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주적인 관점

작성일
2007-09-10 21:49
조회
5896

그렇다면 이러한 성분을 사주팔자로 타고난 사람에게는 어떤 성분이 나타날 것인가도 생각해봐야 하겠다. 뭐든지 그렇겠지만, 이 명리학의 교과서도 실제적으로 그 사람에게 상당부분(100%라고는 못하더라도) 타당성이 있게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이론만으로 그렇게 되고 실제로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면 즉시에 죽은 법이 되어버리고 냉대를 받아서 길거리에 내동댕이 쳐질 것이다. 이것은 현실이고,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다. 바로 이점이 명리학의 교과서를 쓰는데 갈등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쩔 수 없이 감수를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이치를 담고 있는 교과서는 그 이치가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있어야만 대우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론적으로만 그럴싸 해도 안된다는 것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점인데, 실은 이러한 것이 또한 매력이니 때로는 두꺼비의 말이 참으로 일리가 있게 다가오기도 한다.




“왜 벌을 잡아 먹냐고? 그야 톡톡 쏘는 그 맛이 있어서지. 쏘는 맛이 싫다면 파리를 먹으면 되겠지만, 파리는 여엉 맛이 없더라구. 그래도 역시 쏘는 맛은 있지만 벌의 맛이 뭔가 먹는 기분이 드니까 비교를 할 수가 없더라구~!”




우선 경금으로 태어난 사람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미래지향적인 것 보다는 회광반조(回光反照)의 특성이 강하다고 전제를 해야 하겠다. 아무래도 금기운이 강할 것이고, 이 기운은 냉정하게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무엇이 잘되고 잘못되었는지를 살피는 형태가 될것으로 생각이 되어서이다. 이러한 형태의 적성이라고 한다면 감사(監査)계통의 일이 어울릴 것으로 생각이 된다. 감사라고 해서 반드시 정부의 감사원(監査阮)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각자의 사주 그릇에 따를 것이고 다만 어떤 등급이 되던지 간에 형태를 볼적에 유사하다고 하는 특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하면 된다고 본다.

