야기를 듣다가 고단한 사람은 그냥 아무렇게나 누워서 잠들었다. 떠돌이의 하룻밤은 이렇게 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로 깊어갔다.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인데 닭이 큰 소리로 울어댈 즈음에서야 모두 잠에서 깨어났다. 지광의 가르침에 큰 감명을 받은 공손강이 정성으로 아침밥도 든든하게 먹은 일행이 마차에 오르자 여비에 보태라면서 은자를 백여 개나 든 상자를 거산에게 들려줬다. 이미 여행에 필요한 경비(經費)는 여기저기에서 도움을 받은 것이 넉넉해서 아쉬움이 없었으나 지극한 성의로 건네주는 것이라서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잘 얻어먹고 또 푹 쉬고는 노자(路資)까지 두둑하게 얻어서 출발하니 모두 마음도 흡족했다.
“기왕 푹 쉬었으니 동평호에서 뱃놀이라도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조용히 생각에 잠겼던 진명이 제안하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우창이 말했다.
“그것참 좋은 생각이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는데 말이지. 찬성일세~! 하하~!”
이렇게 말을 한 우창이 지광을 보면서 말했다.
“형님, 동평호는 수호전(水滸傳)의 호걸들이 활약한 본거지인 양산박(梁山泊)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무용담(武勇談)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재미가 있지 싶습니다. 형님께서는 혹 이들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고 계시는지요?”
염재가 마차를 유람선을 매어놓은 선착장을 향해서 몰자 기분좋게 흔들리면서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던 지광이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그야 나도 그 중에 인연이 있는 분이 계시지. 바로 신행태보(神行太保)로 알려진 대종(戴宗)이라네. 그에게서 하루에 800리를 내달리는 축지술(縮地術)을 물려받았던 전인(傳人)이 내게도 그 비술을 전해 주셨으니 말이네. 생각해 보면 그 가르침으로 인해서 축지법이 그냥 단순히 하나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마음을 읽는 방법까지도 알게 되었으니 참으로 소중한 인연이라고 해야 하겠네.”
“참, 언제 형님께 축지술에 대해서도 좀 배워야 하겠는데 그것은 어려운 것입니까?”
“그건 배워서 뭘 하려나? 이렇게 마차를 타면 되는 것을 말이네. 하하하~!”
“아니, 그렇게나 신기한 기술을 알고 있으면 얼마나 편리하겠습니까?”
“배우기는 힘들고 정작 쓸 일은 많지 않은 것이 축지법이라네. 더구나 학문하는 학자에게는 더욱 그렇다고 봐야지. 그래서 그러한 잡술은 생각지도 말고 정도를 익혀서 중생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하는 것만 못하다네. 하하하~!”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생각해 보게, 몸으로 익힌 것은 작은 기술이고, 마음으로 익힌 기술이야말로 큰 기술이 아니겠나? 아우님의 독심술(讀心術)이야말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탁월한 기술이니 나도 어서 그것을 배워야 하겠는데 언제나 가르쳐 주려나?”
“독심술이라니요? 간지(干支)를 이해하는 것이 어찌 독심술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냥 타고난 본성을 간단히 들여다볼 따름이지요. 독심술이라고 하면 지금 그 사람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는 마음을 읽어야 비로소 그렇게 부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답은 하면서도 마음은 즐거웠다. 실로 사주의 간지에 얽힌 십성을 풀이하는 것만으로도 듣는 사람에게는 마음에 울림이 있다는 것이 항상 신기하기도 했었으나 그냥 그럴 따름이지. 그것이 무슨 대단히 신기한 재주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지광이 그것을 독심술이라고 높이 평가하자 내심으로는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게 아닐세.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우도 아직 자신이 수련한 능력이 얼마나 큰 학문이 되는지를 모르고 있다고밖에 할 수가 없겠네. 내가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는 것을 금할 수가 없으니 말이네. 하하하~!”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간지의 이치야 어려운 것도 아니니 언제라도 안주하게 되면 차근차근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지나치는 풍광과 오가면서 만나는 인연들에 대한 것만으로도 너무나 재미가 있으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형님도 그러시지요?”
“실로 그렇다네. 오늘은 또 어떤 인연을 만나서 무엇을 이야기하게 될 것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잖은가? 하하하~!”
스쳐 지나가는 아침 바람을 맞으며 상쾌한 마음으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다가 보니 저만치 어제도 봤던 동평호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