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十星의 뜻

작성일
2007-09-1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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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십성에 대한 각각의 명칭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오래전부터 이미 전해져 내려오는 이름들인데, 현실적으로 다소 적합하지않은 의미의 이름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름 전체를 바꿨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현존하는 이름의 의미는 얼핏 전달이 되지않는 뜻이다.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그 내부적인 작용과 서로 유사해야 하는데, 설명을 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이름들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미 익숙하게 사용하시는 경우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겠지만, 앞으로 명리학의 100년을 생각한다면 지금 이 시점 에서 과감하게 변경을 시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이러한 시도를 여기에서 한번 해볼 요량이다. 벗님이 이 글을 읽고서 타당성이 있어서 그대로 응용을 하게 된다면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로 개명(改名)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럴 필요가 없다면 그대로 무시되어도 아무런 상관은 없을 것이다. 우선 도표를 통해서 십성의 구조를  관찰한 다음에 천천히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主體者 (寅) (卯) (巳) 丁 (午) 戊 辰.戌 己 丑.未 庚 (申) 辛 (酉) 壬 (亥) 癸 (子)
甲 (寅) 비견 겁재 식신 상관 편재 정재 편관 정관 편인 상관
乙 (卯) 겁재 비견 상관 식신 정재 편재 정관 편관 정인 식신
丙 (巳) 편인 정인 비견 겁재 식신 상관 편재 정재 편관 정관
丁 (午) 정인 편인 겁재 비견 상관 식신 정재 편재 정관 편관
戊(辰戌) 편관 정관 편인 정인 비견 겁재 식신 상관 편재 정재
己(丑未) 정관 편관 정인 편인 겁재 비견 상관 식신 정재 편재
庚 (申) 편재 정재 편관 정관 편인 정인 비견 겁재 식신 상관
辛 (酉) 정재 편재 정관 편관 정인 편인 겁재 비견 상관 식신
壬 (亥) 식신 상관 편재 정재 편관 정관 편인 정인 비견 겁재
癸 (子) 상관 식신 정재 편재 정관 편관 정인 편인 겁재 비견




한자로 써야 원칙이지만 그렇게 해놓으면 빡빡해서 도리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한글로 썼다. 그러나 벗님은 한자로 확실하게 알아 두시기 바란다. 한자를 두려워하면 잃을 것이 상당히 많다. 한자로 쓴다면 比肩(비견), 劫財(겁재), 食神(식신), 傷官(상관), 偏財(편재), 正財(정재), 偏官(편관), 正官(정관), 偏印(편인), 正印(정인) 등이 된다.
이렇게 열가지의 기본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십성이다. 여기에서 주체자(主體者)라고 한 것은 반드시 日干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일간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주체자가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일간이 甲木이라고 할 경우에 갑목의 식신은 丙火인데, 이 병화를 다시 주체자로 놓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 병화에게서의 식신은 무토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돌아가면서 서로 대입이 되는 관계로 해서 반드시 일간이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나 주체가 될 수가 있는 것이 십성의 흐름이다.


地支에도 십성은 대입이 된다. 다만 地支의 本氣에 대해서는 표에 의해서 대입을 하면 될것이고, 지장간은 그대로 천간의 이치대로 사용하면 된다. 특히 여기에서 주의를 해야 할 것은 ‘水火의 체용변경(體用變更)에 대한 것을 모르고 접근을 하게 되는 경우에 대단히 혼란을 겪을 수가 있다는 점을 확인해야 하겠다. 처음부터 낭월이의 교재로 공부를 하신 벗님은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중간에서 이 책을 보신 벗님은 子水가 陽水가 아니라고 하는 점을 정확하게 이해하셔야 나중에 혼란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린다.


