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금이 너무 극을 받으면 녹는다

작성일
2007-09-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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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가 금은 녹아야 한다. 녹여서 다른 물건을 만드는 것이 금인 까닭이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또 무슨 의미가 있어서인지 생각을 해본다. 금이 녹을 정도가 되면 실제로 그것이 금으로써의 존재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일시적으로 녹았다가 다시 금으로 환원이 되는 것은 예외로 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사시사철 그렇게 녹아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잠시 목적에 의해서 열을 받았다가는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의미이다. 불이 너무나 태왕한 상태로 열을 발산하고 있다면 미약한 금은 보나마나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항상 녹아있는 금은 누가봐도 불덩어리이지 금이 아니다. 지금 서대승님은 이러한 불덩어리를 그냥 금이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을까봐서 써놓은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용광로에서 녹아있는 쇳물은 그 자체로 불덩어리일 뿐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다만 이것을 어떤 틀에다가 부어서 그릇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고, 여기서는 항상 그 상태로 쇳물로 존재를 하게 되는 입장을 말하는 것이라고 알아두면 충분하리라고 본다.




이렇게 지나치게 극을 받으면 그 본래의 형체가 변한다는 의미를 생각해 봤다. 이것을 일러서 극이 과다한 경우에 발생하는 오행의 변화라고 이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적절한 것이 가장 좋다. 지나친 것도 반갑지 않고, 부족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런데 적절해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경우라면 누구던지 원하는 가장 보기좋은 것인데,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이러한 상황은 참으로 어렵다.

대다수는 필경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살아가게 마련이고, 실제로 이렇게 살아가는 현상이 있으니까, 인간의 사주에서도 또한 그러한 모습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비록 사주는 치우치거나 말거나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서 중용의 도를 취할 수만 있다면 도인이겠는데, 실제로는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자신의 욕망에 휩싸여서 극에서 극을 달리는 삶이 대부분인 것이다. 이번의 경우처럼 특별한 상황에 해당하는 것은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분명히 만날 수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이해를 하고 넘어야가 할 대목인 것이다. 이것이 서대승 님의 마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