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 제22장. 연승점술관/ 10.밥상머리에서 노는 방법

작성일
2020-06-30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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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1] 제22장. 연승점술관(燕蠅占術館)


 

10. 밥상머리에서 노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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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매는 우창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흠모(欽慕)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따뜻한 봄날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자 이대로 헤어진다면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람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붙잡아 둘 방법이 없었다. 나날이 쌓여가는 명학의 공부는 즐거운데, 공부가 즐거운 것에 따라서 이번에는 이별에 대해서도 준비를 해야 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잘되지 않았다. 그동안 마음을 주고 의지했던 사람이 없었기도 했지만, 우창과 함께 보낸 겨울 한 철의 3개월 남짓한 시간은 너무나 큰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생전에 스승님으로 모시고 살아 본 적이 없는 춘매에게 이러한 인연은 하루하루가 참으로 소중했다. 그렇게 복잡한 상념에 잠겨있을 때였다.

“춘매낭자 있으신가~!”

이른 아침에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마도 누군가 안마를 받으러 왔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여니까 가끔 찾아오는 명륜당(明倫堂)의 당주다. 나이는 70세가 지났지만 항상 봐도 꼿꼿한 자세는 보통 안마를 받으러 와서도 희희덕거리는 여느 남자들과는 품격이 달라서 항상 찾아주면 성의를 다해서 손 끝에 힘을 줘서 안마를 했고, 당주도 그것을 알고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꾸준히 찾아 준 것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어서 오세요. 공할아버지~!”

“여~! 오늘 아침의 낭자 표정엔 희비(喜悲)가 교차하는구나. 지난겨울에 날이 추워서 꼼짝도 하지 않고 들어앉아 있었더니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지?”

“이제보니 공 할아버지도 점쟁이시네요? 호호~!”

“기쁨도 근심도 내려놓고 지금을 살아야 하는 거라네. 허허허~!”

“어쩜 할아버지도 누구랑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 이리 누우세요. 의관(衣冠)은 주시고요. 호호~!”

“누구랑 같은 말을 하다니 누가 왔다 갔나?”

춘매는 모처럼 진심으로 말을 받아주는 공할아버지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창을 만난 것이며, 명리학을 배우게 된 것도 빠트리지 않고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명륜당주가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그 진씨 성을 가진 남자를 사모하게 되었다는 말이군?”

“그게 아니라 아직 배워야 할 것은 산더미인데 날이 자꾸만 따뜻해져서 그게 걱정이란 말이에요. 떠나가면 공부를 더 할 수가 없잖아요.”

“어허, 그렇다면 큰일이로군. 어쩐다....”

“할아버지께서는 세상의 이치에도 두루 밝으시니 어린 소녀에게 희망의 길을 열어주세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춘매의 말에 뭔가를 잠시 생각하던 노인이 말했다.

“방법이야 왜 없겠나? 걱정만 하지 말고 손끝에 힘이나 더 줘보게. 허허허~!”

“예? 정말요? 어쩐지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면 신통한 방법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꾹꾹 눌러 드릴게요. 호호호~!”

그제야 뭔가 좋은 방안이 있을 것이라는 명륜당주의 말에 희망이 생긴 춘매가 더욱 손끝에 정성을 쏟아부었다.

“어이~ 시원하다~! 좋아~ 매우 좋군. 허허~!”

“할아버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만, 안타까운 것은 부부의 인연이 되지 못한 것이 아쉽구나. 춘매도 배필을 만나야 할 때가 되었는데 말이네.”

“예? 부부인연이 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아세요?”

“어허~! 이 낭자가 늙은이를 뭘로 보고~! 허허허~!”

“가르쳐 주세요. 정말 알고 싶어요.”

“뭘 가르쳐 줄까? 부부인연? 아니면 사제인연? 춘매가 알고 싶은 것이 뭔고?”

“둘 다 알려주세요~! 호호~!”

