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제22장. 연승점술관/ 9.매화가 피어날 즈음
작성일
2020-06-25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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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0] 제22장. 연승점술관(燕蠅占術館)
9. 매화(梅花)가 피어날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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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눈보라가 휘날리던 겨울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는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춘절(春節)을 보내느라고 시끌벅적하던 날도 지나가고 원소절(元宵節)의 요란한 폭죽 소리도 사라진 풍경은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듯했다. 입춘(立春)도 지났다는 것을 알려 주기라도 하듯이 매화나무에 산뜻한 홍매(紅梅)가 꽃망울을 키워가고 있어서 며칠만 지나면 봉오리를 터뜨릴 것처럼 잔뜩 부풀어 올랐다.
겨우내 공부에 몰입하느라고 찾아오는 손님도 반갑지 않았던 춘매는 흘러간 겨울철만큼이나 열정을 불태운 보답의 많은 진전이 있었다. 그렇게도 궁금했던 오주점(五柱占)에 대해서도 요지(要旨)를 깨달았고, 이제는 그것을 활용해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여전히 그날 찾아왔었던 검객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길래 그렇게 무지막지해 보이는 사내의 마음에 변화를 가져온 것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열망으로 공부는 일취월장(日就月將)해서 이제는 우창이 손님과 주고받는 대화를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대략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할 수가 있는 수준이 되었다.
오늘도 아침을 먹고는 우창의 방을 청소하다가 찾아온 여인을 맞이했다. 이제 손님을 맞이하는 일은 어느 사이에 춘매의 몫이 되었다. 차를 끓이고, 손님 대접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사실 손님을 접대하는 일이야 이미 이골이 났으니 새로울 것도 없다.
“어서 오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기, 소문을 듣고 뭣 좀 알아보려고요. 진도사님은 계시나요?”
어느 사이에 우창은 진도사(陳道士)로 불리고 있었다. 춘매는 그 말을 우창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도 용하다고 소문을 나게 한 것이 원인일 테니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생각하고 미소를 지었다.
“예~! 앉으세요. 도사님은 곧 나오세요.”
선생보다 도사를 좋아하는 방문자들의 성향도 읽을 수가 있었다. 선생을 찾으면 상담을 하러 온 것이고, 도사를 찾으면 답을 얻으러 온 것이라는 것도 보였다. 방문자의 호칭 하나에서도 무엇을 알고싶어하는지 짐작을 할 수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춘매가 접수를 하려고 물었다.
“아주머니께서 궁금한 것이 있으셨어요? 누구를 보고 싶으셨어요?”
“아 예, 하나 있는 아들의 올해 신수를 좀 보려고 왔어요.”
“생일이랑 태어난 시간을 알려주시겠어요?”
이제 손님이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의뢰자의 사주와 오주를 찾아서 적는 일을 춘매가 도맡게 되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상담하는 옆에서 귀동냥으로 공부하는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수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뭔가를 해야 손님도 경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제자인가보다.’하고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도 가끔은 나가주기를 눈짓하는 손님이 있을 적에는 조금도 서슴없이 자리를 피했다가 손님이 가고 난 다음에 우창과 마주 앉아서 그 내막을 공부하면 되었다.
“아드님은 호랑이 띠네요?”
“맞아요.”
“올해 스물두살이에요?”
“그래서 걱정이랍니다.”
“아주머니의 걱정은 선생님께서 속 시원하게 풀어 드릴 거니까 아무 걱정마시고, 여기 차 한 잔 드세요. 호호~!”
이렇게 준비를 하는 사이에 우창이 방안에서 나왔다. 춘매가 준비하는 동안 점괘를 보면서 방문자가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오주괘(五柱卦)의 조짐을 살펴보고 있었다. 춘매가 차를 권하는 소리는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도사님의 명성을 듣고서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찾아뵈었어요. 부디 명쾌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아드님이 공부에 힘을 쓰지 않고 놀이에 푹 빠졌나 봅니다. 그래서 나이는 먹어가는데 속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 걱정스러워서 이렇게 찾아오셨나 싶은데.....?”
“이야~!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시네요. 맞아요~!”
