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제22장. 연승점술관/ 6.우울(憂鬱)과 망상(妄想)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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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0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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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7] 제22장. 연승점술관(燕蠅占術館)
6. 우울(憂鬱)과 망상(妄想)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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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춘매의 궁금한 마음도 이해를 못 할 바는 아니었다.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망설이는 것은 이 점괘가 너무도 참담해서이다. 그러니까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조용히 명상하고 있던 우창의 귀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뜨고 밖을 보니 웬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손님인가보다 싶어서 문을 열었더니 얼굴에 살기(殺氣)를 가득 품은 모습을 하고 등에는 장검(長劍)을 비스듬히 맨 사나이가 서 있었다. 그 기분이 섬뜩하여 차마 들어오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상담한다고 간판을 매달은 다음에는 맘에 드는 사람만 맞이할 수도 없는 일인지라 일단 들어오라고는 했는데 앉자마자 꺼낸 말이 귓가를 울렸다.
“선생의 점술이 신묘(神妙)하다는 소문을 듣고 왔소이다. 부디 이 나그네에게 밝은 길을 알려주시기 바라오.”
“예? 어디에서 들었는지는 모르나 낭설(浪說)일 것입니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방문해 주셨으니 말씀이나 청해 듣도록 하겠습니다. 행여 답을 드리지 못하더라도 너무 꾸짖지는 말아주시기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껄껄껄~! 그럴 리가 있소이까~!”
“귀하의 존대 성명은 어찌 되시는지요?”
우창은 혹시 몰라서 기록해 두려고 이름을 물었다. 그러나 검객은 우창을 한 번 훑어보고는 거침없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이름은 알아서 뭘 하시려오? 보잘것없는 이름은 예양(豫讓)이라 하오이다. 설마하니 이름자 풀이도 하시오?”
“그건 아닙니다. 다만 인연이 소중하기에 이름을 여쭈었습니다. 우선 무슨 말씀이신지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오늘 내가 20년의 묵은 빚을 갚으러 가는 길이오. 그런데 집을 나서자마자 까마귀 떼가 하늘을 뒤덮으면서 북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봤소이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으나 그것이 자꾸 맘에 걸렸단 말이오. 그런데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문득 옆자리에서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소이다. 모처에 젊은 점술가 있는데 참으로 용하다고 소문이 났더라는 말이었소이다. 원래 그런 말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소만, 오늘은 유난히 그 말이 귓가를 맴돌아서 어디에 가면 만날 수가 있는지를 물어서 이렇게 찾아 왔으니 부디 혜안을 열어 주시기 바라오.”
우창이 참담한 점괘를 앞에 놓고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적에 춘매가 들어온 것이었다. 그런데 춘매의 호기심이 어느 정도일지를 생각하니 그냥 사양만 하고 있을 수만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친김에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이 검객의 살기가 내내 맘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할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한 말씀이오나.....”
“기탄(忌憚)없이 말해 주시오.”
“점괘에 검은 구름이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복수를 할 기회는 영영 오지 않는단 말이구려.”
“하늘에 태양이 사라지는 형국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껄껄껄~! 괜찮소이다. 이미 내 목숨은 구천에 보내놓고 집을 나섰던 길이니까 말이오.”
“아마도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한이 쌓인 인연이었던가 봅니다.”
“그렇소이다. 내 아내와 아이들이 그놈의 손에 개죽음을 하였으니....”
우창은 이 검객의 말에서 처연(悽然)함이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동정하는 마음이 배어 나왔다.
“참, 안타까운 일을 겪으셨습니다. 아마도 악독한 사람이었던가 봅니다.”
“내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놈이니 용서를 할 수가 없었소이다.”
“이제 복수를 할 준비가 되셨던가 봅니다.”
“그렇소. 하늘이 보우하사 기인을 만나서 검법을 전수받았소이다. 비로소 묵은 빚을 청산하려고 기회를 보다가 그놈이 있는 곳을 알게 되었던 것이오.”
