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제21장. 천하유람/ 11.가르치는 묘미(妙味)
작성일
2020-05-10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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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1] 제21장. 천하유람(天下遊覽)
11. 가르치는 묘미(妙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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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만 지내다가 저잣거리에 거처를 마련하고 보니 우창도 생소한 분위기가 쉽게 적응이 되지는 않았다. 다만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한 대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까 그동안의 삶이 나름대로 속박 속에서 살아왔었다는 것을 비로소 느낄 수가 있었다. 이렇게 지내보는 것도 많은 경험이 되겠다는 생각은 그다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때 묻지 않은 춘매의 심성이 맘에 들었다. 문득 자원과 비교하게 되는데 자원은 교육으로 인해서 절제된 행동이 우아한 연꽃과 같다면, 춘매는 이름에서 풍기듯이 모진 겨울의 눈보라를 견디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매화(梅花)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흡사 길들지 않은 야생마(野生馬)와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연승점술관(燕蠅占術館)」
춘매가 어딘가에서 써온 ‘연승점술관’이라고 쓴 편액(扁額)을 추녀 끝에 붙여놓은 것을 보니 뭔가 새로운 일이 시작된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묘한 책임감도 들었다. 며칠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새로운 자리에 적응하는 것도 일이었다. 또 매일 춘매를 가르치는 것도 일이고, 이렇게 생소한 분위기에 적응하는데 열흘은 걸린 것 같았다. 이제야 어느 정도 흐름이 잡혔다. 춘매를 가르칠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는지라 공부할 시간에 대해서 물어 봤다.
“누이는 언제가 공부하기 좋은 시간일까?”
“난, 오전이 좋아. 오후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받아야 하니까 저녁까지는 힘들어서 어렵고 일찍 일어나기는 힘들어서 사시(巳時:09시~11시)쯤이면 가장 좋겠는데 어떨까?”
“원래 그 시간이 공부하는데 가장 좋은 시간이야. 아침밥을 먹은 것이 웬만큼 소화된 다음에 하루 중에 가장 맑은 정신과 몸으로 다듬어지는 시간이거든 그렇다면 매일 사시에 공부하는 것으로 하면 되겠다. 나도 오후에는 상담해야 밥값을 할 테니까 그렇게 하자꾸나.”
“그럼 오늘부터는 공부하면 되는 거야? 와우~!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모르겠네. 사정은 봐주지 말고 호되게 가르쳐줘야 우둔한 내가 공부를 제대로 할 테니까 잘 부탁해.”
“그동안 춘매가 배운 공부가 무엇인지부터 꺼내 봐.”
“그건 이미 알잖아아. 단시점.”
“그래? 그럼 도대체 그것 말고는 뭘 배운 거야?”
“스승이라고 삼고서 알고 싶은 것을 물어보면, 제대로 답도 안 해 주고 두서(頭緖)가 없어서 시간이 지나고 보면 뭘 배웠는지 하나도 모르겠는 경우가 허다했지. 그런 식으로 계속 기초와 입문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말곤 했잖아. 그래서 정말 그다음의 단계로 들어가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니까. 그나마 단시점이라도 제대로 배운다고 배웠는데 글쎄 그것조차도 막상 써먹으려고 하면 돼지 대가리에 뱀 꼬리가 되어버리니 써먹을 방법이 있어야지. 이런저런 일들로 시간과 돈을 허비한 것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려.”
“그랬구나. 알았다. 그렇게 갈증이 쌓여야 마른 솜처럼 공부를 빨아들이는 거야. 갈증이 없다면 공부도 되지 않는 법이거든. 그들 탓만 할 것도 아니라고 보고 원망은 하지 말아.”
“이젠 원망 안 해. 만약 그들에게서 제대로 공부를 했더라면 오빠를 이렇게 만났을 수도 없었을테니까, 그래서 오히려 감사하기도 해. 호호~!”
우창은 자신을 무한(無限)으로 신뢰하는 춘매에게 더 이상의 학문적인 방황과 갈증은 없도록 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스스로 간절해서 배우는 사람에게는 진척이 있는 법이다. 배가 고픈 자에게는 무엇을 주든 보약이 되는 까닭이다. 반면에 배가 부른 자에겐 천하일미도 이미 맛이 없으니 먹을 마음이 생길 턱이 없는 이치인 까닭이다.
“그냥 완전한 백지(白紙)라고 생각하고 시작해 줘.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 처음부터 오빠의 가르침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 다른 것은 모두 다 털어버릴 거야.”
“우선 지금부터 내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겠네? 내가 뭘 가르치려는 거지?”
“점술~!”
“어? 하하하~! 그렇긴 하지. 참나.”
“왜? 아닌 거였어? 그럼 뭐야?”
“명리학(命理學)이라고 하는 거야.”
“명리학? 처음 듣네. 수명의 이치를 배우는 건가?”
“명(命)은 살아있다는 뜻이야.”
