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토(己土)

작성일
2007-08-29 17:12
조회
10374

무토(戊土)를 토기(土氣)로 본다면 기토(己土)는 토질(土質)로 대입을 하게 된다. 그래서 기토는 토양(土壤)이라고도 한다. 그 토양은 산을 이루기도 하고, 들판을 이루기도 하며 진흙이 되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모두가 토양(土壤)이며 토질(土質)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

 

【하건충설(何建忠說)】

본원(本原)의 휴식(休息)이 되니 그러므로 식원(息原)이라고 한다.

기토(己土)는 식원(息原)이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요. 영원(永遠)으로 들어가는 정토(淨土) 즉 극락세계(極樂世界)가 된다.

열 가지의 원래(原來) 경계(境界)에서 네 개의 물질계(物質界)〔흑체(黑體) ․ 고체(固體) ․ 액체(液體) ․ 기체(氣體)〕의 오르내림은 밖의 온도(溫度)에 의해 결정이 되고, 세 가지의 생명계(生命界)〔동물(動物) ․ 심령(心靈) ․ 신령(神靈)〕의 오르내림은 자신에게 갖춰진 업력(業力)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해석-

근원(根源)으로 돌아가서 휴식(休息)을 취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끝내고 자유영혼이 되어서 해탈(解脫)을 한 것으로 이해가 된다. 여기에서 모든 공사(公事)의 마무리가 되는 것으로 봐도 된다. 즉 무토(戊土)로 시작을 한 역사(役事)는 辛→庚→癸→壬→乙→甲→丁→丙을 거치면서 진화(進化)를 한 다음에 최종적(最終的)으로 기토(己土)에 다다라서 비로소 원래의 본 곳으로 돌아온 셈이 되며 완전한 휴식(休息)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식원(息原)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토(己土)의 장에서는 하건충 선생의 설명이 추가된다. 특히 환경(環境)에 의한 작용으로 금수(金水)의 성분을 논하고 다시 주체(主體)에 의한 작용으로 목화(木火)를 언급하는데, 동물만 논하고 식물은 언급이 없지만 식물도 여기에 배속시켜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금수(金水)와 목화(木火)로 구분하여 순환하는 것으로 관찰을 하는데 토(土)는 별개로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은 그 모두가 토에 해당하는 배경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으로 관찰을 한다.

그리고 결론은 무토(戊土)로 시작해서 기토(己土)로 마무리를 하고 극락세계로 회향하게 되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데, 이러한 관점들은 하건충 선생의 의식세계와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만약 하건충 선생이 도교의 수행자였다고 하면 우화등선(羽化登仙)으로 결말을 내렸을 것이며, 어느 것으로 마무리를 하더라도 그 의미하는 바는 같은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滴天髓-己土論】

기토비습(己土卑濕)하고 중정축장(中正蓄藏)하며,

불수목성(不愁木盛)이요 불외수광(不畏水狂)이니라.

화소화회(火少火晦)하고 금다금광(金多金光)하며,

약요물왕(若要物旺)인댄 의조의방(宜助宜幇)이니라.

 

【뜻풀이】

기토는 낮고도 습한 성분이며,

중심을 잡으면서 올바름을 저장한다.

목이 왕성해도 근심하지 않으며,

물이 미쳐 날뛰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불이 적으면 불을 어둡게 하고,

금이 많으면 빛나게 해준다.

만약 만물을 왕성하게 하고자 할 때에는

도와주고 곁들어줘야 함이 마땅하다.

 

【풀이】

무토(戊土)를 대기(大氣)와 중력(重力)이라고 했으니 기토(己土)는 당연히 토양(土壤)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땅덩어리라고 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를 하면 틀림이 없겠는가? 우선 땅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땅은 낮다. 그리고 습하기도 하다는 것도 포함이 되어야 기토(己土)의 본 모습이다.‘기토비습(己土卑濕)’은 그런 관점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니까 낮고도 습한 성분이 기토이다. 토양은 습기를 늘 포함하고 있는 성분이라는 것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메마른 사막에서도 습기는 있기 마련이다. 그래야 사막의 동물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습이라는 말이 타당함을 생각하게 된다.

