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7.길지(吉地)와 흉지(兇地)
작성일
2022-09-20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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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7. 길지(吉地)와 흉지(兇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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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는 가운데 거산이 조심스럽게 한바탕 훑듯이 버드나무를 들고서 지기(地氣)를 살펴본 다음에 말했다.
“정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부족하나마 대략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산소의 자리는 길하지도 않고 흉하지도 않은 자리인 것으로 보입니다. 제자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면 고인의 묘는 무난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처음부터 거산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던 공손강이 물었다.
“선생께 여쭙겠습니다. 봐하니 지기(地氣)를 살피는 것인 듯 보이는데 지형(地形)은 고려하지 않는 것인지요? 지형이 좋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지사가 떠올라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분의 말씀으로는 이 자리가 자손만대에 발복할 땅이라고 했습니다만?”
이렇게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광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니 모두 편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도 좋겠습니다.”
지광의 말에 저마다 편안하게 잔디 위에 앉았다. 그러자 공손강이 다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해서 말했다.
“소생이 경험하기로는 지사(地師)를 모셔서 터를 보여드리면 우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서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는데 지금 본 것과는 많이 달라 보입니다. 지형(地形)에 대해서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지형이 가장 중요하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당연히 지형이 중요합니다. 지형은 사람으로 비유하면 몸과 같은 것이니까 말입니다.”
“예, 저도 그렇게 듣고 알았는데 오늘 행사하시는 것을 봐서는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여서 의아합니다.”
“그러실 만도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디 여쭙겠습니다. 공손 선생은 몸이 더 중합니까? 아니면 마음이 더 중합니까?”
지광이 이렇게 묻자 잠시 생각한 공손강이 말했다.
“그야 몸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지광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다그치듯이 물었다.
“다시 여쭙겠습니다. 여태 이 자리를 본 지사 중에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시행하는 것은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단 한 번도 이러한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매우 신기하고도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자 지광이 엷은 미소를 띠면서 공손강을 향해서 천천히 말했다.
“가령, 여기에 한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의 용모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러자 지광이 진명을 가리켰다.
“이 여인의 용모는 어떻습니까?”
“매우 아름다운 용모를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답하자 지광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공손 선생이 보기에 미녀라고 하셨으니 공손 선생의 안목입니까? 모든 사람의 안목입니까?”
“그야 물론 제가 그렇게 보고 느낀 것이겠습니다.”
“만약에 여인은 육덕(肉德)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본다면 그래도 미녀라고 하겠습니까?”
“그건.....”
“맞습니다. 저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기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미녀의 기준이 버들가지처럼 가냘픈 것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병약하다고 하고 오히려 펑퍼짐한 여인이 미인이라고 하는 이치는 모두 저마다의 주관에 의해서인 것입니다.”
지광의 말에 공손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물었다.
“그렇다면 어느 관점이 올바른 것입니까?”
공손강이 이야기를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것은 저마다 개인적으로 느낄 따름이니 실은 올바르거나 그릇된 것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보여서 그렇게 느끼고 말했을 따름이니까요. 한 사람의 외모를 보고서도 저마다 판단이 다르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물론입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가령 이 여인은 겉모습은 우아하고 자태가 고와서 누가 봐도 가까이 지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실상은 포악해서 남편을 두들겨 패고 자식을 굶기는 것은 예사이며 시부모에게는 못된 말로 구박하던 사람입니다.”
“예? 설마 그럴 리가....?”
“그렇다면 길을 지나가는 사람 일백 명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이 여인은 미녀라고 답을 할까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그러한 말을 듣는다면 아무도 미녀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포악한 여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봐서는 절대로 그러실 분이 아닌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 그냥 예를 들었을 뿐입니다. 하하하~!”
지광이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잠시 긴장했던 공손강이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아, 그러셨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사물의 의미를 판단할 적에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동의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사람의 마음 씀에 따라서 외모도 예뻐 보이기도 하고 미워 보이기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사람의 눈빛은 진실합니까?”