“리(理)는 그럼 살아가는 이치를 뜻하겠네?”
“맞아. 명리학에는 또 많은 종류의 갈래가 있지.”
“원래 그랬구나. 그걸 다 어떻게 배워?”
“그럴 필요는 없어. 나도 다 몰라.”
“모르면 어떡해? 오빠는 다 잘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필요한 것만 알면 되는 거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돼.”
“그야 당연히 오빠를 믿어야지.”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이야.”
“자평? 사주가 아니고? 이름도 참 희한하네.”
“사주(四柱)는 특별한 학문이 아니야. 그냥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말할 따름이지. 그것으로 저마다 해석하는 법을 연구하는 것이 명리학이지.”
“알았어, 자평은 무슨 뜻이지?”
“어느 고인이 자기 방식으로 명리학을 정리했지. 그래서 후학들이 그가 해 놓은 방법에 선생의 이름을 붙여서 자평명리학이라고 하게 된 거야.”
“그럼 선생의 이름이 자평이네? 자씨도 있었구나.”
“자씨? 아, 자씨도 있긴 하지, 그렇지만 자평은 선생의 호를 따서 붙인 이름이야. 원래 이름은 서거이(徐居易)라고 전하는데 하도 오래전이라서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어. 그래서 그냥 그런가보다하지.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내용이니까. 안그래?”
“맞아, 내가 춘매면 어떻고 홍매면 어떠냐는 것과 같은 말이네. 호호~!”
“오행(五行)이 뭐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그건 알아.”
“그럼 공부는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네. 금(金)은 뭐지?”
“금은 바위나 쇠.”
“또?”
“또? 또 있어? 아, 뼈와 치아도 있네.”
“또?”
“뭐가 자꾸 또야? 또도 금이란 건가?”
“춘매~!”
“응?”
“그것도 금이야.”
“그게 뭔데?”
“내가 춘매라고 부를 때 대답하는 것 말이야.”
“대답하는 것은 내 영혼이잖아? 영혼이 금이라고?”
“옳지, 잘한다. 맞아.”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영혼은 너무 단단해서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가 없지.”
“그야 바위나 금강석이 그런거잖아.”
“바위가 단단할까, 누이 영혼이 단단할까?”
“그야 당연히 바위가 단단하지.”
“만약에 춘매에게 정과 망치를 주고 바위를 깨라고 하면 깰 수 있을까?”
“시간이 걸리겠지만 깰 수 있겠네.”
“사람이 바위보다 단단해?”
“그건 아니지만, 바위를 깨야 한다는 의지력이 있잖아.”
“그 의지력은 몸에 있는 걸까?”
“아니지 마음에 있자. 아, 그게 영혼이구나.”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것은 뭐라고?”
“영혼.”
“저마다 영혼을 하나씩 갖고 있지. 그래서 고집도 되고 의지력도 되고 투지도 되는 거야. 그것을 금(金)이라고 하는 거지.”
“와~! 전혀 다른 공부네. 처음 들었어. 영혼은 토지공묘나 절에 있는 것으로만 알고 공동묘지에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지 내가 영혼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네.”
“이것이 제대로 배우는 오행법(五行法)이야. 하하~!”
“그럼 목(木)은? 나무가 아니겠네?”
“아니, 나무도 되고 또 다른 것도 되는 것인데 오직 나무만이 목이고 바위나 쇠가 금이라고 하는 생각을 바꾸라는 거야. 알아듣겠어?”
“좀 어렵긴 하지만 이해하도록 노력할게. 목은 뭐야?”
“몸, 나무, 청춘, 봄,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모두 목이라고 할 수가 있지. 새벽은 하루가 새롭게 태어나니 그것도 목이고, 어린아이가 기어다니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것도 목이지.”
“그렇구나. 그래야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그 상황에 어울리는 대상을 끌어다 해석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었구나. 그럼 이끼, 느티나무, 고사리, 미역도 모두가 목이네?”
“옳지. 맞아. 금(金)은 자라지 않으나 목(木)은 자라는 거야. 마음은 자라지 않잖아?”
“아, 그렇구나. 자라는 것과 안 자라는 것으로 금목(金木)을 구분할 수도 있구나. 신기해. 그럼 동굴에 자란다는 석순(石筍)은 금이야? 목이야?”
“자라서 굳어서 바위로 변한 것은 금이고 막 자라고 있는 부분은 목이겠지.”
“와우, 어쩜 그렇게 답이 척척 나올까? 오빠는 모르는 것이 없나 봐.”
“공부할 적에는 딴소리를 하지 않기다.”
“아, 알았어. 그냥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이야.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답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말이야. 호호~!”
“수(水)는?”
“그야 물이지 뭘.”
“밤, 액체, 얼음, 늙음, 죽음도 모두 수에 해당한다고 기억해 둬.”
“아직은 이해가 덜 되는 것도 있지만 차차로 익히도록 할게.”
