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 제34장. 인연처(因緣處)/ 7.황제(皇帝)와 치우(蚩尤)

작성일
2022-07-30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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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제34장. 인연처(因緣處) 


7. 황제(皇帝)와 치우(蚩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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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게 쉰 일행은 주인이 풍성하게 차려 준 아침밥을 먹고는 다시 여장을 꾸렸다. 하루를 푹 쉬었던 탓인지 모두 심신이 쾌락(快樂)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마차에 올랐고 염재는 여전히 마차의 앞에 앉아서 열심히 서북을 향해서 말을 몰았다. 이 마을에 들어올 적에는 2~3일 쉬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루를 쉬니까 다시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들이 앞서서 아무도 반대하지 않아서 바로 출발을 했다.

말도 푹 쉬어서인지 마차는 빨랐다. 말도 지치면 중심을 못 잡기에 마차의 요동이 더 심하게 되는데 기운이 충실하면 흔들림도 적다. 더구나 염재의 마차를 모는 능력이 탁월해서인지 일행은 크게 피곤한 줄도 모르고 저마다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해거름이 되기 전에 동평현(東平縣)에 있는 동평호(東平湖)에 당도할 수가 있었다. 드넓은 호수는 흡사 바다를 보는 듯했다. 더구나 마침 석양의 노을빛을 받아서 황금빛으로 물이 든 풍경은 절경이었다. 그러한 풍경을 처음 본 소연은 감탄을 연발했다.

“우와~! 정말 멋있어요~! 처음 봤어요. 호호호~!”

일행들은 어린 소연이 함께 있으니 분위기조차 밝아지는 것만 같아서 모두 마음이 즐거웠다. 동행하게 된 인연이란 이렇게도 고마운 것이었다. 그 사이에 염재는 거산과 함께 오늘 묵을 만한 곳을 찾아서 동평의 번화한 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그렇게 해서 깨끗한 객잔을 찾아서 자리를 잡아놓고는 다시 일행에게로 돌아왔다.

“스승님, 오늘은 취붕각빈관(聚朋閣賓館)에서 머물도록 했습니다. 이름이 좋아서 결정했는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염재가 수고한 것에 대해서 우창이 말했다.

“오호~! 애썼네. 이름만 들어도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네. 그럼 풍경도 잘 감상했으니 저녁부터 먹도록 하세. 하하하~!”

근사하게 차려진 식당에서 만족스러운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는 숙소로 가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는데, 네거리에는 이정표(里程標)가 있었다. 우창은 낯선 곳에 가면 지도(地道)와 도로(道路)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주변의 불빛을 이용해서 이정표를 보니 이곳은 「양산박(梁山泊)의 본거지」라는 안내가 보였다. 우창이 눈여겨보자 염재도 옆에서 같이 보다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양산박이면 송대(宋代)에 협객(俠客)들이 모여서 활약했다는 수호전(水滸傳)의 본거지라는 말입니까?”

“아마도 그렇지 싶군. 그 외에 다른 곳에서 양산박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으니 말이네. 동평호(東平湖)에서 그러한 사연이 있었다는 것도 이렇게 현장에서 접하니까 감회가 새롭네. 하하하~!”

“그런데, 이것은 무엇입니까?”

염재가 그 아래에 있는 표시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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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치우능(蚩尤陵) 향서(向西) 이백오십리(二百五十里)’라고 쓰여 있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염재에게 설명했다.

“치우(蚩尤)의 왕릉(王陵)은 동평호에서 서쪽으로 250리에 있다는 내용이잖은가? 그런데 좀 이상하군. 형님께서는 문상(汶上)에서 남쪽으로 가서 치우의 묘를 봤다고 했는데 우리가 서쪽으로 왔는데도 다시 서쪽으로 250리나 더 가야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이지?”

“그래서 말입니다. 제자는 혹시 잘못 봤나 싶어서 여쭈었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어딘가에 잘못된 것이 있지 않을까요?”

“듣고 보니 그렇군. 이것은 형님께 물어보는 것이 좋겠네.”

