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제28장. 오행원/ 16.구시복덕문(口是福德門)

작성일
2021-05-20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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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제28장. 오행원(五行院) 


16. 구시복덕문(口是福德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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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이 입에 대해서 말을 한다고 하니까 모두의 눈길은 자원의 입을 향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도톰한 입에서 맑은 음성이 또렷하게 흘러나오는 것이 누가 봐도 매력적이었다. 과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자원이 자기에게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한 바퀴 둘러 본 다음에 설명했다.

“사람이 마주한 사람을 볼 적에 눈을 보면서 느낌을 받게 되지만 실제로는 말을 하는 입을 본다는 것이 참 재미있잖아요? 얼굴에서 눈은 깜빡일 수만 있지만 입은 여러 가지의 표정을 지을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어요. 입 모양을 보면서 드는 생각도 참 많죠?”

이번에는 자원보다 입술이 얇은 춘매가 다시 말했다.

“언니, 춘매는 입술이 너무 얇아서 늘 싫었는데 오늘 제대로 공부를 해야 하겠어요. 그런데 입을 본다는 것은 입술을 보는 것이잖아요? 입도 눈처럼 크기로 기준삼게 되나요? 입도 음이고 눈도 음이니까 그래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이야. 입이 크면 호탕(浩蕩)하고 입이 작으면 세심(細心)하다고도 하지. 그렇지만 말을 잘하는 것과는 직접 연관이 없는 것 같애. 오히려 입술의 두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어떻게요? 입술이 두꺼우면 과묵하고 얇으면 말이 많은 것으로 보면 될까요? 언니는 입술이 두께가 적당하다는 생각을 해 봤는데 꼭 하실 말씀은 잘하시니까 예쁜 입술이 말도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 입술이 얇으면 다언(多言)이고, 두터우면 과언(寡言)이라고 보는 것은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이런 것을 ‘생활상술(生活相術)’이라고 하는 거야.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지. 호호~!”

“언니에게 상술에 대해서 듣고 나면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얼굴을 뜯어보게 생겼어요. 특히 입에 눈길이 가는 것은 늘 움직이기 때문이겠죠?”

“그런 것도 있지. 특히 입에서 중요한 것은 성음(聲音)이지. 눈에서는 안광(眼光)이 중요하듯이 입에서는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를 지경이야. 목소리에 따라서 그 사람의 느낌을 판단할 정도이니까 말이지.”

“정말이에요. 언니의 맑으면서도 또렷한 음성은 듣는 순간 귓속을 파고들어요. 그러고 보니까 입은 귀와 짝을 하는 건가요?”

자원은 춘매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입은 오행이 뭘까?”

“그야 비위(脾胃)로 통하는 관문이니까 토(土)로 봐야 하겠네요. 귀는 신방광(腎膀胱)으로 통하니까 수(水)가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귀는 입의 극을 받는 셈이네요. 이것은 또 무슨 이치로 관해야 할까요?”

“그 봐 결국은 상술(相術)을 공부하면서도 다시 오행 공부로 돌아가지? 그래서 모든 학문은 오행을 기준으로 삼게 되는 거야. 당연히 귀는 입의 지배를 받아야지. 그래야 토극수(土剋水)의 이치가 살아있다고 하지 않겠어?”

“아하~! 참 재미있는데요? 그렇다면 입은 눈의 지배를 받네요. 목극토(木剋土)니까요. 이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춘매가 자신도 모르고 있는 사이에 일을 크게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오행의 생극론(生剋論)으로 이목구비를 논해야 할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을 미리 간파한 자원이 말을 끊었다.

“동생, 하나만 해결해. 한꺼번에 뒤섞어 놓으면 나중에 수습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호호호~!”

“앗참, 또 입술이 얇은 년이 사고를 쳤어요. 호호호~!”

춘매의 말에 모두 웃었고, 그래서 분위기는 다시 즐거워졌다. 자원이 말했다.

“입은 크기도 보고 높낮이도 보는 거야. 특히 윗입술 앞으로 나오면 ‘불을 부는 듯한 입’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생긴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지적질을 하도 많이 해서 괴롭게 생각을 할 수도 있어. 이건 왜 그럴까? 동생이 이치를 설명할 수도 있지 싶은데 말이야.”