“진실합니다. 눈빛은 거짓말 못하는 까닭입니다.”
공손강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다시 물었다.
“공손 선생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예? 사람을 보고서 그래도 믿을 만한 것이 눈이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보통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사기꾼의 눈빛은 사악해 보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매우 선량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눈빛도 다 믿을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그야 공손 선생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지광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공손강이 자신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과연 선생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 보니 눈빛조차도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 일입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형체가 오히려 안 보이는 것과 같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이 잘 보이는 것과 같다는 말은 공감하시겠는지요?”
“그렇겠습니다. 그동안 이곳을 살펴보고서 말을 했던 지사의 평은 어떤 의미입니까?”
지광이 핵심을 말하지 않고 이야기를 빙빙 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공손강이 빨리 답을 듣고 싶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지광은 서두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서두를 필요가 없었고, 서둘러봐야 다시 새로운 의문만 추가하게 될 것이 빤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 공손 선생은 지금 마음이 급하신가 봅니다. 답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십니까? 아니면 이치를 구하는 것이 목적이십니까?”
그러자 자신의 속내를 들켰다는 듯이 멈칫하던 공손강이 말했다.
“실은 조바심이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해 주시는데 자칫하면 귀한 가르침을 놓칠뻔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듣겠습니다.”
이렇게 확인을 한 지광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 합의를 봐야 할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은 다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공손 선생도 동의하시는지요?”
“물론입니다. 동의합니다.”
“자, 그렇다면 지사들의 이야기를 토론해 보겠습니다. 아마도 산소의 뒤는 병풍처럼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어서 조상 대대로 벼슬을 하면서 귀하게 살아온 가문이라고 했을 텐데 어떻습니까?”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공손강의 눈빛이 광채를 발하면서 얼른 대답했다.
“바로 맞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많이 들었습니다.”
공손강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은 다시 앞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앞으로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과 그 좌우로 전개되는 더넓은 평원을 얻었으니 부유(富裕)함도 대대손손 다함이 없다고 말을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 자리가 좋다고 말을 한 지사들의 한결같은 풀이였을 것인데 맞습니까?”
“선생의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나쁘다고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뒷산의 연결된 봉우리들이 언뜻 봐서는 길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위세에 산소가 눌려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앞에 흐르는 강은 지나치게 넓고 커서 오히려 명당의 기운이 침해당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자손 대대로 남에게 눌려서 마음대로 살지 못한다고 해석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혼란스러운 결과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풍수가의 이론을 다 접어놓고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말이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동의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어떤 말씀인지 듣고자 합니다.”
그제야 공손강의 마음에서 조바심이 사라지고 호기심이 생겼다. 이야기의 대상이 부친의 산소인 것도 잊고서 지광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산소는 영혼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육신을 위한 것입니까?”
“그야 육신을 위한 것이지 않습니까?”
“예, 좋습니다. 육신을 편히 쉬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다시 생각해 봅시다. 육신은 관곽(棺槨)에 모셔서 땅속 깊이 매장했습니다. 뒷산의 봉이 연봉(連峰)이든 고봉(孤峯)이든 관계가 있겠습니까?”
“땅속에서는 아무것도 보거나 느낄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앞의 강도 마찬가지입니다. 흐르는 물이 지나치게 묘소와 가까워서 물이 스며들 정도가 아니라면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흉하다고 해석한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지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의문만 쌓였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지금은 길흉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길이든 흉이든 논할 가치가 있는지 의견을 나누는 것이니까요.”
지광의 말에 공손강도 다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맞습니다. 시신이 지하에 있으니 그 밖의 풍경이야 아무래도 관계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아마도 혹자는 저 뒤쪽의 왼편에 살짝 보이는 뾰족하게 생긴 봉우리를 가리켜서 귀면봉(鬼面峰)이라고도 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산소의 후손에게 재앙이 닥치게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맞습니다. 그런 말도 들었습니다.”
