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 제22장. 연승점술관/ 5.작지만 소중한 가치(價値)
작성일
2020-06-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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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6] 제22장. 연승점술관(燕蠅占術館)
5. 작지만 소중(所重)한 가치(價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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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솜씨가 좋은 춘매가 해주는 것은 무엇이든 맛이 있었다. 우창이 특별히 식탐(食貪)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맛의 유무는 알고 있기에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는 정갈한 밥상이니 항상 고마움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불렸으니 또 고맙네. 이 보답은 공부로 갚는 수밖에 없으니 열심히 가르쳐야겠지?”
“그래서 늘 고맙고, 감사하고, 행복한 춘매야~!”
“난, 잠깐 산책하고 올 테니까 이따가 와.”
아침도 잘 먹었고, 점심도 든든하게 먹었으니 잠시 운동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수지 주변으로 한 바퀴 돌았다. 비록 겨울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온은 포근한 편이라서 산책하기에 무척 좋은 날이었다. 문득 노산에서 공부하던 풍경도 떠오르고 함께 공부했던 벗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잠시 그립기도 했다.
더구나 지금의 시간도 즐겁다.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공부를 다시 점검하는 시간이 되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면 또 미처 적용하지 못한 이론들도 등장하여 나름 짜릿한 쾌감을 전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배웠으면 펼쳐야 한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우연(偶然)처럼 만난 춘매의 학문에 대한 열정도 고맙기만 하다. 지극한 정성으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의식주(衣食住)를 챙겨주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풋풋한 야생미(野生美)는 세련되고 절제된 것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새삼 느꼈다. 다만 너무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으로 느껴져서 조금은 걸렸다. 어쩌면 겨울이 지나면 자신이 떠나가 버릴 것을 걱정해서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공부는 그렇게 서두른다고 해도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려줘야 할 때인가 싶기도 했다.
하늘의 햇살이 따사롭다. 겨울이라고 해도 요즘만 같으면 지낼만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바퀴 돌아서 연승점술관으로 돌아 오는데 그 사이에 얼굴을 익힌 골목의 사람들이 인사를 한다. 우창도 그들과 간단한 말도 주고받으면서 담소를 하기도 했다. 산다는 것이 참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대목이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살고, 우창은 또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다가 이렇게 한 골목에서 서로 만나서 인사를 나누지만, 서로의 세상은 접근할 수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산책 다녀 왔어? 차를 끓였어. 오늘은 모과차가 좋을 것 같아서.”
“그렇구나, 향기도 좋다.”
춘매가 만들어 준 모과차를 마시면서 밖을 보니까 춘매의 안마원을 찾아온 남자 두 사람이 팻말을 보고는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춘매가 짐짓 모르는 체하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오늘도 손님들을 접대하기가 싫구나?”
“응, 몸도 개운치 않고 해서 공부나 하려고 그래. 공부하다 보니까 손님에게 안마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큰일이네. 호호~!”
“그래, 이미 누이는 빈자(貧者)가 아닌 거야. 돈을 벌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지. 하하~!”
“와~! 그렇구나. 이렇게 해서 공부한 것을 복습하는 방법도 배우네. 그리고 듣기만 해도 재물을 쌓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에 대한 칭찬이니까 기분이 좋아져. 어서 내 사주를 더 풀이해 줘봐. 궁금해.”
“무엇을 풀어볼까?”
“아참, 오빠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건데, 오빠는 행복한 빈자와 불행한 부자가 있다면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생각해 봤어?”
“글세. 내 말이 필요할까? 하하하~!”
“그러니까 유심론이라고 했어? 마음이 우선하는 사람은 빈부(貧富)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의 평화(平和)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잖아?”
“물론이지. 그런 극단적인 말을 해서 뭘 하려고?”
“아니, 극단적인 것은 아니라도, 가난함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은 부유함보다 나을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다가 보니까 문득 오빠는 어떻게 답을 할 것인가 싶어서 궁금했지 뭐. 호호호~!”
“나도 행복한 부자가 좋아~! 하하하~!”
“에구, 알았다고요. 호호호~!”
“알았으면 그런 의미없는 이야기는 다시 하지 말고.”