“제가요? 그게 가능할까요? 그래도 언니가 기회를 주시니까 사양은 하지 않을래요. 음... 그것은 경락(經絡)과 연관이 있나요? 윗입술은 독맥(督脈)으로 통하고, 독맥은 감독(監督)하는 기맥(奇脈)이잖아요? 그래서 독맥이 발달했다는 것은 남의 단점을 파헤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하겠고, 마치 독수리가 들쥐를 잡으려고 잔뜩 벼르고 하늘을 배회하는 듯한 모습이 연상되기도 해요. 언니의 말씀은 이러한 것을 의미하신 건가요?”

305 입술의 임독맥도[참고자료: 임맥과 독맥의 순환도]


“옳지. 맞아. 임맥(任脈)은 여성적이고 포용성을 갖고 있지만 독맥은 남성적이니까 공격을 하거나 감독하는 의미가 되었는데 그것이 발달하게 되면 윗입술을 쳐들어 올리게 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어. 이렇게 생긴 사람이 윗입술을 달싹인다면 뭔가를 말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으로 봐도 되겠네. 어때 일리가 있겠지?”

“맞아요. 끝없이 지적해서 주변 사람이 배겨날 수가 없죠. 특히 이런 사람을 감독으로 삼게 되면 주인은 편할지 몰라도 아랫사람은 고통스럽죠. 호호~!”

“맞아, 면상(面相)이 단순하게 얼굴에 대한 해석이지만 그 이면(裏面)에는 이렇게 경락과 연관된 내용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하잖아?”

“정말이네요. 그렇다면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덮게 되면 반대로 순응(順應)을 잘한다고 보면 되겠죠?”

“하나를 배우면 둘을 깨닫는구나. 물론 그렇게 생겼다면 당연히 순종(順從)하는 형태로 이해할 수가 있겠네. 다만 둘 다 치우친 입술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실로 아름다운 입술이라면 위아래가 가지런한 것이 아닐까?”

“아항~! 거기에서도 균형의 조화가 작용하나요?”

“생각해 봐. 남을 지적만 하는 사람은 포용성(包容性)이 없고, 순종만 하는 사람은 주체성(主體性)이 부족하니까 아무래도 아름다운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겠어?”

“그럼 어떡해요?”

“독맥이 발달한 사람은 명상을 통해서 그 마음을 다스리고, 독맥이 미흡한 사람은 자존감을 키워서 주체적인 사유를 하도록 하면 되겠지.”

“생각해 보니까 독맥은 윗입술에서 끝나고 임맥(任脈)은 아랫입술에서 시작이 되네요. 그러니까 독맥과 임맥이 균형을 이룬 것은 입술의 높낮이로 보면 알 수가 있다는 말이네요? 와~! 신기해요. 기경팔맥(奇經八脈)의 임독맥이 이렇게 면상에서 응용이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신기해요~!”

“알면 응용을 해야지. 입을 벌리고 있다면 독맥을 타고 흘러 내려온 기운이 임맥을 만나지 못하게 되니까, 생각도 단절이 될 수가 있찌 않을까? 하물며 말을 많이 하면 더욱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래서 이런 사람을 위해서 고인은 속담을 만들어 뒀지.”

“예? 뭔데요?”

“침묵즉금(沈黙卽金)이라고 말이야. 호호호~!”

“아하~! ‘침묵이 곧 금이라’는 뜻인가요? 그러니까 입만 다물면 인물이 더 살아 난다는 뜻이잖아요? 그렇다면 웅변즉은(雄辯卽銀)인가요? 호호호~!”

“맞아, 『도덕경(道德經)』에는 「다언삭궁(多言數窮)」이라고 했어. ‘말을 많이 하면 자주 궁색하다’는 뜻이겠지?”

“고인들이 말을 적게 하라는 말씀은 남기셨어도 말을 많이 하라는 말씀은 안 남기신 것이 신기해요.”