우창은 뒤에서 진명과 함께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지광을 기다렸다가 이정표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형님의 고견이 필요합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어? 뭐가 말인가?”

“형님이 문상에서 다녀오신 치우묘는 남쪽에 있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이것을 보면, 오히려 서쪽에 있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이럴 수도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형님의 고견이 필요합니다.”

“아, 그렇군. 음.... 그럴 수도 있긴 하지. 원래 유명한 인물은 무덤이 여러 곳에 있기도 하니까 말이네. 하하하~!”

“아니, 형님께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제가 이러한 장면은 처음으로 접해보는 것이라서 그 연유가 궁금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겠지. 그 하나는 원래의 무덤은 하나인데 다른 곳에서도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에 기념하기 위해서 유해(遺骸)가 아니라도 옷이나 유품(遺品)이라도 얻어다가 가묘(假墓)를 쓰기도 한다네.”

“그렇게 하는 것은 금시초문(今始初聞)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과연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가령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은 것이 분명한데 시신을 찾지 못한 경우에도 자손들이 묘가 있어야 제사라도 지낼 목적으로 생각하여 생전의 유품을 묘지에 넣고 비석을 세울 수도 있겠습니다.”

“맞네~! 바로 그것이지.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여러 곳에 무덤이 있게 될 수도 있는 것이라네.”

“그렇다면 또 하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의도적(意圖的)으로 그럴 수가 있는 것이네. 옛날에 들은 이야기인데 신라국(新羅國)이라는 곳에서는 왕은 사후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몸을 다섯으로 나눠서 묻게 되었고, 그래서 오릉(五陵)이라는 이름으로 되어있다더군. 그러니까 전사(戰士)로 천하의 황제(黃帝)와 치열한 전투(戰鬪)를 했던 사람이라면 죽은 육신이라도 다시 살아서 달려들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겠지?”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더구나 까마득한 옛날이니까 죽은 시신이 되살아 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믿었을 수도 있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되살아나더라도 육신이 제각기 다른 곳에 있어서 다시 황제에게 달려들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시신을 분리해서 묻었을 수도 있었군요.”

“그렇지.”

“원래 통치자는 두려움이 많다는 것도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묘에 시신의 어느 부위를 묻었는지도 조사해 보면 맞출 수가 있겠습니까?”

“그야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까마득하게 세월이 흘렀으니 너무 오래된 이야기지 않은가? 그러니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를 아무도 증명할 수가 없다네. 그리고 그 무덤에 들어있는 유해도 또한 실제로 치우의 것인지도 알 방법이 없으니 떠도는 말만 의지할 따름이라고 하겠지.”

“과연 형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까 이러한 경위(涇渭)를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서쪽으로 250리에 있다는 치우묘를 치우릉(蚩尤陵)이라고 이름을 했으니까 좀 더 실제에 가까울 수도 있겠습니까?”

“왜? 찾아가서 치우릉을 보고 싶은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한 시대를 풍미(風靡)한 인물의 이름이 등장하니까 아무래도 역사에 관심이 많은 우제는 관심이 생깁니다.”

우창이 관심을 보이자 어차피 바쁠것도 없는 여행길인지라 지광도 흔쾌히 그러자고 하고는 염재가 마련한 객잔에서 하룻밤을 푹 쉬었다.

 

아침 일찍 잠이 깬 우창이 밖으로 나가자 염재가 이미 마차를 손질하면서 말에게 여물을 먹이다가 인사를 했다.

“스승님 기침하셨습니까? 잠자리는 편안하셨는지요?”

“염재도 일찍 일어났구나. 덕분에 잘 쉬었네. 벌써 말을 돌보고 있군. 그렇게 마음을 써주고 노력하는 덕분에 우리가 모두 편안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겠네. 염재의 덕을 보는군. 하하~!”

“아닙니다.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깨달음에 비하면 태양에 반딧불이라고 할 정도이지요. 이렇게 할 수가 있다는 것이 즐거울 따름입니다.”

항상 진지하고 침착한 염재의 모습을 든든하게 보다가 말했다.

