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 제31장. 생존력(生存力)/ 5.다섯 손가락

작성일
2022-01-20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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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제31장. 생존력(生存力) 


5. 다섯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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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던 제자들이 왕현재의 입문을 박수로 환영하자 왕현재도 공수(拱手)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갑신보살의 법문을 듣고 보니까 나머지 네 분 보살의 법문도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제자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스승님의 설명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우창이 대중을 둘러보고는 모두가 자세한 설명을 듣고자 하는 표정임을 보고 적어놓은 오주괘를 보면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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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연주에서 신미(辛未)를 만난 갑일간(甲日干)은 그 마음에서 당당하고도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벼슬자리를 꿈꾸게 됩니다. 정관(正官)인 신(辛)이 정재(正財)인 미(未)를 깔고 있는 것으로 인해서 벼슬을 얻게 되면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움이 보장된다는 생각도 하는 요인(要因)이기도 합니다.”

우창이 점괘의 연주(年柱)를 풀이하자 왕현재는 감탄하면서 말했다.

“틀림없습니다. 예전에는 그러한 마음을 갖고 높은 벼슬을 부러워하게 되었었지요. 신기합니다.”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 그렇게도 간절하게 희망했던 관직(官職)에 대한 열망은 얼마 전부터 심드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것은 월주(月柱)의 을미(乙未)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놀랍습니다. 그 이치가 궁금합니다.”

“까마득하게 높아만 보였던 관직(官職)은 고관대작(高官大爵)의 하는 행태(行態)가 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겁재(劫財)의 이치에 해당하는 을(乙)로 인해서입니다. 공직에 종사하는 관리들의 내면을 알고 보니까 그곳에서도 숭고한 목민관(牧民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 같은 협잡꾼들이 바글바글한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은 을(乙)이 미(未)에 앉아 있는 까닭이지요. 이렇게 다들 재물을 긁어모으는 것에 혈안(血眼)이 되어있는 것을 보고서 느낀 것이려니 합니다.”

“절묘(絶妙)합니다. 과연 이제까지 제자가 생각했던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시는 듯합니다. 무슨 조화가 그 속에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것을 한마디로 ‘조짐(兆朕)’이라고 할 따름입니다. 우창도 어떻게 해서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간지가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요령부득(要領不得)인 까닭입니다. 그냥 간지신(干支神)이 있어서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할 따름입니다. 하하하~!”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까지의 제자가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는 더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대로 부합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조짐도 들어볼 수가 있겠습니까? 스승님의 분석이 매우 궁금합니다.”

우창은 제자들을 둘러보면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다들 눈빛을 반짝이면서 다음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그러한 표정은 우창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뭔가를 배우겠다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야말로 자신을 변화시킬 원동력(原動力)이기 때문이다.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실은 그대의 조바심이 걱정입니다. 수행은 서두르면 그르치게 되는 까닭이지요. 마음이 급하고 공부는 진척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면 서두르다가 뜻을 이루지도 못하고 상처만 입게 될까 걱정이 되는 까닭입니다.”