“하늘아래의 연못이라....”

“예? 무슨 말씀이세요?”

“춘매가 진씨를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인연이 사제에 머무르게 되었으니, 하늘은 연못을 바라보고, 연못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란 말이네. 허허허~!”

“그야 당연한 거잖아요?”

“누가 뭐래나? 그렇다는 말이네. 허허~!”

“그럼 스승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부부인연이 될 수도 있나요?”

“아무것이라도 좋으니까 생각나는 숫자 하나만 불러보게.”

“2자요.”

“음..... 이지무망(履之无妄)이라.... 그 남자는 눈꼽만큼도 여기를 떠날 마음이 아직은 없는데 뭘 걱정하고 있어?.”

“예? 정말요?”

“정말이잖고? 이 늙은이가 낭자와 헛된 말이나 하겠나?”

“아니, 그게 아니라.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단 거죠. 헤헤~!”

“강남으로 떠나갔던 제비도 봄날이 되어서 다시 옛 둥지를 찾아서 돌아오는데 찾아 온 나그네도 마음이 생기질 않으니 어찌 떠난다고 말을 하겠느냔 말이지.”

“예?”

춘매는 ‘제비’라는 말이 명륜당주의 입에서 나오자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문득 지난가을에 뽑았던 단시에서의 연괘(燕卦)가 떠올라서였다. 이것도 무슨 인연이 있나 싶어서 조곤조곤 물어봤다.

“왜 하필이면 제비에요?”

“어? 춘매는 귀가 어둡나?”

“아니에요. 무슨 소리가 들렸나요?”

“그럼 얼른 나가봐. 제비가 돌아온 모양이야.”

“예? 그래요?”

그 말을 듣고 춘매가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러자 정말로 우창의 점술관 추녀 아래에 제비 한 마리가 찾아와서 춘매를 빤히 바라보다가 날아갔다. 그것을 보니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때? 제비가 돌아왔지?”

“예, 할아버지 말씀대로 제비가 돌아 왔어요. 와우~!”

“그렇게 반가운가? 허허허~!”

“그럼요~! 반갑고 말고요. 호호~!”

“그럼 스승이 떠나갈까 걱정하는 것은 해결이 되었나?”

“에구, 그런 게 어딨어요? 본인이 안 간다고 해야 안 가는 거죠. 할아버지 말씀만 듣고 믿을 수는 없잖아요.”

춘매는 명륜당주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반신반의(半信半疑)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가을에 이미 한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제비가 겨울을 나려고 동굴로 찾아들었는데 날이 풀리면 떠나는 것이 정상이라고만 줄곧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다시 단시점을 뽑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용히 기억을 더듬었었다.

‘내가 원숭이 띠니까 신(申)은 7, 오늘은 갑자일(甲子日)이니 갑(甲)은 9, 그리고 시간은 진시(辰時)쯤 되었을 테니 진(辰)은 5가 되겠구나. 이것을 합치면 21이 되네? 그럼..... 결저괘(結猪卦)네? 묶인 돼지잖아. 그렇다면 공할아버지 말씀마따나 어디로 가지는 않는 것일까?’

이렇게 춘매가 궁리를 하느라고 갑자기 조용해지자 노인이 물었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나?”

“아, 묶인돼지괘가 나와서요.”

“뭐라고? 그 사이에 단시점을 돌려 본건가? 허허허~!”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묶인돼지가 나올 곳은 단시점 밖에 없으니까. 허허허~!”

“그럼 풀이도 해주세요. 어떻게 해석하면 되죠?”

“이미 답이 나왔네. 벌써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입꼬리가 하늘을 향하고 있는데 뭘. 허허허~!”

“정말 대단하세요. 정말 저도 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요. 그런데 스승님이 떠나가면 안 되잖아요. 그렇다고 명륜당에 가서 사서삼경을 배울 주변머리도 못 되니까요. 호호~!”