“요즘에도 궁리는 잘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 하나하나가 공부 아닌 것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자의 역량(力量)이 부족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너무 많은 공부로 인해서 허우적대는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참 좋을 시절이로군. 그렇게 쭉 가면 되겠네. 하하~!”

염재가 우창의 말을 듣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는지 물었다.

“스승님께 새벽부터 여쭙기는 저어됩니다만, 괜찮으시다고 하지 싶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아, 뭔가? 당연하지. 궁금하면 바로 물어야 하네. 하하하~!”

우창도 염재가 뭔가 물어볼 것이 있다는 말에 마음이 흡족했다. 왜냐면 그냥 신세만 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천성이 남에게 신세를 진다는 생각이 들면 부담스러운 까닭이기도 했다.

“제자는 요즘 눈에 보이는 현상과 보이지 않는 현상의 구분이 모호(模糊)해서 혼란스러울 때가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연히 그럴 만도 하지. 요즘 겪은 일들이 보통 사람에게는 쉽게 이해되기 어려운 것들이기도 하니 말이네. 그래, 궁금한 것이 뭔지 말해 보게. 나도 잘 알지는 못하나 최대한 논리적으로 토론이야 못하겠는가. 하하~!”

“다름이 아니라 오늘 가보기로 한 치우릉에 대해서 궁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으면 치우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명료하게 답을 할 수가 없겠네. 다만 오가다가 주워들은 풍월로 짐작하고 있을 따름이라네. 더구나 세상에 최초로 천간(天干)이 생기게 된 이유까지 부여한 것을 보면서 조금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고 해도 되겠네. 하하~!”

“맞습니다. 스승님의 견문(見聞)이 매우 넓으니까 이에 대해서 뭔가 짐작이 되는 내용도 있으시리라고 생각이 되어서 여쭙고 싶었습니다. 우선 치우(蚩尤)는 어떤 인물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듣기로 치우는 신농씨(神農氏)의 후손(後孫)이라고 알려졌네. 그러니까 삼황(三皇)인 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의 관계를 놓고 보면 치우는 신농씨의 후손이라고 전하더군.”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말의 손질을 다 마친 염재가 말했다.

“그야말로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입니다. 복희씨는 선천팔괘(先天八卦)를 창안했다고도 하니까 비교적 이름이라도 익숙합니다.”

“아, 마차를 다 살폈으면 안으로 들어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군.”

염재가 앞서서 대청으로 올라가자 마침 지광도 일어나서 거산과 담소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같이 합석하면서 인사하고는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종이와 붓을 준비하면서 말했다.

“기왕 공부하는 김에 제대로 해 봐야지? 하하하~!”

그러자 지광이 물었다.

“아니, 그 사이에 무슨 진지한 대화를 나눴나? 나도 좀 끼워주게.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하군. 하하하~!”

“형님, 마침 염재가 치우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다기에 조금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우제도 잘 알지는 못하니까 부족한 부분은 형님께서 보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야 여부가 있겠나. 어서 말해 보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진명이 소연을 데리고 나와서 차를 끓여왔다. 이렇게 차를 따라서 나누고는 자리를 잡고 앉자, 우창도 차를 마시고는 책 보따리에서 그림을 한 장 찾아서 앞에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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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하면서 우창이 펼쳐놓은 그림을 본 염재가 알고 있는 그림이라는 듯이 말했다.

“아, 스승님. 이것은 복희씨의 선천팔괘(先天八卦)가 아닙니까?”

“그렇지. 복희씨가 만들었다고 전하는 선천팔괘라네. 내가 ‘복희씨의 선천팔괘도’라고 하지 않고, ‘복희씨가 만들었다고 전하는’이라고 말하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을지 모르겠군. 그러니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은 그렇거니와 실제로 그와 같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는 뜻이라네. 전설이라고조차 하는 인물이 그렸다는 것을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 그리고 용마(龍馬)와 신구(神龜)를 거론하면서 나오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도 생각해 보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겠느냔 말이네.”

