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간적인 관점

작성일
2007-09-1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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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에 대해서 혹독하다는 말만 하고서 이에 해당하는 사람을 대입시키려고 생각해보면 얼핏 떠오르지 않을런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매운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혹 시집살이에 대해서 고통스러웠던 여성이라면 시어머니를 떠올릴것도 같고, 혹은 삼촌으로 인해서 단련을 받은 사람은 삼촌의 얼굴이 클로즈업 될 가능성도 많겠다. 그렇게 따진다면 남편도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위치에 집어 넣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볼적에, 누구던지 이 항목에 해당되는 사람이 각기 다를 수 있을 가능성이 된다고 하겠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즉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특정인을 추가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에 착안해서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겠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차라리 가족을 넣지말고 각자가 넣으시라고 그냥 비워두는 것이다. 즉 무명의 어느 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해두는게 좋을 듯 싶다. 그러니까 누구던지 가족 중에서 혹독하게 매웠던 사람이 떠오른다면 여기에다가 집어 넣으시라고 말씀드린다. 이렇게 하면 어정쩡하게 넘어간다고 하실런지도 모르겠지만, 실은 이러한 것이 바로 명리학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천지자연의 이치인 것도 분명하다.

예전에 어디선가 말씀을 드렸던 적이 있는데, 바로 다섯 개의 손가락을 이야기 하면서 내번째 손가락의 이름이 어째서 무명지(無名指)인가를 설명드렸다. 이 네 번째 손가락이 바로 금의 손가락이라고 말씀드렸었는데, 금의 물질에 해당하는 가족도 역시 일정하지 않겠다는 고민을 하다가 바로 금속에는 이름을 고정시켜서 부착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눈길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미 앞의 물질적인 관점에서도 말씀을 드렸듯이 칼날과 다아이몬드는 뭔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종일관 고정된 관념으로 그 역할을 지정하기에는 뭔가 만만치 않다는 감이 든다. 그렇다면 반드시 하나의 틀로 집어넣으려고 하지말고, 그냥 생긴대로 놓고서 관찰이나 제대로 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신금과 연결되는 가족구성원도 고정시킬 수가 없다고 발뺌을 하는데, 명확하게 해당하는 가족이 있다면 한번 의견을 내어보시기 바란다. 낭월이는 여기까지가 한계이다.




비록 가정적으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뭔가 일정한 형태가 떠오를 것도 같다. 얼핏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는가? 아마도 벗님도 낭월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비록 지면(紙面)을 통해서이지만 하나의 공감대(共感帶)를 형성하면서 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써의 끈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렇다면 그 생각이 서로 통했는지 확인을 해보도록 하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검찰(檢察)이다. 즉 법무부(法務部)가 아닐까 싶다. 구체적으로 하는 일이라면 역시 교도소가 될 것이다. 가끔은 멀쩡한 사람을 가둬놓았다가 말썽이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혼탁한 사회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관이 되고 말았다. 이 사회에서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데 적합하지 못한 사람은 냉혹하게 자유를 억압해버린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사형(死刑)이라고 하는 제거도 감행한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가장 辛金다운 부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든다.

또 있다. 어쩐 일인지 이 사회에서는 그러한 어두운 부분이 늘상 따라 다니는 모양이다. 언젠가는 중앙정보부라고 하는 일부 특정한 사람들 에게는 공포의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약간 이름이 달라져서는 안전기획부라는 말로도 불린다. 어쨌던 이러한 기관들도 역시 혹독한 점에서는 신금과 가장 유사한 기관으로 생각이 된다. 그렇다면 법무부와 안기부의 하는 일이 완전히 같은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도 있는데, 뭔가 남의 자유를 구속한다는 의미에서는 거의 유사한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만약 신금을 다시 음양으로 나눠서 다아이몬드를 양적인 금으로 보고, 칼날을 음적인 금으로 볼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여기에서 법무부는 양적인 통제수단으로 삼고, 안기부를 음적인 통제수단으로써 함께 辛金이라는 테두리 안에  둘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활동하기를 원할 것이고, 속박당하고 억압받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나의 의지대로 활동하는데 누군가가 방해를 한다고 가정한다면 역시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자유를 속박당하는 일이 없기 위해서는 천상 그사람의 자유를 억압해서 감옥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민주주의에서는 남의 자유에 영향미치게 되는 자신의 자유는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

특히 요즈음은 어찌 된 일인지 범죄에 대해서 무감각해져가는 사회 분위기를 호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긴 워낙이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늘상 뉴스의 앞부분을 장식하다 보니까 웬만한 일로써는 눈도 깜짝이지 않는 통제력이 발생한 셈이기도 하다. 혹독한 단련을 받다 보니까(?) 오히려 웬만한 일에 대해서는 마음에 반응이 오지를 않는 모양이다. 이러한 상황을 ‘도덕불감증(道德不感症)’ 이라는 말로 비난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총체적으로 곪아버린 부조리 앞에서는 사실 누구 한사람의 허물에 대해서 비난을 해봐야 답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이렇게 되어가는 현실은 더욱 강력한 구속수단을 불러오고, 또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 더욱 잔인해지고47) 다시 이것을 막기 위해서 법은 더더욱 강화되는 이른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리라...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신금이 없으면 세상의 질서가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진실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질서가 필요한 것이다.

자신이 도시 속을 걸어가는데에도 마찬가지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하겠다. 길을 가는 것은 자신의 자유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것이고 막아서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보면 반드시 뭔가 길을 막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신호등일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길을 가고싶다고 하더라도 일단 붉은 등이 나타나면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 이것의 적용을 받지않고서 그냥 자신의 의지대로 하겠다는 마음이라면 아마도 제 명(命)대로 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잠시 길을 멈추고 기다리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도시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그냥 자신의 멋대로 가려고 하면 한 발자국도 옮길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면 도로를 가득메운 자동차들도 역시 자신의 길로만 가려고 할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마도 큰길을 한번 건너려면 온 몸이 땀으로 도배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러한 일이 없도록 미리감치 약속을 만들어 두었으니 이러한 것이 바로 신금의 통제를 적절히 받아가면서 사는 것이라고 하겠다. 뭐든지 이렇게 필요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과불급(過不及)의 상황이야 각기 형편이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통제가 적절하면 질서가 있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는 것이고, 이것이 너무 미약하면 무질서한 무법천지가 되어서 엄청난 두려움으로 집 밖을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통제가 너무 지나치면 국민들은 항상 위축이 되어서 국가를 원망하면서 억압을 받고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가지의 법칙인 셈이다. 陰陽中의 이치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이 중에서 어느 辛金의 적용을 받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