“그러셨습니까?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조짐이 그렇게도 안 좋소이까?”
“소생의 입으로 말씀드리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렇다면 이길이 저승길이 되겠구료.....”
우창이 그의 비장한 표정을 보자 자오검이 떠올랐다. 실은 아는 검객이라고는 자오검 뿐이기도 했다. 그래서 검을 보면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기도 했다.
“혹시 참회객(懺悔客)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셨습니까?”
“그건 처음 듣는 말이오. 그게 누구란 말이오?”
“소생이 듣기로는 자오검이라는 검객이 후에 괴질(怪疾)을 얻어서 고통을 받다가 어느 도인을 만나서 병을 고치고는 마음에 큰 깨달음이 있어서 검을 놓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호를 지었는데 그 이름이 참회객이라고 합니다.”
“그 악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호요. 아마도 자신의 죄업을 숨기려고 위장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오.”
“그는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을 깨닫고 스스로 지은 이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손님으로 찾아온 사내가 관심을 보이자, 이것도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 우창이 알고 있는 대로 자오검이 화산에서 수련하면서 몸을 치료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이 남자는 표정이 여러 차례 변화했다.
“자오검의 행적이 갑자기 강호에서 사라져서 무슨 연고인가 싶었소이다.”
그 사이에 이 검객의 살기가 많이 누그러졌다는 것을 우창이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점괘에서 먹구름이 가득하다고 했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지 수고스럽겠지만 나를 위해서 풀이를 좀 해 주시오. 그 연유나 좀 들어봅시다.”
“점괘에서는 먹구름이 가득하게 보여서 괴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아무리 그렇기로 20년의 원한을 잊는다는 것은 쉽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만...”
“물론이오. 그러나 또한 한마음을 먹기에 따라서 여반장(如反掌)이 되기도 하는 것이오. 참회객이라는 말을 들으니 나도 느낀 바가 있소이다. 내 칼날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표정이 잠들기 전까지 아른거리는데 자오검이 오죽했으면 이름을 바꾸고 자연으로 돌아갔으랴 싶소이다. 껄껄껄~!”
남자가 호쾌(豪快)하게 웃음을 터뜨리자 우창도 비로소 안도하는 마음으로 몰래 숨을 내쉬었다.
“참 호인이십니다. 하늘에서 다시 밝은 빛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사실 점괘는 사막에 엎질러진 한 잔의 피였습니다. 이러한 점괘는 아무래도 불길한 데다가 무사님의 표정이 너무나 비장하여 실로 두렵기조차 했습니다. 하하~!”
“아, 그러셨소이까? 이거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여기 복채이니 작은 성의로 받아주시오. 그럼 이만~!”
검객은 날쌘 동작으로 은자를 하나 탁자에 꺼내 놓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말리고 말고 할 틈도 없었다. 그가 사라진 문만 흔들거릴 뿐이었다.
춘매도 갑자기 일어난 일에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잠시 멍~하게 우창과 탁자의 은자(銀子:약20만 원)를 번갈아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러다가는 상황이 변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마른 목에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니 오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 보다시피 이런 일이지 뭘. 하하~!”
우창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 춘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의도도 포함되어서 조금은 과장된 몸짓을 해 보였다. 춘매도 우창의 그 마음을 읽고서는 궁금하던 질문을 꺼냈다.
“오빠, 그러니까 저 검객은 자신의 복수를 하러 가면서 점괘를 물으러 왔던 거야?”
“그래, 좀 괴이하긴 하지?”
“왜 물어보고 싶었을까?”
“조짐 때문이지.”
“조짐이라니?”
“집을 나서는데 까마귀 떼가 무리를 지어서 북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봤다잖아. 목숨을 걸고 복수하겠다고 길을 나서는 마음에 그러한 풍경을 보면 마음에 동요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 아마도 그랬을 것으로 생각이 되네.”