1) 비견(比肩) - 주체(主體)




比肩은 주체자와 음양오행이 완전히 동일한 입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용력은 주체적인 힘이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비견이 많은 사람은 고집이 세다는 말도 하게되고, 아울러서 주체성이 강하다는 말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용을 볼적에 비견이라고 하는 말보다는 주체성(主體性)이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주체성이 강한 사람은 남에게 소속되어서 일을 하는 것에는 서투르고 자신의 의지대로 진행을 시키려고 하는 성분이 강하다. 그러니까 일이 되건 말건 일단 소신껏 일을 하는 암시가 강하다.
그리고 日干은 무조건 比肩에 해당하게 된다. 일간을 일러서 주체자(主體者)라고도 말하는데, 이것도 역시 같은 의미로 보면 되겠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려고 하는 주체성이 강하다고 하는 이유를 알것도 같다. 일간이 비견이기 때문이다. 다만 주변의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주장대로 밀고 나가는 사람이 있고, 주변의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생기는 모양이다.
사실 다른 곳에서도 주체성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직장에서 남의 아래에 있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직장에서 성공을 하기에는 적성이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고 일찌감치 독립을 해야 하는 것이 현명하다. 다만 운세가 따라주지 않으면 독립을 해도 맘대로 되지않으므로 부득이 직장에 근무를 해야 하는데, 이때에는 살아도 사는 맛이 나질 않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을 보면서 비견은 그대로 주체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개명을 한다면 ‘주체(主體)’라고 하는 것이 가장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2) 겁재(劫財) - 라이벌(競爭者)




비견과 같은 오행이지만 음양이 다른 구조이다. 이 형태는 자신의 주체성에 대해서 집착이 강하지만 노골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것 보다는 음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실행하는 형태라고 본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직선적인 비견에 비해서 더욱 지능화된 주체성이라고 하겠다. 대표적인 구조로는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또 그만한 대가도 얻게 된다. 그래서 합리성이 강한 주체성으로 보면 적당하겠다.
그리고 겁재는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을 쟁탈하려고 하는 의식이 강하다. 즉 경쟁을 위한 경쟁을 하는 형태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니까 주체이기는 하면서도, 그 방향이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경쟁심리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는 만족을 못하더라도, 남들이 알아주면 대단히 기분이 좋은 것이고, 또 그러한 방향으로 노력을 한다. 이런 겁재의 특성을 보면 학교에서도 남들과 은근히 비교를 해가면서 자신의 주체력을 강화시키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러한 동기는 모두 겁재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서 ‘라이벌의식’이라고 이름을 지어보는 것이다.




3) 식신(食神) - 탐구(探究)




밥신은 과연 무엇을 하는 신일까? 예전에는 먹고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다 보니까, 혹 이러한 명칭을 얻게 된 것은 아니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식신이라고 하는 이름에서는 왠지 밥풀냄새가 난다. 이것은 진정한 식신의 의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 이름을 바꿔야 하겠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가장 잘 어울릴것인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는데, 그 중에서 가장 그럴싸 한 것이 과학자이다. 가장 치밀하게 파고들면서 하나하나 검증을 해가는 자세가 식신에게서 돋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食神보다는 科學者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훨씬 느낌도 좋고, 그에 따르는 상황을 이해하는데에도 현실적으로 적용이 가능하다. 단지 밥을 해결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로써 이제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 식신의 이름은 이제 과학자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탐구(探究)’ 정도로 개명을 해야 할 것이다.
食神의 성향을 관찰해보면 폭넓게 남들과 사귀는 것에는 매우 서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흔히 하는 말로 ‘내성적(內省的)’이라고 부른다. 식신은 원래가 내성적이기 때문이다. 즉 남들과  활발하게 사귀지 못하는 것이 본성이라고 해야 하겠다. 다만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렇게 자신의 내부로 파고들어가는 특성은 다른 어떤 곳으로도 파고들게 되어있다. 다만 폭넓은 것이 아니라 깊은 것이다. 그래서 내성적인 사람이 나중에 사회에서 큰 일을 성취하게 되는 것을 흔히 본다. 언제나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는 어려서 내성적이어서 이성(異性)에게 말도 걸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항상 접하게 된다.