“명상하게 되면 자연 입을 다물게 되지. 그것은 임독맥이 소주천(小周天)을 하고자 함이지. 입을 붙이지 않으면 임독맥이 유통되지 않으므로 생각이 깊어지지 못하고 달뜨게 되어서 사유(思惟)가 깊어지기 어렵고 결국은 말로 인한 실수를 한다는 거야. 그래서 말을 하는 사람일수록 특히 말을 하지 않을 적에는 입술을 굳게 닫고 있어야 하는 거야.”

“정말 언니가 말씀하시는 면상(面相)은 심오하기 이를 데가 없어요. 입술에서 임독맥이 나올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놀라워요. 호호호~!”

“그래도 동생이 그 말을 알아듣고 이해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야.”

자원이 이렇게 말하다가 문득 다른 선생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좌중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으시면 말씀하세요.”

그러자 모두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체에 대해서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상식이기도 했기 때문에 무난하게 이해를 한 것이다. 그러자 춘매가 다시 말했다.

“언니, 입술에는 웃는 입과 우는 입이 있다고 하잖아요. 입꼬리가 아래로 쳐진 경우와 위로 들린 경우를 두고 말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이해를 하면 좋을까요?”

“맞아.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웃는 입이 되고, 아래로 쳐지면 자연히 우울한 모습으로 느껴지는 것이지. 그리고 즐거우면서 입술의 꼬리가 아래로 내려갔다면 그것이 억지로 연기(演技)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딘가 정상이 아닌 것으로 봐야 할 거야.”

“어떤 것이 좋아요?”

“답은 정해졌지. 적당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이야. 호호호~!”

“알겠어요. 알아서 생각하면 되는 것이네요. 그런데 입이 하는 일은 입술만이 아니잖아요? 치아는 면상(面相)에서 고려하지 않아요?”

“왜 살피지 않겠어. 다만 그러한 것을 모두 세세하게 파고 들어간다면 열흘을 말해도 다하기가 어렵겠지? 그래서 대략적인 것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하는데 동생은 자꾸만 궁금증이 커지니 그것도 큰일이네. 호호호~!”

“맞아요. 한 번 궁금한 것이 생기면 자꾸만 이어져서 나중에는 길을 찾지 못하기도 해요. 이것도 병인가 봐요. 그렇다면 입의 공부는 다 한 것으로 보면 될까요?”

“아무래도 소리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지?”

“아, 맞다. 그것도 중요해요. 어떤 소리는 아무리 오래 듣고 있어도 더 듣고 싶은데, 또 어떤 소리는 한마디만 들어도 더 듣고 싶지 않아서 귀를 막고 싶은 소리도 있어요. 이것은 특별히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되지 싶은데요?”

“음성이 나쁘다고 생각하면 경전을 외우는 것도 좋아.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음성이 고와지기도 하거든. 또 입꼬리가 아래로 처진 사람도 좋은 말을 하고 기쁜 생각을 하다가 보면 미소가 지어져서 자연스럽게 입꼬리를 위로 끌어당겨 준다는 것도 알게 된다면 타고난 면상에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을 거야.”

“정말 그렇겠어요. 그래서 중년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인가 봐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도 타고난 모습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맞아, 이런 것은 후천적(後天的)인 노력으로 인해서 개선될 수가 있는 것이니까 매우 중요하다는 것만 알아두면 되겠네. 그리고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면 상학(相學)에 입문하는 것으로 하고 입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할까?”

“좋아요. 이제 귀에 대해서 조금만 설명해 주세요. 오늘 언니가 너무 고생하시네요. 어째요. 호호호~!”

“고생은 무슨, 듣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말을 해 줄 수가 있는 것이 행복할 따름이야. 이상(耳相)은 실로 크게 중요하지는 않게 취급하기도 해.”

“그런데 여인은 귀를 가리기도 하잖아요. 왜 귀를 가리는 걸까요?”

“아마도 귀는 장부에서 신장(腎臟)을 나타내고 생식기능(生埴機能)도 포함되었기 때문일거야. 그러니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부끄럽게 여겨서 귀를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거야.”

“아하~! 그렇다면 참으로 부끄럽겠어요. 귀는 단순히 소리를 듣는 기관이 아니라 신기(腎氣)의 허실(虛實)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또 생각하지 못했어요. 정말 모르면 두 손에 쥐고서도 모르는 것이 맞아요.”