“아, 이것이 조바심이었습니까? 뭔가 모를 압박감(壓迫感)으로 인해서 초조한 마음이 자주 들곤 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시네요. 그것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듣고자 합니다. 제자도 그러한 마음으로 깊은 이치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욱 간절한 까닭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이 해석하는 까닭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왕현재의 말에 우창이 시주(時柱)의 기사(己巳)를 가리켰다. 그도 우창이 가리키는 것을 봤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우창의 설명을 기다렸다. 그러자 우창이 시주(時柱)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자, 여기 기사(己巳)가 있습니다. 독립적(獨立的)으로 본다면 기(己)는 전답(田畓)이고 사(巳)는 지열(地熱)입니다. 땅이 뜨끈뜨끈하다고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더위에 지친 갑목이 바라는 것은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의 물이거나 한 줄기 쏟아지는 단비가 되겠습니다만 아직도 땅은 뜨겁기만 합니다. 이것은 조바심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숨이 막히는 사람보다 더 마음이 급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더구나 사화(巳火)는 일지(日支)의 신금(申金)을 자꾸만 달구고 있습니다. 화극금(火剋金)이지요. 발바닥이 점점 뜨거워지는 사람이 무엇을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원하는 것은 어서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공부라는 것은 생각과 다르게 시간이 걸립니다. 받아들여서 수용해야 하고 다시 그것을 연마(硏磨)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한 다음에도 오랜 시간을 숙성(熟成)시키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서야 비로소 밖으로 짙은 향이 풍겨 나오고 그때쯤이 되면 어떤 사람이 궁금한 것을 물어도 자연스럽게 응답(應答)을 할 수가 있겠지요. 그러자니 시간은 3년의 세월도 바람처럼 훌쩍 지나갑니다. 그제야 비로소 쓸만한 연장이 되는데 그러한 시간을 기다리려니 발바닥은 자꾸만 뜨거워지고 마음은 급해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점괘에서 시주(時柱)가 보여주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오호~! 과연 감탄을 자아냅니다. 간지의 이치가 이렇게도 오묘한 것이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의 간지(干支)가 갖는 뜻은 무엇일까요?”

그러자 우창이 말했다.

“아직 시주에 대한 설명이 남았는데 생략하고 분주로 넘어갈까요?”

“예? 아직도 더 풀어야 할 내용이 있단 말씀입니까? 단 두 간지에서 그 정도로 말씀하시는 것도 놀라운데, 또 추가로 풀이해야 한다는 것은 더욱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갑(甲)이 기(己)를 보게 되면 집착하는 마음이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던 마음이기도 합니다. 가령 연주(年柱)의 미(未)와 월주의 미가 모두 본질은 기(己)가 되는 까닭입니다.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자신의 꿈이 비로소 겉으로 드러나게 될 것만 같은 희망이 보이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세계를 확고하게 갖고자 하는 간절함이기도 합니다. 아무에게 지시를 받지 않고 오직 스스로 자신의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태까지는 그러한 기회를 얻지 못했지요. 높은 지위를 얻고자 했던 연주(年柱)의 신미(辛未)도 겪어봤으나 그것은 간절하게 원하던 것이 아니었고, 남들이 다 원하는 세상에서의 부귀조차도 심드렁하게 되는 월주(月柱)의 을미(乙未)도 겪어봤지만 역시 자신이 찾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무엇보다도 남[乙]이 애써 이룬 것을 빼앗아야만 내 것이 되는 것에 대해서 회의심(懷疑心)이 들었던 것입니다.”

“아, 그렇게 해서 연월일시를 관통(貫通)하는 이치(理致)가 되는 것이었습니까? 이제야 비로소 각각 서로 다른 간지가 어떻게 기승전결(起承轉結)을 보여주는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따로도 살피고 함께도 살피는 이치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왕현재가 이렇게 말하면서 감탄하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춘매가 손을 들고는 말하려고 하자 우창이 눈길을 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말해 보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춘매가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해 보니까 다섯 간지는 마치 하나의 손바닥에 모여 있는 다섯 손가락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어느 점술가는 왼손의 손가락으로 육갑(六甲)을 짚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문득 왼손을 보면서 떠올려 봤어요. 그러니까 소지(小指)인 새끼손가락은 연주(年柱)가 되어서 지난날의 뿌리가 되지만 막상 실제로는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어요. 무명지(無名指)인 약손가락은 월주(月柱)가 되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는 있으나 주체(主體)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중지(中指)인 가운뎃손가락은 과거와 현재의 중심에서 균형을 잡고 지금의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섯의 손가락 중에서도 가장 길다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춘매가 이렇게 말을 하고는 우창을 바라봤다. 제자들도 춘매의 말을 듣고는 저마다 자신의 왼손을 앞에 놓고서 생각에 잠겼다. 춘매는 자신의 말이 이치에 부합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러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답했다.