이렇게 몰두해서 탐구하는 성향은 오로지 식신만의 전매특허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먹을 것이나 구하는 식신이라고 과소평가를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뚫고 들어가는 대단한 파워맨이라고 하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사실 과거에는 이러한 탐구력이 별 도움이 되지못했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사회적으로 목표는 과거급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벼슬을 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으로 되어있는 단조로운 사회에서라면 깊이있게 파고들어가는 것은 사회적으로 부각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식신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장이’라고 불렀다. 한곳으로 파고들어가는 사람들은 벼슬살이를 하는 것에는 별 흥미를 못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도자기를 만든다던지, 어느 한 방면으로 자신의 정열을 몰두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것이었기 때문에 식신이라고 하는 이름을 부여받았을 것으로 생각해봤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한가지만 잘하면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것저것 어중간하게 하는 것 보다는 한가지만 잘하기를 원한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한가지 방면으로 잘해서 세계인이 된 스타가 적지않다. 우선 바둑잘두는 조치훈, 조훈현 프로기사가 있고, 음악잘하는 정경화, 정명화가 있다. 지휘잘하는 정명훈 씨도 이미 세계가 인정해주는 일인자의 대열에 서있다. 그리고 노래잘 부르는 조수미도 있고, 공을 잘던지는 박찬호나 선동열도 있다. 이들은 각기 한가지만 잘해서 유명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 이것을 식신적인 ‘파고들어가는 근성’으로 보는 것이다. 즉 탐구(探究)가 되는 것이다.




4) 상관(傷官) - 호기심(好奇心)




傷官은 그 글자의 의미를 보면 관성을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官星은 국가기관에도 해당한다. 국가기관에 대항을 하면 그 사람은 제명대로 살지못하는 것이 과거 군주국의 기본이었다. 그래서 야당성이 보이면 사람들은 매우 꺼려했던 것이다. 오죽하면 이름이 傷官이겠는가 말이다. 이 상관의 작용은 그렇게 공포적이었던 것이다.
상관기질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다. 언제 무슨 행동을 할는지 알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안한 상태라고 한다면 상관성분은 대우를 받기가 불가능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홍길동이나, 임꺽정이 등장을 했을 것이다. 부정부패를 보면서도 아무말을 못하는 군중들을 비집고 일어나서 큰 소리로 떠들고, 그래도 따라주지 않으니까 스스로 칼을 들고 고쳐보겠다고 나서는 것이 상관다운 상관이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오래된 이야기일 뿐이다. 官과 대항하고 손상하는 것이 결코 죄악이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관청에게 대항을 하는 사람이 영웅시 되는 형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때려죽일놈’의 취급을 받고 있는 ‘傷官’은 참으로 억울한 이름이다. 그래서 개명을 하되, 상관에게는 ‘탁월한 능력’ ‘말잘하는 수완가’ ‘탈렌트’ 등의 이름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상관을 관찰해보면 항상 생동감이 넘친다. 어제의 모습은 간곳이 없고, 다시 새롭게 변신한 모습만이 보인다. 여자에게 이러한 기질이 보이면 우리는 ‘여우’라고 하는 명칭을 부여한다. 그리고 여우는 매우 귀엽다는 의미가 포함되어있다.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고 그 맛으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까 한가지 일에 몰두를 하고 있는 식신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한다. 식신의 끈질긴 특성은 상관으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않는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는 것이 세상에서 해볼만한 의미가 있는 것이지 혼자서 아무리 잘났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큰소리로 떠든다. 물론 식신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목적을 향해서 묵묵히 나아가겠지만 상관은 그게 못마땅한 것이다.
상관을 생각하면 손오공이 떠오른다. 언제나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천하의 말썽꾸리기 손오공 말이다. 그러한 손오공을 부려먹기 위해서 삼장스님은 참으로 고생을 많이 하시고 기도도 숱하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이 특수비법을 전수하기는 했다지만, 상관은 그렇게 천방지축이라고 하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다 볼적에 항상 신선한 모습이 싫증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백가지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부여하는 명칭이 ‘탈렌트’이다. 재간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과연 방송국에서 자주 얼굴이 보이는 재간꾼들은 못하는 것이 없다.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사회면 사회, 뭐든지 맡기기만 하면 척척이다. 그래서 인기가 높다. 방송이라는 곳은 그렇게 산뜻한 재능이 비싸게 팔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신적인 사람들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또 한편 생각을 해보면 상관들이 방송국을 장악하고서 진행을 하는데 초청되어 오는 사람은 한 방면에 뛰어난 사람들이니까, 이들을 食神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상관이 식신을 불러다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셈인가? 그렇다면 참말로 요즘은 食傷(식신과 상관)의 시대인 것은 분명한 일인갑다. 묵묵하게 자신의 길만을 달려가는 연구가들은 자신의 영역을 확고하게 다지고 일인자가 되기가 가장 쉬운 일이다. 그 결과 한 방면의 대가가 되어서 초대손님으로 등장을 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탈렌트들은 그 주변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상관은 묻고 식신은 답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상관은 표면적인 것에는 만능이지만, 깊숙한 세계로 들어가면 도무지 깜깜해서 알수가 없다. 원래가 그렇게 깊이 파고들어가는 데에는 소질이 없기 때문이다.
식신과 상관이 어우러지면 내용이 짭짤한데, 상관들 끼리만 모이면 도무지 싱겁다. 충실한 내용을 중시하는 식신이 본다면 말이다. 한번은 상관 성분의 여인이 리포터가 되어서 바닷가에 나가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맛조개를 보고서 게맛살이라고 하는 것을 봤다. 그리고서 고소(苦笑)를 금치 못했는데, 식신에게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상관은 이렇게 실언을 해놓고서도 금새 잊어버리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해보면 참으로 편리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러한 여러 가지를 관찰해 볼적에, 상관이라고 하는 겁나는 이름 보다는 신선감이 넘치는 명칭을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호기심’이다. 상관은 그렇게 온갖 것에 대해서 호기심이 많다. 그리고 지칠줄도 모른다. 호기심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5) 편재(偏財) - 통치(統治)




