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와 백도① 초행길
작성일
2023-04-0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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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와 백도① 처음 가는 길 (2023년 3월 28일)
육지도 돌아다닐 만큼 돌아다니면서 둘러봤고, 섬도 돌아다닐 만큼 돌아다니면서 둘러봤는데 유독 한 곳이 항상 뇌리에 남아있었으니 그것이 거문도와 백도였다. 무슨 까닭인지 좀처럼 짬이 나지 않아서 여행길에 나서지 못했던 거문도를 드디어 찾아가게 되었으니 또한 미지의 세상을 찾아가는 설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참, 오랜만에 경로 표시의 어플을 켰다. 대략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흔적을 남겨보고 싶어서다. 이런 그림 하나만 있어도 그 안에 알알이 박힌 석류 알처럼 깃든 이야기들이 몽글몽글 떠오르니 이러한 것을 생략하면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일정은 1박2일이거나 혹은 2박3일로 잡았다. 뱃시간이 잘 맞으면 1박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또 알 수가 없으니 다음 날도 비워놔야 맘이 편하지 싶어서다. 웬만하면 차량으로 이동을 하는데 거문도행에서는 제외했다. 막상 차를 끌고 다닐만한 곳도 없을 뿐더러 배의 운임을 고려하면 그냥 가서 현지의 카니발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녹동항에서 편도가 62,200원이라는데 왕복이면 125,000원이니 현지의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나왔다. 그렇더라도 거문도에서 이동할 곳이 많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끌고 가야지. 다만 그럴 정도는 아니어서 쉽게 결정했다.
벚꽃이 만개한 아침에 논산역으로 향했다. 실은 이 계절에 출발하게 된 것도 꽃이라면 너무 좋아하는 연지님을 위한 계산이기도 했다. 1월부터 가려고 배편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춥고 파도는 치고 볼 것도 없는데 왜 가야 하냐는 나름 합리적인 항의에 대해서 강요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비로소 그 때가 되었다.
실로 국내의 섬은 어지간히 돌아다닌 셈이다. 적어도 여객선이 운항하는 곳이라면 거의 볼만큼 봤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난 여정을 대략 더퉈봤다. 특히 거문도를 가면 반드시 백도를 가야 하는 것처럼 딸린 섬이 있는 곳만 떠올려 봤다.
제주도를 가면 마라도를 안 가면 서운하다. 그래서 제주도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마라도가 연결된다. 아마 동행에 따라서 서너 번은 갔었지 싶다. 그나마 최근에 다녀온 마라도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 기록했다.
[ 제주반달(73) 마라도 | – 사진기행(寫眞紀行) (nangwol.com)]
울릉도라면 당연히 독도지. 울릉도는 2018년 6월에 다녀왔다. 한번 가서 독도까지 둘러보는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그때의 여행기는 아래 링크를 따라가면 볼 수 있다.
[2018울릉도④ 독도행 | – 사진기행(寫眞紀行) (nangwol.com)]
백령도는 2018년 9월에 둘러봤구나. 백령도를 둘러보고 대청도에 갔다가 풍랑주의보로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5년 전이었구나. 대청도를 딸린 섬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백령도만 갔다 돌아오기가 서운해서 들렸으니 같은 의미로 봐도 되지 싶다.
[백령도 가는 길(1/12) | – 사진기행(寫眞紀行) (nangwol.com)]
청산도는 완도에서 가야 한다. 2013년 4월에 하루 자면서 둘러봤던 기억이 난다. 여행을 다니지 않으면 기억창고는 텅텅 비어버릴 것만 같은 것은 이렇게 여행을 생각하면 그 속에서 잠자고 있던 기억들이 그물에 고기가 딸려 올라오듯 한다. 청산도의 여행기는 기록에서 빠졌던 모양이구나. 아쉽구로. ㅎㅎ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갈 곳은 소매물도다. 특히 소매물도에서도 등대섬이 유명하지. 등대섬으로 가기 위해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새록새록하구나. 2015년이었던 모양이다.
