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 제23장. 전생록(前生錄)/ 5.팔자(八字)의 전생타령

작성일
2020-09-1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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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제23장. 전생록(前生錄)


5. 팔자(八字)의 전생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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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용한 며칠이 흘러갔다. 어느 사이에 봄의 끝자락에서 여름을 맞이하고 있는 진월(辰月)이었다. 춘매도 열심히 일하면서 공부에도 게으르지 않아서 우창은 하루의 절반은 춘매에게 명학을 가르치고 또 간간이 찾아오는 손님들의 애환을 들어주는 일로 무료(無聊)할 겨를이 없었다.

낮이 되면 제법 더운 날씨라서 졸음이 오는 오후였다. 우창이 살짝 졸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잠귀는 밝은 우창이라서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밖을 내다보니까 중년의 여인이 찾아와서 문을 두드렸다.

“저, 도사님 계신지요~!”

“예, 들어오십시오.”

그렇게 하고는 손님에게 앉으라고 자리를 권한 다음에 자신은 밖으로 나가서 찬물로 얼굴을 씻어서 잠을 몰아냈다. 그렇게 두 팔을 앞뒤로 흔들면서 심호흡을 하자 이내 맑은 정신이 돌아왔다. 그렇게 하고서야 손님을 마주하고 앉았다.

“어쩐 일로 누추한 곳을 방문하셨습니까?”

“실은 저의 전생이 궁금해서 찾아뵈었어요.”

“예? 전생이 궁금하셨다니요. 제가 그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아무래도 잘못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우창이 깜짝 놀라서 말을 했으나 여인은 이미 다 듣고 왔으니까 사양하실 필요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곡부에 소문이 파다하게 났으니 사양하셔도 소용이 없어요. 전생도 잘 보고 사주도 잘 본다는 말을 듣고서 궁금한 것이 있어서 찾아왔으니 잘 봐주세요.”

우창은 여인의 말이 좀 당황스럽기는 했으나 이것도 또한 인연이려니 생각하고 일단 이야기기나 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춘매가 들어오면서 너스레를 떤다.

“싸부님, 손님이 오셨네요. 차를 준비하려고 왔어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잘 오셨어요.”

춘매의 등장으로 조용하던 방은 갑자기 활기(活氣)가 넘쳤다. 남자만 있던 곳에 낭자가 등장하니까 찾아온 아주머니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반기는 표정을 놓칠 리가 없는 춘매다.

“아주머니 잘 오셨어요. 오늘 반드시 원하시는 답을 얻게 되실 거에요. 저의 싸부님은 빈틈이 없으시걸랑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차를 준비해 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숯불을 피우고 무쇠 차관(茶罐)에 물을 담아서 올려놓고는 우창이 뽑아놓은 두 사람의 사주를 넌지시 넘겨다 보는데, 여인이 말을 이었다.

“실은 제가 초혼은 실패하고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어요. 그런데 우연한 인연으로 새로 만난 남자가 혼인하자고 하는데 저도 그 남자가 좋아요. 그러면서도 초혼의 실패가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있어서인지 선뜻 그러자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자꾸만 망설이게 되네요. 남자는 관아의 포교여서 안정된 국록을 먹고 있어서 혼인하면 안정된 날을 보낼 수는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우창이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충분히 고민이 될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하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혼자서 고민하다가 이웃에 사는 지인에게 이야기했더니 ‘연승점술관에 가면 해답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잖아요. 더구나 부부는 전생에서 오는 인연이라고 하면서 그렇게도 잘 봐주더라는 말까지 하면서요. 정말 제 삶에서 다시 새로운 빛을 찾은 것일까요? 아니면 괜한 희망으로 새로운 고통을 받게 될 수도 있으니 그냥 포기하고 홀로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요? 제 전생의 부부인연은 어떻게 타고났으며 이 남자와는 어떤 인연인지 진솔한 답변을 듣고 싶어요.”

