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제21장. 천하유람/ 2.간지(干支)를 놓지 않은 공덕
작성일
2020-03-25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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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제21장. 천하유람(天下遊覽)
2. 간지(干支)를 놓지 않은 공덕(功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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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만당으로 들어서자 유염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 맞는다. 어제는 초면이고 오늘은 구면이니 우창도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형님께서 뒷산으로 갔다는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대략 시간을 어림잡아서 지금 막 상을 들였습니다. 어서 조반을 드십시오.”
“이거 아우가 수고를 많이 하시는군. 그럼 고맙게 들겠네.”
“아닙니다. 응당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그럼 많이 드십시오.”
정갈한 음식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는 잠시 기다리자 다시 유염이 찾아왔다.
“덕분에 진수성찬을 누렸네. 아우도 아침 드셨나?”
“예, 스승님께서 차를 드시자고 하셨습니다. 저쪽으로 가시지요.”
우창이 유염을 따라가면서 내심 긴장도 되었다. 어제는 얼떨결에 인연이 되었지만,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주인장을 만나게 되었으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가 막막했다. 그렇지만 또 상황에 따라서 무슨 일이든 일어나겠거니 하는 마음도 들어서 미리부터 복잡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동쪽으로 난 누각에 오르자 오인걸이 반겨 맞아주었다.
“어서 오시게. 조찬(粗餐)이나마 잘 드셨는가?”
“성찬을 받아서 탐식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래, 뒷산에 가보니 경치는 어떻던가?”
“예, 볼만 했습니다. 고색창연한 왕궁이었을 풍경을 잘 감상했습니다.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진 풍경에는 마음도 아팠습니다.”
“그랬군. 차 좀 드시게.”
“예, 잘 마시겠습니다.”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자, 지그시 바라보던 오인걸이 말을 꺼냈다.
“그대는 간지학을 공부했다고 하였던가?”
“아, 변변치 못합니다. 그래도 오행의 변화가 재미있어서 계속 머릿속으로나마 떠올리고 있기는 합니다. 진작부터 귀한 가르침을 얻으려고 마음을 비우고 귀를 기울입니다. 어떻게 공부하면 되겠습니까?”
“애석하게도 내가 전해 줄 수가 있는 것은 천문(天文)이라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숨어서 도만 닦는 벗을 소개해 주려고 했지. 어떤가? 헛일 삼아서 동행해 볼 텐가?”
자신이 가르쳐준다는 것이 아님을 알고는 순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다른 선생을 소개해 준다는 말에는 뛸 듯이 기뻤다. 오인걸이 소개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이인(異人)일 것이라는 신뢰감이 생겨서였다.
“어떤 가르침인들 사양하겠습니까? 감복(感服)할 따름입니다.”
“그래, 간지학을 공부한다니까, 어떤 책으로 공부했는지 물어볼까?”
“예, 많은 책도 접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근래에는 적천수(滴天髓)라는 책을 읽으면서 오행의 변화에 약간의 흥미를 느끼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래? 적천수를 읽었단 말이지. 책의 인연도 참 좋았네 그려. 허허~!”
“그럼 두남 선생님께서도 적천수를 아십니까? 대부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변변치 못한 책인가 싶은 생각도 했었습니다.”
“책은 저마다 인연에 따라서 만나는 것이지만 적천수를 만났다는 것은 이미 오랜 생을 살아오면서 인연이 깊어졌다는 것을 알겠네. 오행의 이치를 밝힌 책으로 본다면 그만한 것은 또 없을 것이네. 나도 예전에 그 문서를 본 적이 있었다네. 그리고 마침 내가 소개하려는 친구도 그 분야에 깊은 이해가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기연(奇緣)이랄 밖에. 허허허~!”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 고인을 어서 뵙고 싶어서 안달이 납니다. 하하~!”
“천문학(天文學)에는 관심을 둬보지 않았던가?”