중정축장(中正蓄藏)’이라는 말을 해석하면 중정은 무토(戊土)와 같은 토(土)의 성분이라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고, 축장(蓄藏)은 그러한 성분을 내장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되겠다. 즉 땅의 구조도 무토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서 구성되었기 때문에 중정의 성분이 있는데, 그것을 축장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이다. 즉 겉으로 나타나는 것은 무토의 영역으로 공중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면, 기토의 중정은 축장으로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게 된다.

토양의 중정으로 땅 위에 서있는 삼라만상은 반듯하게 지구의 핵으로 중심을 잡고 있는데, 이것은 무토의 영역인지 기토의 영역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성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구태여 구분할 필요 없이 같은 것으로 보아도 되겠다.

‘목이 많아도 근심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지구에서 목이 많은 것이 기토 즉 토양에게 아무런 근심을 주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이러한 관찰을 하라는 의미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울러서‘물이 많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물이 아무리 많아도 토양 위에 존재하는 물이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산사태가 났다고 하면, 거센 물길에 토양이 마구 쓸려서 떠내려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결국 토는 물을 지배하는 성분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기만 하면 이미 기토에 대한 이해는 많이 깊어진 것으로 봐도 되겠다. 그러니 물이 많다고 해서 두려워 할 이유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고 하게 되는 것이다.

‘불이 적으면 불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토의 장(章)에 와서 다른 사행(四行)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여기에서의 불은 정화(丁火)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열기가 부족하면 불이 어두워지는 것으로 봐야 하겠고, 땅이 식으면 만물을 생조할 수가 없으므로 불이 적은 것을 염려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해보게 된다.

참고로 병화(丙火)는 빛과 같은 성분이므로 어두워진다는 말은 빛이 약해진다는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그런 점에서 겨울의 병화는 빛이 부족하여 열기를 보충하는 힘이 약하다는 의미로도 대입이 가능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기토는 화의 기운으로부터 힘을 받지 않고서는 활동을 할 수가 없으므로 화의 부족함을 걱정하는 것이지 화가 많은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봐도 되겠다.

참고로 화의 기운이 넘치는 적도(赤道)에서 만물이 오히려 더 잘 자라고 있음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화가 부족한 것에 대한 염려는 일리가 있는 일이다. 남극(南極)이나 북극(北極)에서는 화기(火氣)가 부족한 상황인데, 만물이 자유롭게 자라지 못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가 있으므로 그대로 물질적인 대입이 가능하다고 보겠다.

‘금다금광(金多金光)’의 의미는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 중의 한 대목이다. 금이 많으면 금이 빛을 낸다는 것은 그냥 광물질로 봐야 할 것인지 다른 의미가 들어있는지 잘 모를 일이다. 금이 생기(生氣)를 받아서 빛을 낸다고 하기에는 주변의 글자가 갖고 있는 의미에 비춰서 뭔가 유치하고 핵심을 읽지 못한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지혜가 부족하니 달리 방법이 없겠다. 뒷날의 한 소식이 이뤄지면 다시 살펴봐야 할 모양이다.