우창은 여인의 사연을 듣고 보니까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신이 전생을 본다는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사주를 보면서 지나가는 말로 했을 수도 있겠지만, 정작 본인들에게는 마음에 닿았던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말을 해도 조심스럽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언뜻 들었다. 문득 원명 대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일껏 전생에 대해서 담론했는데 정작 자신에게 전생을 묻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난감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주머니께서 기대하시는 답을 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창과 여인의 말을 들으면서 춘매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지 않아도 전생의 이야기가 아직도 가슴 한쪽에서 울림을 주고 있던 차에 이번에는 방문한 사람이 자신의 전생을 우창에게 묻고 있지 않은가. 이건 또 무슨 신통방통한 말을 듣게 될 것인가 싶어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원명대사와 이야기를 나눌 적에는 우창이 전생의 이야기에 보인 반응은 별로 시덥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는데 과연 오늘은 이 손님에게 어떤 말을 해 줄 것인지가 궁금해서 차를 따르면서도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생년 생월은 어떻게 되십니까?”

“예, 기축(己丑)생이에요.”

“그럼 올해로 나이는 마흔셋이네요?”

“예, 맞아요. 나이도 먹었는데 이게 잘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혼자서 재미없이 살면 또 무엇을 하겠느냐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전생의 부부인연이 정말 궁금했어요.”

여인이 참으로 진지하게 물으니 우창도 자신은 전생을 볼 줄 모른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또 상처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사주를 적어놓고 대충 얼버무릴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우선 사주부터 찾아 적었다. 여인의 사주를 적고 있는 우창의 붓끝을 보다가 하마터면 차를 쏟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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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매의 눈으로 봐도 부부인연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창도 사주를 보니까 남편자리인 일지(日支)에는 편관(偏官)이로구나. 쯧쯧... 초혼이 실패였다면 사주에서도 그러한 암시를 볼 수가 있겠는데 다시 재혼을 꿈꾸고 있는 여인에게 뭐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해줘야 할 말이 적당히 떠오르지 않자. 남자의 생일을 물어서 그것도 마저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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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어놓고 보니까 제대로 만났구나.’

우창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두 여인의 생각은 제각각이었다. 여인은 우창의 표정을 보면서 진도사가 자신과 이 남자의 전생 인연에 대해서 감을 잡았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춘매는 또 우창이 어떻게 풀이할 것인지에 대해서 호기심이 발동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여인에게 어떤 암시를 줄 수도 있지 싶어서였다. 잠시 생각하던 우창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두 여인은 각기 다른 생각으로 우창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주머니는 전생에 남자로 태어나서 아무런 걸림이 없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부유한 삶을 누리셨습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돌면서 아내를 돌보지 않았으니 아내는 마음에 한이 쌓일 수밖에 없었네요.”

우창의 말을 듣고서 춘매가 깜짝 놀랐다. 원명 대사의 말을 듣고 나서 우창의 상담하는 형태가 달라졌나 싶을 정도였다. 흡사 자신도 모르게 전생을 보는 능력을 전수라도 받았나 싶었다. 그래서 더욱 호기심이 가득해서 귀를 쫑긋 세웠다. 우창의 말이 이어졌다.

“어쩌다가 집에 들어가면 아내는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서 하소연을 합니다. 그 말을 듣고는 더욱 화를 내면서 여인에게 폭행까지 하고는 더욱 밖으로만 나돌았지요. 이렇게 부부의 인연에는 오랜 세월을 두고 악연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여인은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가 복수심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벼르게 되었지요. ‘내가 이번 생에는 힘이 없는 여자로 태어나서 이러한 수모를 겪으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도 못하고 살아가나 다음 생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설움을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우창이 말을 하면서 여인의 표정에 어두운 그늘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적어도 동감(同感)을 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고, 이왕지사(已往之事) 내친걸음이니 사주에서 보이는 대로 전생의 그림을 덮어씌워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번의 생에 태어나면서 전생의 빚으로 인해서 전생에 아내에게 해 준 보응(報應)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초혼으로 만난 남편도 아마 매우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며, 아내로 대우를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종을 다루듯이 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고통을 받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내심으로 반가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전생에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해서 한을 품은 여인들의 복수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어지게 됩니다.”

