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다랑쉬 오름

작성일
2010-01-16 09:54
조회
2544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신림동(바뀐 명칭은 신원동이라지 아마)의 강의를 마치고 모처럼 얻은 여유의 시간을 제주도의 오름을 보러 가는 시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작년, 아니 제작년에 가족나들이를 갔다가 오름의 곡선에 취해서 그 전에 한 번 가려고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이제서야 시간을 내었습니다. 자유롭게 사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네요.
 
배편은 완도에서 타는 것이 가장 짧은 거리라서 배멀미를 걱정하는 연지님에게는 가장 위안이 되는 코스가 됩니다. 약 3시간의 뱃길이니까요. 천천히 출발해서 3시 반에 출항하는 한일카페리 1호를 탔습니다. 예전에는 조그만 배였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엄청 큰 배여서 내심 뜻밖이었네요.
 

  
 
완도항을 빠져나가고 있는 여객선에서 저마다의 일들을 보기 위해서 동행이 되었습니다.

 
 
  
 
넓직한 2등 선실에서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누워버리는 연지님은 멀미기운으로 못 돌아다니겠답니다. 배기 이렇게 크고 파도고 없는데 무슨 멀미냐고 했지만 그것과는 무관하게 배멀미는 일어나는 모양이네요. 세시간 내내 꼼짝도 못하고 이렇게 누워있었습니다. 물론 낭월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고 바빴고, 그렇게 바쁜 낭월을 보고서 또 무슨 사진꺼리가 된다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보는 화인은 그래도 아직 기운이 좀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숙소를 찾다가 성산까지 갔습니다. 중간에는 참 마땅한 곳이 없어서 가다가 보니까 성산일출봉이 보이더군요. 부근에 무슨 산장이 있길래 가 봤더니만 이미 날도 저물었는데, 결코 싸지 않은 숙박비를 이야기하기에 내친 김에 성산포까지 갔는데, 그래도 깨끗한 자리를 좀 더 저렴하게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새벽 6시에 출사를 나섰습니다. 화인과 함께 다랑쉬오름으로 향했지요. 연지님은 같이 다니는 것은 좋아하지만 새벽에 사진찍으러 가는 것은 별로입니다. 그래서 푹 쉬겠다고 하기에 그러하고 하고는 다랑쉬로 갔지요.
 
사실 다랑쉬보다도 용눈이오름에 가려고 했습니다만 멀리서 바라보는 용눈이오름을 보기 위해서 부근에서 가장 높아보이는 다랑쉬오름을 택했던 것인데, 막상 올라보니까 여기도 매력이 많네요.
 
 
 
올라갈 적에는 너무 어두어서 그냥 올라갔습니다만 시간이 7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날이 조금 새더군요. 이 사진은 내려와서 증면사진으로 찍었습니다.
 
 
 
다랑쉬오름은 또 다른 이름으로 월랑봉(月朗峰)이라고도 합니다. 산으로도 쳐주고 오름으로도 쳐주네요. 그만큼 높다는 뜻일까요? 그리고 월랑봉을 꺼꾸로 하면 어떻게 되나요? 봉낭월(峰朗月)이네요. 대전시 동구 낭월동 이후로 낭월이라는 지명이 들어간 곳은 보지 못했는데, 여기에서는 거꾸로낭월을 만난 셈입니다. 그것도 뭔가 자신과 인연이 있다고 생각해서 연결지으면 그냥 무미건조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성산의 숙소에서 출발하여 불과 십여 분 정도면 도착을 할 수가 있는 거리입니다. 다랑쉬로 가기 전에 어둠 속에서 보는 봉우리가 생각나서 방향을 바꿨지요.
 
밝아오는 어둠 속에서의 다랑쉬오름입니다. 물론 오름사진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많이도 보셨을 겁니다. 그만큼 제주오름에서 다섯째 손가락 중에서도 한 두번째의 순위를 다툴 정도로 유명한 오름이니까요. 우뚝하게 솟아있는 봉우리를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보고 잡은 장면입니다. 정상부위에 오목하게 생긴 것은 분화구이고 그 속으로 또 올라간 만큼이나 깊은 구덩이가 있어서 이러한 안팍의 곡선들이 나그네를 붙잡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일반 보통 산에서는 봉이 뾰족하고 그 이상은 없는데, 오름은 올라가면 다시 새로운 장면이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참 특이하게 느껴지거든요. 밝아오는 오름을 바라보면서 그 동안 머릿 속으로만 그렸던 오랜만의 곡선들이 다가오는 즐거움을 음미했습니다. 새벽에 끓여서 담은 보온병 속의 물로 봉지커피를 한 잔 타서 마시면서 음미하는 여유는 더욱 좋았습니다.
 