“그럴게, 재물에 대해서는 설명을 들었으니까 이해가 되었고, 다음엔 부부의 인연을 살펴보면 어떨까? 나는 팔자에 나타난 암시에서 어떤 남편을 만날 수가 있을까?”
춘매가 자신의 사주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묻자, 우창이 다시 춘매의 사주가 적힌 종이를 꺼내어서 앞에 펼쳐놓고 말했다.
“그래, 잘 알지? 남편을 보려면 어디를 봐야 하지?”
“일지(日支)의 배우자(配偶者)궁을 보면 여자는 남편의 인연을 알 수가 있으니까 남편궁(男便宮)을 보는 거지?그러니까 일지에 희용신(喜用神)이 있으면 길하고 기구신(忌仇神)이 있으면 흉하다고 해석하면 되는데, 축중기토(丑中己土)는 기신(忌神)이잖아? 그렇다면 남편의 인연은 흉하다고 봐야 하겠지?”
춘매가 다시 자신의 사주를 앞에 놓고서 궁리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겠군.”
“남편의 인연이 안 좋으니까 혼인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걸까?”
“하느냐 마느냐로 나눈다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겠지만, 인연이 된다면 아마도 혼인을 하게 되겠지.”
“결혼하게 되면 그 생활은 고통스럽게 될 거고?”
“아마도 마음에 부담스럽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겠군.”
“아니, 오빠~!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 말고, 정확하게 말을 해 줘야지. 나쁘면 어떻게 나쁜지 이유를 잘 알려 줘. 내겐 매우 중요한 문제잖아.”
“왜? 남편의 인연이 부담이고 보니까 마음이 아프지?”
“당연하지. 말하면 뭘 해, 아니, 그보다도 정확하게 알아야 어떻게 하든 판단을 할 거잖아.”
“내가 묻기 전에 이미 판단했지? 남편의 인연은 편인(偏印)이 되는 것과, 기신에 해당한다는 것을 감안(勘案)한다면 좁쌀영감처럼 잔소리나 해대면서 실제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남자를 만나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지 않을까? 하하하~!”
“... 그렇지? 그럼.... 아니구나....”
“아니긴 뭐가?”
“아, 아냐 아무 것도.”
춘매는 혹 우창과 부부의 인연이 되면 어떨 것인지를 생각했었는데 우창의 설명으로 봐서는 우창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좁쌀영감처럼 잔소리만 하는 사람도 아니고, 더구나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남편으로 인연을 생각했던 것은 지나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데, 그것이 혼잣말이 되어버렸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얼른 말을 돌렸다.
“공부의 인연도 팔자에 있는 것이잖아? 그것도 봐야지? 공부는 인성(印星)으로 보면 되나? 정인이야? 편인으로 보는 거야?”
“공부는 인성(印星)을 바탕으로 보면 되는데 정인이든 편인이든 구분할 필요는 없지. 원래 재성(財星)과 인성(印星)은 정편(正偏)으로 나누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렴.”
춘매가 자신의 사주를 들여다 보면서 곰곰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지지(地支)에 술축미(戌丑未)가 쫙 깔려있으니 공부는 지겹도록 할 수가 있겠네. 맞지?”
“일리가 있어. 다만 공부가 즐겁다고 할 수는 없어. 그러니까 공부를 위한 공부, 말하자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는 것은 재미가 없다고 봐야지. 그럼 무슨 공부를 하면 좋으냐고 한다면, 밥을 벌어먹을 수가 있는 기술공부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봐야겠네. 기술은 안마도 포함이 되니까 제대로 하는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오빠의 설명을 듣고 보니까 그게 맞는 것 같아. 다른 공부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데, 안마를 배울 적에도 그랬고, 이렇게 오행을 배우는 것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을 보면 맞는 것같아.”
“여기에다가 스스로 궁리를 할 수가 있는 식신(食神)이 바로 일지의 축중계수(丑中癸水)로 존재하기 때문에 궁금한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파고 들어갈 능력을 갖고 있는 송곳을 하나 품고 있으니까 이것이 바로 지금 열심히 궁리하고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으로 봐야지.”
“그래 봐야 겨우 2할인데?”