흔히 편재는 횡재(橫財)나 사업성분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재벌’이라고 이름을 하면 기분도 좋고, 의미도 잘 전달이 될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과연 편재는 재벌이 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편재가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뛰어난 공간개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 ‘예술가’ 등이 더욱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어쨌던 ‘치우친 재물’ 이라고 하는 명칭은 난해하기만 하다. 이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수정하려면 어떤 것이 좋을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치우친 재물과는 전혀 어우릴 것 같지않은 이름으로 통치를 떠올려봤다. 그렇게 많은 용어 중에서 편재를 대신 할만한 것이 마땅치 않아서 고민을 좀 하게 된다. 디자이너라고 할수도 있겠는데, 또 그것만으로는 의미전달이 덜되는 것 같아서 망설여지게 된다. 그렇다고 건축가라고 하려고 해도 역시 뭔가 개운치 않은 것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하나의 통일된 개념을 떠올릴 수가 있어서 비로소 ‘統治’라고 하는 이름을 생각해봤다.
통치는 질서있게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편재에게는 그러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매우 간단하다. 우선 디자이너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일정한 소재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표현하는데, 그것도 통치라고 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 물질이 천이든, 종이든, 구리이든, 철판이든 나무든 간에 디자이너는 자신의 마음대로 질서있게 다스리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통치라고 하는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반드시 사람을 다스려야 통치라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편재에게 사람을 맡긴다면 아마도 당연히 잘 다스릴 것이다.
그리고 설계 방면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데, 역시 종이위에서의 통치력이 그대로 발휘되는 것이라고 하면 되겠다고 본다. 물론 그 종이위에서 설계를 한 것의 차이는 편재의 능력에도 각기 다른 것이 있다는 것으로 봐야 할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이 그 도면 위에서는 남에게 꿀리지 않고 자신의 의도대로 가장 어울리는 다스림을 베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뛰어는 설계사가 그린 도면으로 집을 지으면 누가 보던지간에 멋있고, 실용적인 건축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통치의 개념이라고 본다.
달리 보면 편재에게 부여된 능력은 ‘물질의 객관성’이다. 객관적인 안목으로 물질의 하나하나의 특성을 관찰하기 때문에 분류하고 정리를 해서 통일시키는 능력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편재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다. 다른 성분들은 이러한 일을 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치우친 물질관이라고 할수 있는 ‘偏財’라고 하는 말은 현실적인 대입에서 모순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편재는 상징적인 것에 대해서도 객관성을 살려서 구체화 시킨다. 특히 지도를 보면서 낯선 장소를 찾아갈적에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낭월이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정보를 일러주는 데에도, 편재가 있는 사람은 잘 찾아오고, 편재가 없거나 멀리 있는 사람은 몇번인가의 전화를 하고 나서야 도착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편재의 특성은 공간개념의 객관화가 잘 되어 있어서 지도만 보면 어디던지 잘 찾아갈 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 편재가 전혀 없는 사람도 지리에 밝은 경우가 있기는 하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된 연유라고 단언을 하기는 어렵겠는데, 다만 ‘편재가 없더라도 잘 찾아다닐 수는 있으나, 길을 못찾는 사람들은 편재가 없는 것이 확실하다.’는 가설을 세워놓으면 될것 같은 생각이 든다.