“가만, 나도 오늘 바쁜 일도 없으니 내가 점심을 사 줄까?”

“와우~! 그럼 저야 고맙죠.”

“춘매의 스승도 같이 간다면 말이네.”

“아, 그래요? 그럼 얼른 가서 물어볼게요.”

춘매는 서둘러서 연승점술관으로 향했다. 마침 우창은 책을 보다가 다리가 아팠는지 일어나서 방을 빙빙 돌면서 다리 운동을 하고 있었다.

“오빠, 공부하셨어? 점심 먹으러 갈래? 단골 어르신께서 점심에 초대하신다는데 오빠도 같이 가자고 하시네.”

“나를 어찌 알고? 아, 누이가 이야기했나 보구나. 어떤 사람인데?”

“명륜당 주인이셔. 대제학(大提學)을 지내시다가 귀향하셔서 곡부의 유림(儒林)을 이끌고 계시는 어른이시라고 하던데 난 잘 몰라.”

“그렇구나. 그럼 귀한 어르신의 초청인데 사양을 할 일이 아니지.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끝나면 이야기하렴.”

“그럼 조금 후에 연락할게.”

춘매가 희색이 만면해서 부리나케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무슨 조짐인가 싶어서 점괘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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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에서는 처음에 약간의 부담이 있는 것은 월간(月干)의 경금(庚金)으로 인해서이겠지만, 인목(寅木)을 보니까 이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공통관심사가 자수(子水)에 있는 것으로 봐서 어쩌면 귀한 가르침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호기심이 발동했다. 시주(時柱)의 무진(戊辰)은 편재(偏財)이니 잘 먹으면 되고, 분주(分柱)의 정사(丁巳)는 식상(食傷)이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것으로 오늘 점심의 일정을 좍~ 훑었다.

‘음, 조짐은 괜찮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들이할 준비를 했다. 잠시후 춘매가 다시 왔다.

“오빠, 준비했어? 가자~!”

흥이 나서 즐거워하는 춘매의 말을 듣고서 우창도 밖으로 나섰다. 춘매가 명륜당주라고 말했던 노인은 벌써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 꼿꼿한 자태에서 흐트러진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 노인이 점심을 초대한다는 것이 의아할 지경이었다.

“오빠, 어쩌면 오빠에게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아, 어쩐지 기품(氣稟)이 느껴진다 했지.”

춘매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 갔다. 자리에 앉으라는 점원의 안내를 받고 앉아서야 비로소 인사를 할 틈이 생겼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진하경입니다.”

“반갑소이다. 나는 공광삼(孔廣森)이라는 쓸모없는 늙은이인데 아호를 손헌(巽軒)이라 한다오. 추녀 끝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아서 그렇게 지었구려. 마침 오늘 춘매를 보러 갔다가 훌륭하신 스승님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하는 바람에 궁금해서 점심이나 함께하고 싶어서 청했으니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편안하게 즐기면 되겠소이다. 허허허~!”

“귀한 어르신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가르침을 청합니다.”

“아, 너무 그러시지 마시오. 그냥 편안하게 즐기자니깐. 허허~!”

“어르신께서 괜찮으시다면 말씀을 좀 편하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좀 불편해서 말입니다. 하하~!”

“그러시다면 원하는 대로 해 드림세. 젊은 선생이 어찌 그리도 학문을 깊이 연마했기에 춘매가 홀딱 반했나 싶어서 궁금했지. 허허허~!”

“아닙니다. 그냥 쓸데없는 잡술인 줄도 모르고 춘매낭자가 순진해서 다 믿는 까닭입니다. 하하~!”

“그래, 진 군은 어느 분야의 학문을 연마하셨나? 참 아호가 있으신가?”

“예, 우창(友暢)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주로 잡술(雜術)에 관심을 두고 궁리하다가 보니 넓은 세상의 이치에 매우 어둡습니다.”