날은 서서히 밝아왔습니다.
물론 원한다고 해서 자연이 모두를 다 주지는 않지요. 밝아오는 날이 구름도 함께 끌고 나타나서 일순, 사진가의 아쉬움을 느껴야 했으니까요. 그냥 안개가 없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행복해 지기로 했습니다. 사실 꼭두새벽에 찬 바람을 맞으면서 출발을 하는 것은 햇살을 가득 머금고 퇴어 나올듯이 선명하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러한 설레임은 조용히 구름 속에다가 묻어버리는 수 밖에요.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다는 지혜로운 이의 말씀을 위로삼아서 떠올려 보게 됩니다.
 
 
 
 
 
멀리 바라다 보려니까 망원렌즈가 가장 적당한 도구가 되는군요. 지난 가을에 화인이 케논카메라의 5D를 사용하다가 큰 맘먹고 소니카메라의 알파900으로 기변을 했습니다. 그래서 낭월과 같은 카메라가 되었고, 그렇게 한 이유 중에 하나는 이와 같이 언제라도 렌즈를 호환하여 사용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렌즈뿐이 아니지요. 받데리나 후레쉬도 필요하면 바로 사용을 할 수가 있어서 가방이 많이 가벼워지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비싼 장비를 처분했던 것이지요.
 
다랑쉬오름의 분화구 주변에는 억새가 가득했습니다. 시원하게 펼쳐진 전경을 보면서 비로소 오름나라에 온 것이 실감났습니다만 화인도 그런 기분이 느껴지는지 추운 새벽바람에 볼이 빨갛게 얼었는데도 연신 좋아서 싱글벙글이네요. 일과 속에서 분주하게 살아온 스트레스가 그대로 한 방에 날라가는 것 같은가 봅니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은 용눈이오름입니다. 언제봐도 야트막한 곳에 아름다운 능선을 하고 있는 용눈이오름은 제주도 사진가 김영갑 선생도 빠져나오지 못했던 매력의 수렁이었던가 봅니다.
 
 
 

 
 
분화구를 가운데에 두고서 비잉 둘러가면서 한 바퀴 돌게 되는데, 사진을 찍은 위치는 분화구의 서쪽이 되겠습니다. 맞은 편의 끝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앞의 다랑쉬오름 전경에서 오른쪽에 해당하는 약간 높은 부분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아침의 해무가 슬슬 피어오르는 모양인지 벌써 멀리 바닷가의 풍경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더 오름이 풍경에 집중을 할 수가 있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멀리 용눈이오름이 어렴풋하게나마 실루엣으로 존재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멀리서 모처럼 온 나그네에게 서비스햇살이 날아옵니다. 잠깐이었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삽시간에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겨울아침의 햇살은 고귀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궁통보감에서도 겨울에는 무조건 병화(丙火)를 찾게 되었을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하네요. 이러한 햇살이 따사롭게 비춰준다면 나그네에게는 특히 사진나그네에게는 그보다 더 반가울 일이 없지요. 

화인도 햇살을 보자마자 열심히 순간을 놓치지 안으려고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뒤로 보이는 둥그스름한 것은 아끈다랑쉬라고 하는 작은 오름입니다. 펑퍼짐한 것이 특색이 있는데, 마치 찐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네요. 
 
 
 
  

분화구의 전체모습을 담아봤습니다.
마침 렌즈 중에는 12-24mm가 있어서 가까이 있는 넓은 풍광을 담는 것으로는 딱이지요. 아마도 벗님께서 다랑쉬에 올라가 보셨고, 분화구를 담고 싶어서 자꾸만 뒤로 물러났던 경험이 있으셨다면 필시 이 렌즈가 필요했을 순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보통 렌즈로는 담을 수가 없는 각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12mm로 맞췄는데도 왼쪽으로는 일부가 잘렸네요. 그렇지만 너무 다 담으려고 하면 그만큼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왜곡현상이 생기겠지요. 그래서 늘 적당한 타협의 중용이 필요합니다. 욕심을 채우면 현실이 왜곡되고, 현실에 맞추면 욕심이 섭섭하니까 말이지요. 명색이 그래도 음양학자랍시고 이러한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하하~
 
 
다랑쉬오름의 정상에서 내려다 보듯이 바라보게 되는 위치입니다.
문득 이러한 모습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를 여기에서 생각했더랬습니다. 그 이야기는 낭월한담의 [428]에서 설명을 했으니 이미 살펴보셔서 알고 계시겠네요. 그래도 또 분위기가 다르니까 정리삼아서 요약을 해 보겠습니다.
 
1. 불덩어리가 치솟는다. 그래서 火가 되었다.
2. 불덩어리는 다시 액체가 되어서 흘러내린다. 그래서 水가 되었다.
3. 흘러내린 마그마가 식으면서 굳어서 바위로 변했다. 그래서 金이 되었다.
4.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바위는 산화되어서 토양으로 변했다. 그래서 土가 되었다.
5. 토양이 되면서 풀씨와 나무씨앗이 바람에 날아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木이 되었다.
 