“사실 눈과 코와 입에 비한다면 비중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거야. 그러니까 귀에 대해서는 긴말을 할 거리도 없다고 보는 거야.”

“그럼 다 되었네요. 그런데 왜 면상을 논하면서 오관(五官)이라고 하죠? 이목구비는 넷뿐인데 말이죠.”

“그건 눈썹이 있어서지.”

“아, 눈썹이 있었구나. 그것도 면상에서 중요한가요? 눈썹은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오관에 포함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렇긴 하지. 다만 눈썹은 장신구(裝身具)로 봐도 되지 싶어. 물론 면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게 되면 그 의미를 깊이 파헤칠 수가 있겠지만 보통 생각하기에는 형제궁(兄弟宮)으로 봐서 형제의 인연이 어떤지를 본다고는 하는데,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러니까 보통은 간과(看過)하게 되지.”

“맞아요. 눈썹에 대해서는 특별히 들어본 이야기가 없어요. 그렇다면 눈, 코, 입에 대해서만 잘 이해하면 그것만으로도 면상의 대강은 이해했다고 보면 되는 거죠?”

“난 그렇게 생각하지만, 또 관심이 깊은 사람은 더 관찰하고 싶어질 테니까 각자의 몫이라고 해야지.”

“면상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면 다음에는 무엇을 살피나요?”

“살펴볼 것이야 어디 한둘이겠어. 골상(骨相), 수상(手相), 족상(足相)도 있으니 살필 것은 많지. 다만 우리가 살펴보는 것은 대략 이 정도라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 더불어서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산상(山相)과 가상(家相)도 모두 상술(相術)의 영역에 포함 시킬 수가 있다는 것만 이해하고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자원이 이렇게 말하면서 둘러보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수로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우창이 입을 열었다.

“자원이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을 베풀어 주셨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안목은 또 한 단계 높아지고 넓어졌다는 것을 감사해야 하겠네. 하하하~!”

“그야 싸부의 열정적인 가르침 덕택이에요. 노산에서 자원이 얼마나 귀찮게 굴었는지 나중에는 싸부가 떠나고 난 다음에 후회했다니까요.”

“후회라니?”

“자원이 너무 귀찮게 해서 도망가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했던 거죠 뭐. 호호호~!”

“원 그럴 리가. 하하하~!”

“물론 아닌 줄은 알지만 그래도 온갖 생각이 다 들기는 했어요. 그리고 참으로 아쉬움이 많았죠. 임싸부는 아는 것은 많은데 자상하지 않아서 아무래도 자상하게 알려주시던 진싸부가 그리웠을 밖에요. 호호호~!”

“그랬구나. 미안하게 되었어. 나도 가끔 자원의 열정적인 마음을 떠올리곤 했지. 이렇게 다시 만나서 함께 진리를 논하고 있으니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네.”

우창이 옛날을 떠올리자 그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면서 오늘의 이 행복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옛 인연과 새 연인이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면서 더욱 열심히 정진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창의 표정을 살피던 춘매가 말했다.

“스승님은 학문의 복이 많으시고, 우리는 스승님의 복이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에요. 병신합(丙辛合)이 제대로 이뤄진 거죠? 호호호~!”

그러자 잠시 숙연해진 분위기가 밝아졌다. 염재가 그 틈을 타고 우창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스승님께 여쭙습니다. 오술(五術)의 하나는 확실하게 깨닫고 나면 나머지는 대략적인 형태만 이해하는 것으로도 운용에 무리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앞으로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면 좋겠습니까?”

“나야 모르지. 내가 연구한 것이야 단지 명학(命學)에만 전념했을 뿐이지 않은가? 오늘은 명학을 공부하고, 또 내일은 상학도 공부하다가 때가 되면 술법(術法)을 펼쳐서 중생을 이롭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공부해서 남 주는 공덕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스승님께서는 명술(命術)과 복술(卜術)에 대해서는 뭔가 빠진 듯한 아쉬움을 느끼시지는 않으십니까?”

“지금은 그렇다네. 하지만 언제 또 무슨 학문을 만나게 될까 싶은 기대감은 놓지 않고 있다네.”