“그러시다면 술수(術數)에 관심을 두셨나 보군. 어느 분야인지?”

“아직 학문에 입문한 지는 연륜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는 바는 살얼음처럼 얕습니다. 이것저것 건드리기만 하고 겨우 간지학(干支學)에 대해서 약간 이해를 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우창이 사주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에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손헌이 말했다.

“명학(命學)을 공부하셨다니 아주 좋군. 그렇다면 우리 재미있는 놀이를 해 볼까?”

손헌의 재미있는 놀이라는 말에 춘매가 반색을 했다.

“할아버지, 재미있는 놀이가 뭐에요?”

“근데, 할아버지라는 말보다는 손헌이라고 하면 안 될까? 이제 춘매 낭자도 공부에 입문했으니까 말이네.”

춘매가 할아버지라고 부르자 호칭을 바꾸라고 했다.

“싫어요~! 그냥 할아버지로 할거에요. 저는 그게 더 좋으니까 말이에요. 호호~!”

“그래? 그렇다면 마음대로 하고. 허허허~!”

“근데 재미있는 놀이가 뭐죠?”

“아, 무슨 놀이냐면 바로 족집게놀이라네. 어이, 점원~!”

손헌의 손짓과 부름에 바람처럼 달려온 점원에게 말했다.

“우리가 재미있는 놀이를 하려니까 자네의 협조가 필요하네.”

“예예~! 분부만 내리십쇼. 나리~!”

싹싹한 점원이 시원하게 답했다. 그러자 손헌이 자세하게 지시를 했다.

“속이 보이지 않고 뚜껑이 있는 그릇에다 우리가 모르는 물건을 하나 넣게. 물론 내용물은 무엇이라도 상관없네. 그리고 뚜껑을 덮은 채로 탁자 가운데에 갖다 놓아주겠나?”

“물론입죠~! 분부하신 대로 즉시 대령하겠습니다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춘매가 손뼉을 쳤다.

“와우~! 진짜 재미있겠어요.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맞추는 거잖아요?”

우창은 손헌 선생의 놀이가 매우 어색했으나 어른이 재미로 한다는데 거부할 수도 없어서 난감했다. 즐기자는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분위기를 깨는 것이려니 싶어서 수용했다.

“하하~! 이런 놀이는 해본 적이 없는데 너무 긴장됩니다. 혹 형편없는 답을 제시하더라도 너무 심하게 꾸짖지만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암, 여부가 있나. 요리가 마련되는 시간을 이용해서 재미로 놀이하는 것이니 부담은 갖지 말고 느낌대로 즐겨 보세나. 허허허~!”

점원이 재빠르게 그릇 하나를 들고 와서는 탁자의 중앙에 내려놓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오늘 나리님들 덕분에 재미있는 구경을 하게 생겼습니다요. 자, 여기 말씀하신 대로 준비해 왔으니 멋진 해답을 보여 주십쇼~! 헤헤~!”

그릇을 잠시 보던 손헌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자, 답을 가져 왔으니 우리는 그 답을 찾기만 하면 되겠군. 그럼 각자 일각(一刻:15분) 이내로 자신이 판단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하세나.”

세 사람은 동시에 침묵에 빠져들었다. 우창도 부득불(不得不)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팔자에 없는 시험에 들게 생겼으니 난감하긴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상황에서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일하게 믿고 있기도 하지만, 알고 있는 것도 유일한 오주괘를 이용해서 추론이나 해볼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가늠해서 오주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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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현실적인 상황을 살펴봐야지 어디 보자.... 그릇의 폭은 일척(一尺:33cm) 남짓이다. 그러니까 내용물은 최대한 크다고 해도 그 안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으로 보면 되겠군. 그렇지만 그 안에 들어갈 만한 물건은 이 식당에서 무수히 많을 것이다. 요리의 재료일 수도 있고, 일상의 작은 물건들도 가능하다. 점원의 표정으로 봐서는 재미있는 것이 들어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점괘를 살펴봐야 하겠군’

우창은 다시 점괘에 대해서 집중했다. 간지를 종이에 적어놓고서 궁리하면 더 좋겠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무래도 김이 빠질 수가 있으니 오주괘를 머릿속에다 띄워놓고서 궁리에 빠져들었다.

