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 제23장. 전생록(前生錄)/ 4. 다생(多生)의 인연(因緣)
작성일
2020-09-0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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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제23장. 전생록(前生錄)
4. 다생(多生)의 인연(因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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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대한 춘매가 느끼는 감정과 우창이 스스로 느낀 감정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러니까 화상의 말을 바탕으로 춘매가 공감하는 내용에 의하면 지금 우창은 모친의 마음을 느껴야 하겠는데, 그것은 또 아닌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의아했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점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화상에게 물었다.
“대사님, 또 여쭙습니다. 지금 누이가 느끼는 감정을 왜 우창은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누이를 느껴보려고 했는데 그것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당황스럽습니다. 이렇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왜 이런 것인지요?”
우창의 의혹에 잠긴 말을 듣고서 화상은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당연하오. 그것이 바로 각자의 인연이라는 것이오. 허허허~!”
“예? 당연하다니요? 서로 공감을 해야 전생의 기억일 수가 있는 것이잖습니까? 왜 누이는 생생한 느낌이 있었는데, 우창은 그러한 것을 느끼기 어려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대사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낭자가 전생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 장면이 내게 보인 것이오. 그리고 전생을 기억하는 것이 서로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모두 같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이 아니겠소이까?”
“그건 무슨 뜻인지요?”
“생각해 보시오. 노모(老母)에게 신세를 지면서 글을 읽어서 보답도 하지 못한 채로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보낸 사람의 가슴에 새겨질 내용이 어찌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아들에게 밥을 해먹이면서 뒷바라지를 한 노파의 가슴에 새겨질 이야기와 같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오. 아들은 항상 미안한 마음의 빚이 있을 것이고, 어머니는 자신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기억에 새겨질 한(恨)이 남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소? 그래서 전생의 어머니였던 우창 선생의 기억에는 그 상황이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반면에 항상 노모님의 수고로움을 받으면서 공부만 했던 아들의 가슴에는 그것이 갚아야 할 빚으로 남았으니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오.”
“아하~! 대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상은 우창을 보면서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그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짐이 있었던 것이고, 인연의 흐름에 따라서 이번 생에서 재회(再回)하게 되자 바로 느낌을 받았던 것이오. 이것을 숙채(宿債)라고 하오. 말하자면 ‘전생에 진 빚’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소이다. 그래서 부처가 말씀하시기를 ‘마음에 빚이 남으면 언젠가는 갚아야 하느니라.’라고 하셨나 보오. 두 사람의 느낌을 전해 들으면서 빈승도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소이다. 허허허~!”
논리가 정연한 화상의 설명에 우창도 감탄하면서 말했다.
“과연~! 대사님의 말씀에는 일점(一點)의 의혹도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기억이 이상했던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오히려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러니까 전생의 어느 순간에 함께 있었다고 하더라도 서로 기억에 남는 잔상(殘像)은 같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씀에 완전히 공감했습니다. 자상한 설명에 감동입니다.”
우창의 말에 화상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합장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빈승이 깨달은 것은, 마음에 짐을 지고 살면 안 되겠다는 점이오. 앙금이라고 할 수가 있는 미련을 남기게 되면 그것이 기억창고에 저장이 되어서 다음 생에도 그 번뇌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는 것을 두 시주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달았소이다. 번뇌(煩惱)는 만들지 않아야 하고, 만들었다면 털어야 하고, 이러한 것을 모두 여의면 비로소 해탈(解脫)이라는 것을 이렇게 인연을 통해서 또 깨닫게 되었으니 빈승도 감사드리는 바이오. 허허허~!”
“아,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 괜히 수행하시는 대사님을 번거롭게 한 것이려니 싶어서 죄송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깨달을 점을 찾아내시니 참으로 훌륭하신 수행자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창도 화상을 따라서 합장했다. 그러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춘매가 말했다.
“스님, 정말 고마워요. 비록 어느 생에서는 함께 했더라도 그다음의 인연에서 서로 기억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인연이 생기고 그렇게 저마다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것이 오빠와의 인연이었는데 해주신 말씀을 미뤄서 짐작해 보니까 느끼는 바가 있어요. 비록 오빠의 기억 속에 제가 없다는 것이 섭섭했지만, 마음에 새겨진 빚에 대한 차이라고 하니까 그 마음도 잠시였을 뿐이고 이제 모두 이해가 되었어요. 그런데 또 다른 세상에서의 그림이 보이는 것은 없는지가 궁금해요. 왜냐면 이렇게 밝은 혜안을 갖으신 인연을 뵙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진지하게 묻는 춘매의 표정을 본 우창이 말렸다.