여인은 자신의 속내를 시원하게 긁어주는 우창의 말에 손뼉이라도 치고 싶을 정도로 시원한 표정을 지었다. 춘매도 그 표정을 보면서 대략 무슨 느낌인지 공감되었다. 그리고 분명히 방안에서 그 신통방통한 점괘를 살펴보고 하는 말일 거라고 짐작을 했다.
우창은 이미 점괘를 다 살펴봤지만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할 춘매를 위해서 적어놓은 사주 옆에다 오주괘를 썼다. 그러지 않아도 춘매는 진즉부터 점괘의 내용이 궁금해서 목이 늘어날 지경이었다가 시원하게 써놓은 간지를 보면서 우창이 한 말을 꿰어맞춰 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아들을 물어보러 왔으니까, 일간(日干)을 아들로 봐야 하는 거네. 임술(壬戌)이면 앉은 자리에 편관(偏官)과 정재(正財)와 정인(正印)이 같이 들어있는 거잖아. 그렇다면 이것은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거지?
편관(偏官)-마음이 고통스럽다. → 공부가 잘 안 되니까
정재(正財)-정임(丁壬)합이면 결과에 연연한다. → 이건 조바심일까?
정인(正印)-정인(正印)이 정재(正財)에게 극을 받았다. → 공부가 안 된다.’
대략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까 우창이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짐작이 되었다. 그러니까 다른 간지는 다 그만두고서라도 임술(壬戌)이라는 일진(日辰)만 갖고서도 그렇게 놀라운 해석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일단 여기까지가 우창의 해석에 대한 짐작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아보고 싶었는데 아직 그렇게 미리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다시 우창의 풀이에 귀를 세웠다.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녀석이 속을 썩이네요. 언제나 철이 들까요? 철이 들기나 할까요? 요즘은 얼굴도 통 보이지 않는답니다.”
“그러실 만도 하겠습니다. 자식을 키우시노라면 그 정도의 일이야 일상 있는 일이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하하~!”
춘매는 우창의 다소 과장된 웃음소리에서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여인의 가슴을 쓰다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것을 직접 옆에서 보고 들으면서 배우고 있는 자신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순간적으로 생각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전에도 항상 우창이 말해 준 것이 떠올랐다.
‘상담(相談)은 위안(慰安)인 거야. 마음의 상처를 쓰다듬어주는 거지. 반면에 예언(豫言)은 희망의 빛을 찾아가는 것이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무슨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도사니 귀신이니 하지만 실은 간단한 거야. 이것만 알고 있으면 누이도 지금 즉시 도사가 될 수 있는 거야.’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적에는 어림없는 희망고문(希望拷問)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어느 사이에 그 말에 공감되는 것이 신기했다. 이런 생각에 젖어있는데 우창의 말이 울려 퍼졌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올가을 찬 바람이 불게 되면 스스로 허물을 반성하고 다시 공부에 집중하여 큰 결실을 내년에는 안겨 드릴 것이 틀림없으니까요. 아주머니도 아들과 싸우지 말고 원 없이 놀도록 용돈이나 두둑하게 챙겨주시면 되겠네요. 하하하~!”
“까짓 용돈이야 얼마든지 챙겨 줄 수 있어요.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그것이 오히려 아이의 미래를 망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걱정되어서지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도사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마음은 놓입니다만 그래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우창이 ‘가을쯤’이라고 하는 말에 춘매는 재빨리 점괘를 훑어봤다. 임수(壬水)가 너무나 무력한 상황에서 공부를 의미하는 것은 인성(印星)인 금(金)이 되는데 월간(月干)의 경금(庚金)이 무력한 모습을 하고 있다. 비밀의 문인 분주(分柱)에 앉아있는 신미(辛未)는 겨우 토(土)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다 같은 신미라고 하더라도 연주(年柱)의 미토(未土)는 인목(寅木)에 인접해 있어서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분지(分支)의 미토는 나름대로 신금의 뿌리가 되어주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올해는 신미(辛未)년이고, 봄과 여름은 목화(木火)의 계절이므로 금의 계절인 가을이 되면 비로소 인성이 힘을 받게 되어서 공부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판단을 하고서 다음엔 무슨 이야기를 할지에 대해서 집중했다.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우창이 말을 이었다.