[소매물도-등대섬 | – 사진기행(寫眞紀行) (nangwol.com)]
그리고 흑산도다. 흑산도에서 홍도를 가야 하는 것도 울릉도와 독도의 관계만큼이나 거의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홍도는 2009년도에 다녀왔는데 여행기는 없구나. 기록하지 않으면 남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그때는 또 사는 것이 바빠서 그것을 모아 놓을 여유가 없었던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거의 마지막 섬이 될 수도 있는 2023년도의 거문도와 백도구나. 이제 남겨 놓았던 마지막 맛있는 음식을 집어먹으며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논산역에서 여수역까지 가는 열차를 예매했다고 금휘가 알려줬다. 여수역은 그냥 여수역이 아니라 여수엑스포역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구나. 육지에서는 열차를 탈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지식이 오랜 옛날에 머물러 있었던 모양이다.
옛날에는 비둘기호를 타고 다니다가 우등호를 지나서 새마을호가 가장 빠른 줄로 알았고, 요즘은 KTX가 가장 빠른 줄만 알았다. 그래서 당연히 KTX겠거니 했는데 ITX란다. 첨 들어보는 이름이로군. 그래도 뒤에 새마을이 붙어있는 것으로 봐서 새마을급이라고 알면 되지 싶다.
오랜만에 기차여행이라니.... 그것도 감회가 좀 다르구나.
다만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연결고리일 뿐이라는 생각에 의미가 반감되기는 했다.
벚꽃이 만개한 길과 한가롭게 흐르는 섬진강도 보면서....
아직은 잠이 덜 깬듯한 보리밭도 보면서 잘 간다.
이미 출발했으니 봐봤자 아무런 소용은 없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보게 되는 거문도의 날씨예보이다. 매우맑음이로구나. 바람이 잔잔한 것으로 봐서 뱃길은 순탄할 모양이다. 낭월은 괜찮은데 연지님은 바람에 풍랑이 치면 멀미를 하는 통에 약간 걱정이 된다.
여수엑스포역에 정시 도착이다. 이제 여수항으로 가서 배를 타야지. 배는 오후 2시 20분이라고 했겠다. 택시로 여수여객터미널로 향했다. 표를 사놓고 나서 점심을 해결하면 순서가 맞지 싶어서다.
여수항에는 동백이 만발이로구나. 거문도에는 아마도 시기가 늦었을게다.
표를 사놓고 주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여수항에서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주변을 둘러본다. 거문도로 갈 배는 웨스트그린 호로구나. 원래는 파라다이스 호라고 알고 있었는데 정기점검에 들어가서 대체운행이라고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이 목적지에 데려다 주기만 하면 되니까.
저 멀리 보이는 다리는 돌산도로 연결되는 돌산대교인 모양이다. 주변의 산에도 벚꽃이 만발이다.
장군도에도 봄이 무르녹았구나. 불과 일주일 사이에 피었다가 시들고 마는 벚꽃의 풍경인데 마침 그 절정의 순간을 만났다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에 하나다.
손죽도, 초도, 서도를 거쳐서 거문도에 도착하는 모양이다. 쾌속선이라서 운항 중에는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으니 배안에서 쉬다가 들리는 항에서는 잠시 나가서 둘러볼 수가 있을 뿐이다.
거문도까지는 36,100원이구나. 섬주민은 1,000원이다. 그러고 보니까 차량은 운임의 2배인 모양이다.
어? 요금이 15,300원이네? 게시된 금액과 다르구나. 이건 또 뭐지? 노인 취급인가? 일반인지원금이 적용되어서 반만 받는 건가? 여하튼 할인해 주면 고맙지 뭐.
배를 탈 사람이 꽤 되는구나. 그 중에 상당수는 낚싯대를 지참한 것으로 봐서 고기와 놀고자 하는 태공들인 모양이다.
녹동항에서 쾌속선을 타면 1시간 20분인데, 여수항에서는 2시간 20분이 걸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수항에서 녹동항까지의 소요시간이 1시간이기 때문이다.
배에 붙여 놓은 행선지가 「녹동-거문도」인 것은 원래 웨스트그린은 녹동에서 거문도를 운항하는 배인데 그쪽의 운행을 쉬고 여수항으로 옮겨온 것이다. 파라다이스호가 다시 들어오면 이 배는 녹동항으로 돌아기겠거니 싶다.