“과연 스승님이십니다. 제자도 그 마음으로 공부에 전념하겠습니다. 명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오호~! 명학의 제일의(第一義)를 묻는 것인가? 그야 오행생극법(五行生剋法)을 제외하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예, 잘 알겠습니다. 과연 오행원(五行院)의 오행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오술을 공부하면서도 계속해서 오행이 그 근저(根底)에서 소용돌이를 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맞네. 그동안 만난 스승님들의 가르침도 한결같이 오행에 뿌리를 두고 연구하라고 하셨는데 그 의미는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항상 깨닫곤 한다네. 그러니 염재도 더욱 열심히 정진하면 되지 싶네. 하하~!”

잠시 측간(廁間)에 나간 춘매가 웬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다. 일행은 모두 낯선 남자의 등장으로 인해서 잠시 하던 공부를 내려놓고 나그네에게 눈을 모았다. 그러자 춘매가 연유를 말했다.

“자, 이 젊은 사람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세요. 언제부터 밖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차마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기다렸다네요. 어디 말을 해 봐요.”

이렇게 말을 할 기회를 주자. 젊은 사람이 쭈뼛거리면서 말을 시작했다.

“저는 우연히 공자묘에 참배하러 와서 소원을 빌고 있었습니다. 문득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기에 바라봤더니 중년의 남자였습니다. 그가 제게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기원하느냐?’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제 인생을 의지할만한 스승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했다고 말을 했지요. 그랬더니 그 사람은 길바닥에다 약도를 그려줬습니다. 그러면서 ‘오행원에 가서 공부하게 해 달라고 청하라’는 말을 하고는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망설였습니다. 오행원이라는 이름도 생소했지만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뜨내기가 몸을 의탁하여 공부할 인연이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안내를 받는 것도 처음이라서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가르쳐 준대로 왔는데 차마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아서 누군가 나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공부할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그 간절함이 모두에게 전해졌다. 그래서 뭐라고 말을 하지못하고 있는데 우창이 이야기를 다 듣고는 말을 꺼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오?”

“예, 소생은 강현민이라고 합니다. 삶의 이치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어디에서 어떤 스승을 만나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공자님께 기도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찾아 왔습니다.”

춘매가 옆에서 보고 있다가 청년에게 물었다.

“고향은 어딘지요?”

“말씀을 편하게 해 주십시오. 고향은 개봉(開封)입니다.”

“개봉이면 명판관(名判官) 포청천(包靑天)의 고장이잖아?”

“그렇습니다. 개봉에서 자랐는데 세상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연의 이치를 궁리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서 관련 서책을 뒤지다가 부친으로부터 쫒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찾아서 유람하다가 곡부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현판이 오행원인 것을 보고서 마음이 이끌려서 한 걸음도 떠날 수가 없었지요. 주인장께서는 어떤 학문을 연구하고 그 도법(道法)을 펼치고 계신지가 궁금합니다. 외람되지만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우창이 기특한 마음이 들어서 짐짓 물었다.

“그건 왜 묻나?”

“죄송한 말씀이오나, 그동안 나름대로 진리를 알려준다는 스승님들을 뵈었습니다만, 결국은 시간만 허비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되어서 떠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이제는 스승을 만난다고 해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서게 되어서 우선 무엇을 가르쳐 주실 수가 있는지를 여쭙게 되었으니 용서 바랍니다.”

“아, 그랬군. 그게 어찌 용서를 바랄 일이겠는가.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가르쳐 줄 것은 오행의 변화에 대한 약간의 이치일 뿐이라네. 이것이 그대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으니 어쩌겠는가?”

“사실, 여태까지 떠돌아다니면서 고금에 없는 비법을 전수해 줄 수가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만, 오행을 전해 줄 뿐이라고 하는 말은 듣느니 처음입니다. 이렇게 진솔한 말씀을 들으니 갑자기 큰 신뢰감이 생깁니다. 더구나 택호(宅號)가 「오행원(五行院)」입니다. 그렇다면 오행의 이치로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자신감이 넘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어찌 오행의 이치가 세상의 오묘한 것을 다 감당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네. 다만 약간의 조짐을 읽는 어쭙잖은 재주를 조금 익혔을 뿐이니 그대가 원하는 것은 배울 수가 없을 것이네. 어쩌겠는가?”