“말만 들었습니다. 다만, 제대로 접할 인연이 부족해서 깊은 이치는 고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에도 끼어들지 못할 얕은 상식만 있을 따름이지요. 그래도 언젠가는 기회가 되면 드넓은 하늘의 이치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은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시게. 다만 지금은 간지학으로 인연을 맺으셨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네. 세상에 학문은 많고 그것을 모두 다 배울 수도 없을뿐더러 또한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라네. 저마다 인연을 따라서 한두 가지만 터득을 해도 삶의 이치를 깨닫기에는 조금도 아쉬움이 없는 것이니깐 말이네. 그리고 간지학의 재미야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오묘하지 않은가 말이네. 허허~!”
“맞습니다.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그사이에 만난 인연들을 통해서 대략 맛만 봤을 따름인데도 도학(道學)의 세계는 참으로 무궁무진(無窮無盡)한 이치로 가득하여 변화무쌍(變化無雙)한 이치를 조금이라도 얻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이 공부가 눈에 보이듯이 진척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누구나 그렇게 한 걸음씩 도의 세계로 다가가는 것이라네. 다만 가장 금해야 할 것은 조바심뿐이라네. 차도 마셨고 하니 같이 나가보려나?”
우창은 이제나저제나 가자는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지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어나서는 오인걸의 뒤를 따라서 궁금한 인연처를 찾아서 걸음을 재촉했다.
한참을 걷던 오인걸이 허름한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의 위에는 편액이 있었다. 문자에 대해서는 유독 눈이 밝은 우창이 언뜻 살폈다.
「도락당(道樂堂)」
“당주~! 계시는가~!”
우창은 숨을 죽이고 집 안에서 들어오는 반응을 지켜봤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오인걸은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우창에게도 손짓으로 따라 들어오라는 신호를 했다. 아마도 이 집의 주인과는 그만큼 가까운 사이겠거니 생각하고 말없이 따라 들어갔다. 집은 비어있어서 인기척이 없었던 모양이다.
“자, 들어가세. 어디 나간 모양이군.”
“예.”
방으로 들어가니 침상과 몇 권의 책이 전부인 조촐한 살림살이였다. 사람을 만나진 못했지만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의 성향이 느끼지는 것만 같아서 벌써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긴장한 채로 쭈뼛거리면서 오인걸이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꽤 어두웠는데 잠시 어둠이 익숙해지자 주변의 사물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러갔다.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우창이 놀란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문을 열었다.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온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어, 두남이 왔는가? 손님까지 누추한 곳에 모시고 왔나 보군.”
바싹 야윈 풍채에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쇳소리처럼 하는 말을 들으니 우창은 긴장이 많이 되었다. 그래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오인걸만 쳐다봤다. 그는 앉은 채로 미동도 없이 주인장이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안녕하십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생은 진하경이라 하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공수하고서 주인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쩌면 이미 오래도록 익숙하다는 듯이 방으로 들어서서는 자리에 앉는다. 그러자 주인을 찾아뵌 객의 입장으로 절을 했다. 이미 스승이 될 수도 있는 인연이라는 것을 오인걸에게 들었기 때문에 더욱 공손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잘 오셨네. 그렇잖아도 기다리고 있었다네.”
그 말에 오인걸도 웃으면서 받았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아침 점괘가 발동했던가 보군 그런가?”
“새벽에 잠이 깨어서 하늘을 봤더니 두성(斗星) 옆으로 유성(流星)이 지나가기에 진객(珍客)이 찾아오겠거니 했다네. 그래서 저자에 나가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조금 준비해 오지 않았겠나. 그런데 그사이에 손님이 온다는 것도 몰라서 이렇게 손님맞이가 변변치 못했으니 아직도 내 공부는 멀었군.”
“아닐세, 그만하면 이미 달인의 경지인데 뭘 그러시나. 참 이 젊은 친구는 어제 우연히 풍화객잔에 들렸다가 인연이 되었는데 마침 도학을 공부하고 있다기에 자네 생각이 나서 동행하게 되었다네. 좋은 인연이 된다면 한 수 알려줘도 좋고. 허허허~!”