‘그나저나 도락 스승님이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지 않으셨으니 임기응변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군. 이때는 분주(分柱)의 상황을 갖고서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 갑술(甲戌)이라..... 우선 내용물은 수분(水分)이 없는 것으로 봐야 하겠고, 만약에 을해(乙亥)였다면 물에서 나는 것으로 보면 되겠는데 갑술(甲戌)은 마른 땅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일 가능성이 많겠다. 마른 땅이라..... 그런데 갑(甲)은 동물(動物)이다. 마른 땅과 동물.... 아니, 어쩌면 동물을 말린 것일 수도 있겠다. 아, 그렇지. 음식의 재료에는 말린 동물도 매우 많으니까 이것도 일리가 있겠는걸. 그렇다면 말린 동물이라고 방향을 좁혀 보자. 그 동물은 무엇일까? 일간도 갑(甲)이네? 이것도 뭔가 암시하는 조짐이 되지 않을까? 엇, 갑자(甲子)일이라.... 그렇다면, 물에서 나온 동물을 말린 것으로 대입해 보자. 물론 그러한 종류인들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우선 떠오르는 것은 건해삼이다. 요리의 재료에 많이 쓰이기도 하니까 일단 건해삼으로 해볼까? 아니, 갑(甲)이 보인다는 것은 분명히 내용물도 갑과 연관이 있을 것이고, 갑은 갑각류(甲殼類)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단단한 껍질이 있는 해산물을 말린 것이겠군. 어쩌면 게가 될 수도 있겠구나. 갑각류라고 생각해 보니까 단연 게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게를 말려서 사용한다는 말은 못 들어봤잖은가? 게와는 좀 다르지만, 갑각류로 새우는 어떨까? 요리에 많이 등장하는 재료이기도 하고, 갑각류이기도 하니 금상첨화로군. 그렇다면 저 그릇 안에는 말린 새우가 들어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자.’

우창이 이렇게 궁리를 하는 동안에 춘매도 유일하게 알고 있는 단시점괘로 답을 찾고 있었다.

‘이건 매우 재미있는 일이네. 맞추면 더 좋지만 맞지 않더라도 배울 것이 있지 싶어. 물론 배울 점이 없다고 하더라도 재미는 있겠지? 신(申) 갑(甲) 사(巳)는 20이네. 이런 경우에 내 나이를 포함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네. 아는 것이 그것뿐이니까 배운 대로만 해 봐야지. 20이면 파리네? 파리라고? 설마 요리하는 집에서 체면을 위해서라도 저 그릇 안에 파리를 담았을 리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파리와 비슷한 것을 찾아야지. 파리와 비슷한 것은 곤충류(昆蟲類)가 되겠고, 곤충이면서 음식 재료는 뭐가 있지? 매미? 메뚜기? 귀뚜라미? 별로 아는 것이 없어서 생각이 나는 것도 없다는 것은 맞네. 오빠가 말해 준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많이 알아야 끌어낼 자료도 풍부해진다는 이야기가 공부에 대한 욕구(欲求)를 자극하네. 어쩔 수 없이 아는 선에서 답을 찾아야지. 매미? 봄이니까 매미는 아닐 거야. 메뚜기? 아직 메뚜기가 활동하기에도 이른 시기잖아? 그렇다면 귀뚜라미네. 더 생각한다고 해봐야 별다른 지혜가 나올 주변머리도 되지 않으니 그냥 귀뚜라미로 해야지. 그런데, 너무 지나치게 확대해서 궁리한 것은 아닐까? 에고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결정하자.’