“그렇다면 그 오행에 대해서 소생이 잠시 여쭤봐도 될까요?”

“그야 어렵지 않겠네만, 내가 그대에게 오행을 가르쳐 준다면 그대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가 있는가? 실로 내게서 오행을 배우려면 비용이 수월찮게 든다네.”

“예..... 그러시겠지요. 얼마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춘매가 얼른 나서서 말했다.

“은자 30냥이에요~!”

그러자 젊은 남자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말했다.

“실로 제게는 그러한 큰돈이 없습니다. 겨우 며칠을 지낼 정도의 동전 몇 잎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재물로 보답을 해 드릴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괜찮으시다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가 있습니다. 청소와 심부름은 물론이고, 마부나 옆에서 차를 끓이는 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 아침에는 곡부로 나가서 오가는 여행객들의 짐꾼을 하고 저녁에 와서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오행에 대해서 공부할 수가 있다면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으니 이것에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전부입니다.”

우창을 비롯한 일행들은 적이 놀랐다. 보통은 구차한 말을 할 적에는 다소 기가 죽기 마련인데, 조금도 구김이 없는 음성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처지와 생각을 말하는 것이 누가 봐도 호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우창도 이 청년을 받아들이기로 하고서 몇 가지 물어봤다.

“알았네. 그 신념을 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남에게 신세를 질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이네. 그런데 이름이 강씨 후손이라고 했나? 조상이 누구신가?”

“예, 조상은 강자아(姜子牙)할아버지십니다.”

“아, 그런가? 그렇다면 강태공의 후손이라는 말이로군. 이미 역학으로 천하를 평정시켰던 강태공의 혈통을 물려받았으니 공부를 해도 크게 하겠군.”

“작은 자부심이기는 합니다만 그것도 열심히 정진해서 도업(道業)을 이룬 다음에나 입으로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걸고 공부를 할 인연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대가 큰 결심을 하는 것으로 봐서 이미 자격은 충분하다고 해도 되겠네. 그래, 그대는 나를 어떻게 시험할 것인지 말해 보게.”

우창의 말에 다들 침을 꿀꺽 삼키고 청년의 답변을 기다렸다. 제자가 스승을 시험한다는 말은 듣느니 처음이기도 하거니와. 이 당당한 젊은 친구는 무엇을 요청할 것인지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하던 남자가 말했다.

“외람됩니다만,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오행의 존재에 대해서 허망한 공론(空論)이나 심오(深奧)한 이치를 섞지 말고 보고 느끼는 그대로의 상황에서 깨닫도록 말씀을 해 주신다면 뼈가 부서지도록 보답을 하겠습니다.”

자못 결연(決然)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은 차라리 엄숙하기조차 했다. 모두 그 표정에 감동했다. 그리고 오늘 만난 이 사람이야말로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해 줄 것이라고 믿는 표정으로 기대하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일처럼 긴장된 마음으로 우창의 말만 기다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알았네~!”

우창의 입에서 예의 그 간단명료(簡單明瞭)한 답이 나왔다. 그러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청년에게 어떤 오행의 이치를 설파(說破)해 줄 것인지 벌써 흥미가 만점(滿點)이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나?”

“강현민(姜賢民)입니다. 어진 지혜로 백성을 돌보라는 의미로 부친께서 지어주셨는데 벼슬길에 나갈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을 위하는 길은 반드시 벼슬을 해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이네. 오늘부터 그대의 호를 오광(五廣)이라고 하겠네.”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뜻입니까?”

“오(五)는 오행(五行)이네, 광(廣)은 넓힌다는 뜻이네. 오행으로 그대의 창고를 넓히고, 그 넓힌 창고에서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노닐도록 하라는 뜻이네.”

“영광입니다. 그런데 스승님의 존호(尊號)도 여쭙지 못했습니다.”

“아, 우창(友暢)이네. 편한 대로 부르게.”

“그렇다면 사부님으로 칭해도 되겠는지요?”

“좋네~!”

“그렇다면 사부님의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강현민의 낭랑하고도 간절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