6) 정재(正財) - 수판(數板-계산기)




올바른 재물이 정재이다. 글자의 의미로 봐서는 그렇다. 이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다만 올바른 재물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산력이 치밀하다는 것이다. 정재는 그렇게 숫자개념이 탁월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정재는 재물을 알뜰하게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올바른 재물이라는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재물을 알뜰히 여기는 사람은 얼마든지 부정을 저지를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같은 돈’ ‘현실적’ 등의 이름을 부여해 봐야 하겠다. 또 다른 의미로는 ‘알뜰살뜰’ ‘적금통장’ 정도가 되어도 좋겠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치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판이라고 하는 이름을 생각해봤다. 정재가 日干의 가까이에 붙어 있는 사람은 남에게 짜장면을 한그릇 사주더라도 괜히 사주는 법이 없다. 그 내부에서는 반드시 그만한 비즈니스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칫 인간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원래 계산이 치밀하면 인간미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충대충 넘어가면서,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해야 인간적인 것이다.
그러나 정재는 어림도 없다. 언젠가 정재 성분이 많은 사람과 차를 구경하러 갔는데, 판매장의 사원이 그 차의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벌써 가격대비 성능에 대해서 계산을 뽑아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서 감탄을 했는데, 정재로써는 오히려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하겠다. 다만 정재성분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는 낭월이가 볼적에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재능을 살리려면 계산력이 요구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 비로소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마권이나, 도박에는 별로 매력을 못느끼게 된다. 오히려 편재는 가끔 도박을 할 수도 있을는지 모르는데, 정재는 여간해서 그러한 현실성이 없는 일에는 돈을 대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컴퓨터와 같이 치밀하게 계산을 해야 하는 직종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경제관계의 공무원을 하더라도 잘 해낼 것이다. 은행장을 하던 사람은 정치를 하기 어렵다. 정치는 그렇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산이 통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몇가지의 특징을 종합해 볼적에 正財는 ‘수판(數板)’이라고 하는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더욱 이해가 명확할 것이다. 수판이 세월을 먹으면서 전자계산기로 대체되었지만, 그 의미는 같은 것이다.