“아무리 그렇더라도 복수하겠다는 것은 이미 자기의 목숨을 걸었다는 의미도 되는 거 아닌가? 좀 이해가 안 되긴 하네.”
“그게 사람의 마음이야. 아직 죽을 때가 안 되었거나, 조상이 자손의 명을 더 이어가게 하려고 개입을 했을 수도 있지.”
“근데, 사주가 좀 특이하네? 시주 옆에 하나 더 있어?”
“아, 이건 점괘야. 오주점(五柱占). 하하~!”
“그건 왜 안 가르쳐 줬어?”
“때가 되어야지. 누이는 아직 멀었어. 하하~!”
“그런가? 그래도 설명은 해 줄 수가 있잖아.”
“물론 그야 가능하지. 일간 癸水의 주변엔 무엇이 있나?”
“편관이 여섯이나 되네? 이건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야?”
“기운이 음산하지?”
“정말이네. 어떻게 이런 배합이 나올 수가 있지? 와, 정말 신기하네. 난 언제나 그것을 배울 수가 있는 거야?”
“서두르지 않아도 때가 되면 다 가르쳐 줄 테니 알려 준 것만 열심히 해.”
“알았어, 근데 이 정도면 살아날 길이 없는 것 아냐? 떠나기 조금 전에 한 말로 봐서는 복수는 포기할 것으로 보이던데 어떻게 갑자기 그런 판단을 하게 된 건지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네?”
“다섯 번째의 간지(干支)를 보렴, 신미(辛未) 말이야.”
“신금(辛金)은 편인이네? 근데 그건 어디에서 나온 거야? 왜 사주가 아니라 오주인 거지?”
“조짐이 숨어있는 곳이지. 활로(活路)가 보이나?”
“기사회생(起死回生)이네. 와~! 정말 신기하다!”
“편인의 상징(象徵)은 뭐지?”
“학문, 철학, 종교, 조상, 수호신, 의심, 영감.... 또....”
“그래 그 많은 조짐 중에서 목숨을 연장시켜 줄 수가 있는 것은 무엇인지 찾아낼 수가 있을까?”
“그야.... 수호신이 지켜주면 가능하지 않을까?”
춘매가 곰곰 생각하다가 우창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빠. 점괘는 이렇게 나쁘더라도 그가 찾아가는 검객이 형편없는 실력자라면 점괘는 나빠도 겨뤄서 패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만 손님에게 검술의 실력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 볼 수는 없잖아? 하하하~!”
우창의 말에 춘매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만약에 숨은 조짐인 다섯 번째 간지가 무진(戊辰)이나 기사(己巳)였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되면 생기(生氣)가 전혀 없는 것으로 봐야 하는 거잖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 계축(癸丑)으로 스스로 자신을 지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봐야지. 축중신금(丑中辛金)도 있으니까.”
“그런데 또 궁금한 것이 있어. 20년간 복수의 칼을 갈았다고 했는데 점괘에 그러한 조짐은 없는 건가 싶은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러한 것을 일부러 찾을 필요는 없지만, 꼭 찾아보고 싶다면 못 찾을 것도 없긴 하지.”
“어디에 그런 조짐이 있어? 난 그런 것을 찾는 것이 재미있더라. 혼자만 알지 말고 좀 알려줘 봐.”
“축축(丑丑)~!”
“뭐라고? 왜 축축이 20년이야?”
“축(丑)은 몇 번째 지지(地支)야?”
“그야 자(子) 다음에 축(子丑)이니까 두 번째잖아?”
“그러니까 20년이지. 실은 22년이겠지만.”
“왜 그런 해석이 나오느냐고~! 두 개면 4년이라야 되는 거잖아?”
“읽어봐. 이이(二二).”
“이이, 이가 둘이면 이십이라고 읽어야 하잖아.”
