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格局과 用神

작성일
2007-09-11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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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뭔가 반역적(?)인 의견을 말씀드릴 때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반역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인 전통적인 의식이 강하신 선배님들이 봤을 적에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혁신적인 이야기라고 하고 싶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동안 드린 말씀이 핵심을 벗어났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구석구석 살펴서 의견을 말씀 드린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다시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것은 자평명리학의 숙제에 해당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서이다. 그 동안 말씀드린 것으로써 낭월이의 생각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보기는 하지만, 다른 책들에서 이러한 내용들에 대해서 비중을 크게 두고 다루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낭월식의 학생이 혹 혼란스러워서 곤란해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고, 그래서 낭월이도 뭔가 책임의식을 느껴서 이렇게 고전의 이론을 한번 다시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가 포함되므로 다시 마음을 모아서 함께 생각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사주공부를 웬만큼 하고서 뭔가 감이 잡히게 될 만큼의 실력이 붙게 되면 일단 의견이 둘로 갈라지는 현상에 봉착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이곳 저곳의 이론들을 배우다 보면 거의가 이 부분에서 한번 걸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 중의 하나는 格局이 중요하다는 쪽이고, 또 다른 하나는 用神이 중요하다는 쪽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자신의 견해가 어느 정도 생겼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므로 좋은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그러나 여기에서 뭔가 정리가 되지 않으면 자칫 매우 자신이 없는 마무리를 하게 될 가능성도 없다고는 못하므로 여기에서의 최종 마무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겠다.

우선 이렇게 ‘둘로 갈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다. 그 결과 아무래도 이러한 현상은 개인적인 견해의 차이일 뿐이고 格局論을 주장한다고 해도 구체적인 일의 성패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用神을 찾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고, 用神論을 위주로 생각한다고 해도, 결국은 전체적인 상황이나, 특히 月支의 특수성은 당연히 고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구태여 구분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봐야 하겠는데, 어찌된 일인지 자평명리를 공부하시는 벗님들이 그렇게 用神派니 格局派니 하면서 구분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낭월이는 어느 쪽인가?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낭월이는 用神格派 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앞에서 용신격에 대한 상황을 설명 드렸으니까 이것으로 낭월이의 주장을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용신격파는 또 별다른 파벌이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다.

구태여 어느 쪽으론가 집어 녛으려고 한다면 용신파에 들기를 희망한다. 그 이유는 차차로 설명을 하겠지만, 용신과 격국의 의미를 잘 이해한다면 구태여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리라고 본다. 그리고 그게 당연할 것이다.


★ 官印성분은 格局論, 食財성분은 用神論을 지지한다?


이렇게 분류를 해봤다. 아무래도 격국론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자는 官印의 성분을 많이 받고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구조를 갖게 되면, 어떤 정형화(定型化)된 이론에 흥미를 느끼고,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격국론이라는 것도 그렇게 고정된 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안정적으로 활용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다소 보수적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럼으로써 권위를 갖고 있다는 생각도 해불 수가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食財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은 항상 새로운 방향으로 모색을 한다. 보다 신선하고,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자신의 연구방향을 몰고 가면서 구습(舊習)이라고 생각되는 이론은 과감하게 수정을 하는 것도 서슴없이 실행에 옮긴다. 그래서 개혁파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보수파와 개혁파가 모두 필요하다. 보수파는 고전을 그대로 전수 받아서 계승하는 일을 하게 되고, 개혁파는 그 고전을 보고서 뭔가를 울궈낸 다음에는 새로운 작품으로 승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성의 차이가 격국론을 지지하기도 하고, 용신론을 지지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상세하게 내용을 들춰보게 되면 격국론에서도 어차피 용신론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하고, 용신론에서도 격국론으로 기본적인 구도를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결과중시형’은 용신에 매력을 느끼고, 격국의 이론에는 별로 비중을 두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 반대로 항상 기본형에 충실하려고 하는 ‘기본중시형’은 기본적인 형태를 부수는 것에는 오히려 분노를 느끼게 되기조차 하는 것이라고 분석을 해봤다.

이렇게 되어서 격국론과 용신론은 서로 공존을 하게 되는 것인데, 여기에서 이제 그 두 가지의 이론을 정리해서 하나로 뭉뚱거리려고 작정을 하고 덤벼들고 있는 것이 낭월이다. 자칫 개성이 없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또 한편으로는 ‘명리학의 공적(公賊)’이 되어버릴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는 하지만 잘만 하면 ‘명리학 이론의 천하통일’을 이룰 수도 있다는 가당찮은 욕심도 부리게 된다. 그리고 사실은 이 마지막의 목적에 온 희망을 걸고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