“앞에서 드린 말을 잘 이해하셨다면 이 또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것도 꺼림칙했는데 안개가 걷히듯 합니다. 어떤 지사들이 무슨 말을 했을 것인지를 그렇게 손바닥을 보듯이 훤하게 알고 계시니 오늘 귀인을 만난 것이 맞나 봅니다. 하하하~!”
그제야 온갖 의문이 순식간에 풀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표정을 보던 지광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보고 들으셨던 이야기들은 다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도 이해하셨습니까?”
“이해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 보고 그렇게 느꼈을 따름이라는 것이 분명하겠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묘터에서 바라본 것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서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형은 의미가 있습니까?”
“별 의미가 없겠습니다.”
“아, 미처 드리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만약에 바람이 많이 불어와서 흙이 날려가고 그래서 봉분이 황폐해질 정도라면 영향이 있을 것은 예외로 합니다.”
“이해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거산이 행한 것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땅에는 저마다 기운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용맥(龍脈)이 흐른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용맥은 지형에 따라서 흐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것은 아시겠습니까?”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만, 말씀으로만 들어봐도 그렇지 싶습니다. 그렇게 알겠습니다.”
공손강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잠시 생각하고는 다시 말했다.
“실로 유해(遺骸)가 어떻게 자손에게 공을 베풀고 화를 불러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다만, 기분으로 논한다면 냉풍이 지나가는 곳보다는 바람막이가 되어있는 곳이 편안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지요.”
“지맥(地脈)에는 냉기가 흐르는 수맥(水脈)이 있고, 온기가 흐르는 화맥(火脈)이 있습니다. 그 나머지는 무해무덕(無害無德)으로 보면 됩니다. 가능하면 수맥은 피하고 화맥은 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기준입니다.”
“아, 일리가 있습니다. 화맥이라는 말은 언뜻 듣기에는 흉한 것이라는 느낌인데 왜 그럴까요?”
“그야 불은 재앙이라는 관념으로 인해서라고 하겠습니다. 수재(水災)와 화재(火災)를 떠올릴 수도 있으니까요.”
“아마도 그래서인가 봅니다. 말씀하시는 뜻으로 봐서 화맥은 따뜻한 온기(溫氣)라는 말씀이지요?”
“물론 화맥이 폭발하면 화산(火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적당한 것이 중요합니다만 대부분의 땅은 화산이 폭발하지는 않으니까 논외로 합니다.”
“그렇겠습니다. 그런데 무해무덕이라는 것은 좋은 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적지 않은 돈을 써서 잡은 자리인데 무해무덕이라니 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공손강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다시 말했다.
“이해합니다. 그런데 무해무덕의 자리만 얻어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공손 선생께 묻겠습니다. 조상의 덕으로 잘 살고자 하십니까? 아니면 스스로의 노력으로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스스로의 노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옳지요. 다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있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바로 그 희망에 속아서 풍수가를 가장한 사기꾼의 교묘한 말장난에 놀아나는 것이지요.”
지광의 말에 공손강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듣고 보니 과연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길지(吉地)와 평지(平地)의 차이가 있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까?”
“어쩌면 있을 것입니다. 다만 흉지(凶地)가 아니라면 그것만으로 길지라고 해도 좋지 않겠습니까? 조상의 덕을 기대한다면 조상이 생전에 어떤 덕을 쌓았는지부터 생각해 보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공손강도 약간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연 조상이 음덕(陰德)을 쌓았는지 생각해 봤다.
“어떻습니까? 공손 선생의 선친께서 생전에 어떤 선업(善業)을 쌓으셨는지 기억이 나시는지요?”
