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편재의 단독성분(單獨成分)

작성일
2007-08-29 17:28
조회
8822

편재의 능력은 통제(統制)하고 관리(管理)하는 분야에서 발휘가 된다. 그리고 매우 현실적(現實的)이며 구체적(具體的)이기도 하므로 항상 실질적(實質的)인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추상적(抽象的)인 것에 대해서는 거부하게 된다. 여기에 감정적(感情的)이라는 것이 추가된다. 그래서 감정적인 통제가 되는데, 이러한 것은 마음이 내키는 대로 지시하는 형태로 관찰이 가능하다. 즉 이러한 성향의 상사(上司)를 만난다면 변덕이 많은 형태가 되므로 그 아래에서 견디기는 무척 힘이 들 것이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 좀 전까지는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이 되었던 일이라도 상황이 변하게 된다면 바로 수정을 해야 하는데, 한가지로 골몰하게 연구하는 식신과 같은 성분이라면 아마도 적응을 하지 못할 것이다. 혹 부하가 잘못 한 일이 있더라도 두고두고 잔소리를 하지는 않는다.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이내 잊어버리는 성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시키는 대로만 하면 편안한 성분이기도 하다.

편재는 공간적(空間的)인 감각(感覺)이 무척 탁월하다. 그것은 공간을 통제한다는 말로도 이해가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사물만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조차도 통제하고 관리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편재는 자신의 몸도 통제한다. 밥을 먹을 적에도 최대한 빨리 먹기를 스스로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급하게 음식을 먹게 되는데, 이러한 것을 수정하라고 아무리 옆에서 주의를 줘도 잠시 뿐이고 이내 본 습관대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이러한 현상은 편재는 과정보다는 결과에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반면 식상(食傷)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성분으로 천천히 음미하면서 식사시간을 즐기게 되는데 편재는 얼른 먹고〔먹어치우고〕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해서 이와 같은 현상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도로를 주행할 적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운전을 하는 사람이 편재가 있으면 그의 자동차는 도로 상황에서의 최고속도를 유지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앞에 자동차가 없다면 그대로 200km의 속도라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를 구매할 적에는 튼튼한 차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빠른 차인지를 우선 살피게 되는 것이다. 역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된다. 이러한 사람이 감독을 하게 된다면 능률은 최대한 오르겠지만 직원들의 고통이나 불량률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을 갖지 못할 것이다.

편재는 신령(神靈)을 믿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는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물질을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는 통제가 되지 않는 영혼(靈魂)은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되며, 아예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무신론자(無神論者)’가 되는 것이다.

편재는 교육으로도 가르칠 수가 없다. 아무리 가르치려 해도 자신의 마음대로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이 결국은 공염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원래 편재는 무엇을 배운다는 것에는 의미를 두지 않고 바로 활용되는 것에 대해서만 교육의 의미를 둔다. 그렇게 되므로 기술이나 자격증과 같은 것에는 관심이 있지만 인성(人性)에 대한 교육(敎育)은 전혀 배울 필요도 못 느끼고 그럴 마음도 없다. 왜냐면 이미 태어나면서 각자 사람으로 태어났고 그렇게 태어나서 살아가고 활동을 하는 것인데 뭘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주에 편재가 많이 있다면 교육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하나의 특성이다.

무신론자는 우연히 환경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이와 같은 사주의 성분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증명되지 않는 존재는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신외무물(身外無物)’이 되는 것이며, 이러한 결론은 유물론(唯物論)의 관점이 된다. 유물론과 유심론(唯心論)이 논쟁을 한다면 당연히 유물론이 이기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증거를 대라고 하면 증거가 나올 것이고, 그것은 물질(物質)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재는 고민하고 걱정할 일이 없다.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수용하며 관리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편재는 낙천적(樂天的)이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 연연하지도 않고 마음에 담아두고 고민을 하지 않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이미 돌아오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일을 추억하며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지나간 일들로 마음 쓴다면 그 자체로 시간낭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자니 지나간 일의 상처들에 대해서도 이내 잊어버리게 된다. 즐거웠던 일도 잊어버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성분으로 만들어진 것이 편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