7) 편관(偏官) - 인내(忍耐)




편관은 나를 정면으로 공격하고 다스리려고 드는 글자배합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가장 어려워하는 상대인데, 치우친 관이라고 하는 의미가 일리는 있다고 해도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엄격한 성분이 강한 것으로 임상이 되는데, ‘기억력’ ‘인내심’ 등으로 부르는 것이 더욱 현실감이 들지 않을까 싶다.
사실 편관성분은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는데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 임무완수를 위해서는 개인적인 행복은 뒷전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경찰관이 과다한 엄무로 인해서 순직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 편관성분의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  경찰관이 편관성분을 갖고 있으면  그렇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부여된 일에 최선을 다한다. 사실은 이러한 사주팔자들이 경찰을 해야 원칙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또한 다종다양한 형태가 서로 섞여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동차를 끌고 돌아 다니는 벗님은 잘 알고 있다. 경찰관을 만나서 스티카를 발부받을 것인가 말것인가의 긴박한 상황에서 경찰관의 눈치를 보면 대번에 정관성분인지 편관성분인지 또는 다른 성분인지를 파악하게 된다. 만약 파악하지 못한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단 면허증 뒤에다가 만원권을 슬며시 붙여서 들이밀어본다. 그러면 경찰관의 얼굴에서 행복해하는 미소와 함께 ‘앞으로 주의하시오.’ 라고 하는 당부의 말만 듣고 면허증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일단 불행중 다행인 것이다. 딱지 한 장에 최소한 3만원이나 하는 현실을 감안해 볼적에, 이것은 분명히 수지맞는 흥정을 한 셈이다. 딱지를 받으면 돈도 돈이지만, 벌점도 받아야 하고, 두고두고 관리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누구던지 웬만하면 흥정을 하려고 한다.


언젠가 검찰청의 행정관과 함께 갑사를 들려서 수정봉으로 산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스님이 차를 타고 들어가니까 당연히 입장료는 무료가 되어버리게 된다. 그 행정관은 맨 뒤에서 차를 몰고 따라왔는데, 앞에서 그냥 통과하면서 ‘우리 일행이오’라고 한마디를 하는 바람에 함께 동행을 했던 일행들은 모두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남들은 돈을 내고 들어가는 곳을 공짜로 들어간다는 것이 돈의 고하를 떠나서 삼삼한 모양이다.
그런데 뒤따라 온 이 검철청의 아저씨는 불만이 대단했다. 이렇게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돈을 내고서 들어가야 하는데, 왜 그냥 들어가느냐고 하는 것이다. 참말로 대단한 편관성분이었다. 낭월이는 미쳐 상상도 하지못했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과연 이런 분들이 한국의 법률과 연관된 부서에서 일을 한다면 나라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공짜를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와같이 경찰관도 사람에 따라서는 뇌물을 받으려고 하지않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흥정을 하고 싶어도 받아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면 그 경찰관은 편관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나와 상관이 없을 적에는 돗보이는 경찰관이지만, 내가 주는 뇌물을 받지 않을 적에는 야속한 마음도 들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양면성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다들 돈에 눈이 벌겋게 달아있는 세상에 살다보니까 경찰관만 탓할것도 아니기는 하다만...
주는 돈을 절대로 받지않는 것으로 알려지기는 의경들이다. 교통위반으로 걸렸다면 우선 그 경찰관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젊은 의경이라고 판단이 되면 뇌물을 먹이는 것은 깨끗하게 포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운전을 하는 사람들 간에는 공식아닌 공식이 되어버렸다. 이들이 바로 편관성분이라고 이해를 하면 되겠다. 그러나 만약에 그 의경의 사주에 정재가 몇 개쯤 붙어있고, 상관이 부채질을 하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것인가에 대해서 매우 궁금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함으로써 편관의 특성을 파악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산골 스님도 주는 돈을 마다하지 않는 시대이다 보니까 근무중이라고는 해도 경찰관이 돈을 받는 것이 대단히 부도덕하다는 생각도 들지않는다. 그저 그렇게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풍속도로라고 생각될 뿐이다. 다만 그 사람의 사주에서 편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면 인내심을 발휘해서 주는 돈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야말로 알짜배기 편관이다.