우창이 여기까지 말하자 여인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그러면서 더 듣지 못하고 말했다.

“맞아요~! 도사님의 말씀이 모두 맞아요. 정말 전에 살았던 남편이 제게 해 준 일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 원인이 제게 있었다는 말씀이네요? 그것도 모르고 그 남자를 원망하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겉으로는 청상과부(靑霜寡婦)가 되어서 매우 슬프다는 표정은 지었으나 실상은 너무나 기쁘고 좋았거든요. 부부의 사정은 남들이 알 수가 없는데 도사님은 그것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시니 과연 소문대로 전생을 잘 보시는 것이 맞네요. 놀라워요.”

여인이 감탄하면서 말하는 것을 들은 춘매는 오히려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우창의 능력이 이 정도였나 싶기도 하고, 어서 상담이 끝나야 이에 대한 내막을 물어보겠다는 조바심과 함께 호기심이 더욱 깊어지는 마음이었다. 우창의 말이 이어졌다.

“그 남편도 처음에는 매우 잘 해줬을 것입니다. 그것은 올가미입니다. 절대로 도망을 치지 못하게 혼인을 해 놓은 다음에는 비로소 자신의 한풀이를 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그 고통은 이어졌을 것이고, 아마도 일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일평생이 아니라 다음 생에서도 그렇게 반복될 것이니 오늘의 고통은 전생의 업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부처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창이 여기까지 말하자 여인은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창이 깜짝 놀랐다.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춘매가 얼른 수건을 가져다가 여인의 눈물을 닦으라고 건네줬다. 같은 여인으로 공감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잠시 가만히 진정이 되기를 기다리자 곧 안정을 취하고는 여인은 자신의 팔을 걷고 보여줬다. 거기에는 화상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것을 보자 여인이 말했다.

“보세요. 애아버지가 생전에 제게 한 행동에요. 집안일에 신경을 좀 써달라고 했더니 제가 바느질을 하느라고 달궈놓은 인두로 지져서 생긴 흉터에요. 너무나 억울했는데 도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오히려 그 사람이 불쌍하기조차 하네요. 전생의 원한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이렇게 했을까 싶어서 도리어 원한(怨恨)이 회한(悔恨)으로 변하네요. 이게 다 제가 전생에 저지른 죄업을 받느라고 그랬단 말이지요?”

우창은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내심으로만 적이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달리 방법도 없었다. 여하튼 얼른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겠는데, 그 틈이 보이지 않아서 오히려 전전긍긍이었다. 춘매는 예리하게 우창의 심사를 파악하고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든 해결을 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 복수극의 두 번째 막이 오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새로 만난 남자의 인물은 준수하고 심성도 선량해서 옛날의 남편 생각은 전혀 나지 않을 것이고, 이제는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인생의 후반부를 누릴 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설레기조차 하실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매우 잘생긴 남자지요? 그리고 이보다 더 잘 해 줄 남자는 세상에 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셨지요?”

“어쩜~ 맞아요~! 그래서 더 무서운 거죠. 차라리 적당했으면 좋겠는데 너무나 잘 해 주면서 함께 살자고 하니까 옛날에 받았던 고통에 대한 보상이라도 주어지는 것인가 싶은 기대감도 생기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런데도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는 다시 옛날의 추억으로 인한 두려움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지요? 사람은 살아봐야 아는데 지금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또 예전 남자처럼 남들이 보는 곳에서는 입속의 혀처럼 곰살맞게 하다가도, 둘만의 공간에서는 또 어떤 짓으로 고통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지요. 맞습니까?”

