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 제34장. 인연처(因緣處)/ 8.복희의 선천팔괘(先天八卦)

작성일
2022-08-05 04:12
조회
2025

[392] 제34장. 인연처(因緣處) 


8. 복희의 선천팔괘(先天八卦)


========================

곰곰 생각하던 진명이 다시 팔괘를 살펴보면서 말했다. 무척 흥미를 느꼈다는 것이 옆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아하~ 이제야 알겠어. 아래에 양효가 있는 것은 장남이고, 중간에 있는 것이 중남이니까 위에 있는 것은 소남이란 말이지?”

“맞아. 누나가 생각한 그대로야. 하하~!”

“우선 팔괘를 이해하려면 간단한 방법으로 이렇게 알아두면 돼. ☰건(乾), ☱태(兌), ☲리(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이야. 간단하지? 다행히 선천팔괘든 후천팔괘든 괘의 이름은 같아.”

염재가 알려주는 대로 팔괘를 손가락으로 그려보면서 입술을 달싹거리던 진명이 말했다.

“그런 소리 말아, 동생이 보기에는 간단할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복잡하기가 짝이 없는걸. 그래도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겠지? 그러니까 반드시 기억하도록 해야겠네.”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내친김에 염재가 다시 하나를 더 알려줬다.

“내친김에 이것까지 알아두도록 해봐. 팔괘를 그리는 것이 번거로워서 숫자로 만든 것인데, 숫자 일(一)은 건괘(乾卦)와 같다고 보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왼쪽으로 내려가면서 일(一), 이(二), 삼(三), 사(四)가 되고, 다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서 오(五), 육(六), 칠(七), 팔(八)이 되는 거니까 어렵진 않을 거야.”

“그래 알았어. 언젠간 나도 동생처럼 쉽게 말을 할 날이 오겠지? 이것을 쉽게 외우는 방법은 없어?”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다시 구결(口訣)을 알려줬다. 자꾸 물을수록 가르쳐 줄 것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즐겁기도 했다.

“자, 내가 하는 대로 따라서 외워봐. 건삼련(乾三連) 일건천(一乾天). 태상절(兌上絶) 이태택(二兌澤). 리허중(離虛中) 삼리화(三離火). 진하련(震下連) 사진뢰(四震雷). 손하절(巽下絶) 오손풍(五巽風). 감중련(坎中連) 육감수(六坎水). 간상련(艮上連) 칠간산(七艮山). 곤삼절(坤三絶) 팔곤지(八坤地)라고 하면 되는 거야.”

“오호~! 뭔가 대단한 것을 공부하는 것 같잖아. 정말 재미있다. 호호호~!”

“한 번만 알아두면 잊어버리지는 않을 거야. 뜻은 이해가 되지?”

염재가 다시 확인하자 진명도 진지하게 다시 음미하면서 외웠다.

건(乾☰)은 셋이 연결되어 一이고 하늘.
태(兌☱)는 위가 끊어져서 二이고 연못.
리(離☲)는 중이 허전해서 三이고 불.
진(震☳)은 하가 연결되어 四이고 우레.
손(巽☴)은 하가 끊어져서 五이고 바람.
감(坎☵)은 중이 연결되어 六이고 물.
간(艮☶)은 위가 끊어져서 七이고 산.
곤(坤☷)은 셋이 끊어져서 八이고 땅. 

진명이 이렇게 기억을 더듬으면서 외우고는 말했다.

“그것도 만만치가 않네. 반복해서 익혀야겠어. 호호호~!”

진명이 나름대로 하나를 배웠다는 만족감을 느끼면서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다시 정리했다.

“누나가 어디에서 팔괘를 보더라도 이렇게 생긴 것은 이름과 의미가 모두 같다는 것으로 알아두면 되는 거야. 그럼 다시 스승님의 말씀을 들어볼까?”

“정말 고마워. 동생의 친절한 가르침으로 눈이 활짝 열린 것만 같아.”

염재는 진명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뭔가 도움을 줬다는 마음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우창에게 다시 물었다.

“이 선천팔괘는 세워져 있다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뉘어져 있는 것으로 봐야 할까요? 건곤(乾坤)을 봐서는 세워져 있는 것도 같은데 그 나머지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여서 평면(平面)에 뉘어놓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아, 그것은 생각할 나름이라네. 아무래도 괜찮겠지만, 내가 보기에도 공간적(空間的)인 의미로 봐서 팔방(八方)에 배당한다면 평면적으로 뉘어놓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네.”

