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토가 금을 만나면 억년의 사랑이다.

작성일
2007-09-1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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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덤하던 토가 이번에는 금을 만났다. 그러면 서서히 다가앉는다. 뭔가 흥미가 동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와락 달려들지는 않는다. 그러한 급속한 행동은 토라고 하는 구조상으로 볼적에 어울리지 않는다. 은근하게 마음이 쓰이는 존재가 토생금이다. 실지로 토에서 금이 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추리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수십만년, 혹은 수백만년의 세월이 경과해서야 비로소 토에서 금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자연이라면, 토가 금을 보고서 얼른 정을 주는 것에 서툴다는 것도 자연이다. 이러한 것을 서로 연관해서 이해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점차로 마음을 쓴다는 말로 나타내 보는데, 은근하게 꾸준하게 마음을 쓴다고 하면 적절할 것이다. ‘은근한 관심’ 이라는 말도 가능하겠다. 뭔가 이러한 느낌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얼핏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실은 토가 은근하게 마음을 두고서 금에게 정성을 기울인다는 형태로 이해를 해보는 것이다. 화가 토를 보고서 갑자기 자비심이 생긴다고 할 정도로 마음을 쓰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토의 사랑은 은근하고 꾸준하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그냥 관심이 없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금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정성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토가 뭔가를 만들어 낸다면 바위밖에 더 있겠는가 말이다. 곡식을 만드는 것은 토의 영역이 아니다. 그냥 목의 뿌리를 잡아준 것이 전부인 것이다. 공간을 제공해 줬다고 보는 것이 더 근사할 듯 싶다.

이렇게 굼뱅이도 구르는 제주가 있다고 하는 말대로, 토로써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론 시간은 그렇게 걸리지만 일단 만들어 놓기만 하면 그 생산품은 천년 만년을 가는 바위이다. 역시 오랫동안 궁리를 하고 연구를 한 자료는 하루아침에 불타버리는 것과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자연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