“그래? 누이는 아직 양(量)과 질(質)에 대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나 보구나. 비록 9할이라도 질적(質的)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며, 겨우 2할이라도 매우 소중한 물질(物質)이라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자. 축토(丑土)는 무슨 고(庫)더라?”
“그야 금고(金庫)잖아.”
“금고 안에 있는 계수(癸水)는 살아 있을까?”
“아, 축중신금(丑中辛金)이 금생수(金生水)를 해주는 거였나? 와우~! 그것은 생각하지 못했네. 그냥 토극수(土剋水)만 생각하고 병든 식신이라고 여겼었지. 오빠의 말을 다 믿어도 되는 거지?”
“누이의 사주에서 축중계수(丑中癸水)는 천만금의 보옥(寶玉)인 줄은 알아야지?”
“그런 거였어? 보석이라는 말은 용신(用神)이라는 의미인 거지? 볼품도 없는 축토 속에서 보석을 찾아 줬네?”
“찾아준 것은 수중에 없는 것을 구해 준 것이고, 이건 이미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 것에 불과한 거지. 하하하~!”
“그게 그거 아냐?”
“좀 다르지, 어쨌든 이미 누이의 일지(日支)에는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길잡이가 있었던 거야.”
“그래도 축중계수(丑中癸水)보다는 월간(月干)의 임수(壬水)가 더 나은 거잖아? 왜 그 이야기는 안 하는 거야?”
“그 차이를 설명하고 싶기는 한데 누이의 공부가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
“설명해 줘봐. 그래도 궁금하잖아.”
“임수는 어디에 앉아있지?”
“그야 술토(戌土)에 앉아있잖아? 뿌리가 너무 약한가?”
“물론이지. 그래서 오히려 일지에서 신금(辛金)의 생을 받는 계수(癸水)가 더 돋보이게 되는 거지.”
“응, 기본형은 다 외웠는데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는 좀 어렵네. 어떻게 해야 이 미묘한 글자들의 의미를 정리하게 되는 걸까?”
“누이가 서두르는 것은 시간(時干)의 을목(乙木) 때문이야. 공부하는 것은 무슨 성분이지?”
“편인(偏印)이잖아?”
“편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편인이 기토(己土)이니까 가장 싫어하는 것은 을목(乙木)이겠지. 그리고 을목은 편재가 되고, 그러니까 공부하는 과정에선 편재가 흉한 작용을 한다는 건가?”
“옳지, 이제 공부하는 누이 같군. 하하하~!”
“그래도 소중한 재물이 하나 있는 건데 그걸 흉하다고 하다니 그것도 이해가 안 되네?”
“아, 그건 목적에 따른 해석이야. 재물을 모을 적에는 좋은 작용을 하지, 다만 공부를 할 적에는 조바심으로 작용하게 되니까 허둥지둥하다가 소중한 공부를 놓치게 되니까 흉하달 밖에.”
“아니, 그렇다면 항상 좋은 것도 없고, 항상 나쁜 것도 없잖아? 무슨 해석이 그래?”
“그게 두루뭉술한 논리라고 공격을 받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지.”
“당연하잖아? 흑백(黑白)이 분명해야 공부하는데 혼란이 없을 텐데 어떤 때는 길하고 어떤 때는 흉한 것이 막상 같은 글자라니 이거야 원.....”
“아무래도 누이가 너무 빨리 먹어서 체증(滯症)이 발생했나 보다. 다시 뒤로 가서 천천히 소화를 시키면서 복습을 해야겠다. 그렇게 해서 먼저 먹은 것이 모두 소화가 되어야 다음 공부를 할 수가 있는 거야. 이런 과정에서 스승의 안내가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 하하~!”
“그랬구나. 마음먹고 공부 좀 해보겠다니까 이번엔 체증이 발생하는 것이었어. 정말 공부도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드네. 신기해~!”
“오랜만에 듣는 말이구나, 누이가 신기하다는 말을 한 지가 벌써 며칠 되었어. 그만큼 공부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었다는 이야기지. 이제 다시 천천히 공부하면서 소화를 시키면 다시 신기한 일이 많이 보일 테니까 서두르지 말아.”