“오호~! 춘매의 설명은 우창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영감이 보이는걸. 어서 계속해보게, 근취저신(近取諸身)이라고 하더니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주괘(五柱卦)의 이치와 오지(五指)는 물론이고, 오행(五行)의 의미까지도 한 줄에 꿰어버렸으니 감탄을 할 밖에. 하하하~!”

춘매는 우창이 설명을 듣고서 과찬을 하자 겉으로는 부끄러우면서도 내심에서는 기쁜 마음이 샘솟았다. 그래서 고마움의 눈짓을 한 번 던지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스승님께서 헛된 궁리라고 하지 않으시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인데 하물며 기특하다고 해 주시니 감사드려요. 그럼 계속 말씀을 드릴게요. 인지(人指)라고 하는 집게손가락은 시주(時柱)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든 변화를 하는데 이 손가락의 변화에 따라서 결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되기도 하니까 말이에요. 왜냐면 오른 손가락도 같겠으나 이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면 만고(萬古)의 문학(文學)이 되겠지만, 앞에 있는 사람에게 찌르듯이 한다면 아마도 시비가 붙어서 온전히 넘어가기 어려울 테니까요. 결국 핵심은 시주(時柱)인 인지(人指)와 분주(分柱)인 무지(拇指)에 달렸으니 삶은 이 두 손가락을 어떻게 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춘매가 우창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동조하면서 말했다.

“과연 명쾌한 해석이로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그리 깊은 생각은 아니지요. 문득 사람은 두 손가락을 가장 많이 사용하듯이 운명은 항상 미래로만 달려간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지금에 머무르고 있는가 싶은 순간은 즉시로 과거가 되어버리고 마음은 다시 미래로 향해서 달려가고 있으니까 말이에요. 왕 선생에 대한 마음을 설명하시는 내용을 들으면서 문득 이와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약간의 기특함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스승님의 사려 깊은 가르침 덕분이에요. 호호호~!”

우창은 문득 갑자기 일어난 오행원의 변화로 인해서 춘매에게 각별한 마음을 써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겨울은 단둘이서 그렇게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요즘 분주한 관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서운하게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에 안타까움이 아련하게 피어올랐다. 그러나 춘매는 그러한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자들 뒷바라지를 함에 소홀함이 있을까 봐서 염려하는 마음만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창이 제자들을 향해서 한마디 했다.

“여러분도 이렇게 가까이에서도 진리를 찾고, 또 멀리에서도 진리를 찾는 모범을 춘매를 통해서 보셨습니다. 이치에 맞으면 즐겁고 혹 벗어난다고 해더라도 또한 생각해 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저마다 기발한 생각으로 활발하게 궁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예, 스승님~!”

그러자 춘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현재가 춘매에게 합장하여 고마움을 전하고는 우창을 향해서 말했다.

“춘매 사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제자도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무지(拇指)와 식지(食指)로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알았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는 것도 행위(行爲)로 인해서 오늘의 자신이 존재하니 이것이 중지(中指)가 되고 그것은 다시 기억 저편으로 가서 존재했었으나 현실적으로 별로 의미가 없는 약지(藥指)와 소지(小指)가 되는 것이 참으로 오묘합니다. 그렇다면 무명지(無名指)가 약지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 스승님께서 고견이 있으시면 그것마저 들었으면 합니다.”

왕현재의 집요함도 만만치 않았다. 역시 식신생재(食神生財)의 구조는 사소한 이치라도 파고들어야 속이 시원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창은 잠시 뒤로 미뤄놨던 왕현재의 사주를 앞으로 내어놓고 대중들을 향해서 말했다.

351-2

“자, 이렇게 하나를 배우면 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식신생재(食神生財)의 마음이라는 것을 차제에 알아두면 됩니다. 일간(日干)의 신금(辛金)은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왕성한 열정인데다가 월간(月干)의 계수(癸水)는 바늘의 구멍같이 작은 틈이 있어도 여지없이 파고 들어가는 물과 같고, 그렇게 흘러들어서 나무를 키우는 결실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가 있으니 멀지 않아서 큰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하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대중도 축하하는 의미로 일제히 우레같이 박수를 쳤다. 다시 그러자 왕현재는 일어나서 제자들에게 읍을 하고는 우창에게 말했다.