“과연 스승님이십니다. 제자도 전적으로 스승님의 말씀에 동감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살펴보면서 생각하면, 과연 고인들도 자연(自然)의 이치를 알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많았던지를 짐작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네. 어찌 보면 태호 복희씨(伏羲氏)는 음양(陰陽)의 이치를 관찰하여 팔괘(八卦)를 만들었고, 황제 헌원씨(軒轅氏)는 오행(五行)의 이치로 간지(干支)를 만들었다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내가 관심갖는 것이기도 하지.”

“아하~! 듣고 보니까 과연 그렇겠습니다. 그렇다면 팔괘의 이치가 먼저이고 간지의 이치가 그다음이라는 것도 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까?”

“아마도 당연하지 않을까 싶군.”

“어째서 그렇습니까?”

“예를 들어서 백성을 몽매(蒙昧)한 어린아이로 놓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네. 한두 살의 아기에게 오행을 가르쳐야 할까? 아니면 음양을 가르쳐야 할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진명이 말했다.

“음양이 무엇인지 오행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답을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에요. 오늘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의미를 알게 될 테니 마음은 기뻐요. 정말 푹 자고 나서 이게 웬 횡재(橫財)냐 싶네요. 호호~!”

진명을 보고 미소를 지은 우창이 설명했다.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부모는 맨 처음에 알려줘야 할 것이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부터 가르치는 것이 가장 급하다네. 그렇다면 그것은 음양의 이치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아니, 그렇게 명쾌하게 설명해 주신다면 삼척동자라도 알아듣지 못할 이치가 없겠습니다. 과연 복희씨가 가르치고자 한 의미는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잘 이해했습니다.”

“다행이군. 그렇다면 복희씨가 만들어서 백성에게 가르치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볼 텐가?”

“말씀은 알아듣겠습니다만 복희 팔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지는 쉽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역경(易經)에서 다루는 팔괘는 후천팔괘를 거론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선천팔괘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스승님께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물었다.

“우선 먼저 봐야 할 것을 알려주면 답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네. 상하(上下)의 괘를 살펴보면 어떤 형태가 보이는가?”

“아, 그것은 알 수가 있겠습니다. 상괘(上卦)는 건(乾☰)이 되고, 하괘(下卦)는 곤(坤☷)이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맞았네. 선천팔괘(先天八卦)는 체(體)에 해당하고, 후천팔괘(後天八卦)는 용(用)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지 싶군.”

“아, 알겠습니다. 음양에도 체용(體用)이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스승님의 말씀을 이해하기로 복희팔괘는 음양의 체를 말하는 것이었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렇다면 문왕(文王)의 후천팔괘(後天八卦)는 음양의 용(用)이 됩니까?”

“아마도 그래야 말이 되지 않을까 싶군. 그렇다면 선천팔괘를 체라고 할만한 근거가 있을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염재가 다시 곰곰 생각하더니 잠시 후에 말했다.

“제자가 쉽게 생각하기로는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땅이니 자연의 본래 모습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상하로 봐도 자연스럽게 상대적인 의미가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좌우(左右)도 비교해 볼 텐가?”

“예, 왼쪽은 리괘(離卦☲)가 있고, 오른쪽에는 감괘(坎卦☵)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로 대칭(大秤)이 되는 구조로 배치되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리괘는 화(火)이고 감괘는 수(水)가 되니까 말이지요. 상하(上下)도 그렇고 좌우(左右)도 그렇고 모두가 대칭으로 된 것이 신기합니다.”

“그렇다면 좌에 리괘가 있고 우에 감괘가 있는 이유도 설명할 수가 있겠나?”

그러자 듣고 있던 진명이 말했다.

“진명도 부족하나마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의견이라고 해봐야 궁금증을 못 이기고 여쭙는 것이긴 하지만요. 그러니까 리괘는 양괘(陽卦)이고, 감괘는 음괘(陰卦)란 말씀이지요?”

진명의 말에 우창이 대답 대신에 염재를 바라보자 염재가 우창 대신 답했다. 그것은 염재를 보면서 답변해 보라는 암시를 넌지시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누나가 말한 것처럼 보통은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여기에서 오행(五行)의 수화(水火)와 음양과 괘는 서로 다르게 작용하는 것이 좀 복잡하기도 해.”