“그래 알았어. 오빠가 알려주니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네. 얼른 깊이있는 이치를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안달이 났었나 봐. 다시 복습에 집중할게.”
“공부도 밥을 먹는 것과 같고, 밥을 먹는 것도 공부하는 것과 같은 거야. 앞에 먹은 것이 소화도 되기 전에 또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자꾸 퍼 넣으면 속이 편하겠어?”
“알아들었다니까. 농사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다 똑같네. 농부도 수확을 많이 올리려고 거름을 많이 주면 모두 썩어버리잖아.”
“그런가? 농사는 안 지어봤으나 의미는 알겠네. 급히 흐르는 물은 언덕을 파먹게 되는 것과도 같다고 하겠네. 요즘 폭포를 만났다고 했지? 그럼 자칫 흙탕물이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미쳐 안 했네. 하하~!”
“근데 기왕 먹은 것이니까 언젠가는 소화가 될 거잖아?”
“그럴 수도 있지만, 죽어버릴 수도 있어. 곽란(癨亂)이 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거니까 말이지.”
“우와~! 그런 것도 있었어?”
“급체(急滯)가 심하면 토하고, 설사하고 난리가 나는데 그것이 더 심해지면 죽을 수도 있어. 그건 몰랐어?”
“응, 들어보지 못했어. 그렇지만 공부를 많이 했다고 죽는 것은 아니잖아?”
“공부하다가 체하면 공부할 수가 없이 되는 거야. 책만 보면 멀미가 나기도 하지. 그래서 결국은 포기하게 된다면, 그게 학자의 사망이야. 학인(學人)이 공부를 못하면 그게 사망이 아니고 뭐겠어?”
“아하~! 이제 알겠다. 오빠는 내가 서두르다가 공부를 포기할까 봐서 걱정되었구나. 그치?”
“맞아, 뭐든 자기의 능력에 맞는 속도가 있는 거야. 소화력이 좋은 사람은 남들보다 많이 먹어도 되지만, 위장의 기능이 약한 사람은 조금씩 천천히 먹어야 하는 건데 욕심이 앞서면 반드시 탈이 나거든. 그렇게 하다가 점차로 소화력이 좋아지고 나면 비로소 아무 이론이라도 먹는 대로 소화가 되어서 일취월장(日就月將)을 하게 되는 거야.”
“이제 확실히 알았어. 그런데 오빠는 학문에 체했던 적이 없었어?”
“왜 없었겠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알려 주는 거야.”
“알았어. 그냥 글만 배우면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 과정에서도 깨달을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네. 서두르지 않을게.”
“그럼 이제 천천히 십성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궁리하면서 한 열흘 지내봐. 그러다 보면 다시 배가 고프게 될 거야. 그럼 다시 찾아와서 밥을 달라고 하렴. 내 학문의 밥상은 항상 차려져 있으니까. 하하하~!”
“알았어. 비유가 참 재미있네. 열심히 소화 시키도록 할게.”
춘매는 영리했다. 우창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는 배운 것에 대해서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앞으로 나가던 것을 멈추고 반추(反芻)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춘매에게 십성의 변화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외우고 또 외웠다. 외우면서도 그 변화를 궁리하는 것은 다시 혼란이 발생해서 수백 번을 반복했다. 그렇게 하다가 보니까 겨우 기본형은 외워서 무리 없이 이해했다.
식신(食神)은 하나를 파고들어서 궁리(窮理)하고,
상관(傷官)은 언설(言說)과 임기응변(臨機應變)이 능하고,
편재(偏財)는 통제력(統制力)으로 관리(管理)하고,
정재(正財)는 치밀(緻密)하고 꼼꼼하게 통제하고,
편관(偏官)은 인내심(忍耐心)으로 고통(苦痛)을 극복(克服)하고,
정관(正官)은 온건(穩健)하게 봉사(奉仕)하고 복종(服從)하고,
편인(偏印)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수용(受容)하고,
정인(正印)은 당면(當面)한 상황을 잘 인식(認識)하고,
비견(比肩)은 자존감(自尊感)이 하늘을 찌르고,
겁재(劫財)는 승부심(勝負心)에 목숨을 건다.