“아드님의 팔자는 1만 명 중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매우 좋은 사주입니다. 무슨 걱정을 하겠습니까? 오히려 이러한 일탈의 경험들이 삶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봐도 될 것입니다.”
“예에? 그렇게 좋은 사주인가요? 그런 말은 못 들어봤어요. 괜히 위로하느라고 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셔도 되니까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셔도 돼요.”
“믿어지지 않으시는 것을 보니 아마도 처음 들으셨나 봅니다.”
“이름이 나쁘다고 해서 개명도 해주고, 운명에 흉살이 끼었다고 해서 굿도 여러 차례 했었지만, 팔자가 좋다는 말은 처음 들어서지요. 그게 사실인가요?”
“정말 사주를 갖고 장난을 치는 사람이 많은 것이 기가 막히네요. 쯧쯧~!”
“예? 뭐가요?”
여인은 우창의 탄식하는 말을 듣고는 화들짝 놀란 듯이 우창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우창이 한숨을 깊이 쉬고는 조용히 설명했다. 춘매도 저절로 귀를 쫑긋 세웠다.
“아는 자가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가 막혔습니다. 하하~!”
“그야 당연하지요. 그런데 왜 아는 자가 무섭다는 말씀을.....?”
“생각해 보세요. 재물복을 타고난 사람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거지가 될 수 있다고 말을 한다면, 그 말을 듣고서 웃어버리면 되지만 마음에 담아두게 된다면 꺼림칙하겠지요? 그러면 방법을 묻게 되고, 은자 100냥을 내고 비방(秘方)을 쓰면 해결된다는 말에 자신의 형편이 그것을 받아들일 정도는 된다는 생각으로 거금을 내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어떨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러한 것은 사주를 모르고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짓입니다. 진짜로 거지가 되면 큰일이니까요. 그런데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천지가 뒤집혀도 거지가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비로소 그러한 짓을 할 수가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그 말에 춘매도 기가 막혀서 한마디 거들었다.
“아니, 그렇다면 이 아주머니의 아드님도 벼슬길을 얻어서 고귀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서는 미끼를 던진 것이란 말인가요?”
“아마도 그랬을 수가 있겠지....”
“참으로 교활한 인간들이네요. 학문을 배워서 지혜롭게 살아갈 길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물창고를 채우는 용도로 쓴단 말인가요?”
여인은 춘매의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우창이 하는 말이 온몸이 진동될 정도로 진한 감동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도사님 말씀으로는 우리 아이의 팔자가 부귀공명을 누릴 수가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는 말씀인가요?”
“물론입니다. 하하~!”
“정말~! 고맙습니다. 도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까 그동안의 백 가지 근심이 모두 봄눈처럼 녹아버리는 것 같아요.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춘매가 보니 여인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되니까 더불어서 감동이 밀려왔다. 문득 여인에게 멋진 말을 하는 우창이 거인처럼 보였다. 왜 그렇게 커 보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말 한마디에 감동도 하고 우울할 수도 있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가 있었고, 좋은 말로도 얼마든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가 있다는 것도 목격했다. 자신도 그러한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도 내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아들의 사주가 좋다는 말씀은 믿어도 되겠지요?”
“당연하지요. 혹 간지(干支)는 아시는지요?”
“깊은 것은 몰라도 간지의 오행과 생극(生剋) 정도는 부친께 배워서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잘 모른다고 해야겠네요.”
“그 정도면 이미 많이 알고 계신 겁니다. 그럼 설명을 해 드릴 테니까 여기를 보세요.”
우창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팔자를 적어놓은 위에다 주사(朱砂)를 갈아서 기름에 개어놓은 것을 찍은 붓으로 흐름을 의미하는 화살표를 그었다. 부인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기울였고, 여기에 대해서라면 춘매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잘 봤다.
“여기, 연주(年柱)의 갑인(甲寅)이 보이시지요?”
“예, 갑인이 보여요. 태어난 해가 갑인년이니까요.”
“오행은 뭔지 생각나십니까?”
“그야 목(木)이지요. 갑을(甲乙)과 인묘(寅卯)는 목이니까요.”