“그래? 그것도 인연이 있어서 만나게 되었겠거니. 올해 나이는 몇인고?”
“예, 서른여덟입니다. 견문이 좁아서 궁금한 것만 많습니다. 부디 큰 가르침을 주신다면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음.... 삼팔은 목이니.... 고목에 새싹이 돋는 형국이구나....”
잠시 우창의 나이를 듣고서 나직이 중얼거렸지만 워낙이 소리가 카랑카랑해서 다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도락이 감로수를 흠뻑 주시게나. 허허허~!”
이 주인장의 호가 도락인가 보다. 도락이라면 아마도 도락(道樂)으로 쓰는 것이겠거니.... ‘도를 즐긴다’고 해석해야 하나? 뭔가 여유로움이 넘쳐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염두(念頭)를 굴리고 있는데 주인장의 목소리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이름은 뭔고?”
“예, 진하경(陳河鏡)입니다. 물하에 거울경을 씁니다.”
“호는?”
“예, 호랄 것도 없지만, 우창(友暢)이라고 부릅니다. 벗우에 펼창입니다.”
“그래? 그 호는 누가 지어줬는고?”
“호는 진희이(陳希夷) 사부님께서....”
“엇? 마의도인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예전에 잠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럼 상학(相學)에도 인연이 있으셨군.”
“아무래도 그릇이 상학은 아니었던지 스승님은 간지학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창도 상학보다는 간지학이 더 재미있어서 이렇게 작은 소득을 얻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우연한 기회에 적천수를 봤다잖은가. 그래서 도락이 떠올라서 데리고 온 것이라네. 허허허~!”
“그래? 적천수는 어디에서 봤는고?”
“예, 노산에서 인연이 되었습니다.”
“참 기연이로군.... 그렇다면 몇 가지 물어보겠네.”
“예, 무엇이든 하문(下問)하시면 부족하나마 답을 올리겠습니다.”
“오행이 뭔고?”
“오행은 절대적(絶對的)인 것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다섯 가지의 본질(本質)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럼 음양은?”
“음양은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건 또 왜?”
“비교하고 이해하는 것에는 항상 상대(相對)가 있는 까닭입니다. 상대가 없다면 음양으로 논할 수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음양이 멈추는 곳은 어딘가?”
“중심(中心)입니다.”
“중심이라니?”
“중앙(中央)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음양은 균형(均衡)을 잃고 소용돌이를 일으키게 되고, 그렇게 한바탕 소용돌이를 치고 나면 다시 원래의 균형으로 돌아가게 되니 그곳을 일러서 중심이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창은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함이 느껴졌다. 도락의 질문에 무엇이든 간에 답을 할 말이 떠오르는 것도 신기했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핵심을 짚어가면서 묻는 것도 맘에 들었다. 그래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질문에 따라서 생각이 이끄는 대로 답을 했다. 말이 되지 않아도 좋았다. 이제 그러한 것을 저울질하려고 질문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모두 드러내놓고 싶었는데, 오인걸도 두 사람의 대화가 재미있는지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도락이 우창과 오인걸을 쓱 훑어보고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다시 물었다.
“오행을 설명해 보게.”
“오행은 인생으로도 설명하고 자연의 모습으로도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 인생으로 설명해 보게.”
“인생으로 설명한다면 어린 시절은 목(木)이 되고, 청년 시절은 화(火)가 되며, 중년 시절은 토(土)가 됩니다. 장년(壯年)은 금(金)이 되고, 노년은 수(水)가 됩니다.”