“누이의 아쉬움은 당연하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대사님의 말씀만으로도 많은 상황이 이해가 되었는걸. 그리고 이제 대사님은 다행히 여기로부터 멀지 않은 성운사(星雲寺)에 계실 거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다음에 자리를 잡으시면 우리가 같이 놀러 가서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청해도 될테니까 말이네.”
우창의 말을 듣고서 춘매도 눈치를 챘다. 무리하게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창이 현명하게도 그러한 점을 바로 알아채고는 춘매에게 말하는 것을 알고서 얼른 수긍했다.
“맞아요. 제가 너무 조바심을 냈죠? 호호호~!”
“누이가 많이 궁금했나 보구나. 하하~!”
춘매가 화상에게 말했다.
“다음에 성운사에 꼭 찾아갈게요. 스님의 오늘 주신 가르침으로 이미 많은 의문이 해소되었는데도 끝없는 중생의 욕심이려니 하고 헤아려 주세요. 고맙습니다.”
춘매도 우창을 따라서 합장했다. 그리고 화상도 마주 합장을 하고는 다음에 찾아와서 또 이야기 나누자는 말을 남기고는 홀연히 떠나갔다. 그렇게 해서 다시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우창은 현생(現生)과 전생(前生)의 관계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느라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미쳐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이기도 하거니와, 이것은 오행의 논리로도 접근할 수가 없다는 것으로 인해서이다. 그렇지만 번뇌는 음이고 망상은 양이라는 이치는 생각을 해 볼 수가 있었다. 물론 양쪽이 모두 치우쳤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만 이해가 되는 내용이기도 했다. 그 중간에는 자유(自由)가 있겠다는 것도 생각하게 되면서 왜 그렇게도 마음을 항상 ‘지금 여기’에서 머무르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문득 이러한 원인을 제공해 준 춘매가 고마웠다.
“누이가 대사님께 여쭸기 때문에 이러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었으니 고맙기가 한량이 없네. 더구나 누이와 전생부터의 인연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그 애틋함이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네. 마치 오래전에 내가 밥상을 차려줬던 것도 같은 착각이 생기기조차 하는걸.”
“아이, 오빠~! 착각이라는 말은 빼면 안 돼? 그냥 생각난다고 해. 난 이렇게도 그 느낌을 얻어서 아직도 가슴이 울렁이는데 오빠는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하니까 섭섭해지려고 하잖아.”
“그런가? 그래도 없는 감정을 마치 있는 것처럼 지어서 말하기도 좀 그렇지. 대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깊은 인연의 고리가 있었다는 것을 들은 것만으로도 감정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겠어. 지금 내가 누이의 손에 밥을 얻어먹는 것이 공밥이 아니라 이미 과거세에 쌓았던 빚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부담이 더욱 줄어들기도 해서 참 좋잖아? 하하하~!”
“뭐야? 그렇다면 그동안은 내 밥을 먹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는 거잖아? 이건 진심으로 서운한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밥을 해주는 사람의 마음과 받아먹는 사람의 마음이 다를 수 있다고 여태까지 원명 대사님이 말씀하신 것은 어디로 들은 거야.”
“아 참, 그러셨지? 정말 언제 날을 잡아서 성운사에 한 번 가봐. 다음엔 오빠의 기억 속에 들어있는 전생 이야기를 듣고 싶어. 궁금한 것은 산처럼 쌓였는데 오빠가 얼른 보내드리려고 서둘러서 내심 서운했단 말이야.”
“그래도 당장 급한 일도 아닌 것으로 인해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대사님을 붙잡고 있으면 오늘은 조금 도움이 될지 몰라도, 다음에 찾아뵐 명분이 없어지잖아? 왜 오늘만 생각하느냔 말이야. 하하하~!”
“아무래도 내 생각이 좀 짧았어. 다음엔 조심할게. 너무 나무라지 마. 그러면 미안하잖아. 호호호~!”
“아, 그렇구나. 누이를 미안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나도 말의 주변머리가 없어서 그래 이해해줘. 하하~!”
“그런데 내가 오빠를 만난 것에 인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으나 상당히 가까운 인연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 열심히 배울게.”