경금이 이러한 역할에 어울린다고 보는 것은 역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에게 경종(警鍾)을 울려주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수정을 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특성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잘되는 것에 대해서는 노터치가 될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 경금의 의미를 볼적에 ‘고칠 경’이라고 했던 것도 이런 연상이 가능하게 하는 힌트라고 본다. 항상 내실(內實)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겉으로만 화려하게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별로 마음을 쓰지 않고, 내면, 즉 속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다보니 남들과의 경쟁에서는 뒤지는 단점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남들이 한다고 해서 모두를 다 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무모하다고밖에 할 수가 없겠다. 돈키호테는 앞으로만 나가므로 감사원의 직책은 감당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감사원에 있는 경금은 돈키호테의 역할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항상 관조하고 살피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러한 특성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사주의 배합이 적절해서 상격(上格)45)이 되어야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맡을 수가 있을 것이고, 만약 그러한 배합이 적절하지 못한 경우에는 또한 맡을만한 일도 변변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금의 성분이 너무 강하면 어떻게 될까? 브레이크가 너무 강하다고 해야 하겠다. 자꾸 제지만 하고 앞으로 나가는 성분이 미약하다면 이것도 역시 남들과 함께 살아가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해야 하겠다. 이런 사람도 주변에는 흔히 있는 경우이다. 이것이 심하면 글을 쓰는데에도 나타난다. 즉 원고지를 많이 찢어 버린다는 점이다. 자신이 뭔가 그럴싸해서 열심히 적었는데 다음날 보니까 또 맘에 들지 않는 구절이 눈에 띈다. 그래서  도저히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서는 찢어내고 다시 적는다. 그렇게 적었으면 그냥 넘어가면 될텐데, 또 다음날 어제 것을 읽어보니까(이렇게 자꾸 적어 놓은 것에 신경을 쓴다.) 또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 이렇게 자꾸 고치다가 보면 원고지가 없어지기는 하는데, 막상 쌓이지는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한권의 책을 만들기는 요원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 중단을 하게 되는 일도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마도 발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소한 결함이야 어디에서나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스스로 판단을 할적에는 항상 미흡하게 생각이 되므로 진행이 어려우니까 주변의 믿을만 한 사람에게 부탁을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일단 그 사람에게 맡겼으면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다소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중에라도 도무지 맘에 들지않는다면 또 다시 쓰면 될 것이다. 그래서 차차로 보완을 해나가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본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은 아마도 바위에 글을 잘못 새겨 놓으면 두고두고 오점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종이에 쓰여진 글은 언제라도 맘에 안들면 찢어버릴 수가 있지만, 바위에 새겨 놓은 것은 참으로 고치기가 어렵다. 어렵다기 보다고 불가능할 것이다. 금강산의 멋진 바위에다가도 많은 글을 새겨 놓으 것이 화면에 비친다. 그리고 통일이 되었을 경우(물론 평화적 통일이어야 하겠지만) 그러한 글자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것인지가 고민스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아마도 많은 국민들도 그러한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까 경금이 너무 강하게 모여있는 상황에 해당하는 사람은 쉽게 쓰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다른 것에서도 나타날 것은 당연하다.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적에도, 다른 사람들은 쓱쓱 잘도 그리는데, 경금이 강한 사람은 그리 쉽게 나가지를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치고 또 고치고 그래서 나중에는 떡칠이 되는 것이니, 이런 사람이 만약에 수채화(水彩畵)를 그린다고 보면 아마도 일생에 몇 개의 작품을 갖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남들이 다작(多作)을 하면 그게 또한 못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비판을 하게 되는 마음도 발생하게 될것이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비평가(批評家)가 될 가능성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평을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타당한 비평을 해야 할 것인데, 만약 그렇지 않고, 너무 자신의 주관적으로 평가를 해버리면 남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림을 생각하다 보니까 교육텔레비젼에서 매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그의 그림은 참으로 쉽기도 하다. 붓으로 툭툭치고 칼로 죽죽 긋고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도랑이 생기고 오솔길이 나타나고 그윽한 숲이 등장을 한다. 참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멋진 솜씨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만약에 이러한 장면을 경금이 강한 사람에게 보여준다면 대단히 화를 낼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작품을 그렇게 장난치듯이 그려서는 그림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는 주장을 하면서 비난하고 싶은 마음일 들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슨 일이던지 공개적으로 등장을 하게 되면 그것을 감상하는 부류는 반반으로 나눠지는 모양이다. 아니, 반반이라기 보다는 3등분으로 봐야 더 옳겠다. 즉, 지지자와 반대자가 있을 것이고, 또 이중에는 어느 곳에도 해당하지 않는 중간부류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또한 세상이 어울려 가는 모양이지만, 이런 여러 가지의 상황을 보면서 역시 음양중(陰陽中)으로 관찰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해보게 된다.

또 상황이 달라져서 경금이 매우 허약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준들 없으랴... 이런 사주는 또한 브레이크 기능이 매우 약한 경우라고 가정을 해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은 억제 기능이 내면으로만 존재하고 밖으로 표현은 되지않는 상황이다. 이렇게 경금이 약하게 구성되어 있다면 아무래도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구조로써는 추진력이 부족하다고 보고서 오히려 약간 억제력은 성장 쪽으로 방향이 잡힌다는 결론을 유도해 낸다. 그래서 남이 뭔가 맘에 들지않는 행동을 할 경우, 마음으로야 당연히 제동을 걸고 고쳐주고 싶겠지만, 실제적으로 적극적인 표현은 자제를 하게 된다. 그래서 남들은 본심을 잘 모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이런 상황이 되면 본래의 목적인 성장억제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뭐든지 어느 정도는 자신의 세력을 갖고 있어야지 너무 허약하면 자기 주장을 하는데 힘이 들게 된다. 그래서 천하의 경금이라고 해도 약한 상태로써는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펴지 못하고서 속으로만 마음을 먹고, 쌓아둔다. 그러다가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비로소 쌓였던 억압이 풀리면서 한거번에 모두 쏟아 부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면목을 보여주는 결과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는 이 사람이 술이 조금 과하다 싶으면 모두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려고 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물론 단적인 예라고 하겠지만, 약한 경금이 된다면 이와 유사한 일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