“참,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실제로 복희씨가 이 팔괘를 만든 것은 아니겠지요?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야 당연히 복희씨가 만든 것이 맞는다고 봐야지. 전하는 말에 의하면, 용마(龍馬)가 황하(黃河)에서 나왔는데 그 등에 흰 점과 검은 점 55개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서 궁리해서 깊은 이치를 깨닫고서 다시 만든 것이 팔괘라고 하니까 말이네.”

우창의 말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아마도 그 말은 얼룩말이었던가 봐요. 호호호~!”

진명에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염재가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그런데 용(龍)이면 용이고, 말이면 말이지, 용마는 무슨 의미일까요?”

“아, 그건 황하에서 나온 말이 일반적인 말보다 덩치가 커서 그것을 용마라고 했었다니까 대마(大馬)가 된다고 해도 되겠군. 전설상의 용마를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을 보겠나? 하하~!”

이렇게 말하면서 책 보따리에서 그림을 하나 찾아서 펼쳤다.

392 용마도

염재가 그림을 살펴보면서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으로 선천팔괘에 대해서 약간의 이해를 했습니다. 더 이상 파고 들어가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10년은 공부해야 할 내용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복희씨의 팔괘를 정리해도 되지 싶습니다.”

“실은 나도 밑천이 거의 다 떨어져서 더 해줄 말도 없던 차였네. 하하하~!”

“복희씨로 인해서 팔괘가 나왔다고 전하는 것은 이미 5천 년도 더 된 옛날이라고 하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따름이겠습니다. 믿어도 그만이고 믿지 못한다고 해도 또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복희씨로부터 천하를 물려받은 사람이 염제(炎帝)인 신농씨(神農氏)라고 전해지는데 이 분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약간이나마 말씀해 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아, 신농씨는 백성이 먹고살도록 농업(農業)을 장려했고, 질병(疾病)을 치료(治療)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하더군. 그래서 의원(醫員)은 의학(醫學)의 시조(始祖)로 받들기도 한다네.”

“그렇다면 매우 중요한 일을 하셨네요?”

“아니라면 삼황(三皇)의 한 분으로 모실 턱이 없지 않은가? 하하~!”

“그것도 맞겠습니다.”

“전하는 말에는 신농씨의 형상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말이 있는데, 복희씨는 인두사신(人頭蛇身)이라서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뱀의 몸이었다고 하고, 신농씨는 우두인신(牛頭人身)이라서 머리는 소의 머리에 몸은 사람의 몸이었다고 전하네. 그리고 치우는 머리가 소처럼 생겼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신농씨의 아들이 틀림없겠는데 특이하게도 동두철액(銅頭鐵額)이었다고 하니까 머리는 구리로 되고 이마는 쇠로 되어있어서 황제와 전쟁할 때도 천하무적이었던가 싶기도 하더군. 그러니까 고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형상은 특이했던 모양이네. 하하~!”

“아마도 전설이기 때문에 그러한 형상도 가능했으리라고 봅니다. 어쩌면 그렇게 생긴 모자를 쓰고 전쟁터를 누비고 다녀서 붙은 이름일 수도 있지 싶습니다.”

이렇게 말을 듣고 있던 진명이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문득 해 본 생각인데요. 치우가 황제와 싸웠던 것은 부친인 신농의 천하를 되돌려 받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겠어요. 그렇다면 황제가 신농으로부터 지위를 물려받았던 것은 치우에게 전승되어야 할 것을 사나운 치우에게 전하지 않고 지혜로운 황제에게로 전해준 것으로 인해서 일어난 싸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진명의 말에 염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누나의 선견지명은 감탄스러운걸.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놀라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군. 듣고 보니까 일리가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신농씨는 황제에게 지위를 물려준 것도 치우가 사납기만 하고 지혜가 부족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네. 하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조반(朝飯)이 준비되자 든든하게 먹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치우릉(蚩尤陵)을 향해서 출발했다.

거리가 250리라고 했으니까 걸어서 간다면 3~4일은 족히 걸리겠지만 마차가 있으니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변의 풍광(風光)을 즐기는 길은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미시(未時)쯤 되어서 양곡현(陽谷縣)의 십오리원진(十五里園鎭)에 있다던 치우릉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우창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초라한 모습에 실망스러웠다. 명색이 황제와 겨룰 정도의 위대한 인물이었음에도 이와 같은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역시 패전지장의 신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싶기도 했다.

392-4

[양곡현 치우총(蚩尤塚)]


 

우선 방문자의 예의를 갖춰서 다 함께 치우의 무덤 앞에서 재배(再拜)하고는 우창이 지광에게 물었다.