“이제야 스승님을 만난 것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반드시 오행의 이치를 깨달아서 만민에게 지혜를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제자의 사주에서도 그러한 정도의 인연을 타고났다고 하셨으니 희망이 샘솟습니다.”

우창은 미소로 화답하고는 춘매에게 말했다.

“내친김에 춘매가 이 점괘의 분주를 설명해 보시려나?”

춘매는 자신을 불러준 우창이 고마웠다. 말없이 붓을 들고는 왕현재의 점괘 아래에 그림을 하나 그렸다.

춘매가 그려놓은 것을 보던 우창이 말했다.

“어? 이것은....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그림이잖은가?”

무슨 뜻인지 모두가 어리둥절하고 있자 이번에는 춘매가 붉은 주사(朱砂)를 찍은 붓을 들고 그림에 줄을 죽죽 긋는 것이었다.

352 왕현재점괘주먹

그제야 우창은 무슨 뜻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아하~! 조금 전에 춘매가 말한 그 내용이잖은가? 과연 그림 솜씨도 쓸만 한걸. 그런데 다른 손가락은 다 접혀있고 엄지손가락만 세워져 있는 이유는 무엇이지?”

우창은 대략 짐작은 했으나 제자들의 궁금증을 대신 물어주는 것도 스승이 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짐짓 물었다.

“아마도 스승님께서는 대략 짐작하셨으리라고 생각되는데 그래도 물으시니 말씀드릴게요.”

그러자 아까부터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채운이 손을 들고 말했다.

“춘매 언니 잠깐만~!”

채운의 외침에 춘매가 눈길을 주었다. 그러자 채운이 말했다.

“채운이 생각한 것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왜냐면 이렇게 생각한 것이 맞는 것인지 미리 말씀드려서 확인받고 싶어서요. 호호~!”

“어서 말해 봐. 어떤 말을 할지 춘매도 궁금하네. 호호~!”

“다른 것이 아니고요. 엄지를 치켜든 것이 혹 분지(分支)의 해수(亥水)를 의미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어요. 점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갑(甲)의 뿌리가 되면서 사(巳)를 쳐버리고 중심을 잡게 해 주는 것이기도 한 까닭이에요. 이러한 의미를 생각해 봤을 적에 열 개의 간지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이 해(亥)일 것으로 생각되어서 엄지를 치켜들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이라는 생각에 속이 다 후련했어요. 그래서 채운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을 받아보고 싶었어요. 호호~!”

채운의 말에 춘매가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짝짝짝~! 역시 채운 사매의 매서운 눈길을 벗어나지 못했네. 맞았어. 점괘에서 가장 핵심적인 해(亥)가 분지(分支)에 나타났다는 것은 시간은 걸릴지라도 반드시 큰 성취를 얻어서 강호를 유람하면서 마음의 번뇌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감로법문(甘露法門)을 나눠줄 역량(力量)을 기르게 될 조짐이라는 생각을 했지 뭐야. 호호호~!”

춘매가 이렇게 말하자 채운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 채운의 생각이 맞았어요? 와우~! 오주괘의 이야기는 생소하나 그 핵심의 대강은 이해한 것 같아서 신나요. 과연 간지의 이치가 어디에서나 하나로 통한다고 생각했어요. 더구나 해(亥)는 갑(甲)의 편인(偏印)이에요. 그러니까 철학이 이치를 통찰(洞察)하고 정신세계의 깊은 경지(境地)를 추구할 수가 있을 것이고, 더구나 그것을 마음대로 자유롭게 누릴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왕 선생의 행운이 부럽기조차 하네요. 호호~!”

두 여인의 대화를 경청하던 왕현재는 자신도 모르고 두 손을 모아서 합장하면서 춘매에게 말했다.