“생각해 보면 특별히 선업을 쌓았다는 생각은 나지 않습니다. 크게 죄를 짓지는 않은 것이 확실합니다만 남을 위해서 희생(犧牲)하거나 봉사(奉仕)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하지 싶습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전의 인연에 비해서 이 자리는 적합합니까? 아니면 미흡합니까?”
“길지(吉地)도 흉지(凶地)도 아닌 평지(平地)라는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특별한 삶을 살았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땅에 누워계신 것은 생전의 업력(業力)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아니, 보고 들으셨으니 스스로 판단해 보셔도 되지 싶습니다.”
지광의 말에 대해서 공손강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딱 그만큼의 인연에 의해서 얻은 자리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여러 풍수가에게 명당을 물었던 것이 오히려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지혜로운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잘 이해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명당(明堂)과 길지를 찾아야 할까요? 아니면 그러한 돈으로 한 사람이라도 빈민(貧民)을 구제(救濟)해야 할까요?”
“과연 명쾌합니다. 여태까지 왜 그러한 생각을 못 했나 싶습니다. 산소에 대해서는 더 듣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만 집으로 들어가서 귀한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이렇게 말한 공손강이 앞에서 걸었다. 그러자 일행도 그를 따라서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산천의 풍경에 아늑해서 머물러 지내기에 좋아 보였다. 특히 마을 앞을 지나는 개울과 주변의 바위들이 운치가 있어서 더욱 멋진 풍경이었다. 공손강의 집은 마을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자, 들어가시지요. 누추합니다.”
집의 규모는 포충의 저택보다도 더 넓어 보였다. 부유함이 묻어나오는 풍경을 보면서 지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창이 물었다.
“형님께서 뭔가 집히는 것이 있으십니까?”
“그렇네. 주인장이 만대에 길이 남을 공덕비를 세울 실마리를 찾은 듯싶군. 하하하~!”
“공덕비라니요? 형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차차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세.”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객사(客舍)의 문이 열리고 넓은 대청으로 안내되었다. 일행은 공손강의 안내에 따라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내 과일과 차가 나와서 목을 축이고 담소를 나눴다. 주객이 자리를 잡자. 공손강이 말했다.
“미처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아서 우선 이렇게 잠시 담소를 나누시면 얼른 먹을 것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공손강의 표정을 보니 그사이에 처음 봤을 적의 표정은 사라지고 편안한 모습으로 꾸밈없이 웃는 것을 보니 우창도 기분이 좋았다. 다시 그가 말했다.
“자, 귀한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살아서 음덕을 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여쭙고자 합니다.”
이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지광도 진지하게 답했다. 다들 두 사람의 대화에 이목을 집중했다.
“그렇게 물어주시니 고맙습니다. 우선 음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몸을 위한 신덕(身德)과 마음을 위한 심덕(心德)이 있습니다.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모두 음덕이 됩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말씀이십니다. 그 둘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겠습니다. 우선 몸을 위한 덕에 대해서 들어보고자 합니다.”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오히려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풍수(風水)와 지맥의 이야기는 많이 나눴으나 이러한 것도 알고 있는 지광의 깊이를 측량(測量)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 어려운 것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신덕(身德)은 사람의 몸을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마을에 다리를 놓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베풀거나,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어서 치료하는 것들을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남의 몸에 깃든 고통을 해결해 준다면 그것을 일리서 신덕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광의 말에 공손강은 바로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아하, 무슨 뜻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러한 음덕을 쌓으면 죽어서 명당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당연하지요. 풍수가의 조언이 없이 아무 곳에 매장한다고 해도 그 자리는 좋은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귀한 가르침입니다. 그동안 과일나무를 심을 생각은 하지 않고, 크고 맛있는 과일만 구했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아닙니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부끄러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공덕을 쌓은 이의 무덤은 저절로 명당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의 몸에 피를 흘리게 하고 원한을 사게 된다면 어떤 사후(死後)에는 무덤을 얻게 될까요?”
공손강이 이렇게 묻자 지광은 문득 예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