“이미 잘하고 있는데 뭘. 이렇게 밥을 얻어먹고 공부를 가르쳐 주니까 우리 사이에는 남을 앙금이 없겠지?”
“에구 참, 그랬으면 좋겠어? 인정머리 없는 오빠네. 인연이 있어야 이렇게 만나서 아웅다웅하면서 즐겁게 살아갈 것이잖아. 아니면 홀로 외롭게 먼 산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 말고 뭐가 또 있겠어? 그걸 원해?”
춘매의 말에도 틀린 것이 없는지라 우창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화상의 이야기를 곰곰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것은 숙명통(宿命通)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기도 했다. 숙명을 알기 위해서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기도 했다. 그런데 춘매도 그러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침묵을 깨고 불쑥 말을 던지는 춘매였다.
“근데, 오빠.”
“응? 왜?”
얼떨결에 대답하면서 춘매를 바라봤다. 춘매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우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빠가 사주를 보면서 그 사람의 전생에 대해서 말을 하기도 하잖아. 그런 상황에서 말하는 전생과 오늘 스님에게서 들은 전생 이야기와 비교해서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까부터 그것에 대해서 오빠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어. 내가 봐서는 별반 다를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아, 그런가?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잘 되었네. 어디 이 문제를 이야기해 나눠보자꾸나.”
“내 그럴 줄 알았어. 오빠가 이러한 문제를 그냥 넘어갈 턱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어서 말을 해줘. 오빠가 생각하는 전생과 스님이 말씀하신 전생의 차이점이 뭘까?”
“일단 대사님은 그림을 보고서 전생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고, 나는 문자를 보고서 전생에 대해서 유추(類推)한 것을 말하는 것이니까 내가 하는 말은 상상력에 의지한 것이 더 많다고 봐야지.”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의미가 다르잖아?”
“아마도 다르다고 봐야지. 다만 듣는 사람의 입장으로 생각한다면 별다른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나 저나 직접 볼 수가 없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는 셈이니까 말이야.”
춘매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다시 설명했다.
“구체적(具體的)인 그림 한 장이 추상적(抽象的)인 상상의 풍경과 같을 수는 없다고 봐. 그러니까 숙명통으로 알 수가 있는 전생의 이야기는 훨씬 더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 하겠지.”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기는 하겠네. 오빠도 그렇지?”
“아니, 나는 그 문제가 신기하기는 해 보이지만 직접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네.”
“어? 그건 왜?”
“막상 알아봐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지. 생각해 봐. 대사님의 말씀대로 전생에 우리의 인연이 모자의 관계였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로 인해서 달라질 것이 뭐가 있겠어? 여전히 누이는 누이이고, 나는 나잖아? 우리가 다시 어머니와 아들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밥값을 받아 낼 것도 아니라고 본다면 알거나 모르거나 별반 다를 것이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신기하잖아?”
“물론이지. 그런데 신기함을 찾아서 전생의 여행했다고 하자. 만약에 전생의 어느 순간을 들여다보니까 내가 누이에게 고통을 주었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끊었다는 장면을 봤다고 해봐. 그러면 어떻게 할까? 아니, 기분은 어떨까? 원한의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다시 전생의 기억이 담긴 창고를 뒤지고 다녀야 할테니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뭐야.... 그런 생각을 왜 해?”
“지혜로운 고인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과거를 집착하는 것은 번뇌라고 했고, 미래에 매이는 것은 망상이라고 했잖아? 그렇다면 전생은 과거 중에서도 케케묵은 아득한 과거에 불과한 것을 들쑤셔서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거야? 그것도 길을 가다가 돌을 걷어차듯이 쉽게 알아낼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면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까?”
“에구~ 오빠는 항상 너무 심각한 것이 탈이야. 그냥 쉽게 생각하면 안 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데 무엇을 하는 것이 내 삶에 충실한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하잖아? 그렇게 전생에 관심이 많으니 내가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해 줄까?”
“응, 오빠의 재미없는 궁리보다는 재미있는 전생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무슨 이야기든 좋으니까 해 줘봐. 난 아직도 전생의 신기함에 대해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나 봐. 호호호~!”
“재미로 들으면 옛이야기가 되고, 귀담아들으면 인과경(因果經)이 되는 거야. 어떻게 듣든 누이의 마음이니까 알아서 하렴.”
“알았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거니까 이야기나 해 줘봐.”