“옳지. 이제 알았어?”
“그럼 미미(未未)는 팔팔(八八)이겠네?”
“맞아.”
“맞긴 뭐가 맞아?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과이이(過二二)하면, 도팔팔(到八八)이니라.”
“뭐야? 22를 넘기면 88에 도달한다고? 그만큼 오래 산다는 말이야?”
“그렇지.”
“아니, 오빠는 신선이야?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놀라서 입이 안 다물어지네. 믿어도 되는 말이야?”
“난들 알아. 누이가 물으니까 그렇게 답이 나오네. 나도 모르지. 하하하~!”
“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을 들여다보는 것에는 차이가 크네?”
“간지(干支)의 오묘(奧妙)함이란 바로 그곳에 있는 거지. 그래서 지장간(支藏干)의 이치를 알면 투시력(透視力)이 생긴다는 말도 나오는 거야.”
“정말 놀랍네. 그러니까 숨은 조짐에 기사(己巳)가 있더라도 일지(日支)의 축중신금으로 인해서 구사일생(九死一生)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잖아?”
“맞아. 그래서 말을 들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 거지.”
“근데 왜 아까는 답을 하지 못한다고 버틴 거야?”
“그게 답이니까. 그것조차도 방문자에겐 답이 되는 거지.”
“와우~! 오빠의 상담하는 능력은 과연 탁월하네. 그건 생각지 못하고 괜히 답답하기만 했는데 듣고 보니까 그것조차도 이미 계산에 포함되었다는 말이잖아? 난 답을 하지 않고 뭉기적거리다가 괜히 화를 당하기라도 하면 어떨까 싶어서 마음을 졸였잖아.”
“신기할 것도 없어. 그냥 흐름에 따라서 판단하고 조언하다 보면 항상 크게 잘못되지 않은 방향으로 되더라는 경험을 믿는 거야.”
“맞아, 떠나는 표정으로 봤을 적에 분명히 뭔가를 깨달은 것으로 보였어. 그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서 갑자기 변한 것 같던데.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오빠도 알고 그도 알고 있었던 거야? 유명한 사람이야?”
“무림(武林)에서는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라고 봐야지. 옛날에 인연이 있어서 만났었지. 장검을 갖고 있기에 문득 그가 생각이 나서 변화한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그 말을 귀담아 들어주니 고맙기조차 하네.”
“맞아, 그래서 웬만하면 남에게 원한을 살 일은 피하고, 항상 좋은 일만 하고 살아야 한다니깐. 호호호~!”
“누이는 현명하니까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거야. 하하~!”
“그럼 오빠 생각에 저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
“입산수도(入山修道).”
“엉? 그건 또 왜?”
“분주(分柱)의 편인(偏印)이 가리키는 곳은 사바세계가 아니라서이지.”
“분주?”
“아, 마지막 조짐을 보여주는 간지의 이름이야.”
“그렇구나. 입산수도하러 간다는 것은 그 참회객이라던가 하는 사람의 뒤를 따르겠다는 건가?”
“무인들은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거든. 그래서 자신이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현명한지를 바로 깨달았던 것으로 봐. 다행이지.”
“정말 다행이네. 살기등등했던 눈빛이 순식간에 온화하게 느껴졌던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나 같으면 그런 손님이 오면 하얗게 질려버려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을 거야. 호호~!”
“차차로 공부가 쌓이면 누이도 잘 하게 될거야. 그나저나 복습이나 열심히 하랬더니 왜 건너왔어?”
“그야 오빠가 보고 싶어서 왔지. 그런데 와보지 않았으면 이런 멋진 장면을 놓칠뻔했잖아. 그래서 수시로 와봐야 한다니깐. 호호~!”
“무슨 공부를 하다가 온 거야?”