8) 정관(正官) - 신사(紳士)




正官이라는 명칭에서는 그 맛이 약간 풍긴다. 그래서 고치지 않더라도 별 지장은 없겠는데, 기왕이면 ‘영국신사’ 로 부르면 더욱 맛이 날 것 같다. 이렇게 불러보고 싶은 것은 사고방식이 어지히 원리원칙을 준수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단히 객관적이다. 편관의 강력한 인내심과는 상당히 비교가 된다. 정관의 성품은 언제나 한발자욱 물러나서 모든 사물을 관찰하고 객관적인 이성적인 판단으로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서 공평하게 적용하려고 하는 성분이다.
누구던지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은 올바르고 공정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조 중에서는 백결선생과 같은 분들이 정관성분이 아니었겠나 싶다.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누구라도 납득이 되는 객관성을 살려서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마음을 쓰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서는 누구던지 신뢰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올바른 벼슬아치’의 의미인 正官도 어울린다고 보는 것이다.
신사라고 하면 누가 욕을 해도 그 자리에서 성질을 부려서는 곤란하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냉정하게 생각해보고, 과연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를 판단해본 다음에 비로소 ‘앞은 이렇고 뒤는 이러니까 누가 잘못된 것이다.’ 는 식으로 결정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내린 결론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되므로 절대로 준수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해줬는데에도 따르지 않고 자꾸 떼를 쓴다면 이때는 편관의 기질이 등장을 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관이 내린 결론은 그대로 수행을 해야 하는 법칙인 셈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에누리가 없는 사람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도량이 대단히 넓은 사람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어른으로써 그 역할이 주어진다면 가장 적절한 자신의 임무수행이 될 것이다. 이것은 편견을 가지고 있지않은 성분이기 때문에 ‘紳士’라고 하는 명칭을 붙여줄 수가 있는 것이다. 언제나 한결같아서 감정의 지배를 받지않는다는 의미가 그 속에 깃들어있다.




9) 편인(偏印) - 고독(孤獨)




偏印? 치우친 도장? 이게 무슨 의미가 되겠는가? 벗님은 무슨 말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야 정상일 것이다. 이것을 바꿔서 ‘생각하는 사람’ ‘진리를 찿아서’ ‘고독한 성자’ 등으로 부른다면 더욱 의미전달이 쉽지 않을까 싶다. ‘도장이 치우쳤다’는 의미가 도대체 뭐하는데 쓰는 말인지를 이 시대에서는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는 단어다. 그래서 현대인의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에게는 그 의미를 물어봐도 모른다고 한결같이 고개를 흔들어 댈 뿐이다.
그러면 편인의 특성을 생각해보자. 일단 편인성분이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서는 사물의 구조를 관찰하되 약간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무슨 일이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발전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편인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러다 보니까 회의(懷疑)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해서 뭘하나?’
‘돈을 벌면 뭘하나?’
세상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조차도 편인에게는 시시한 의미로밖에 생각이 되지않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이 생각해 볼적에는 도데체 무슨 낙으로 살아가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특성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을 떠올려 보니까 역시 ‘孤獨’이라고 하는 것이 제격인 것 같다.
이렇게  고독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고전명리학에서는 편인을 사대흉신(四大凶神)으로 분류를 한 경우도 있다. 참고로 다른 흉신들도 이름을 나열해보면, ‘偏官, 傷官, 劫財’ 등이다. 이들은 사람의 운명에서 나쁘게 작용한다고 분류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본 것에서는 아마도 적극적이지 못하고, 부정적인 심리구조에 대해서 채점을 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사실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사고방식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면 편인은 쓸곳이 없느냐?” 고 반문을 해봐야 하겠는데, 세상에 쓸모가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일단 가장 기본으로 전제해야 하는 법칙이다. 그래서 편인은 어디에다가 써야 하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주의 이치를 생각하고, 살아가야 하는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 과정에서 그 역량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철학자(哲學者)’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운명을 생각하고 인생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편인적인 기질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벗님도 이미 사주팔자에서 편인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봐야 하겠다. 원래 운명을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편인적인 성향에서 출발을 한다는 것이 기본이다. 이것을 불러서 일명 ‘동양철학(東洋哲學)’이라고 하는 것만 봐도 능히 짐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양철학 뿐만 아니라 서양철학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부정적인 시각에서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자.” 라는 말은 누구나 하게되는 말이고 당연하다. 그런데 편인기질은 다시 반문을 한다.
“왜 배가 고파지며 밥을 먹지않으면 어떻게 될것인가?” 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밥을 먹지않고 살아보기도 하고, 깊이 연구를 하다보면 그 내부에서 숨쉬고 있는 자연의 법칙을 가장 빨리 발견하게 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대로 철학자의 기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하겠다. 그래서 편인을 이 시대에 맞게 수정한다면 ‘고독(孤獨’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10) 정인(正印) - 자애(慈愛)