“틀림없는 말씀이세요. 새로 만난 사람이 잘하면 그럴수록 마음은 점점 불안해지거든요. 이제 보니까 그것도 전생의 업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하게 알았어요. 그러니까 이 남자도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네요. 지금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오히려 내면 깊숙이 피어오르고 있었던 연기가 서서히 걷히는 느낌이 들어요. 답을 얻었으니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겠다는 망상을 벗어나서 전생의 죄업을 참회하면서 아들과 함께 살도록 하겠어요. 오늘 해 주신 말씀에서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창은 여인의 말을 들으면서 내심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야기가 이렇게 되어가니 추가로 거짓말을 지어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위안은 주고 싶었다. 이대로 전생을 뉘우치면서 살아간다면 그것도 우창이 미안해야 할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일단, 이번의 인연은 복수하러 온 것으로 보면 됩니다. 다만 다음에 만나는 인연은 비로소 좋은 암시가 보입니다. 다만 정이 들기 전에 미리 궁합을 봐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해부터 3년은 조심해야 합니다. 보자... 임신(壬申), 계유(癸酉), 갑술(甲戌), 을해(乙亥)가 되면 묵은 업을 벗어날 가능성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3년간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참회하는 것보다 더 현명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상제(上帝)께서도 노력을 가상히 여겨서 좋은 인연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우창의 위안에 여인은 새롭게 눈빛을 반짝였다.

“정말이세요? 그렇다면 당연히 기도해야지요. 그렇지 않아도 절에 다니는데 무슨 기도를 하면 좋을까요?”

“전생의 인연은 호법신과 좋게 지어놨네요. 다행입니다. 사천왕(四天王)께 기도하고 「화엄경약찬게」를 외우시면 묵은 업장이 봄눈처럼 녹아내리고 관음보살께서 대자비심으로 좋은 인연을 찾아 주실 것이니 그대로만 하시면 행복한 말년을 맞이하실 수가 있겠습니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오늘 도사님을 찾아뵙지 않았더라면 또 빠져나오지 못할 수렁에서 한탄의 세월을 보낼뻔했지 뭐에요.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음에 또 꼭 필요한 일이 생기면 다시 방문하겠어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은자를 내어놓고는 총총히 떠나갔다. 춘매가 손님을 전송하고는 들어와서 찰싹 붙어 앉아서 우창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아니, 오빠~!”

“왜 그래?”

“언제부터 그렇게 멀쩡한 사기꾼이 되었어? 나도 오빠를 처음 봤으면 진짜로 전생을 보나보다 했겠잖아.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 잘하겠거니 하면서도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알아? 호호호~!”

“말도 말아, 나도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니까. 하하하~!”

“근데 어떻게 전생의 이야기를 해줄 생각을 했어?”

“나도 모르지. 어쩌다 그런 소문이 났는지도 이상하긴 하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왜 그런 말을 했지? 저 아주머니의 사주에서 그러한 것이 보였던 거야? 난 정말 신기해서 감탄이 절로 나와. 어서 설명해 줘봐. 그래야 내가 다른 일을 할 수가 있겠어!”

“보이긴 뭐가 보여. 그냥 사주를 보면서 지어낸 거지. 하하하~!”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뭔가 근거가 있어야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잖아.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말은 못 하니까 말이야. 어서 설명해 줘봐~!”

“사주를 보면 여인의 일주(日柱)가 을유(乙酉)잖아? 남편궁(男便宮)에 편관(偏官)을 깔았으니 무슨 기대를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이러한 사주를 받고 태어났다는 것은 전생이 있다면 남편이 될 사람에게 못된 짓을 많이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한 거지.”

“아니, 그야 일지에 편관이 있다고 다 그렇다는 말을 할 수는 없잖아?”

“당연하지. 그런데, 부부인연이 나쁜 암시가 있다면 이것은 전생의 인연에서 온 것이라고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넘겨짚어서 말을 해 본 것인데 서투른 뒷걸음에 왕쥐를 잡았네. 하하하~!”

“그런데 오빠의 풀이가 전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왜일까?”

“아마도 내가 말주변이 좋았던 모양이지.”

“아니야. 그런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야. 오빠가 전에 뭐라고 해 준말이 있었는데.... 뭐더라.... 생각이 일어나면.... 뭐였지?”

“무슨 말이었길래?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 순간에 세상이 만들어진다고 한 말이야?”