“예전에 매우 부유한 사람이 있었더란다. 재산도 많고 부리는 사람도 많아서 인근에서는 갑부(甲富)라고 알려진 사람이었지. 그에게는 어여쁘고 어진 아내가 있었는데 무엇을 말하던지 미리 알아서 척척 해주는 아내였던지라 그야말로 입안의 혀와 같았더라지.”
“부잣집에서 귀부인 대접을 받으면서 살고 있으면 나도 그렇게 하겠네. 참 복도 많은 여인이구나. 부럽네. 호호호~!”
춘매가 진심으로 부럽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서 우창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30년을 함께 한 어느 날이었는데, 갑자기 아내가 온다간다 말도 없이 집에서 사라진 거야. 이 남자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내에게 잘못한 것도 없고, 서운하게 대해준 일도 없는데 소리도 소문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서 이유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지. 이것이 풀리지 않으니까 일단 어딘가에 있다면 만날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지. 물론 집안의 대소사는 집사에게 잘 일러놓고 자신은 여비만 챙겨서 정처 없는 길을 나섰던 거지.”
“정말 아내를 많이 사랑했던가 보다. 웬만하면 다시 다른 여인을 찾아도 줄을 서서 있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사랑을 받고 살 일이지 어디를 간 거야? 담 밖에 정인(情人)이라도 생겨서 따라갔나?”
춘매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 관심을 보이자 우창도 흥이 겨워서 열심히 들려줬다.
“그렇게 3년을 찾아 헤맸으나 종적이 묘연했던 거야. 그렇게 어느 촌락의 장터에서 고픈 배를 달래려고 밥을 먹다가 문득 앞을 보니까 그렇게도 애타게 찾는 아내가 지나가고 있는 거야.”
“와우~! 내 그럴 줄 알았어. 찾아야 이야기가 되잖아? 그러면 이제 고생은 끝난 것이잖아?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말이야.”
“남자는 꿈에도 그러던 아내를 발견하고는 기쁨에 못 이겨서 달려가서 손을 덥석 잡았지.”
“당연하잖아. 3년이나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내는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으로 여기고 오히려 치한(癡漢)으로 생각했던가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지.”
“왜?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건가?”
춘매가 중얼거리는 말을 들으면서 우창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남자는 아내의 돌발적인 태도에 너무나 놀라서 기겁했는데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서 자신을 뿌리치고 가는 아내의 뒤를 따랐던 거야.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
“당연히 그랬겠네. 그래서 어디까지 따라 갔어?”
“그렇게 한참을 가니까 산속으로 들어가더라네.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다시 뿌리침을 당하는 것은 피하려고 말없이 뒤만 따라간 거지. 그렇게 한참을 따라가니까 산속의 인적도 끊긴 곳에 허름한 오두막이 하나 있는데 그곳으로 가더라는 거야. 그리고는 안에다 대고 하는 말에는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지.”
“뭐랬길래?”
“아내가 하는 말이, ‘여보~! 숯을 팔고 왔어요~!’라고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야. 그 말은 집안에는 남편이 있다는 말이잖아? 이렇게 허름한 집과 꾀죄죄한 모습에서 옛날의 귀티가 나던 아내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지.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안에서 거적문을 열고 남자가 나타났는데 두 사람은 손을 잡고서 그렇게 행복에 겨워하는 거야.”
“그건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네. 아무리 전생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좀 황당하지 않아?”
“그러한 장면을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아내를 따라서 집안에 들어가서 그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는 지나다가 목이 말라서 들어왔노라고 대충 둘러대고는 안을 둘러봤어. 그랬더니 그야말로 숯을 굽는 움막이었던 거야. 아내는 여전히 자기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이 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처연(悽然)한 마음이 들어서 그냥 발길이 가는 대로 걷다가 보니까 낭떠러지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곳까지 갔던 거야. 그 자리에서 그대로 앉아서 이 문제에 대해서 무슨 연유인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지. ‘도대체 왜?’라는 생각하나만 붙잡고 7일을 그렇게 앉아있었던 거야. 그러다가 문득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삼매(三昧)에서 하나의 장면을 보게 되었지.”
그 말에 춘매가 신나서 말했다.
“와~! 전생을 보게 되었구나. 그치? 그가 본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네.”