“춘매 사저의 가르침에 감동했습니다. 과연 제 꿈이 마침내 이뤄질 날이 있으려나 봅니다.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도록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아낌없는 편달(鞭撻)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을제게 선물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념으로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조석으로 자신을 경책(警策)하는 채찍으로 삼고 싶습니다.”

춘매가 왕현재의 말에 미소로 화답하자 우창이 말했다.

“과연 아름다운 일 중에서 학문으로 기쁨을 누리는 것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싶은 풍경입니다. 이와 같이 연구하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정진해 주시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그러자 왕현재가 우창에게 부탁을 했다.

“스승님께 간청(懇請)드립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제자에게도 호(號)를 하나 내려주실 수는 없겠습니다. 그동안은 왕현재로 살아왔으나 앞으로는 오행원에서 거듭 태어난 마음으로 새로운 나날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새로운 이름을 하나 얻었으면 합니다. 부디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왕현재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거절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우창이 생각하기에 사주의 용신이 무술(戊戌)인 것을 감안(勘案)하면 아호에도 토(土)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도 좋지싶습니다. 그렇다면 무산(戊山)은 어떻습니까?”

“설령 스승님께서 썩은 막대기라고 해도 기쁘게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산은 무슨 뜻으로 이해를 하면 좋겠는지가 궁금합니다. 의미를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아, 무(戊)는 건(乾)이고 천(天)이니 하늘이란 뜻이오, 뜻은 하늘에 두고 몸은 태산(泰山)처럼 부동(不動)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스승님이십니다. 부르기도 쉽고 뜻은 심오합니다. 이러한 호를 사용하여 우주를 포용하는 뜻을 품고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하고서 왕현재는 이 순간부터 무산으로 거듭 태어나기로 했다. 모두가 호를 칭하면서 축하해 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러자 수경(水鏡)이 왕현재의 호를 축하하는 의미로 시를 한 수 지어서 읊었다. 모두 청아한 수경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창공만리광활무(蒼空萬里廣闊戊)
종횡천하장쾌산(縱橫天下壯快山)


만리나 펼쳐진 푸르른 허공에 광활한 무여
천하를 누비는 웅장하고 호쾌한 산일세


 

수경이 시를 읊자 모두 박수로 환영했다 그러자 무산이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멋진 무산(戊山)에 수경 사저님이 날개옷을 입혀주셨으니 더욱 분발해서 스승님의 은혜에 만분지일이라도 갚을 수가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자 수경이 말했다.

“그냥 흥이 겨워서 말이 되는지도 모르고 읊조렸으니 혹 결례가 되었더라도 양해를 바래요. 다만 축하드리는 마음은 전해졌기만 바랄 뿐이에요. 호호~!”

이렇게 사제지간(師弟之間)에 훈훈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또 하루의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서창(西窓)에 햇살이 빗겨들 무렵에서야 모두는 하루의 공부가 끝나간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모두 우창에게 감사의 예를 올리고 내일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고는 저마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다시 오행원은 본래의 고요함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제야 자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스승이나 제자들이나 폭발적인 열기로 폭염도 뒷전이네요. 이렇게 감동이 넘치는 풍경은 참으로 오랜만이네요. 그래서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싸부의 제자 복을 축하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축하합니다. 호호~!”

그러자 우창도 잊고 있었다는 듯이 자원에게 말했다.

“자원이 옆에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네. 그런데 오늘은 열기에 휩싸여서 자원의 존재도 잊고 있었던 모양이네. 자원도 오주괘의 대강(大綱)은 이해했지?”

“그럼요. 더구나 오늘 무산과의 대화를 들으면서 오주괘의 9할은 깨달은 것도 같아요. 누군가 다급하게 묻는다면 몇 마디는 할 수도 있지싶어요. 모두가 싸부의 명석하고 통쾌한 가르침의 위력이에요. 호호~!”

“그렇다면 다행이네. 오늘은 우리 나가서 저녁을 해결할까?”

그러자 춘매가 가장 좋아했다. 가끔 찾았던 노부부의 식당으로 가서 모두 맛있는 저녁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는 내일을 위해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