2번석이란다. 맨 앞이라서 편안한 자리로구나. 뭐든 부지런히 움직여야 넓은 공간을 얻는 모양이다. 예상대로 바다는 잔잔했다. 다행이지. 용왕기도를 잘 했던 모양이다. 며칠 전에 원산도에서 윤달순례 기도를 했으니까 말이지. ㅎㅎ
창밖으로 이름 모를 바위 섬들이 스친다.
앉아서 노느니 이리저리 돌아본다. 가봤자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고물로 가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달리는 풍경도 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낸다.
쌓인 택배들도 사람들 만큼이나 목적지가 있겠거니.
두 번째로 들리는 곳은 초도겠구나. 첫 번째의 손죽도는 그냥 지나쳤다. 아침부터 돌아다니느라고 나른해서 한숨 푹 잤다.
선원들이 초도에 내릴 짐들을 정리하느라고 분주하다. 풍랑이라도 치는 날이면 그 힘이 두 배로 소모되려니 싶은데 오늘은 날이 좋아서 여러 사람에게 공덕을 베푸는구나.
초도에 승객이 내리니 조막만한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가 반긴다. 아마도 초도의 유일한 대중교통일 게다. 택시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거도를 가는 길에 만났던 것이 만재도였던가? 그 섬은 방송으로 삼시세끼인가에 나와서 유명해진 섬인데 초도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구나. 그냥 풀이 많아서 초도(草島)겠거니 하고 풀이 많은 것이야 바위를 좋아하는 낭월에게는 이미 관심 밖의 일일 따름이다. ㅎㅎ
초도까지 왔으니 거문도도 얼마 남지 않았겠구나. 폰의 카카오맵으로 현재 얼마나 왔으며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는 것도 지루한 여행에서는 심심풀이가 된다.
초도를 지나서 순항하고 있다. 여수에서 제주도 가는 항로와 교차하는 모양이구나. 그러니까 여수에서 제주배를 타면 거문도를 멀리서나마 보면서 지나가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렇지만 여수에서 제주배를 탔던 적은 없구나. 목포나 완도에서는 탔는데 그래서 거문도를 먼 발치에서도 봤던 적이 없었다.
동도와 서도를 잊는 연도교인 거문대교를 지나서 바로 만나게 되는 서도항은 이미 거문도에 다 온 곳이었다. 거문도는 삼도(三島)로 이뤄져 있어서 서도도 거문도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서도, 동도 그리고 고도로 이뤄져있고, 고도가 나중에 거문도가 되었더란다. 서도에는 전남에서 두 번째로 오래 된 국민학교라는 전통을 안고서 멋지게 지어진 거문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는데 사진에 보이는 큰 건물이다. 아마도 이 절해고도에 교육기관이 일찍 생긴 것은 어쩌면 영국인들이 3년이나 점령하고 있었던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동도와 서도의 사이에 있는 바다는 천혜의 풍수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밖에서는 풍랑이 일어도 여기는 잔잔하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 주민들은 서도에 많이 살았는데 나중에 고도인 거문도에 영국 해군들이 진을 치게 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나 뭐라나.
드디어 거문도항이다. 벼르기는 몇 년이었지만 집을 나서니 이렇게나 쉽게 도착을 하는구나. 그래도 새로운 곳에 도달한다는 것은 즐거울 따름이다.
이물에 문이 열려서 얼른 나가서 바깥 풍경을 봤다. 밧줄을 준비하고 있는 선원의 손놀림이 바쁘다.
드디어 거문도에 도착했다. 여기가 거문도구나.
우선 하룻밤 묵을 숙소를 정해야지. 대체로 비용은 5만원이고 기본적인 것만 제공한다는 정보는 이미 선행자들의 여행기를 통해서 잘 알고 있었기에 그냥 늘어선 민박과 모텔을 보면서 어디에 하룻밤 인연의 점을 찍을지 생각하면서 두리번두리번.....
거문황토민박.
주인 : 여행 오셨구먼 잘 자리는 잡았소?
낭월 : 아직 안 잡았지요.
주인 : 그러마 여기에서 하루 쉬어 가실라요?
낭월 : 그럽시다. 얼마입니까?
주인 : 오만원~!
낭월 : 건물이 오래 되었나 봅니다.
주인 : 원래 백 년도 더 되었어라. 그래서 기념이라고 하잖으요.
낭월 : 영국군들 있던 시절에 지었나 보군요.
주인 : 맞어라. 그때 일본 사람들이 지은 건물잉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