“그래? 자연으로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자연으로는 땅을 토(土)라고 봅니다. 땅의 위에서 살아가는 초목(草木)과 인간 등의 동식물(動植物)은 모두 목(木)으로 봅니다. 태양의 밝음과 온기(溫氣)는 화(火)가 되고, 결실과 추수(秋收)는 금(金)이 되고, 죽음과 추위와 어둠은 수(水)가 됩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인걸이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오호~! 하늘의 일만 살피느라고 땅의 일은 생각 밖에 있었더니 오늘 우창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괜히 먼 곳에서만 이치를 찾았나 싶은 생각이 드는걸. 재미있는 이야기네. 허허허~!”
그렇게 말하는 오인걸을 힐끗 쳐다본 도락은 다시 우창을 향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사람의 마음에도 오행이 있는데 설명할 수 있나?”
“그렇습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목의 기운이 발동하게 됩니다. 목의 기운은 시작을 잘하는 것이 그 장점입니다. 다만 단점을 논한다면 마무리를 잘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겠습니다. 목의 기운이 많은 사람은 어쩔 수가 없는 음양의 이치로 인해서 마무리를 잘못하는 것도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번에는 오인걸이 우창에게 물었다.
“참 재미있는 궁리를 했군. 그렇다면 시작도 잘하고 마무리도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가령 수행을 잘하여 그 마음이 중심에 머무르는 사람이라면 응당 시작할 때 시작을 하고, 마무리할 때를 당하여 깔끔하게 마무리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적천수에서는 ‘시기소시(始其所始) 종기소종(終其所終)’이라고 하였지 싶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아무래도 치우친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사료(思料)됩니다.”
“듣고 보니 그럴싸 한 걸. 이보시게 도락, 더 물어서 뭘 하겠는가? 이미 배움에 대해서는 끝이 났다고 봐도 되지 않겠는가?”
오인걸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이치(理致)의 명암(明暗)은 어떻게 되는가?”
“이치에는 밝은 이치와 어두운 이치가 있습니다. 밝은 이치는 일월운행(日月運行)과 생노병사(生老病死)며, 춘하추동(春夏秋冬)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이치들은 누가 봐도 시종(始終)이 명백하여 이해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반면에 어두운 이치도 있으니 이것은 명백하게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엄연(儼沿)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부정할 수도 없으니, 예컨대 선신(善神)과 악귀(惡鬼)며 미래(未來)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현재는 명백하게 알 수가 있으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기가 어려운 까닭입니다. 이러한 것은 어두운 이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혼(靈魂)은 존재하는 것인가?”
“예, 그럴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다만 확연히 증명하고 드러내 보일 수가 없으므로 존재한다고 단정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단정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둠의 이치와 미래를 알아낼 방법은 있는가?”
“있을 것으로 생각은 합니다. 다만 그 세계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아직은 문전(門前)에서 기웃거리는 것이 전부인지라 내부의 깊은 이치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실은 그것이 알고 싶어서 유람 길에 오른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전에서 기웃거려 봤다니? 그건 무슨 뜻인가?”
“가령, 우창이 길을 떠나기 전에 스승님으로 모셨던 분이 계셨는데, 점괘를 뽑으라고 하여 화산려(火山旅) 3효를 얻었더니 미래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고, 실제로 그와 같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분명히 어둠의 세계에서도 지배하는 이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가 있겠는데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는 아직도 묘연(渺然)합니다.”
“아니, 그 스승님께서 안내하는 대로 공부를 하면 되지 않았겠나? 왜 굳이 멀고 힘든 길을 나선단 말인가?”
“그 스승님께서는 더 깊은 이치를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길을 나서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 세계를 알려 줄 스승님은 따로 계신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어둠의 진리(眞理)로 향하는 문은 뭘까?”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가깝게는 역경(易經)의 이치를 타고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럼 그대로 가면 될 일이 아닌가?”