“어? 그럼 아니란 말이야? 당연히 그럴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그렇다면 어떤 것이 옳은 거지?”

“누나의 질문을 들으니까 오행원을 지키고 계실 춘매 사저(師姐)가 떠오르네.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항상 그렇게 물으셨는데 문득 보고 싶네. 하하~!”

“그래? 나도 언젠가 만날 수가 있는 거지?”

“그야 내일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만날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하하~!”

“궁금하네. 얼마나 공부를 잘하고 계실지 만나면 이야기가 잘 통할 것도 같단 말이야. 호호호~!”

“그건 그렇고, 리[☲]괘는 불을 나타내면서 음양으로는 음괘(陰卦)가 되고, 감[☵]괘는 물을 나타내면서 양괘(陽卦)라고 한다는 것을 말해 줘야겠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문득 춘매와 자원은 잘 있는지 궁금해졌으나 말은 하지 않았다. 진명의 말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생긴 것만 봐도 리괘는 양이 둘이고 음이 하나인데 그렇게 되면 양으로 보는 거잖아? 이상하네....”

진명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염재를 바라봤다. 그러자 염재가 다시 설명했다.

“팔괘를 보는 방법은 단순해, 셋 중에 하나만 있는 것이 주인이 되는 것으로만 알면 되는 거야. 물론 셋이 전부 양이거나 음이면 그대로 보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러니까 말이야. 왜 그렇게 보는지를 모르겠다는 거지.”

“예를 들어서 여자가 둘이 있고 남자가 혼자 있다면 사람의 관심은 어디로 향할 것인지 생각해 볼 수가 있을까?”

“음..... 그렇게 되면... 당연히 두 여자는 남자를 놓고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니까 양이 둘이면 음에 관심을 두게 되어서 리괘는 음괘라는 뜻이었어?”

“맞아~!”

“아하~! 듣고 보니까 사람의 마음이 그 안에 깃들어 있잖아? 단순하게 모양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하는구나. 정말 신기하네.”

“그렇다면 내친김에 한 수 더 알려 줄까? 리괘는 중녀(中女)가 되고, 감괘는 중남(中男)이 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중녀가 있다는 말은 초녀도 있단 말인거야?”

“초녀가 아니라 장녀(長女), 중녀, 소녀(少女)가 있어.”

“아, 간단하네. 가운데에 음이 있어서 중녀인 거지?”

“맞아,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거야.”

염재의 말에 자신감이 생긴 진명이 태괘(兌卦)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390 태괘상

“아, 알겠다. 간단하네. 그러니까 이것은 장녀가 맞지?”

“왜?”

염재가 묻자, 진명이 말했다.

“당연하잖아, 맨 위에 있는 음이니까, 장녀인 것을 누가 모르겠어? 호호~!”

천진한 진명의 모습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러자 오히려 진명이 의아해졌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염재에게 물었다.

“내가 말한 것이 바른 답이 아니었어?”

“정말 누나는 가야 할 길이 나보다 조금 더 멀구나~! 하하하~!”

염재가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진명이 다시 물었다.

“그렇구나. 내가 뭘 잘못 생각했다는 거지? 알려 줘. 놀리지만 말고~!”

“아니, 놀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이치를 모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고 신기해서 그런 거야. 하하~!”

“그렇구나. 그럼 반대겠구나? 소녀라는 말이지?”

“맞아~! 맨 위가 음효(陰爻)인 괘는 소녀라고도 하고 막내딸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괘는 만 아래에서부터 시작되어서 그렇게 보는 것이라더군.”

“아래부터? 왜? 쓰기는 위에서부터 쓰면서?”

“그야 난들 알겠어? 그냥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는 것이야. 아마도 맨 아래는 땅으로 보기 때문일 거야. 그러니까 집을 짓듯이 땅에서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어.”

“그렇구나. 그것도 일리가 있네. 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으니까 말이야. 듣고 보니까 재미있네. 호호~!”

진명이 하나를 이해했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염재도 즐거웠다. 비록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느낌을 받으면서 보람도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