“잘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럼 묘월(卯月)의 묘도 목이라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건 알겠어요. 그런데 어디를 가서 물어보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좀 해 줬으면 싶은데도 전혀 언급하지 않고 길흉에 대해서만 말해서 그런 것은 물으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오늘 도사님은 이렇게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니 이것도 감동이네요.”
“말씀을 해 드려도 알아듣지 못할까 봐서 안 할 뿐이지요.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당연히 이렇게 설명을 해 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너무 좋아요. 계속 설명해 주세요.”
“다시 월간(月干)의 정화(丁火)와 일지(日支)의 오화(午火)가 보이시지요?”
“그렇네요.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도 글자는 보여요.”
“의미는 간단합니다. 목생화(木生火)만 생각하시면 되니까요.”
“아, 목생화~ 그럼 불이 더 커지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목이 세 글자가 되니 두 개의 불은 이미 거대한 불로 타오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럼 나쁜 것이잖아요? 불은.....”
“혹 화전(火田)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화전이라면 숲에 불을 질러서 농사를 짓는 것을 말씀하시나요?”
“잘 알고 계시네요. 숲을 불태우려면 불길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그야 매우 강한 것이 좋겠네요. 나무를 모두 태우려면 말이죠.”
“맞습니다. 그렇게 불을 태우는데 흙이 있으면 곡식을 심을 수가 있겠지만 바위만 있다면 곡식을 심기에는 어떨까요?”
“흙이 있으면 곡식을 심으면 저절로 잘 자라서 풍년이 들겠습니다만, 흙이 없으면 무엇을 심어도 잘 되기는 어렵겠네요.”
“아드님이 기름진 옥토(沃土)로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어떨까요?”
“아, 그렇게 대입하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당연히 좋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거름은 얼마든지 있는 셈이 되나요?”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목(木)은 선대의 조상님들이 되고, 화는 부모님이 됩니다. 그렇다면 부모님의 은덕으로 옥토가 될 것은 당연하다고 봐도 되겠지요?”
“그렇겠네요. 그렇다면 좋은 팔자인가요?”
“이것만으로도 이미 좋은 팔자입니다. 더구나 시주(時柱)에는 경신(庚申)이 있으니 모두가 금에 해당하여 세상을 살아갈 좋은 능력을 타고 평생을 살아갈 것이니 토생금(土生金)이 되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유종(有終)의 결실을 거두게 될 것이니 이러한 팔자를 갖고 태어나려면 삼생(三生)의 공덕을 쌓아야 가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인가요? 여태 아들에 대해서 걱정만 했지 이렇게 희망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아마도 관직으로 나가서 일인지하(一人之下)요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에 오를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축하를 해야지요. 그것도 많이 해야지요.”
“그런 자리에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한 고을의 태수(太守)만 되어서 목민관(牧民官)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죠. 그런데 믿어 지지가 않네요. 응당 믿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럴 만도 하실 겁니다. 제가 드리는 설명은 알아 들으시겠지요?”
“물론이에요. 말씀만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과연 아이가 그만큼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할 수가 있을지 믿어지지 않은 거에요. 그나저나 도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보니 어느 사이에 근심은 바람결에 구름이 흩어지듯이 사라져버리고 밝은 태양이 비치는 것만 같아요. 정말 오늘 찾아뵙기를 잘했어요.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여인은 은자(銀子)를 하나 내려놓고는 일어섰다.
“약소하지만 성의로 받아주세요.”
여인이 내어놓은 은자를 본 춘매가 깜짝 놀랐다. 은자 한 개면 백미를 한 가마나 사고도 남는 금액이었기 때문이었지만 우창은 표정의 변화도 없이 미소로 답례를 했다. 춘매가 손님을 전송하고는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궁금했던 것을 쏟아 냈다.
“오빠, 정말 멋져. 말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오늘 비로소 봤잖아. 이런 말을 나도 할 수가 있었으면 좋겠네. 저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훨훨 날 듯이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나까지 덩달아 행복해지는 것 같아. 그래서 내일처럼 즐겁네. 호호~!”
“그랬어? 그렇다면 다행이군.”
“근데, 아들이 팔자는 참 잘 타고 난 것인가? 사주가 좀 약해 보이잖아?”
“누이는 아직 강(强)하고 약(弱)한 것에 관심이 가는 수준이라서 그래. 약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약한 것을 해결할 방법이 있느냐가 중요한 건데 말이지.”