“아무래도 저마다 어둠의 세계로 통하는 인연의 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누군가에게는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좋고, 또 누군가에게는 말을 타고 가는 것이 좋을 수도 있듯이 말입니다. 역경문(易經門)은 제가 가야 할 통로가 아닌 것으로 막연히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역경의 문을 선택하지 않고서도 또 다른 문이 있다고 믿나?”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의 마의도인께서는 얼굴을 보고서 미래를 읽어내셨지만 그것도 우창이 깨달을 영역이 아니라고 하셨듯이 많은 문이 있을 것이고 그중에 하나는 이 우창에게도 찾을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혹 그중에 한 문을 가르쳐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인걸이 입을 열었다.
“어쩐지, 나는 천문을 보고서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읽어내고 있으니 내 길은 하늘에 있었다는 것을 알겠군. 도락이 자꾸만 질문을 던진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 우창에게 새로운 문을 찾을 기회가 있을까?”
도락이 답했다.
“우창은 오행문(五行門)에서 답을 찾게 되겠군.”
“아니, 이미 오행에 대해서는 저렇게 깊은 사유를 했음에도 발견하지 못한 문을 그곳에서 찾는단 말인가?”
“원래가 등하불명(燈下不明)이고, 양극즉음생(陽極卽陰生)이라고 하잖는가. 우창의 그간 공부가 등불을 밝히는 것에 있었으니 이제는 그 뒷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네.”
“그게 무슨 말인가? 말은 알겠는데 뜻은 잘 모르겠는걸.”
“어둠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야 밝음에서 오는 것이잖는가?”
“오행의 양(陽)을 알게 되면 다음엔 뭘 알게 되겠는가?”
“오호라~ 그래서 오행의 음(陰)을 깨닫게 될 준비가 잘 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란 말이군. 그런가?”
“그렇지.”
“그러니까.....”
“어렵게 생각할 것 없네. 사람이 양이라면 거울은 음이라네, 사람이 없으면 거울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지. 그러나 일단 사람이 그 앞에 선다면 거울에는 순식간에 그 사람의 상대가 나타나기 마련이잖은가? 이것은 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 것과도 매한가지라네. 우창의 이름이 '물에 비친 거울'이라잖은가.”
“그 말은.... 옷을 뒤집는 것과 같다는 것인가?”
“물론이네.”
“거 참.... 이론을 들어봐서는 음양에 부합(附合)하지만 어떻게 적용을 해야 할 것인지는 요령부득(要領不得)이로군. 그러니까 우창이 공부한 간지학에서도 명암(明暗)의 이치가 있단 말이잖은가? 그게 과연 뭘까? 아, 이럴 것이 아니라 오늘 점심은 내가 낼 테니 자리를 옮기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興味津津)해서 배가 꺼져버렸잖은가. 허허허~!”
오인걸을 따라가자 깨끗하고 넓은 주루(酒樓)로 들어갔다. 한가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이것저것 시키고 이어서 나온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먼저 우창이 궁금함을 견디지 못하고 도락에게 물었다.
“이미 가르침을 주신 것만으로도 스승님으로 모시기에 너무나 넘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간지(干支)를 바탕에 놓고 오행으로 궁리하던 것에서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치가 숨어있다는 말씀을 들으니 벌써 가슴이 울렁입니다. 이것은 마치 손등만 바라보다가 손바닥을 본 것과 같이 당연한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황당(荒唐)함이라고나 해야 할까 싶습니다. 멀리 역경이나 천문이나 지리를 공부해야만 도달할 수가 있는 곳일 것이라는 생각만 했지, 오행을 뒤집어서 살펴보면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이치를 알고자 합니다.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창이 매우 정중하게 두 손을 모으고 진중하게 말하는 동안 우창의 마음속에서 격동(激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이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말의 중간중간이 떨렸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차를 기울이면서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자, 오늘의 요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즐거운 식복을 누리는 시간이 되십쇼~!”
점원이 요리접시를 들어 나르면서 호들갑스럽게 말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는 멈춰졌다. 그리고는 말없이 먹는 일에 열중했다. 공부든 놀이든 먹어야 한다는 것은 생명의 절대적인 진리임을 그대로 묵묵히 실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