正印은 바른 도장이라고 해석을 하게 되는데, 바른 도장도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수정을 하고 싶어지는데, 어울리는 이름으로는 ‘전통사상’ ‘전래동화’ 등으로 불러보면 어떨까 싶다. 원래가 정인은 그렇게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마치 어머니의 사랑과도 같이 무조건적인 봉사의 행동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도 그대로 어머니로 대입을 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어머니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慈愛’ 로 불러야 가장 어울릴 것같다.
이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머니라고 하는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남에게는 표독스럽게 욕설을 퍼부을는지 몰라도 자신의 자식들에게 만큼은 한없이 자애로운 어머니인 것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주고싶은 마음이 강하다. 그것도 조건없이 주고싶다. 나이팅게일과도 같은 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남의 고통을 내것인냥 하고 온 몸으로 돌봐주는 그런 마음이 정인을 닮았다고 생각해본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면 정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도 정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서 가시덤불을 헤치고 다니는 모습에서는 정인의 향이 풍겨나온다.


이렇게 十星의 명칭과 그 구조에 대해서 관찰을 해보았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고전적인 명칭도 신 감각으로 변경해보기도 했다. 어느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의미를 느끼기에 용이할런지는 벗님이 생각해 보시고 판단하실 일이다. 그리고 하나 둘 이러한 이름을 사용해 간다면 시간이 좀 경과한 다음에는 새로운 명칭이 제자리를 잡아가게 될런지도 모른다. 비록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십성의 형태를 이해하는 별명 정도로라도 활용을 해보시기 바란다.
이제 앞으로는 또 원칙적인 십성의 명칭을 사용해서 설명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에 고쳐보고 싶은 이름을 사용해서 설명한다면 이미 이러한 명칭에 익숙해져있는 많은 벗님들이 대단히 혼란스러울 것 같아서 선뜻 그대로 사용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용어는 그대로 원래의 것을 사용하더라도 그 이면에 숨어있는 의미는 고쳐본 뜻으로 이해를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만 튈려고 한다는 혐의를 받게 되는것도 별로 원치않는다. 이미 수백년 또는 수천년을 그대로 사용해온 용어를 하루아침에 고치려고 한다는 것도 너무 경솔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아직까지 아무도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일단 건의를 해보는 것 만으로도 그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개명해야 한다는 말은 사용하지 않을 참이다. 이러한 낭월이의 생각을 이해하시기 바란다.


기본적인 十星의 명칭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이것이 주변의 상황과 만나는 과정에서 수백가지의 변화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만 알고 있어서는 실제로 응용을 하는 과정에서 아쉬움을 많이 느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기본적인 상황을 중심에 놓고서 계속해서 확대해석을 해보려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대입을 해가면서 그 내부에 흐르고 있는 의미를 관찰하신다면 대부분 납득이 가실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실제상황에 응용이 가능한 관계에 대입을 해보도록 하겠다. 항상 강조를 하지만, 외우려고만 하지말고 그 이면에 흐르고 있는 의미를 명확하게 해두시는 것이 명리학의 완성을 앞당기는 결과가 될것으로 생각한다. 표면에 나타난 현상을 보면서 그 이면에 맺혀있는 의미를 읽어보려는 노력은 보다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낭월이가 미쳐 말씀을 드리지 못한 저 심연(深淵)의 깊은 철학도 얼마든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낭월이는 안내자의 역할을 포기하고 입을 다물어야 하겠지만, 가슴은 뿌듯할 것이다.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기를 다시한번 기대해 보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