“십성의 변화는 너무 광범하고 막연해서 머리가 지끈거려. 단지 네 개의 기둥에 지나지 않는 내 사주를 들여다보는데도 왜 그렇게 생각을 해야 할 것이 많은지 이런 공부를 완성하는 사람들은 모두 천재인가 싶어.”
“천재는 무슨, 자연의 이치대로 궁리하다가 보면 답을 만나기도 하고, 영영 얻지 못하는 답도 있고 그런 거지. 하하~!”
“답을 얻지 못하는 것도 있어? 그건 의외네. 오빠는 무불통지(無不通知)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런 게 어디 있어. 하하~!”
“도대체 오빠도 모르는 것이 뭐야?”
“죽음.”
“엥? 죽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뜻이야? 그건 의외네. 점쟁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에는 항상 뭘 안 하면 죽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오빠는 그것도 모른단 말이야?”
“명리학(命理學)은 살아 있는 동안에 겪게 될 조짐을 살펴보는 학문인 까닭에 그다음의 일에 대해서는 접근이 불가한 거야. 그러니 명을 다한 다음에 대해서는 해답이 나올 까닭이 없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래도 의외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서 알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야?”
“있겠지. 다만 나는 모르겠어. 관심도 없고.”
“왜? 관심이 없는 이유는 또 뭐야?”
“살아가면서 즐겁게 살 방법을 찾아내기도 버거운데 하물며 언제 죽을 것인지를 알아서 뭘 하겠느냔 말이지. 그리고 그것을 알면 또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예전의 한 도인은 내일 땅이 꺼지더라도 오늘 나무를 심겠다고 했다던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할까?”
“그런 사람은 특별하잖아. 이미 생사(生死)는 초월(超越)한 사람이라서 그렇게 말을 했겠지. 보통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도 얼마나 관심이 많은데.”
“그러니까 그게 바로 도인과 범인(凡人)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누이도 도인이 되려면 죽음보다는 삶에 머무르도록 해봐.”
“그런.... 건가...?”
“당연하지. 우자(愚者)는 내일을 준비하고 현자(賢者)는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병자(病者)는 어제에 매여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누이는 어느 쪽이야?”
“난.... 내일에 마음이 있는 것 같으니까 어리석은 것이 맞네. 호호호~!”
“왜 내일에 마음을 두지?”
“내일엔 공부를 잘해서 오빠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배울 수가 있을 테니까 그렇지 뭘.”
“그런가?”
“당연하지 뭐가 그런가야?”
“내일은 나처럼 오행의 이치를 잘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단 말이지?”
“열심히 하면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 거지. 그것이 내일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잖아?”
“그럼 오늘은 뭘 할 수가 있지?”
“오늘은 뭘 하다니? 당연히 공부해야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렇다면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 공부만 열심히 하면 어떻게 될까?”
“오늘 열심히 공부했으면 당연히 내일은 더 아는 것이 많아지는 거잖아?”
“그래?”
“어? 내가 무슨 말을 잘 못 한거야?”
“누이의 말을 들어봐서는 내일에 관심을 두는 것과 오늘에 집중하는 것의 차이가 뭔지를 모르겠다는 말이야. 결국은 오늘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거잖아?”
춘매는 우창이 말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던지 복잡하게 생각되는 듯이 말했다.
“맞아, 그 말이지. 그러...니까.... 그렇네. 오빠와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내가 바보인가 싶기도 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간단한 이야기잖아? 도인이 오늘만 생각하고 나무를 심는다는 것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야. 결과적으로 죽음이 언제 찾아올 것인지에 대해서 내가 관심이 없는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말이고.”
“듣고 보니까 그렇네. 오빠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밖에 할 말이 없어. 과연 그렇구나. 도인은 틀린 것이 없네.”
“방문자가 찾아오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뭔 줄 알아?”
“제일 먼저? 그야 궁금한 것을 알려주는 것이잖아? 그보다 더 급한 일이 또 있을까?”