“아, 인성(印星)이 위아래에서 감싸고 있는 것은, 내가 봐도 참 좋아 보이네. 그렇긴 하지만 재상(宰相)이 된다는 건 좀 과장한 것이 아닌가?”
“맞아. 좀 과장이긴 하지.”
“왜 그랬어?”
“약에 감초를 넣는 것과 같은 이치야.”
“엉? 오빠는 약에 대해서도 조예가 있나 봐?”
“그냥 기본이지 뭘.”
“그 정도로 과장했다가 맘대로 안 되면 어떡하려고?”
“저 여인이 숨을 거둘 때까지 아들은 재상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뭐가 나쁠까?”
“그래도 그건 옳지 않은 거잖아?”
“본인이 물었다면 답이 달라졌겠지.”
“어? 물어보는 사람에 따라서 답이 달라지면 어떡해? 오빠는 비위나 맞추고 하는 사람은 아니잖아?”
“부처님 작전이야. 선교방편(善巧方便)이라고 하는. 하하~!”
“그건 또 뭐야?”
“부모는 항상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잖아. 그래서 다소 과장된 희망을 준다고 해도 나쁘지 않아.”
“아.... 그런 것이었어? 그 깊은 뜻은 여태 이야기 해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말을 해 주잖아? 지금 말이지. 하하~!”
“그럼 본인이 와서 물었다면 어떻게 해석을 해주는 거지?”
“관운이 나쁘다고는 못하겠으니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해주지.”
“힝~! 그건 해석의 차이가 너무 크잖아?”
“재상이 된다고 해봐. 얼마나 간이 부어서 허망한 꿈을 꾸겠어? 그래서 본인에겐 좋은 것은 줄여서 말해주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거야. 이러한 배려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점쟁이에 머무를 따름이지.”
“그럼 오빠는 뭔데?”
“철학자지.”
“철학자와 점쟁이의 차이가 뭐지?”
“신묘하게 맞추는 것에 목적이 있으면 점쟁이가 되고, 행복한 삶이 되도록 안내하는 것에 목적이 있으면 철학자가 되는 거지.”
“난 그게 같은 것인 줄만 알았어. 그래서 구분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 오빠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차이가 커도 많이 크네?”
“그렇게 알고 나면 보이는 것들도 참 많아.”
“참, 점괘에서 가을에 공부할 것이란 말은 금(金)이 가을이라서인 거지?”
“이제 누이도 점쟁이가 다 되었군. 철학자만 되면 졸업해도 되겠다.”
“그리고, 내년에 좋은 결실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은 올해가 신미(辛未)년이고 내년이 임신(壬申)년이라서 점괘의 기준으로 보면 용신이 강림해서 그렇게 해석을 한 것이 맞나?”
“맞아.”
“오빠, 그 점술법은 언제 가르쳐 줄 거야? 아직은 부족해서 안 되겠지?”
“그게 아니라.....”
“아니? 다른 이유가 있었어?”
“비밀의 간지를 찾아내는 도구가 없어서 누이에게 알려줘도 활용할 방법이 쉽지 않아서 말이야.”
“그게 뭔데?”
“이거.”
그러면서 우창이 꺼내서 보여준 회중시계를 본 춘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괘를 볼 적에 슬쩍 꺼내어서 보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것만 준비가 되면 자신도 우창과 같이 점괘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그럼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오늘도 많은 것을 배웠어.”
더구나 팔자에 나온 그대로의 모습에다가 따뜻한 마음까지 얹어서 조언을 해주고 격려도 해주는 방법까지 배우고 보니까 자신도 상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조차 했다.
“오늘은 복채로 은자(銀子:약20만원상당)를 두둑하게 받았으니 사치스럽게 먹자. 하하하~!”
“정말? 며칠 전에 친구가 불도장(佛跳墻)을 먹었다고 자랑하는데 난 못 먹어 본 거잖아. 그래서 약이 조금 올랐었는데 그걸 먹어도 돼?”
“암, 되고 말고 어서 문은 단속하고 가자.”
춘매의 마음에는 이미 봄바람이 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문단속을 하고는 가벼운 봄옷의 차림으로 갈아입고 우창을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