“아, 맞다~! 그거 말이야~! 그러니까 오빠가 문득 여인과 사주를 보면서 떠올린 그것이 실제로 그 여인의 전생사(前生事)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야. 실제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난 아까부터 이것을 물어보고 싶었거든. 그 스님이 다녀간 다음부터 오빠의 생각이 달라진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건 맞아. 원명 대사님이 써준 시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

“시? 아,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 오빠가 혼자 중얼중얼해서 나도 대략 외웠잖아. 그게 왜?”

“전생을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잖아. 이번 생에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알 일이라는 뜻이니까 말이지. 이 여인의 사주에서 일지에 편관이 깔려 있다는 것은 전생의 인연도 아름답지 못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와~! 그래서 도사가 되는 것이었구나.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그런데 새로 만난 남자와는 어떻게 단정적으로 말을 할 수가 있었어? 궁합이 그렇게나 안 좋았나?”

“자, 다시 두 사람의 사주를 잘 봐. 여자는 남편 자리에 편관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새로 만난 남자의 일주(日柱)는 신유(辛酉)잖아? 하필이면 만나도 이렇게 만났으니 내가 뭐라고 해 줄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 이 결혼은 묻지 않았으면 몰라도 물은 다음에야 권할 수가 있는 인연이 아니라고 본 것이지. 그러니까 전생이 궁금한 여인에게 해줄 말이 뭐가 있겠어? 전생에 빚을 받으러 온 악연이라고 할 밖에.”

“정말 오빠의 학문은 일취월장(日就月將)하는데 나는 맨날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 보이네 보여. 전생에는 내가 공부를 많이 했다는데 이번 생은 어쩌다가 오빠를 좇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상상도 되지 않으니 이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이지? 그렇게 스님이 읊어 준 시 한 구절에서도 전생의 이치를 깨닫고 이렇게 미꾸라지처럼 잘도 써먹으니 감탄을 할 수밖에 더 있느냔 말이야. 호호호~!”

“뭐라고? 미꾸라지라니~! 그런 말이 어디있어. 하하하~!”

“오빠의 설명을 들으면서 궁합을 보니까 정말 악연으로 보이기는 하네. 어쩌면 만나도 이렇게 만났을까? 그래서 전생에서 왔다는 부부인연에 대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 그 말은 어디에 나온 거야?”

“응, 적천수에 나온 말이야.”

“적천수에는 뭐라고 했는지 말해봐.”

“응, 부부편에 보면 부처인연숙세래 희신유의방천재(夫妻因緣宿世來, 喜神有意傍天財)라고 했어.”

“무슨 뜻이야? 풀이를 해 줘봐.”

“남편과 아내의 인연은 과거세에서 온 것이니, 부부궁에 용신이 있으면 천연적인 보배라는 뜻이지.”

“그렇구나. 앉은 자리의 한 글자로 인해서 전생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그려 낼 수가 있는 오빠의 특별한 능력은 언제나 배울 수가 있으려나 모르겠네.”

“능력은 무슨 능력이야. 오히려 누이가 공부만 터득하면 기가 막힌 통변(通辯)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될 거야. 서두르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하하하~!”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야지. 전생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로워서 사람들도 좋아하나 봐.”

“무엇보다도 들킬 염려가 없잖아. 아무런 증거를 갖고 있지 않으니까, 물질적인 증거가 없으니 심증(心證)만 있으면 벌써 칼자루를 손에 잡은 것이나 마찮가지의 이야기가 되는 셈이지.”

“심증이라니? 그게 뭐지?”

“뭐긴 뭐야. 팔자지. 하하하~!”

“팔자에 무슨 심증이 있어?”

“남편궁이 기신이다, 편관이다, 고통이겠다. 전생에 좋은 인연을 짓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럴 것이라고 말을 해 준다. 아니라는 증거는 없다. 그러므로 대부분 수긍하게 된다. 수긍하면 믿는다. 물론 결과는 좋은 쪽으로 안내하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 부인께도 참회하고 기도하라고 안내한 것이다. 어때?”

“완벽해~! 그야말로 완전범죄네. 호호호~!”

춘매의 웃음소리에 우창의 마음도 가벼워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종종 이러한 방법으로 안내하는 것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