“당연히 더 중요한 것이 있지.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지금 여기에 묶어두는 거야. 어떤 사람은 어제의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지. 그러다가 극심한 우울증(憂鬱症)에 걸려서 인생을 망치기도 해. 미래를 생각하다가 우울증이 걸리기는 쉽지 않지만, 과거에 매인 사람에게 우울증은 거의 단골처럼 찾아올 수밖에 없거든.”
우창의 말이 여전히 어려운지 얼른 답을 못하고 생각에 잠기는 춘매였다.
“정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더니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네. 이제 오빠가 뭘 알려주려고 하는지 이해했어. 그러니까 방문자가 과거에 매여있으면 그것부터 깨우쳐주는 것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란 말이지?”
“옳지, 잘 이해했다. 그럼 과거에 매인 사람과 미래에 매인 사람 중에서는 누가 더 급할까?”
“어? 그런 것도 생각해 봐야 하는 거야? 그야 같은 것이 아닐까?”
“물론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 있는 거야. 최우선으로 과거에 매여있는 사람부터 찾아서 해결을 해줘야 하는 거야. 물론 누구나 과거에 대한 자질구레한 상흔(傷痕)은 있기 마련이지. 다만 그러한 것은 치명적(致命的)이진 않으니까 세월이 흐르면 점차로 희미해지는 거니까 문제가 안 되지. 다만 깊은 상처가 있다면 치유(治癒)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어쩌면 영영 치유가 안 될 수도 있는 거야.”
“아무리 오래되어도 치유가 안 되면 어떡해?”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을 할 수가 없지. 최악의 경우에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는 거야.”
“아, 그렇게 되는 거였구나. 그나마도 미래에 사는 사람은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는 않겠구나. 그 차이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이제 알았어.”
“비록 현재의 운이 좋다고 한들, 과거의 그늘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희망적인 마음도 없는데, 좋은 운을 찾아 먹으려고 노력이나 할까?”
“아항~! 그렇게 되는 것이었구나. 오빠의 말은 전적으로 옳아.”
“그다음에는 미래에 가 있는 사람을 현재로 돌려놔야지. 그게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이야.”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미래에 가 있는 사람은 뭐가 문제일까?”
“미래에 머물게 되면 망상증(妄想症)이 발생하게 되지. 망상증도 우울증만큼이나 위험하기때문에 마음이 미래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잘 단속해야 하는 거야. 자칫하면 현실을 망각하고 도박에 빠지거나 환상에 젖어 들어서 헛된 곳으로 방황하게 되기가 쉽거든.”
“알고 보면 다 같은 거였네.”
“미래를 향하고 있는 사람은 허황한 꿈만 꾸기 때문에 금광을 찾아다니던지, 점쟁이를 찾아가서도 미래에는 황홀한 황금 궁전에 살게 될 것이라는 말만 들으려고 하지. 그렇게 되면 또 인생은 물처럼 흘러갈 따름이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냔 말이야.”
“정말이구나.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 줄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오늘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명학(命學)을 공부하기 이전에 먼저 그것부터 알아야 하는 거였잖아?”
“오호~! 그것을 생각했으니 이제 누이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할 만하겠네. 그렇게 오늘만 열심히 살다가 보면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도 있는 거야.”
“뭐야? 그것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었어? 다시 왕래한다면 무슨 소용인 거지?”
“다르지. 과거와 미래로 끌려다니는 것과 왕래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아직도 모르겠어?”
“그 말은.....? 아, 내 맘대로 오고 가는 것과, 자신도 어쩔 수가 없이 끌려다니는 차이라는 건가?”
“그래 잘 이해했다. 자의로 과거를 가게 되면 오류거나 진실이거나 가져다가 수정하고 보완해서 오늘을 풍요롭게 할 수가 있는 거야. 아까 그 사람에게 내가 자오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 것이 그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아, 이제 알겠다. 미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구나. 그런데 미래는 미리 가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가 있지?”
춘매는 우창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