‘만약 만물이 왕성(旺盛)하고자 한다면 기토를 도와주고 곁들여줘야 한다’는 말로 끝 구절을 해석해야 할지, 아니면 기토의 입장에서 만물을 왕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낭월의 소견으로는 뒤의 뜻을 따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사실 지구위에서 생존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지구를 의지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지구를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즉 만물이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토(己土)인 지구는 늘 노력하고 봉사를 하는 성분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心理的인 해석-모정(母情)과 포용(包容)】

기토의 심리적인 구조는 자애로운 모정(母情)과 한없는 포용(包容)이라고 대입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을 감싸주는 토양에서 그러한 모양을 찾아도 되겠는데, 서양에서도 대지(大地)를 여신(女神)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모성애(母性愛)와 같은 느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을 하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스 신화에는 데메테르라고 하는 대지와 곡식의 여신이 등장을 하는데 제우스의 여동생으로 매우 아름답고 인자한 여신이라고 하니 기토(己土)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게 된다.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땅을 어머니의 이미지로 생각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포용하고 수용하며 원하는 대로 응하며, 곡식을 키워주는 것을 보면서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기토의 성분으로 태어난 사람은 이러한 포용성을 일부 전달받아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주변의 분위기를 따라주려고 노력하는 면이 나타나게 된다. 즉 남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반면에 자신의 개성이 없다고 할 수도 있으니 이러한 현상은 어머니는 자녀가 원하는 대로 응대(應對)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는 것과 같으며 자식이 즐거워하면 자신의 즐거움으로 생각을 하는 것과 서로 통하게 된다.

만약 어머니가 개성이 있다고 하면 자녀를 자신의 개성에 맞추고자 할 것이니 이렇게 되면 자녀들은 어머니를 두려워하여 피하고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성분을 십성(十星)에서는‘정인(正印)’이라고 하게 된다.

 

이상으로 십간(十干)에 대한 의미를 적천수(滴天髓)에서 나타나고 있는 십간론(十干論)과 하건충(何建忠) 선생의 십간(十干)에 대한 관점으로 함께 살펴봤다. 때로는 너무나 심오하고 고차원적이어서 이러한 해석이 과연 타당하며 운명을 관찰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생각조차 들기도 했는데, 막상 시간이 경과하고 나서 생각을 해 보면 이러한 관점으로 방향전환을 하면서 의식세계가 확장되고, 그로 인해서 세상의 이치를 보는 시야가 더욱 넓어진다는 것을 살피게 되면서 과연 헛된 공부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십간(十干)의 의미를 그야말로 좁은 시야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을 했어야 하였지만 좋은 스승의 안내를 받게 되면서 그러한 우물 안의 시야에서 지구적인 관점으로 의식을 전환시킬 수가 있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러한 것은 아마도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본다. 이러한 두 관점을 표로 나타내어 본다. 그리고 겸해서 낭월의 소견도 첨부한다.












十干에 대한 見解의 對照


 


一般說


何建忠


낭월


 


 


一般說


何建忠


낭월



巨木


動物


추진력



田畓


息原


토양



花草


植物


생명력



巖石


固體


냉기



太陽


神靈


광선



寶玉


黑體


광물질



燈燭


心靈


열기



江河


氣體


공기




生原


중력



雨露


液體


 

아울러서 십간의 다양한 관점은 보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관찰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다만 어떤 방향으로 생각을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관찰력이 기본적인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유연한 생각으로 관찰을 하노라면 각자의 견해에 따라서 놀라운 관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서 한 분야의 학문이 다양하게 발전하는 계기도 될 것이니 어느 한 가지가 정답이라고 고집(固執)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십간(十干)의 의미는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므로 구체적인 관점을 잘 이해하도록 반복해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십간은‘오행(五行)의 음양(陰陽)’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을 간결하게 하기 위해서 십간(十干)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앞으로 무슨 연구를 하더라도 자평명리학에서 답을 찾는 것이라면 그 모두는 십간(十干)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토론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 대목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해와 응용이 함께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 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그 모두를 다 소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것에 정신을 쏟기 보다는 십간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에 마음을 모아서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내공(內功)을 더욱 견고하게 다지는 것이며, 앞으로 십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결산을 한다면 역시 십간을 깊이 연구한 학자의 소득이 가장 클 것이라고 하는 것을 낭월이 보증한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고 더욱 깊이 살펴서 많은 소득이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