“형태로만 봐서는 치우릉이라고 이름을 할 것도 없지 싶습니다. 그냥 무덤이네요. 그나저나 이곳이 과연 치우가 묻혀있는 것이나 맞는지도 모를 일이기는 하지요?”

“그야 누가 장담하겠는가. 점심을 먹을 시간도 지나서 출출한데 저 앞에 주막이 있으니 목이라도 축이면서 혹 치우능에 대해서 설명해 줄 사람이라도 있다면 이야기나 들어보는 것도 좋겠네. 저쪽으로 가보세.”

지광의 의견에 모두 시장한 것도 잊고 있다가 갑자기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자 말없이 따라서 주막으로 가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졸고 있다가 반겨 맞았다.

“어머나! 반가운 손님들이 오셨네~! 잘 오셨어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맛있는 술과 요리도 있으니 편안하게 드시고요~!”

우창은 여주인의 수다가 호들갑스러워서 맘에 들지는 않았으나 악의가 없는 수다라서 그냥 들어줄 만은 했다. 다만 치우릉의 이야기를 듣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심 실망스럽기는 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런 때는 붙임성이 좋은 진명이 한몫했다. 여주인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아니, 손님도 없는데 어떻게 장사하시는지 참 신기하네요. 오늘은 손님이 좀 있었어요?”

“에구 말도 말아요. 손님이 뭐예요. 하루온종일 이러고 앉아 있다가 오늘 처음으로 손님들을 만나니까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네요. 호호호~!”

“그렇다면 어서 맛있는 요리와 술을 내오세요. 오늘 매상을 좀 올려 드리고 가야 겠으니까요. 호호호~!”

“어쩐지~ 귀품이 있으신 분들은 마음을 쓰시는 것도 달라~!”

이렇게 이야기하자 그다음은 순탄하게 진행이 되어서 우선 우창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저, 말씀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예? 뭔지 말씀하시면 됩니다요. 아는 것은 별로 없어도 주워들은 것은 많아서 웬만한 것은 답을 드릴 수가 있을 거구먼요. 호호호~!”

“저 무덤은 어떤 무덤입니까?”

“아니, 여기까지 와서 어떤 무덤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을 할까요? 그야 당연히 치우천황(蚩尤天皇)님의 능이잖아요.”

“아, 혹시 잘못 찾아왔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여쭤봤습니다. 그러니까 찾아오기는 잘 찾아왔네요. 하하하~!”

“아마도 형상을 보시고 생각보다 초라해서 실망하셨나 봐요? 하긴, 누가 돌보겠어요. 우리 부부나 여기에서 가끔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밥이나 팔다가 무덤에 풀이 무성하면 뽑아드릴 따름이지요.”

“아하, 치우천왕 전에 공덕을 쌓고 계시네요. 그런데 왜 그 일을 하고 계신 건지요? 봐하니 오가는 행인도 없는 곳에 주막을 차려놓고 계시니 영업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겠는데 말입니다.”

“에구~ 사람이 돈만으로 사나요? 그냥 이게 좋아요. 남편도 치우천황의 후손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요. 그래도 굶어 죽지는 말라고 천황께서 이렇게 하루 손님 몇 분은 보내 주시니까요. 호호호~!”

“아니, 치우천황의 후손이라니요?”

우창은 자연스럽게 여인을 따라서 치우천황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그렇게나 공경하는데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뭐가 되었던 하나라도 배워가려면 공손해서 나쁠 이치는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린 묘족(苗族)이거든요. 치우천황은 묘족의 조상님이시니까요.”

“아, 그러십니까? 몰랐습니다. 고귀하신 조상님을 두신 것에 대해서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인의 표정을 보니까 과연 행색은 초라해도 당당한 기품이 느껴지기도 했다. 시골 마을의 평범한 아낙과는 좀 달라 보이기도 했다. 첫인상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단지 몇 마디의 말만으로 느껴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안에서 선비로 보이는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나왔다. 짐작으로 봐서 남편인 듯싶었다. 여인이 남자를 보고서 말했다.

“아, 일어나셨남요? 이 손님들이 궁금한 것이 많으신 모양인데 나는 먹을 것을 만들어 올릴테니 당신이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눠주는 것이 좋겠어요. 봐하니 글을 읽으시는 선비님들 같으신데 궁금한 것이 많지싶구먼요. 호호~!”