“자신인 것으로 보이는 행색을 보니까 누더기를 걸친 수행자더래. 그렇게 수행하던 자신이 어느 날은 몸이 가려워서 옷을 벗고 뒤집어 보니까 옷 안으로 이[이 슬(蝨)] 한 마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더라지. 순간적으로 손톱으로 눌러서 죽여버리려다가 손을 멈춘 거야. 이것도 살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그래서 다시 옷에 붙여놓고서 다시 수행했는데 항상 이가 가려워서 신경이 쓰였다는군.”
“그야 당연한 일이지. 이가 있으면 얼마나 가려운데. 더구나 머리에 있으면 그 고통은 더 극심한데 옷에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겠다. 호호~!”
춘매도 몸이나 머리에 이가 있어 봤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잘 이해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몸이 가려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창도 춘매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루는 초원을 지나가고 있는데 마침 풀을 뜯고 있던 양 떼를 만났어. 그러자 잠시 생각했지. ‘양은 축생이니까 좀 가려워도 고통이 덜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내 수행에 방해되니까 잠시 양에게 붙어서 먹고 살거라. 내가 열심히 수행해서 도를 이룬 다음에 모두 함께 제도(濟度)하리라.’고 서원(誓願)을 한 다음에 옷에서 살고 있던 이를 양의 몸에 넣어주고는 다시 길을 떠나서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이 보였다는 거야.”
“아, 그랬구나. 좀 이기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냥 죽여버리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나쁘다고는 못하겠네.”
“그리고는 정신이 돌아와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그때의 수행자는 자신이었고, 숯을 굽는 남자는 바로 그때의 양이었으며, 그때의 이가 바로 아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이의 입장에서 절반의 삶을 부잣집의 남편에게 봉사하고는 딱 그만큼이 지나자 다시 나머지의 삶을 양의 몸으로 있다가 사람으로 환생한 남자를 찾아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
“이야~! 소름이 돋는다. 세상에 그런 이치가 있단 말이야? 그 말대로라면 어디 무서워서 파리 한 마리라도 죽이겠어?”
“이야기가 그러니까 난들 알겠어? 그길로 다시 움막으로 돌아와서 그러한 정황을 이야기하고 모두 제도해서 성불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야. 그러니까 부자로 살게 된 것은 수행한 덕분이었고, 양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공덕을 쌓은 것이 없기에 숯을 구워서 먹고 살았고 자신의 몸에서 평생을 보낸 이가 여인으로 태어나서 찾아와서 봉사하는 바람에 행복한 중년 이후의 삶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지. 이것이 전생의 이야기야.”
우창의 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춘매가 말했다.
“정말 믿을 수는 없는 이야기지만 내용에 대해서 부정할 수는 없겠네. 그리고 원수가 만난다는 말도 있으니까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하는 거야?”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그렇지? 어쩌면 다음 생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웬만하면 남에게 죄를 짓는 일은 하지 않고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은 들잖아?”
“맞아, 전생이 있다면 후생도 있을 것이고, 전생에 공덕을 쌓았다면 금생에 그 복을 받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정말 잘하고 살아야 하겠네.”
“뭐야? 그 말은 전생이 없을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우창이 반문하자, 춘매가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없대? 다만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확신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 그래도 전생이 있다면 정말 착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은 드네.”
춘매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서 말했다.
“실은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을 적에, 과연 전생이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 그렇지만 그것을 따로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던 거야. 어차피 오늘을 살아야 하는데 기왕에 살아야 하는 오늘이라면 과거의 인연이야 아무렇더라도 신경을 쓰지 말고 오늘이나 잘살자는 생각을 했던 건데, 오늘 누이가 전생에 관심을 보이니까 문득 생각이 나서 들려준 거야. 그러니까 전생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이라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도 내 맘이라는 말이야. 하하하~!”
“알았어. 오빠 말대로 오늘을 잘 살도록 해야지. 호호호~!”
“그래서 자연의 이치를 공부하고 지혜롭게 살도록 도를 닦는 것이잖아. 오늘은 원명 대사님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으니 또한 감사한 일이잖아? 언제 성운사로 놀러 가서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청해 봐야지?”
“맞아, 그러고 싶어. 이제 오빠도 배가 고프겠다. 저녁밥을 맛있게 해줄게. 전생에 받은 것도 있고 하니까 푸줏간에 가서 고기라도 사다가 국을 끓여야겠네. 호호호~!”
춘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우창도 기분이 좋아졌다. 춘매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에 생각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내내 가슴 속에서는 흥분이 살짝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그렇게 전생의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의 꼬리는 살랑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