“화(火)는?”
“당연히 불인데, 또 다른 것을 찾아야 할 것 같네. 뜨거운 것, 밝은 것, 화가 나는 것도 불일까?”
“옳지 하나를 배우면 둘을 깨치는구나. 잘했다.”
“그럼 토(土)는 흙도 되지만, 또 무엇이 해당할까?”
“혼자서 생각해도 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인생으로는 중년이 토가 되고, 균형도 토가 되고, 자연도 토가 되는 거야.”
“자연이 토라는 것은 대지를 생각하면 알겠는데, 균형이 토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글자를 봐. 土는 기울어 있나?”
“아니, 똑바로 서 있어. 그래서 균형인거야?”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그렇게 표시한 것이겠지.”
“그....런....가....”
“똑바로 서봐.”
“응, 이렇게?”
“자 이번에는 빨래판의 한쪽에 베개를 대고 기울게 한 다음에 그 위에 서봐. 해 보지 않아도 돼. 빨래판의 아래쪽에 있는 다리는 똑바로 하고, 위쪽에 있는 다리는 구부려야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있겠지?”
“그야 당연하지. 그게 뭘 어쨌다고?”
“균형이란 그런 것이라고.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토의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보는 거야. 그게 토란 말이지.”
“그럼 집도 토의 이치에 따라서 지어야 하고, 나무도 토의 이치에 따라서 심어야 하는 거네?”
“옳지, 제대로 잘 이해한 것 같군. 이게 오행이라는 거야. 그리고 이러한 이치는 평생을 두고 계속 연구하고 궁리하는 것이니까 오늘이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마치 겨울에 날이 추우면 옷을 자꾸 껴입듯이 점점 하나씩 익힐 때마다 실력이 쌓여가는 것이고, 나중에는 어디에서 뒹굴어도 춥지 않게 되는 거야.”
“와~!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었네. 언제까지라도 생각할 거리가 다함이 없겠어. 이것만 평생 생각해도 되겠는걸.”
우창은 이 정도로 오행에 대한 설명을 정리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더 복잡한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도 머리가 터진다고 비명을 지르지 싶어서였다.
“공부를 많이 했으니 산책이나 할까?”
“좋아~! 나도 바람을 쐬고 싶었어.”
집을 나와서 큰길을 등지고 걸어가면 마을을 지나서 아담한 저수지가 나오고 멀리 산세도 예쁜 풍경이 전개되어서 공부하다가 바람 쐬는 곳으로는 그저 그만이었다. 노산에서는 준령(峻嶺)의 압박을 항상 받고 있었다면 여기에서는 눈길이 닿는 곳이 모두가 잘 어우러져서 편안했다. 하늘도 잘 보이고, 바람도 잘 통하고 햇살도 맑았으니 더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더구나 옆에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재잘대는 춘매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약방의 감초와 같았다.
길가의 대추나무를 가리키면 목이라고 답하고, 담장에 박혀 있는 돌을 가리키면 금이랑고 답하고, 저수지 물을 가리키면 수란다. 그 노는 모습이 귀여운 소녀였다. 나이는 이미 까맣게 있고 오행 놀이에 푹 빠진 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오빠, 하늘은 오행이 뭐지?”
“토(土).”
“왜?”
“하늘은 공평하고 균형을 이루고 있으니까.”
“구름은?”
“수(水),”
“왜?”
“뭉쳐야 구름이 되니까.”
“바람은?”
“목(木).”
“왜?”
“움직여야 바람이 되니까?”
“와~!”
“재미있어?”
“응.....”
“왜 그래?”
“감동해서....오빠랑 함께 있다는 것이.”
“원, 싱겁긴, 나도 그래.”
하늘 높이 기러기들이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을이 깊어간다는 것을 자연이 보여주고 있음이다.
“오빠, 기러기가 남쪽으로 가는 것은 오행이 뭐지?”
“화생목(火生木)이지.”
“왜?”
“따뜻한 곳으로 가면 기러기가 겨울을 잘 살아갈 수 있으니까.”
“???”
“잘 모르겠지?”
“무슨 말이야?”
“오늘은 너무 많이 배웠다. 다음 시간에 또 공부하기로 하고 그냥 편하게 무심으로 둘러보렴. 하하하~!”
“오빠, 이제 머리가 상쾌해 졌어. 그만 가자. 오늘 낮에는 맛있는 만두를 빚어서 삶아 먹을 거야. 오빠는 찐 것이 좋아? 아니면 구운 것 좋아? 삶은 것은?”
“다 좋아. 아무렇게 해 줘도 좋으니까 오늘은 찐만두 내일은 군만두 그리고 모레는 끓인 만두로 하자.”
“어떻게 매일 만두만 먹을 수가 있어?”
“일 년도 좋고 십 년도 좋아.”
“쳇, 만두를 먹지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뭐라고?”
“호호호~!”
기러기들의 꾸륵거리는 소리가 허공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