여인의 말에 우창의 일행이 남자에게 목례(目禮)하자 그도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생은 이렇게 주막이나 지키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찾아오신 것으로 봐서 뭔가 도움이라도 드릴 것이 있으면 돕도록 하겠습니다.”

남자가 예의를 갖춰서 말하자 우창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뭔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실로 치우천황에 대해서는 이름만 들었고, 탁록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던 차에 마침 여정에서 천황의 능이 있다는 것을 보고서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서 이렇게 참배라도 하고 가려고 들렸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만, 아는 것에 대해서는 가감없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참 소생은 화운룡(華雲龍)이라고 합니다. 고향은 호남(湖南)인데, 조상의 뿌리를 공부하다가 천황님의 무덤이라도 돌보면서 학문을 닦고자 하여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을 실행하고 계십니다. 소생은 진하경(陳河鏡)이라고 합니다. 오늘 화 선생을 뵙고 귀한 말씀을 듣게 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지광과 염재를 소개했다. 화운룡은 일일이 소개받을 때마다 예의를 깍듯이 갖추었다. 그러는 사이에 여인이 구운 토끼요리와 술을 내왔다. 우창이 술병을 들어서 한 잔씩 가득 부었다. 그렇지 않아도 목도 마르던 차에 시원한 술을 마시니 기분도 넉넉해지는 것만 같았다. 화운룡이 술을 한 잔 마시고는 우창에게 물었다.

“진 선생은 어디에 머무르시는지요?”

“아, 소생은 곡부에 살고 있는데 이렇게 벗들과 유람을 나섰습니다. 동평호를 둘러보다가 이곳에 치우천황의 유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진 선생은 참으로 자유인이십니다. 소생도 가끔은 문득 그렇게 길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받기도 합니다만, 막상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그만 머리만 복잡해져서 다시 주저앉곤 한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보람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동평호(東平湖)와 양산박(梁山泊)의 호걸 이야기는 익히 들으셔서 알고 계시겠지요?”

“예, 대략 떠도는 이야기를 들은 정도이기는 합니다만. 약간은 알고 있습니다.”

우창이 안다고 말을 하자 화운룡은 신이 나서 말했다.

“실로 양산박(梁山泊)도 여기에서 멀지 않은 양산현(陽山縣)에 있습니다만, 혹 그 호걸들이 주신(主神)으로 치우천황을 섬겼다는 것은 못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예? 그러셨습니까? 당연히 못 들어 봤습니다. 그 이야기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화 선생을 만난 것이 큰 복인가 싶습니다.”

우창의 말에 화운룡은 미소로 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치우천황릉을 보셨으면 아시겠습니다만, 그 앞에 세워놓은 비석도 양산박의 총책(總責)이었던 급시우(及時雨) 송강(松江)이 쓴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참으로 잘 어울립니다. 수호전기(水滸傳記)가 가상의 이야기였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해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과연 실제로 영웅들이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서 혼신(渾身)을 불살랐던 것이 실화였던가 봅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삼국의 위오촉에 대한 이야기를 나관중 선생이 연의로 썼듯이 「송사(宋史)」에 있는 이야기를 시내암과 나관중이 연의로 엮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민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만 모두가 허구인 것은 아닙니다.”

화운룡의 진지한 말에 우창도 말했다.

“아마도 이곳에서 활약했던 영웅들은 모두 치우천황의 기개(氣槪)를 이어받았던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치우천황의 무덤이 여기에만 있는 것입니까? 듣자니까 다른 곳에도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연유인지 궁금했습니다.”

“아, 그 말씀은 맞는 말씀입니다. 원래 황제 헌원(軒轅)과 전쟁을 했던 탁록(涿鹿)은 하북(河北)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실제 위치는 여러 설이 있어서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많은 이야기를 취합(聚合)해본 결과 이곳에 치우천황의 두상(頭相)을 봉안한 것은 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무덤이 많을까요? 지니다가 보니까 문상(汶上)에서도 치우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전하는 말로는 문상에 있는 치우묘에는 사지(四肢)를 봉안했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그것을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다만, 비유하자면 관운장(關雲長)은 한 사람이지만 그의 사당은 얼마나 많습니까?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아하~! 그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렇겠습니다. 부처도 입적(入寂)하자 그의 육신에서 나온 사리(舍利)를 각처에 나눠서 봉안한 것도 같은 이치겠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 무덤이 많은 것이 무슨 상관이고, 탁록이 하북이든 산동이든 또한 무슨 장애가 되겠습니까? 하하하~!”

우창은 화운룡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빠져들어 갔다. 다른 일행들도 흥미가 동해서 날이 저무는 것도 잊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