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세계적인 관점

작성일
2007-09-1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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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눈을 다시 지구로 돌려보자. 경금에 해당하는 지역은 어디로 정해보면 가장 어울릴까... 생각해 보면서 히말라야 산맥을 훑어본다. 그 부근이라면 ‘바위산-庚金-에베레스트’로 연결되는 어떤 고리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금의 매서운 긴장감도 떠오른다. 그러다 보니까 그 바위가 속해 있는 나라는 네팔이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이 지역을 경금의 기운이 강한 곳으로 지정을 해보고자 한다.

네팔이야 아시다시피 ‘세계의 지붕’ 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높은 지역에 속해있는 나라이다. 주변의 산악들은 보통 7000~8000m의 높이를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바위덩이리인 지역이기 때문에 이러한 곳을 경금의 나라라고 한다고 해서 크게 틀리다는 말을 하진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과연 에베레스트 산은 경금다운 면모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연결을 지어본다면 혹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山=土’라고 하는 연관성만 생각한 나머지 이 에베레스트 산에 대해서도 무토라고 고집을 부리시지나 않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낭월이가 생각하기에는 산도 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한반도의 산들이야 무토의 의미를 갖고 있는 산이 대부분이고, 또 다른 나라의 산이라고 하더라도 대체로 토가 그래도 많은 것을 산이라고 부른다고 생각이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특수한 고산의 준령들은 흙일라고 하는 성분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바윗덩어리로 되어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구조를 보면서도 고집스럽게 고정관념을 가지고서 무토라고 하지 않는다고 떼를 쓴다면 이러한 벗님은 좀더 생각을 해보시기를 권한다.

어쨌거나 바위와 얼음과 눈이 전부인 이 산을 경금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아울러서 이러한 산악이 터전을 잡고 있는 나라인 네팔도 역시 경금으로 보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네팔 사람들에게서는 그러한 점이 보이겠는가를 한번 생각해봐야 할 참인데,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나라들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어서 유감이다. 다만 대충 짐작은 가능하겠는데,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가 불적에는 그리 풍족해 보이는 광경은 아니다. 없는 자원 속에서 오로지 굳센 마음으로 이 땅의 경외로움에 존경심을 갖고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어른에 대한 대우도 대단히 좋은 나라가 아닐까 싶다. 이들에게는  甲木다운 미래지향적인 마음이나, 丙火처럼 패기가 넘치는 젊음을 느끼기가 그렇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한 열악한 환경에서는 그냥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대단히 감사할 상황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실로 자원이 풍부한 곳에서의 삶과 비교한다면 아마도 몇십배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을 경금다운 환경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도, 경금의 살기(殺氣)다운 점이라던지 억압받는 성분과 서로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여서 말이다. 뭔가 혹독한 맛은 살기와 서로 직결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모든 초목들도 함부로 자랄 수 없는 환경이어서 땔감도 구할 수 없는 환경이기에 짐승들의 똥을 말려서 집을 지을 적에나 음식을 조리할 적에 쓴다는 것도 이와 연관시켜서 생각해보면 강력한 금기운에 눌려서 제대로 기를 살리지 못하고서 억제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몇가지의 상황을 고려해 보건데, 이런 상황들은 모두 갑목의 기운을 억압하고(庚剋甲)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아 가는 것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이기에 현실적인 삶에 집착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삶에 의지하는 상황이기도 한 것이다. 부유한 환경에서는 도저히 하늘과 땅에 감사를 할 마음이 들지 않을 것만 같은데에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천지(天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과연 금의 기운으로 인해서 항상 뭔가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