학자들의 자료를 보면 대략 5만여년 전에 제4분출기에 만들어진 것이 오름이라고 하네요. 한라산은 100만년 전 무렵에 생겼다고 한다면 한참 어리다고 하겠는데, 그럼에도 참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틀림이 없겠습니다. 그냥 상상만 해 보는 것이지요.
 
 
 
이번 나들이에서 오른 오름은 6개입니다.
또 시간이 나는대로 정리를 해 보도록 하 요량입니다.
그리고 사진은 그냥 눈길을 따라서 안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잘 아시지요? 사실 직접 그 자리에 서서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을 보면서 전해지는 느낌은 한 장의 사진으로 담기에는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흔적만 한 조각 주워와서 그것을 보면서 아름다운 자연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열쇠로 삼는 것이지요. 물론 그 열쇠가 없다면 이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빛바랜 한 장의 손바닥만한 사진도 그 사람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 생각나는 사진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정말 소중하게 간직하고 다니는 사진이 한 장 있었는데, 처음에는 연인의 사진이었나 싶었습니다만 나중에 본 사진은 풀도 베지않은 외로운 벌판의 산소 사진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진을 품고 다니는 사람은 심성이 어떤 기억으로 채워져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름다운 오름도 따지고 보면 산소와 흡사하게 생기기는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많이 다른 대상입니다. 삶의 기운이 약동하는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칙칙한 산소를 보면서 떠올리는 추억보다는 그래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많은 사진 중에 한 장 정도는 그런 사진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마지막까지 남은 단 한 장의 사진이 그 사진이어서는...... 아무래도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벗님의 사진첩에는 어떤 사진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지요?
 
어느 분의 사진첩을 보다가 가위로 오려나간 사람이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문득 섬뜩한 느낌이 들더군요. 어느 누군가는 내 모습이 들어간 사진에서 가위질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구태여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주인에게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겠고, 그래서 떠올리기 싫어서 지워버리려고 노력을 한 것이라고 생각을 해도 될 것 같지요?
 
그러나 그런다고 해도 여전히 열쇠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버리려면 다 버려야지 일부만 버리다는 것은 그럼에도 아직도 그 추억은 그 사람에게 소중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분석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사소한 것을 통해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려고 하는 자신을 느끼겠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천간(天干)을 생각하는 것에서도 자꾸만 몰두하게 되어서 시시콜콜시리즈에서 한 달이 넘었습니다만 아직도 임수(壬水)의 언저리에서 적천수에 나온 설명을 곱씹고 있답니다. 물론 어제의 그 맛이 아니니까 그렇겠지만서도 여하튼 사소한 것에서 발견할 수 없는 도(道)는 거창한 것에서도 발견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소소한 것에 눈길을 주고 마음을 주게 되네요.
 
 
 
 
 
다른 오름을 찾다가 길을 잘못 들었더니 이런 그림이 나와주네요.
이 녀석도 사람구경이 고팠는지 다가와서 아는 체를 합니다. 참 선량해 보이네요.
 
 
다른 오름의 이야기는 또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일정이 분주한 관계로 세 밤만 제주에서 머물렀더니 자꾸만 미련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또 다음을 기약하는가 싶습니다.
 
 
 
 
멀미로 고통을 당한 연지님이 간청을 하셔서 특실로 모셨습니다. 비용은 5만원 돈이네요. 일반실과 비교해서 2배 정도 되는 셈인가 봅니다. 그렇지만 두 여성이 편안하게 지친 몸을 쉬면서 잠 속에 빠진채로 바다를 건너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일이라고 봐서 편안하게 모셨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일반실과 비교를 하는 사진을 찍어놔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와 일반표를 들고 2등실로 갔습니다.
 
 
 
 
 
일반실 즉 2등실은 2만4천원입니다. 이것은 왜 할인이냐? 그러게요. 할인이 될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고 짐작만 해 봅니다. 표는 화인이 구입을 했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지요뭐.
 
가격이 두배라고 하게 되면 대단히 호사스러운 여행을 한 것 같습니다만 약 2만여원을 더 썼다고 생각하면 그만한 정도는 가끔 누려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전에 생각하기에는 불과 두어 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누가 침대실을 사용하겠느냐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그런 말도 함부로 못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여행을 할 계획이 있으시면 참고하시라고 요금표를 하나 올려드립니다.
 
 
 
 
이 사진은 배의 출신성분을 알 수가 있어서 한 장 첨부합니다.


 

참고로 풍경사진들은 1000픽셀로 저장을 한 것도 있습니다. 사진을 마우스로 클릭해 보시면 좀 더 큰 사진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니 참고하시고요.


 
           2010년 1월 16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