대략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그만 혼란이 발생하고 말게 되어서 답답했다.
그나마도 식신이 재성(財星)을 만나면 결실을 추구하는 힘이 강해지고, 식신이 편관(偏官)을 만나면 투쟁심(鬪爭心)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貫徹)하려고 하고, 편인(偏印)을 만나면 궁리를 하면서도 반복(反覆)되어서 지체되는 현상이 있다는 것은 여러 차례의 설명을 통해서 가까스로 이해를 한 편이지만, 식신(食神)이 정관(正官)을 만나거나, 정관이 상관(傷官)을 만났을 적에는 또 어떻게 해석이 되는지를 이해하려니까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지금 맹렬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다시 이러한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만 채찍질한다. 혼자서 궁리하다가 생각이 막히면 다시 자신의 사주를 들여다보면서 해답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비록 안마하는 것보다는 몇 배로 힘이 들었지만 놓고 싶지가 않았다. 자신이 궁리하는 것을 한없이 깊은 미소로 바라보는 우창의 표정이 떠오르면 없던 힘이 샘솟는 것 같기도 했다.
춘매는 자신의 일간(日干)이 신금(辛金)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적에는 저절로 부자가 된 것 같아서 흐뭇했다. 옛날에 듣기를 신(辛)은 금은보석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창이 탐욕(貪慾)이라고 했을 적에는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까 자신의 내면에는 그런 탐욕이 있는 것도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고향에서 그냥 있다가 부모가 맺어주는 인연을 만나서 아낙으로 살아갔을 텐데 그러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싫어서 뛰쳐나온 것도 돈을 많이 벌어서 하인을 두고 떵떵거리면서 살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 떠올랐다. 물론 세파(世波)에서 몸소 겪으면서 그러한 것은 쉽사리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자신을 돌이켜 보니까 그런 생각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고는 소스라쳐 놀라기도 했다.
다시 축토(丑土)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기(己)는 편인(偏印), 신(辛)은 비견(比肩), 계(癸)는 식신(食神)이다. 이들이 한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춘매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바탕은 신비한 것을 추구하는 마음과 강력한 주체의식(主體意識)이 있으면서 다시 목적을 향해서 돌진하는 탐구력이 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문득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우창이 자신의 이러한 모습을 읽어내었을지도 모른다. 파고 또 파다가 보면 진리의 바닥에 도달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어렵지 않게 들었던 것도 이러한 영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월간(月干)의 임수(壬水)로 눈길이 갔다. 상관(傷官)이다. 이것은 사교성(社交性)이라고 했으니까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주장을 확실하게 전달하면서 취할 것을 놓치지 않는 것으로 본다면 제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되겠다. 다만 임술(壬戌)이기 때문에 상관이 무력하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니까 그 상관은 겨우 밥벌이를 위해서 쓰이는 것으로 봐야 할 모양이다. 물론 밥을 벌어먹는 것도 대견하긴 하다.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월지(月支)에 인성(印星)이 있어서였을 것으로 보면 되겠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배워가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되었다.
시간(時干)의 편재(偏財)는 돈나무라는 것도 미소를 짓게 했다. 더구나 시지(時支)의 미토(未土)는 재고(財庫)이다. 재물의 창고를 하나 얻었으니 이것도 얼마나 다행이냔 말이지. 비록 넉넉하진 않지만 이렇게 우창을 스승으로 모시고 밥을 공급하면서 편안하게 공부를 할 수가 있다는 것도 어쩌면 이 을목(乙木)의 덕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보니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래서 보잘 것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자신의 사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오히려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오빠가 한 여인의 삶에 희망의 불을 하나 켜 줬구나.’
춘매는 감사하는 마음에 갑자기 울컥했다. 그 감동을 그냥 앉아서 삭힐 수가 없어서 과일을 깎아 들고는 우창의 점술관으로 향했다. 옆집의 할머니가 웃는 얼굴로 한마디 거들었다.
“요즘 보니까 춘매가 바쁘구먼? 돈은 많은 남자인겨? 별로 부유해 보이지는 않던데 잘 해봐. 사람만 착하다고 해서 인생이 펴지는 것도 아니란 말이여. 그래도 능력이 되는 사람이라야 늙어서 고생을 안 할 테니까. 괜히 사랑한답시고 늘그막에 내 꼴이 나진 말어~!”