어느 사이에 답을 말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있던 손헌이 좌우를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자, 시간이 되었군. 어디 춘매의 말부터 들어볼까? 저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그러자 춘매는 매우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할아버지의 돌발적인 제안으로 답을 찾아보긴 했지만 정말 이러한 것에 언급할 주변머리가 되나요. 호호호~! 그냥 매를 먼저 맞고 말래요.”

“애초에 내가 재미로 하자고 했잖은가? 맞고 말고는 전혀 신경을 쓰지 말고 어서 말해 보게나. 허허허~!”

“제가 판단하기에는 저 안에 있는 것이 귀뚜라미에요. 에구 떨려라! 호호호~!”

“오호~! 귀뚜라미라니? 맞고 틀리는 것은 그만두고 귀뚜라미를 생각한 것부터가 신기할 따름이네. 왜 그렇게 생각했지?”

“이유를 어떻게 대겠어요. 그냥 생각이 나는대로 지껄여 본 거에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뭐가 있어야죠. 그냥요. 호호호~!”

그래서 재미있다고 하지 않았나. 허허허~! 다음에는 우창이 말해 보시려나?”

생각에 잠겼던 우창도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은 없었으나 놀이라고 하는 것에 마음을 담아서 말했다.

“실로 난감한 놀이입니다. 하하~! 우창도 항상 보이는 공부만 힘썼지 안 보이는 공부는 해본 적이 없는지라 생소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재미로 하자고 하셨으니 틀려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안에 있는 것은 말린 새우일 것으로 판단해 봤습니다.”

“마른 새우라. 그것도 귀뚜라미만큼이나 신기한 해답이군. 젊은 학자들이 참 놀라운 능력을 연마하고 있으니 기대가 되네. 허허~!”

“이제 손헌 선생님 차례에요? 어서 말씀해 보세요. 두두두두둥~!”

“내 답은 말이지. 공(空)이네.”

“예? 빌공이라고 하시면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인가요?”

“그렇다네. 저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을 걸세. 허허허~!”

이렇게 제각기 다른 답이 나오자 우창과 춘매의 눈은 점원에게로 향했다. 이제 어서 뚜껑을 열어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손헌은 느긋했다. 손을 들어서 점원에게 그대로 두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춘매를 보면서 말했다.

“자, 뚜껑을 여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 과정을 유추하는 것은 깊은 공부의 영역에 해당하는 까닭이라네. 결과에 무관하게 춘매는 왜 귀뚜라미가 나왔는지 설명부터 들어보세나.”

우창도 답이야 아무렇거나 간에 뭔가를 내어놨다는 점에서 춘매가 대견했다. 이런 것에 대해서 사전에 준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인데 그래도 모른다고 발뺌하지 않고 답을 다는 것도 신기했다. 짐작하건대 단시점의 파리괘를 떠올린 것은 아닌가 싶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아는 만큼에서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니까 답의 맞고 말고는 그리 큰 의미가 없었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손헌 선생이 판단한 결과도 의외였다. 우창은 자신이 유추한 과정을 설명한 다음에 손헌 선생의 풀이가 궁금해서 귀를 기울였다.

“오호~! 우창의 통찰력도 대단하시구먼. 실로 답의 맞고 말고는 그만두고서라도 오주괘라는 것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이 생기는걸. 이따가 점심을 먹고 우리 집으로 같이 가서 그 이야기를 좀 더 나눠보도록 하세나.”

“변변치 못합니다만 과찬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이제 손헌 선생님의 고견을 들어 볼 순서네요. 어떤 관법을 사용하셨기에 비어있다는 답을 얻으셨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고견을 청합니다.”

“저도요. 궁금해요. 어서 설명해 주세요~!”

“내가 쓴 관법은 말이네.”

두 사람은 일제히 손헌을 바라봤는데 어느 사이에 주변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도 이들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그 결과가 궁금해서 주위에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