“에구, 할머니도 참. 그냥 공부 선생님으로 모셨을 뿐인걸요. 저도 저런 빈털터리랑은 살고 싶지 않아요. 호호호~!”
“그래 잘 생각했네. 공부는 뭔 공부를 하는 겨? 논어라도 배우남?”
“아뇨. 재미있는 거랍니다. 호호~!”
“요즘 춘매 얼굴에 복사꽃이 폈어. 그래서 보기에도 참 좋구먼. 많이 배워봐. 공부도 때가 있다니깐 말이여~!”
“들어가세요. 할머니~!”
점술관을 들어가자 마침 손님이 있었다. 중년의 무림 인물인 듯 보이는 남자가 장검(長劍)을 벽에 세워놓고 책상다리로 앉아있는데 얼굴에는 길게 흉터가 있었다. 아마도 거칠게 살아온 삶인듯싶었다. 그의 삶이 궁금하여 찻물을 끓인다고 부산을 피면서 살짝 옆에 앉았다.
“여기, 차 드세요. 차가 식었네요.”
춘매가 침묵의 무게에 짓눌려서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면서 뜨거운 차를 권했다. 경계하는 남자에게 우창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 제가 가르치는 제자입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난 상관없소이다. 껄껄껄~!”
“무사께서 말씀하신 것은 소인이 알아낼 방법이 없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점술로 알아본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능력이라 한계가 있기 마련이거든요. 도움을 드리고 싶으나 공부가 부족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창이 무슨 죄라도 지은 양으로 미안해하는 모습이 춘매에게는 낯설었다. 도대체 저 검객이 뭘 물었기에 저리도 난처한 표정을 짓는가 싶어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래서 적어놓은 사주를 곁눈질로 살펴봤다.
근데... 춘매가 자세히 보니, 사주가 아니다. 뭐지? 사주의 뒤에 간지가 하나 더 있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 앞의 네 간지만 살피면서 궁리를 해 봤다.
‘계축(癸丑)이구나. 월은 기축(己丑)이네, 시는 기미(己未)잖아? 이게 뭐지? 온통 편관(偏官)이 첩첩한 상황이네. 무슨 사주가 이렇게 생겼담. 이에 비하면 내 팔자는 너무나 잘 생겼잖아.’
춘매는 이 검객의 사주를 보면서 참 기이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우창이 도무지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얻어들을 텐데 이번엔 춘매가 더 답답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경솔하게 뭐라고 나설 수도 없어서 눈치만 보면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에 대해서만 촉각을 곤두세웠다. 무사가 탁한 음성으로 말했다.
“선생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곤란해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너무 망설이지 마시오. 실은 어젯밤 꿈이 하도 괴이해서 곰곰 생각하다가 문득 연승점술관이란 문패를 보고는 내가 답을 얻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들어왔던 것이오. 그러니 무엇이 되어도 좋으니까 선생이 보이는 대로만 가감이 없이 말해주셨으면 하오.”
“실은 제가 말씀을 드려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으로 보여서 차마 말씀을 드리지 못함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이오? 소용이 없는 말이 어디 있겠소이까? 부디 사양치 마시고 혜안을 열어서 길을 보여주시기 바라오.”
“지금 가시는 길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20년간 칼을 갈아 오셨는데 어찌 그 일을 그만두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괜히 큰일을 앞두고 결심하시는 길에 누가 될까 염려스러울 따름입니다.”
춘매는 궁금증이 턱에 닿아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래서 더 참지를 못하고 한마디 거들고 말았다.
“스승님, 그냥 있는 대로 말씀을 드려야 하지 싶사옵니다. 이 무사분의 결심으로 봐서 절대로 답을 듣지 않고서는 자리를 떠나지 않을 듯싶으니 결과야 어떻게 되더라도 말씀을 드리고 의논하시는 것이 어떨지요?”
춘매의 말에 두 남자는 눈길을 춘매에게로 향했다. 무사는 응원해 줘서 고맙다는 표정으로, 그리고 우창은 그렇게 말을 하기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